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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새 출발로 아름다운 가족의 달☜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예수)를 부인(否認)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否認)하리라(마10:33)
단6:10-27절) 난세(亂世)의 믿음
신앙(信仰)이 없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신앙(信仰) 때문에 잡혀서 순교(殉敎)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즉 다른 잘못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붙잡혀서 고문(拷問)을 당하고, 때로는 죽임까지 당해야 할 때, 그렇게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바보 같기도 하고, 억울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기 때문에 붙들려서 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신앙(信仰)이 무엇이기에, 신앙 (信仰)하나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포기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포기하며,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마음껏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복(福)인 것과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큰 행복(幸福)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아무것이나 신격화(神格化)시키기 때문에 왕이나 통치자 하나쯤 더 신격화(神格化)시킨다 해서 안 될 것은 없습니다. 즉 죽은 조상도 신(神)이고, 바위나 태양도 신(神)인데, 살아 있는 사람 하나 신(神)으로 더 만들어 준다고 해서 무슨 큰일 날 일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을 올바로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부정(否定)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굉장히 갈등(葛藤)을 일으키게 됩니다.
즉 끝까지 하나님만 믿겠다고 하면, 무지무지한 육체적(肉體的) 고통을 당하고, 세상의 모든 행복을 빼앗기며, 결국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을 모르는 것으로 하고, 이 세상의 행복을 지킬까? 하는 갈등(葛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의미가 있는 삶을 얻었고, 지금 누리는 모든 행복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죽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사는 것이지,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과거의 그 미신(迷信)과 죄(罪)에 사로잡혔던 그때로 되돌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많은 성도들은 육체적(肉體的) 인 고통이 무서웠고, 세상의 모든 행복을 빼앗기는 것이 억울하고 아까웠지만, 도저히 하나님을 부인(否認)할 수 없어서 죽음의 길을 선택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교(殉敎)는 결코 다른 사람이 강요(强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순교(殉敎)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과연 이것이 자기가 사는 것이며, 어느 것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본인이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벨론 시대 때, 이미 사르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의 무시무시한 우상숭배(偶像崇拜) 시험에서 멋지게 승리를 거둔 사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니엘에게 그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영원히 계속 될 줄 알았던 바벨론 제국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 망했고. 메대와 바사 제국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메대와 바사 제국은 다른 나라의 종교(宗敎)에 대하여 아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써서, 바벨론을 멸망시킨 고레스 왕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본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사탄(詐誕)은 이것을 그냥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사탄(詐誕)은 다니엘을 미워하고, 시기(猜忌)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니엘을 올무에 걸어서 죽일 방법을 찾게 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자들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죄(罪)로 걸어서 함정에 빠트려 사자(獅子) 굴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이 시험에서 멋지게 승리하고, 다니엘을 시기하던 자들이 오히려 사자(獅子) 굴에 던져져서 사자(獅子)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Ⅰ.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
6:1-2절)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때, 관직에 있었던 사람인데, 중간에 잠깐 물러났다가 벨사살 왕이 망하는 날에 바벨론의 세 번째 통치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즉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와 바사 제국이 세워졌을 때, 다니엘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총리로 다시 기용(起用)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때 메대와 바사 왕을‘다리오’라고 했습니다.
바사 제국에서는 다리오라는 이름을 왕이 여러 명 나타납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이 다리오가 고레스와 동일한 인물로 생각합니다. 바벨론을 망하게 하고, 메대와 바사 나라를 세운 사람은 고레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전혀 몸값을 받지도 않고, 자유인으로 해방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바벨론의 금은보화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몸값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예언한 것과 일치합니다. 고레스는 자기에 대하여 성경에 예언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유대인에게는 아주 특별할 정도로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내 종 고레스’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다리오가 어떻게 해서 다니엘을 총리로 중용(重用)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니엘은 메대와 바사의 세 총리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다른 모든 관리들 중에서 이질적(異質的)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나라가 망하고, 새 나라가 세워지면, 나름대로 거기에 기여한 사람들이 이제 자기 세상이 왔으니까 새 나라에서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주무르려고 했을 것입니다.
아마 다리오 왕은 이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다니엘을 총리로 세운 것 같습니다. 다리오 왕은 신하들의 도움으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지만. 이제는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좀 독자적으로 나라를 다스려나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리오 왕은 신하들의 눈에는 다니엘이 눈에 가시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6:3-4절)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우리는 여기서 다리오 왕과 신하들 사이에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葛藤)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신하들은 새로 세운 나라에 자신들의 공이 있으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쥐고 흔들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비하여, 왕은 왕 나름대로 통치 원리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데, 그 사이에 다니엘이 끼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위치는 참으로 애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원래 유다에서 포로로 잡혀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망한 바벨론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다른 신하들과 한편이 되려고 하지 않고, 왕에게 아주 정직했고, 공평하게 자기에게 맡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의 신하들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어떤 핑계를 잡아서 다니엘을 제거하면, 왕의 오른팔이 잘려지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니엘을 무슨 부정이나 잘못을 걸고넘어지려고 아무리 조사를 해도 다니엘이 워낙 깨끗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걸고넘어질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이 다니엘을 눈에 가시같이 생각했던 것은 곧 이런 부정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워낙 정직하게 일을 잘 처리하니까 자기들이 마음대로 부정을 저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평소에 모든 일을 처리할 때,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함께 부정을 저지르면, 하나님 앞에서 나중에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해서 미움을 당하고, 욕을 먹는 것이 나중에 좋을 때가 많습니다.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니엘이라는 금전적인 부정이나 엄무상의 일로는 절대로 허물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 이 사람의 신앙을 가지고 올무를 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Ⅱ.사탄(詐誕)의 무서운 올무
다니엘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다른 총리와 신하들이 다니엘을 걸고넘어지려고 한 것은 다니엘의 기도(祈禱)였습니다. 그들은 먼저 왕을 찾아가 왕을 굉장히 위해주는 것처럼 하면서 다니엘이 걸릴 올무를 만들었습니다.
6:7절)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왕을 생각해 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왕의 오른 팔을 잘라 내려는 무서운 음모(陰謀)였습니다. 대개 왕이 자신을 신격화(神格化)하는 것은 자기 권력(權力)에 도취(陶醉)되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일종의 정신병에 속한다고 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절대 권력(權力)을 잡았다 하더라도 신(神)이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權力)에 집착하고, 게다가 열등감 같은 것까지 겹치면, 아무래도 정상적인 짓을 하게 되어 있어서 그 결과는 엄청난 재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왕이나 권력(權力)자가 자신을 신격화(神格化)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을 모두 허수아비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 미친 자동차의 질주에 제동을 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제 때, 일본 천황이 자신을 신격화(神格化)하더니, 결국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왕이나 통치자가 신(神)이 되어 버리면, 아무리 잘못된 자라 해도 주위에서 감히 신(神)에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큰 재앙(災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왕이나 통치자는 스스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즉 권력 주위에는 아첨(阿諂)하는 사람들이 들끓게 되어있고,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올바른 말보다는 아첨(阿諂)의 말이 더 좋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왕이 자신을 신격화(神格化)할 때는 자기가 교만(驕慢)해서 그렇게 할 때가 많은데, 다리오의 경우는 신하들이 왕을 신격화(神格化)라는 법률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이럴 때 왕은 조심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일단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고, 또 총리나 신하들이 다 같이 연구해서 만들어 왔다고 하니까 결국 별 생각 없이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6:8절)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나라가 처음 세워졌을 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이때 왕이 통치권을 제대로 장악하려면, 한번 만든 법(法)을 함부로 변경하거나 취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이런 명령을 내렸다가 취소하고, 또 그 다음에 다른 명령을 내렸다가 변경한다면, 사람들은 왕을 우습게 알고 그 다음부터는 왕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하나를 결정 할 때,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할 법에 도장을 찍어버렸습니다.
결국 사탄(詐誕)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과 맞지 않으니까 이 세상에 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마귀(魔鬼)의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상입니다. 마귀(魔鬼)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신앙을 버리든지, 아니면 죽으라고 히는 것은 감히 하나님께 도전장을 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나라에 새로운 법률이 반포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 법률은 다니엘을 겨냥한 것이고,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神)에게 기도를 하면, 사자(獅子) 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다니엘은 분명히 이 문제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우상(偶像)에게 절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기도만 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것도 영원히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30일 동안이니까 30일만 기도를 꾹 참자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기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문을 꼭 닫고, 기도하든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모든 방법을 버리고, 지금까지 해오던 그대로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6:10절)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어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전에 해오던 식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세 번식 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을 더 나아가 감사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자기가 죽게 되었는데, 무엇이 좋아서 감사까지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까지 기도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죽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공부하려고 하거나, 돈을 벌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은 결국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인데, 오직 신앙 때문에 이 모든 행복을 포기하고, 목숨까지 포기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신앙이 종이호랑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가 믿고 싶으면 믿고, 믿기 싫으면 그만 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나면, 하나님은 종이호랑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호랑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머릿속으로 믿는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변합니다. 즉 인생의 의미와 가치관이 변하게 되고, 말할 수 없는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변덕을 부려서 그 하나님이 틀린 것으로 하자고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축복을 전부 틀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축복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이후의 우리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신앙이냐? 목숨이냐? 선택하는 것은 결코 작은 시험(試驗)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사(生死)가 모두 다 걸려있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일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까 일어났고 꼭 이겨내야 할 시험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내 목숨을 건지고, 하나님의 생명을 부인(否認)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고, 내 육체의 생명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나님을 부인(否認)하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누군가가 30일 동안만 기도를 꾹 참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는 다니엘에게 숨 쉬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30일 동안 숨을 쉬지 않으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몰래 기도를 하면 어떨까? 결국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찾아내면, 사자 (獅子)굴에 들어가면서도 비굴하게 들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의 법보다는 하나님의 법이 더 위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에 하던 그대로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Ⅲ.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
다니엘은 예전처럼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을 본 다른 신하들은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미워하던 다니엘이 드디어 자기들 함정(陷穽)에 걸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먼저 다리오 왕에게 찾아가서 예전에 왕이 어인(御印)을 찍었던 그 법률을 확인했습니다.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기도할 수 없는 법이 사실인지 물었습니다. 왕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니엘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했다고 고소했습니다.
6:13절)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다리오 왕은 신하들이 자기를 추켜세울 때, 이미 주의를 했어야 했는데, 별일이 있겠는가? 생각하고 도장을 찍는 순간 자기가 가장 신임하던 오른팔을 잘라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신하들은 왕이 도장을 찍은 법률은 왕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다리오 왕은 *아차!* 했지만, 이제는 그 법을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리오 왕은 자기가 서명(誓命)한 법대로 자기가 가장 신임하는 다니엘을 사자(獅子)굴에 넣어 처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리오 왕은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이렇게 막 해 댔습니다.
6:16절)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시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다리오 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다니엘을 보았을 때, 다니엘의 생활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웠는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신앙의 사람을 비참하게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인정하고, 축복하는 신앙이 제대로 된 신앙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예수를 믿지 않지만, 큰 어려움을 당한 성도를 보고“하나님께서 당신 같은 사람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게 하실 거요”라고 경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믿는 사람이 너무나도 좋게 보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을 체포해서 사자(獅子)굴에 넣은 다른 신하들은 신이 났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총리라고 해서 큰 소리를 쳤는데, 이제는 꼼짝 못하고 자기들 손에 죄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조롱하고, 욕해도 다니엘은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다니엘도 사자(獅子)에게 물려 죽는 것이 무섭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죽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그러나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은 다리오 왕이었습니다. 왕은 자기는 믿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다니엘을 죽지 않게 지켜 주시지 않을까?하는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자기가 다니엘을 대신해서 금식(禁食)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아침이 되자마자 왕이 사자(獅子) 굴로 급히 달려가서 슬픈 목소리로 다니엘을 부르면서 6:20절)...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사자(獅子)굴에서 다니엘의 6:21절)...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6:22절)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즉 다니엘은 사자(獅子)굴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사자(獅子)들이 잡아먹기는커녕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6:23절)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이때 왕이 할 일은 분명해졌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어인(御印)을 찍은 조서(詔書)가 변경할 수 없는 법이라도 이 법(法)보다 더 위에 있는 법(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법(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리오 왕은 자기 법(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法)에 따라 다니엘을 모함(謀陷)했던 자들을 가족들과 함께 사자(獅子) 굴에 집어넣었고,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獅子)가 그들을 집어삼켜서 뼈까지 부서뜨려서 먹어 버렸습니다.
결국 다니엘을 해치려고 모의(冒擬)했던 자들이 다니엘이 살아나는 바람에 모두 일망타진(一網打盡)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려고 모의(冒擬)하는 것은 하나님께 도전장(挑戰狀)을 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얼마나 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절대적인 권력(權力)을 가진 나라에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세 친구들은 풀무 불에서 살아나옴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사자(獅子)굴에서 살아나오는 것을 보고 옛날에 느부갓네살이 했던 것과 똑같이 조서(調書)를 내려서 하나님을 찬양(讚揚)했습니다.
6:26-27절)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이제 드디어 다리오 왕은 당당하게 다니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공표(公表)를 합니다. 왜냐면 다니엘이 사자(獅子)굴에서 살아나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해서 느부갓네살 때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니엘을 통하여 다리오 왕 때도 하나님의 살아 계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目的)은 이런 식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일 당하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다니엘과 같은 신앙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중국, 미국, 그리고 북한 같은 나라 사이에 끼여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의 권력자(權力者)들보다 더 크시고, 북한의 권력자(權力者)도 마음대로 주장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붙들 때, 우리나라의 미래가 이런 정치인(政治人)들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닫고, 더욱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다는 망했지만 하나님은 더욱 위대한 하나님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난세(亂世)에 정체성(正體性)이 흔들리지 말고. 미리부터 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붙듦으로써 하나님을 나타내는 신앙(信仰)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1월 15일 주일 예배
※새벽(冬)5-6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교갱원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 및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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