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우회작전을 분쇄하자!
우리는 즉시 첫째 산봉우리를 떠나 둘째 산봉우리로 옮겨 저항했다. 적은 재차 우리의 측면을 돌고 있었다.
격전!
우리는 또 다시 첫째 산봉우리로 옮겨서 싸웠다.
이렇게 하여 적의 기병은 계속 우회하고 우리는 계속 이 산으로부터 저 산으로 철수하였다.
교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계속되었다.
굶주림! 그러나 이를 의식할 시간도 먹을 시간도 없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치마폭에 밥을 싸가지고 빗발치는 총알 사이로 산에 올라와 한덩이 두덩이 동지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어린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손길로.....
그 얼마나 성스러운 사랑이며 고귀한 선물이야. 그 사람 갚으리. 우릐의 뜨거운 피로! 기어코 보답하리. 이 목숨 다하도록!
우리는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모든 것을 잊은 채 뛰고 달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몸은 극도의 피로에 사로잡혔다. 나중에는 마음대로 발을 뗄 수도 없었다.
나는 다른 동지들보다 좀더 쳐져서 산비탈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거기에서 새 진지까지는 불과 2,30미터의 거리였다.
이 때 10여 명의 적이 고함을 치며 내 뒤를 쫓아왔다.
"아이쯔오 쯔까마에로! 아이쯔오 쯔까마에로!(저놈을 잡아라! 저놈을 잡아라!)"
바로 눈 앞에 우리 진지를 바라보며 나는 빨리 뛰려고 애를 썼지만 철근같이 무거운 두 다리는 감각이 통하지 않는 나무말뚝처럼 도대체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정신은 이미 육체에 지고 만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운명의 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급히 땅에 엎드렸다. 총대를 꽉 움켜쥐고 마지막의 피의 도박을 준비하였다. 이 한 목숨을 걸고 그 이상의 생명을 바꾸어 보려는 것이었다.
적은 막 달려오고 있었다. 산꼭대기의 동지들은 한편으로는 적에게 맹렬한 엄호사격을 가하며 또 한편으로는 힘을 다하여 외쳤다.
"빨리 뛰어요...... 빨리."
"저것 큰일났군...... 큰일났어."
"빨리 쏴...... 놈들을 빨리 쏴......"
별안간 김윤(金潤)이가 화살에 맞은 산돼지 모양 산꼭대기에서 나에게로 달려 내려왔다. 그러자 그는 내 목덜미를 붙잡고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듯이 휙 달아났다.
불과 수십초 동안에 나는 죽음의 경계선을 넘었다.
나를 쫓아오던 놈들은 동지들의 맹렬한 사격에 견디다 못하여 두 개의 시체를 내버린 채 도망치고 말았다.
죽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유명(幽明)이 바뀌는 동안 해는 기울어 갔다.
몇 주야를 뜬 눈으로 새우신 김좌진 장군은 지휘에 지친 몸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는 지금 내 곁에서 코를 골며 주무신다. 여러 날 잠을 이루지 못하여 핼쑥해진 얼굴을 나는 차마 흔들어 깨울 수 없었다.
적의 공격은 좀 뜸해졌다. 그러나 적은 쉴 새 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잡고 있는 이 위치도 갈수록 더 불리해지기만 했다.
김 장군은 환한 달빛에 잠을 깼다. 우리들은 장시간 상의한 끝에 우리들의 실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김훈, 한근원 두 중대를 후위로 남기고, 이를 김훈의 지휘하에 두었다. 후위의 임무는 라오토꼬우 방면으로 철퇴하는 주력부대를 엄호하는 것이었다.
비장한 후위부대의 공방전을 벌어졌다. 그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적에게 맹사격을 가하였다. 총신은 고열로 달았으며 동지들의 손이 델 지경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사격을 늦추지 않았다.
후위에 배속된 기관총 중대장 최인걸은 시베리아에서 자라고 아프리카 인과 같은 얼굴을 가진 용사였다. 그는 미친사람 모양으로 날뛰었다. 사격수의 태반이 사상을 입자 자기가 직접 사수 노릇을 하였음은 물론, 중기관총을 끌고 다니던 말이 쓰러지자 그는 새끼줄로 자기 몸을 기관총 다리에 비끌어매고 기관총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할 준비를 하였다.
이 격전 중에 산중의 한 좁은 길을 사수하던 1개 소대 40명여 명의 동지들은 싸늘한 달빛 아래 전원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김훈 중대장! 이 호걸남아는 부리부리한 두 눈을 부릅뜨고 강철 같이 준엄한 명령으로 동지들을 격려하고 편달하였다. 그의 냉전한 판단과 지휘력은 전대원을 장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비오듯이 쏟아지는 포탄과 총알에 겁을 집어먹은 두 동지가 함부로 진지를 이탈하자, 핑! 피융! 피융! 탄환은 격분한 김훈의 총구에서 튀어나와 바람을 쪼개며 나갔다. 두 겁쟁이는 땅에 뒹굴며 쓰러졌다.
김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까모양 날카로운 울부짖음으로 지휘를 계속했다.
주력부대가 철수하고 있는 도중에 강화린(姜化麟) 보병중대와 이운강(李雲崗) 보병중대의 소대장 몇명이 실종되어 비교적 훈련 정도가 얕았던 소대원들은 길잃은 양때처럼 산봉우리에서 헤맸다. 그들은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적 주력부대의 포위망 속에 들었다. 이 소대를 구출하려면 그들로 하여금 김훈 중대의 진지까지 철수하도록 연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가 전령으로 가겠는가?"
이것은 백명 중 99명까지는 죽고야마는 임무였다.
"내가 가리다."
코 밑에 여덟 팔(八)자의 수염이 난 김홍렬(金弘烈)이 가슴을 내밀고 일어섰다. 일어서기가 무섭게 그는 벌써 산비탈을 내달았다. 이 팔자수염을 위하여 한 대의 중기관총이 엄호사격을 했다. 그러나 적탄은 일시에 그에게 집중되었다.
'핑! 핑...... 따따따...... 풍풍풍......'
무수한 탄환이 팔자수염의 주변을 날았다. 십여 발의 탄환은 그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낭떠러지를 굴렀다. 떼굴떼굴 떼굴떼굴...... 마냥 굴러 내려갔다. 구르고 또 굴러서 적의 포위망을 지나고 적의 화선(火線)을 넘었다. 그러자 팔자수염은 곰처럼 벌떡 일어서서 다른 산봉우리로 나는 듯이 달아났다.
또 다시 퍼붓는 탄우...... 그는 다시 몸을 뒤집어 구르기 시작했다.
한바탕 총알의 소나기가 지나면 그는 일어서서 달리고 또 쏟아지면 구르고 ... 구르고 달리고. 구르다가 나중에는 기어서 뱀처럼 꿈틀거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온몸은 피투성이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임무를 완수하고 이 5~60명의 귀중한 생명을 건지는 데 성공하였다.
김상하(金尙河)! 그처럼 천진난만한 앳된 친구가 그처럼 용감하게 싸울 줄이야...... 적의 총알이 그의 얼굴에 맞았다. 그러나 그는 그까짓 것쯤 아랑곳 없다는 듯이 웃통을 벗어부치고 적에게 육박하는 것이었다. 그는 수류탄을 있는 대로 집어던진 후위부대가 철수할 때 김훈 대장은 그에게 후퇴를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하여 수류탄을 던지고 또 던졌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수류탄이 떨어지면 전사한 전우의 것을 집어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