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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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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백제 근구수왕에게 전쟁 멈출 것을 권한 막고해의 도교 교리 인용 발언 기록의 진실성
공실불 추천 0 조회 952 16.01.09 00:28 댓글 20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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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4.27 04:02

    네, 공실불 회원님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을 하시려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분명 설득력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앞서서 조금 거칠게 대응한 면이 있는데, 이건 제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항명" 문제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공실불 님쯤 되는 분이라면 그 사료의 선후관계를 잘 따질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서를 비틀어 보시려는 것을 보고는 혹시 사료를 고의적으로 왜곡해서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해서 조금 욱했던 것은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 16.04.27 04:03

    공실불 님의 말씀은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토착종교의 문제점입니다. 앞에서부터 계속해서 동명묘에 제사지낸 점을 말씀하시는데, 그런 것은 후대에는 비록 구태묘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기는 하지만, 사비 시대까지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백제 왕실에서조차 불교를 들여왔습니다. 이는 백제의 지배층들이 해외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침류왕이 대뜸 불교를 들여왔을 턱은 없고, 이미 그 이전부터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불교를 비롯한 해외의 문화가 백제인들의 사고관념에 녹아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

  • 작성자 16.04.27 13:26

    침류왕 이전에 불교 문화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 유입이 중국과의 교역을 담당하는 대중국 무역 상인층과 그에 연결된 귀족들만 접하여 심취하지 대다수 주류 고위급 귀족들은 전통적인 신앙의 영향하에 놓여 중점적으로 심취하기가 어렵지요 침류왕대에 와서 불교 기사가 나타난 점을 고려하면 침류왕대까지 불교가 대중적이지 못했음을 알수가 있지요 그리고 근초고왕대에 고구려와의 전쟁에 치중하는 상황이라 대중국 문화에 심취할 여력은 없습니다 고구려 정보에만 신경쓰이는 상황이지요

  • 16.05.03 07:24

    @공실불 백제의 요서진출 시기 중 한 시기가 바로 근초고왕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문화 수입은 어려울 것이 아니지요

  • 16.04.27 04:06

    다. 나중에는 백제에서 동명묘 혹은 구태묘 등에 대한 제사를 꾸준히 지내며 부여족으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삼국간의 항쟁을 이끌어 나갔을 때에도 귀족들은 저마다 불교와 도교 등을 비롯한 해외에서 들어온 문화에도 깊히 심취하였습니다. 저의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이야기 나누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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