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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12
관계를 지탱하는 밑바탕은 신뢰입니다. 신뢰 없는 사랑과 협력은 없는 줄 아시라! 다툼의 이면에는 불신이 있고, 불신을 낳는 것이 오해입니다. 사소한 오해에서 불신이 자라 신뢰의 기둥을 갉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집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구성원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공주야! 따라 하긴 쉬워도 살아내기 어려운 말이 ‘아멘’이 아닐까, 그것은 진리에 대한 동의만이 아니라 진리를 살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The foundation that supports a relationship is trust. Know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love and cooperation without trust! Behind every quarrel lies distrust, and misunderstanding gives rise to distrust. I believe that distrust grows from minor misunderstandings and erodes the foundation of trust. What efforts must the members make to ensure that God's house does not collapse? Princess! Isn’t “Amen” a word that is easy to imitate but hard to live by? Because it is not merely agreement with the truth, but a commitment to li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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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하는 바울을 힘들게 하는 것은 비단 환란(8)만이 아니다. 고린도 방문 계획의 변경에 대한 성도들의 오해와 비방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기를 자랑한다. 이것은 낯 뜨거운 자기 P.R이 아니라 차라리 변호에 가깝다. 고린도 성도들을 대할 때 거룩하고 진실하게 사역하였다.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음을 양심을 걸고 증언 할 수 있었다. 마땅히 해야 하는 대로 했다는 고백이다. 남들과 비교 하지도 않고, 없는 것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What makes it difficult for the ministering Paul is not only the persecution (8). It was a misunderstanding and slander from the congregation regarding changes to the plan for the visit to Corinth. Paul boasts about himself to the believers in Corinth. This is not embarrassing self promotion; rather, it is closer to a defense. He ministered to the believers in Corinth with holiness and sincerity. I was able to testify, with a clear conscience, that I acted by God’s grace, not by the wisdom of the flesh. It is a confession that I did what was right. I neither compare myself to others nor exaggerate what I 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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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를 양심껏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참 사역자일 것이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오해가 풀려서 바울이 성도들에게, 성도들이 바울에게 자랑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주야!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능력이나 스펙을 따지지만 역시 모든 문제의 실마리는 진정성의 문제라고 본다. 공주야! 오늘하루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살자. 바울은 자신이 1년 반 동안 직접 목회했던 교회로부터 사도 권에 대한 정통성 문제에 대하여 도전을 받았고
If he could speak honestly as he is, he would be a true minister. Paul is relieved of the misunderstanding and hopes that he will be a source of pride for the believers and that the believers for him. Princess, what matters in a relationship is sincerity. In the society we live in, we judge by ability and credentials, but I believe the root of all problems is a matter of sincerity. Princess, let us live today with holiness and truth. Paul was challenged regarding the issue of his authority over the epistle by the church he had ministered to for a year and a h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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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교회 방문과 관련하여 약속을 어긴 일로 구설수에 휘말렸다. 모르긴 해도 바울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야. 바울은 애초 유대에서 마케도니아로 갈 계획이었다. (고린도를 거쳐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교회의 지원을 받아 유대로) 그래서 자신의 일정을 이전 편지를 통해서 밝힌 바가 있다, 그런데 부득불 그 계획을 변경 시켜야할 상황이 왔고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 부분 때문에 바울이 오해와 비난을 받은 것 같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수군거리고 있다.
I became embroiled in controversy for breaking a promise regarding a visit to a local church. I don't know for sure, but Paul must have been dying. Paul had originally planned to go from Judea to Macedonia. (He would have gone through Corinth to Macedonia and then, with the support of the church in Corinth, traveled to Judea.) Therefore, he had already outlined his schedule in a previous letter, but circumstances forced him to change that plan, and he did so. It seems that Paul was misunderstood and criticized because of this part. The believers in the Corinthian church are whispering among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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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때 돌아가거나 피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알고 있어 관계에 얼룩이 남아 있는데, 모든 진실이 말끔히 들어나서 주 예수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각자에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되는 관계가 되고 싶어 한다. 누구와 어떤 오해가 남아 있는가? 주님 앞에서 볼 사람들인데 그냥 지나치려는가? 바울은 고린도 방문 계획을 변경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울의 인격의 결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더 나아가 그의 사역의 신실 성을 의심 받아야 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At that moment, Paul did not return or flee. They know only part of the truth, leaving stains in their relationships, and they want the whole truth to be revealed so that, on the Day of the Lord, their relationships may be a source of pride rather than shame before God. With whom and what misunderstanding remains? You are people to be seen before the Lord—how can you just pass by? Paul acknowledges that he changed his plans for the visit to Corinth. However, this does not mean a defect in Paul's character, nor is it a matter that calls for doubt regarding the faithfulness of his 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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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안 가든, 계획대로 하든 변경하든, 그는 경솔하지 않았다. 그의 복음 사역은 삼위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성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예수님이 수행하시고, 성령께서 보증하시는 사역에 참여하였다. 참 사역자는 그 하나님의 신실한 구원사역을 경험하게 하는 신실한 통로가 되어야 하며, 그들의 삶 또한 신실해야 한다. 신뢰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데서 비롯되는가, 아니면 약속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진실하게 책임지는 태도에서 비롯되는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는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Whether in the garden or not, whether he followed through on his plans or changed them, he was not reckless. His gospel ministry was a participation in the saving work of the Triune God. I participated in the ministry begun by God the Father, carried out by Jesus, and guaranteed by the Holy Spirit. A true minister must be a faithful conduit through which others experience God's faithful work of salvation, and their own lives must also be faithful. Does trust stem from keeping promises to the very end, or from a sincere and responsible attitude even when promises must be altered? How should humans who confess God's faithfulness live while acknowledging their own imperf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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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바울의 태도 변호(12-14)
a.교회를 향한 바울의 태도 변호:12
b.이전 편지 내용에 대한 변호:13-14
방문 계획 변경과 복음 전파의 신뢰성 변호(15-22)
a.바울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에 대한 변호:15-17
b.바울이 전한 복음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변호: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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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12a)
세상에서 특별히(12b)
너희에게 대하여(12c)
하나님의 거룩함과(12d)
진실함으로써 하되(12e)
육체의 지혜로(12f)
하지 아니하고(12g)
하나님의 은혜로(12h)
행함은(12i)
우리 양심의(12j)
증거 하는 바니(12k)
이것이(12l)
우리의 자랑이라(1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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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희가(13a)
읽고 아는 것 외에(13b)
우리가 다른 것을(13c)
쓰지 아니하노니(13d)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13e)
내가 바라는 것은(1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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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14a)
대강 우리를(14b)
아는 것 같이(14c)
우리 주(14d)
예수의 날에(14e)
너희가 우리의(14f)
자랑이 되고(14g)
우리가 너희의(14h)
자랑이 되는 것이라(1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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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15a)
이 확신을 가지고(15b)
너희로(15c)
두 번 은혜를(15d)
얻게 하기 위하여(15e)
먼저 너희에게(15f)
이르렀다가(1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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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지나(16a)
마게도냐에 갔다가(16b)
다시 마게도냐에서(16c)
너희에게 가서(16d)
너희가 보내줌으로(16e)
유대로 가기를(16f)
경영하였으니(1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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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영할 때에(17a)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17b)
혹 경영하기를(17c)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17d)
예 예하고(17e)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17f)
내게 있었겠느냐 (1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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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미쁘시니라(18a)
우리가(18b)
너희에게 한 말은(18c)
예 하고(18d)
아니라 함이 없노라(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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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19a)
곧 나와 실루아노와(19b)
디모데로 말미암아(19c)
너희 가운데 전파된(19d)
하나님의 아들(19e)
예수 그리스도는(19f)
예 하고 아니라 함이(19g)
되지 아니하였으니(19h)
저에게는(19i)
예만 되었느니라(1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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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은(20a)
얼마든지(20b)
그리스도 안에서(20c)
예가 되니(20d)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20e)
우리가 아멘 하여(20f)
하나님께 영광을(20g)
돌리게 되느니라(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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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21a)
너희와 함께(21b)
그리스도 안에서(21c)
견고케 하시고(21d)
우리에게(21e)
기름을 부으신 이는(21f)
하나님이시니(2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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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또한(22a)
우리에게(22b)
인치시고(22c)
보증으로 성령을(22d)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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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이 되라_Be Amen.
진리와 진심_truth and sincerity
아멘을 살라_Liv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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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부르심을 입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살게 하여 주시고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거룩하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한 입 갖고 두 말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다만 델리 게이트 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때 나도 주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내 신실함을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I pray that the Holy Spirit will show us that by His grace, we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will. And so, whether we live or die, help us to live as Your people, so that we may live praising the glorious grace You freely give us in Christ Jesus. Because You are holy and faithful, may I not become someone who says two things for one mouth. But when I face a situation of a deluge, help me live a life in which I can speak of my own faithfulness based on the Lord’s faithfulness.
2026.11.2. mon. Clay
신학 비평//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반드시 거짓말이나 배신만은 아니다. 때로는 사소한 오해가 불신을 낳고, 불신은 상대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게 만든다. 고린도 교회와 바울의 갈등도 그러했다. 방문 계획의 변경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사도의 진정성과 복음의 신뢰성까지 의심받는 문제로 확대되었다. 인간은 종종 상대가 무엇을 했는가보다 그 행동에 자신이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에 따라 관계를 판단한다. 철학적으로 이는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지닌 해석학적 특성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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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선이해를 통해 해석하는 존재다. 따라서 오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을 진실 자체로 확신할 때 더욱 깊어진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일정 변경을 불성실함으로 해석했다면, 바울은 그 사건을 자신의 양심과 사역의 진정성이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긴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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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고백만으로 상대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바울의 변호 역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상대가 왜 불신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이 관계에 미친 영향까지 책임져야 한다. 고린도후서의 핵심적인 역설은 인간의 계획은 변경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경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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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변덕스러움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한 행위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을 구별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멘'은 단순한 종교적 동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약속에 응답한다는 것은 그 신실하심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겠다는 결단이다. 그러나 아멘을 산다는 것이 한 번 한 약속을 어떤 상황에서도 변경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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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필요한 경우 계획을 수정하며, 그 과정에서 진실을 숨기지 않는 책임 있는 태도에 가깝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바울이 자신과 고린도 성도들을 함께 견고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는 사실이다(21절). 사도와 성도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넘어, 동일한 은혜 앞에서 서로의 신실함을 확인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집은 어느 한 사람의 권위나 무오류성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적 책임 위에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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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뢰란 결코 실수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실수와 오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지속적인 결단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까지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실하심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수정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 아멘은 입술로 진리에 동의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진실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신뢰는 약속을 한 번도 변경하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변경된 약속 앞에서도 진실을 잃지 않는 신실함에서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