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마케팅 문제를 둘러싸고 프리미엄 전략이 맞느니, 매스 전략이 맞느니 하는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임금이 많이 올랐으니, 이제 베트남이나 인도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과연 옳은 접근일까?
중국 시장이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시장이라면 마케팅 전략에 대한 답은 하나일 것이다. 중국 여러 지역의 비용여건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즉 동시에 악화하거나 동시에 개선된다면, ‘중국이냐, 베트남이냐’ 하는 접근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국의 시장은 단일하지 않고, 지역별, 세대별, 계층별로 나뉘어져 있다.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으며, 비즈니스 환경은 지역별로 다 다르다. 중국의 다양성과 차이, 격차에 주목한다면, 적어도 비즈니스나 시장 관점에서 중국을 또 하나의 EU, 말하자면 ‘CU(Chinese Union)’으로 간주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국 시장이 이질적인 시장들의 조합이라면, 중국 비즈니스의 승부는 속도보다는 정확성에 있다. 즉, 어느 시장이 뜬다고 해서 시장선점 욕심에 서둘러 진입했다가는 돈만 허비할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자사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시장을 정확히 보는 눈을 바탕으로 제한된 마케팅 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목 차 >
1. 중국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이유
2. 중국의 다양성과 중국 비즈니스 전략
3.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1. 중국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이유
중국 사람들이 평생 할 수 없는 세 가지
퀴즈 하나. 중국 사람들이 평생 할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다고 한다. 무엇일까? 정답은 ‘중국을 다 가보는 것, 중국 말을 다 해보는 것, 중국 음식을 다 먹어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넓은 나라다. 기후대로 볼 때, 열대 계절풍 기후, 아열대 계절풍 기후, 온대 계절풍 기후, 온대 대륙성 기후, 고원 산지 기후 등 5개 기후대가 걸쳐 있다. 몸으로 겪는 기후대는 이보다 많은 느낌이다. 예컨대 같은 아열대 계절풍 기후대로 분류되는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 충칭(重慶)의 겨울은 전혀 딴 판이다. 상하이의 겨울은 건조하고 서늘한 반면, 광저우의 겨울은 건조하지만 따뜻한 편이다. 충칭이나 청뚜(成都)는 온난다습하다.
중국의 지형 역시 복합적이다. 산지가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고원이 26%, 분지 18%, 평원 12%, 구릉 10% 등이다. 도로, 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내륙 깊숙이 뻗어“� 있지만, 중부 산간이나 광대한 서부에는 외지인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가 아직 많다. 이러니 아무리 중국 사람이라도 중국을 다 다녀본다는 게 쉽지 않다.
기후, 지형 등 자연지리적 다양성은 민족, 언어, 식생 등 인문지리적 다양성으로 연결된다.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 등 모두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舊) 소련권의 몇몇 나라들과 더불어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에 속한다. 소수민족 중 인구 100만명 이상이 18개나 되며, 500만명 이상이 9개, 1,000만명 이상도 2개(장족과 만주족) 있다.
민족보다 갈래를 더 많이 친 게 언어다. 중국의 언어는 5개 어계(語系)로 분류되며, 한어(漢語), 즉 현대 중국어는 그 중 하나인 중국-티벳어계에 속한다. 한어엔 7대 방언이 있으며, 같은 방언에도 하위방언이 여럿 존재한다. 예컨대 산악 지형이 많은 푸젠(福建)성의 경우 10리 이내에 사는 주민들끼리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후난(湖南)성에선 다른 현(縣) 주민들 간에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중국말을 다 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기후와 풍토가 다름에 따라 음식도 그 재료와 맛이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다. ‘먹는 것을 하늘로 안다’는 중국인들은 지역마다 특색있는 음식문화를 자랑해왔다. 흔히 ‘남쪽은 담백하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새콤달콤하고, 서쪽은 맵다(南淡北鹹 東酸西辣)’고들 한다. 식재광주(食在廣州·‘먹는 것은 광저우가 최고’)라는 말이 있듯 광둥(廣東) 요리를 으뜸으로 치는데, 광둥요리 가짓 수만도 5,500여종에 이른다. 딤섬 종류만 800종 이상,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만도 210종이란다. 이러니 아무리 중국 사람이라도 살아생전 중국 음식을 다 맛볼 수가 있겠는가?
중국 사람들의 지역별 성격지도
자연환경과 섭생, 그리고 문화와 역사가 다르다 보니 사람들 성격도 지역별로 판이하다. 그 성격의 스펙트럼이 하도 넓다보니, 어떤 사람은 화베이(華北), 시베이(西北), 시난(西南), 화둥(華東), 화중(華中), 화난(華南), 둥베이(東北) 등 예닐곱으로 나눠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성(省)의 갯수에 맞춰 30여개로 쪼개보기도 한다. 남북으로 양단을 쳐 ‘북방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남방 사람들은 유연하다’, ‘남쪽 사람은 돌려말하고 북쪽 사람들은 대놓고 말한다’고 대담하게 평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타 지역 사람과 연애를 하든, 비즈니스를 하든 상대방의 문화나 사고 스타일을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자칫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역 색깔을 다룬 책들이 대형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중 하나를 뽑아 목차를 살펴보니 이렇다. 베이징에 대해서는 ‘황제의 도시 콤플렉스’가 주제어로 제시되어 있고, ‘얼음처럼 차가운 독설가’, ‘그녀의 격조를 지켜줘라’ 등이 소절 제목으로 나와있다. 상하이는 ‘서구화된 도시’가 표제어이며, ‘우월감에 젖어있는 유행에 민감한 도시’, ‘공인된 소시민 근성’,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남자’, ‘지혜롭고 눈치 빠른 센스쟁이’라는 구절들이 뒤따르고 있다. 광둥은 어떨까? ‘실리주의자’, ‘낭만 현실주의를 표방한 물질주의’ 등이 키워드로 제시된다. 둥베이지방의 경우 ‘강자만이 살아남는 ‘둥베이 호랑이’의 세계’, ‘모두를 가족으로 만드는 우리’ 라고 소개되어 있다.
줄어드는 차이와 다양성, 늘어나는 차이와 다양성
기후, 지형 등 지연지리나 여기에 역사와 문화가 중첩되어 형성된 인문지리 측면의 다양성은 중국 경제의 발전이나 중국 사회의 현대화에 따라 점차 약화하고 있다. 육상, 해상 및 항공 교통이 지역간 거리를 단축시키고, 교류의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이러한 ‘고전적’ 지역차를 빛바래게 하고 있다. 인터넷, 무선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지리적 거리와 지형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함으로써 지역간 문화 차이를 융해시키고 있다.
경제 발전과 사회 현대화가 일방적으로 중국을 ‘좁히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론 전에 없던 새로운 다양성과 차이를 낳고, 과거에 미미한 차이에 불과했던 것을 현격한 격차로 벌려놓고 있다. 빈부격차, 세대간 격차 등이 그것이다.
빈부격차는 때로 발전된 지역과 저개발 지역 간의 경제력 격차 형태를 띠기도 한다. 즉 지역간 격차의 일부분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발전된 지역 안에서도, 저개발 지역 안에서도 빈부격차는 나타나는데, 이러한 지역내 빈부격차가 갈수록 주목을 받고 있다.
세대간 격차는 중국 경제의 압축성장의 필연적인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개혁과 개방은 서구문물 및 문화의 유입을 동반하면서 불과 30년만에 중국 젊은이들의 의식과 문화를 서구보다 더욱 서구적인 형태로 변모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존의 다양성이 줄어듦과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과거의 차이와 현재의 격차가 복합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다.
중국의 차이, 격차, 다양성에 주목하는 이유
차이와 격차, 다양성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우리가 중국의 차이와 격차, 다양성에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우리는 중국의 차이와 격차, 다양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중국도 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그저 하나의 국가에 불과하다고 본다. ‘땅이 엄청나게 넓고 성(省)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보다 큰 데, 뭔가 다르지 않겠느냐’고 하면 ‘개념적 사고가 안 돼 있다’고 핀잔듣기 십상이다. 국가 단위로 세상을 보는 국가주의 개념틀이 우리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 단일국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오는 동안 이러한 시각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가주의 개념틀은 정치적 판단기준으론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 특히 글로벌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맹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경제학원’이나 ‘경제관리학원’(한국의 경상계열 단과대학에 해당)이 있는 중국 대학에는 대부분 해당 단과대 산하에 지역연구 관련 학과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역경제학과’인데, 현재 140개 대학이 이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이 학과에는 경제지리학, 도시경제학, 인문지리학 등의 학과목이 있는데, 지역간 차이를 규명하고 지역간 협력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주된 연구테마이다. 서부대개발, 중부굴기, 동북진흥 등 굵직굵직한 정책사업 추진으로 지역연구 관련 학과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가고 졸업생 취업률도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한다. 지역적 다양성에 대한 중국 내부의 인식이 이처럼 높은데, 일반적 상식을 뛰어넘어 시장을 쪼개고 묶어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 지역적 다양성을 간과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둘째, 중국은 다양성과 차이, 격차에 대한 오해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와 후유증이 매우 큰 나라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가 중국 진출을 모색하던 다국적 기업들에게 ‘중국에는 몇 개의 시장이 있다고 보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전체의 44%는 ‘중국엔 단 한 개의 시장이 존재한다’고 답했고, 39%는 ‘4개 혹은 그 이상의 시장이 있다’고 답했다. 4년 후 다시 조사해본 결과, ‘한 개의 시장만 있다’고 답한 회사들은 대부분 중국 비즈니스에 실패했고, ‘4개 혹은 그 이상’이라고 응답한 회사들은 성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중국은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만큼 한 개의 시장에 투입되는 마케팅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다. 투입 금액이 큰 만큼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 초래되는 낭비와 비효율은 단위 시장이 작은 경우에 비해 훨씬 치명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중국에서 생산 및 판매 활동을 하는 글로벌 기업 관점에서 볼 때, 다양성, 차이, 격차 문제가 중국에서 어떻게 나타나며, 그것들을 중국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중국의 다양성과 중국 비즈니스 전략
(1) 지역별 시장 및 소비패턴의 다양성
선전 사람들의 이삿짐이 가벼운 이유
개혁개방의 1번지이자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인 선전 주민의 80% 이상은 타지방 출신들이다. 갖은 고생끝에 자수성가를 한 이들도 있고, 개혁개방이 가져다준 손쉬운 기회를 낚아채 일확천금을 움켜쥔 행운아들도 더러 있다. 이들의 꿈은 금의환향(錦衣還鄕), 50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웬만한 가재도구, 특히 목재가구를 다 버리고 간다. 북쪽에 있는 고향과 아열대 기후대의 선전하고 기후가 맞지 않아 선전에서 쓰던 가구들을 고향으로 가져가봤자 뒤틀리고 금이 가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란다. 이런 버려진 가구를 수집해 중고가구점에 넘겨 손쉽게 돈을 버는 사업은, 아니나 다를까, 흑사회(黑社會·폭력조직)가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목재가구는 지역별 온습도의 차이를 고려해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가공과정에서 켜낸 목재를 화학적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아예 원목을 노천에 방치해 일정시간 적응기를 갖게 한 뒤 가공에 들어가기도 한다.
지역별 기후 차와 제품 속성 간의 관계는 내의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중국 북쪽 지방에서는 사시사철 먼지나 황사가 날리기 때문에 때가 잘 타는 흰색 내의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대신 빨간색 계열이 압도적 인기를 끈다. 검은색 내의도 보온효과가 좋고 여성의 신비감을 더해준다는 이유로 잘 팔린다. 반면 남쪽에선 겨울이 그리 춥지 않기 때문에 우아한 레이스가 달린 흰색 내의가 많이 팔린다. 기후와의 궁합은 화장품의 판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색조 화장품은 북방에서 강세를 보이나, 남방에서는 잘 안 팔린다.
지역별 우유시장 구도도 비슷하다. 북방에서는 상온 저장이 가능한 팩 포장 제품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규격은 250mL의 소형이 주종이며, 가장 큰 것도 1L를 넘지 않는다. 반면 남방지역에서는 저온 냉장우유가 잘 팔리며, 포장 규격도 커서 1.5~2 L의 대형 제품이 유행하고 있다.
아우디의 실패와 하이얼의 성공
다양한 기후대에 걸쳐 있는 중국에선 제품 설계에 지역간 기후 차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아우디는 한때 중국시장에서 좌석에 열선을 장착한 모델을 선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고객 호응은 예상을 밑돌았다. 동북지역 소비자들은 5~6개월의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만큼 관심을 보일 법도 했지만, 좌석 열선을 기본으로 장착한 값비싼 모델은 원하지 않았다. 옵션으로 제시했다면 혹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한편 장강 이남 지역, 특히 광둥지역 소비자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둥베이 사람들보다 강한 구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좌석 열선을 떼어낼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여기서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다소 으슬으슬하기는 했으나, 차량 내부 히터로 충분히 견딜만 했기 때문이다. 아우디는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기후 조건과 소비자 눈높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쓴맛을 봐야 했다.
이와 정반대로, 중국 로컬기업 하이얼의 6도어 냉장고 사례는 지역별 자연지리 조건에 잘 대응하여 시장 지위를 굳히는 데 성공한 케이스다(<그림 1> 참조). 원래 6도어 냉장고가 중국시장에 첫 선을 보인 것은 2004년 일본 파나소닉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 제품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퇴출됐다. 그러다 2007년 하이얼 6도어 냉장고 브랜드인 카사르테가 대박을 터뜨림으로써 6도어 냉장고가 프리미엄 냉장고의 한 유형으로 중국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이얼은 카사르테 개발을 위해 6개월여 동안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전국 30여개 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심도있는 조사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제품 설계에 적용해 중국 각 지역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6도어 냉장고 현지화에 성공했다. 핵심은 변온(變溫) 기능 채용이었다. 6개의 공간 중 한 곳인 변온실의 온도를 영하 30도와 영상 10도 사이에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하여 6가지 보관 방식을 가능케 함으로써, 다양한 기후조건과 라이프스타일의 고객이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다. 중국 6도어 냉장고 시장에서 하이얼 카사르테의 점유율은 2010년 7월 현재 65.9%에 이른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
농촌과 도시 간에는 라이프 스타일 차이에 따라 제품 니즈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니즈를 얼마나 잘 파악하여 제품에 어떻게 잘 구현하느냐가 매출을 좌우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책으로 시행된 가전하향(家電下鄕) 프로그램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정책이 농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안 요인은 가전업체들이 농민의 니즈를 최대한 반영한 농촌형 가전 모델을 대거 선보였기 때문이다. 세탁기의 경우 농민들이 선호하는 6~7㎏짜리 대용량을 앞세웠으며, 농촌의 물 부족 사태를 감안해 수압이 낮은 지역에서도 급수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세탁 횟수가 적고 강한 세척력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여 세탁통을 개량시켰다. 또한 전력요금 부담을 고려해 절전기능을 크게 강화했고, 손빨래 탈수기 용도로 많이 사용되는 점을 감안해 탈수기능을 강화한 제품들을 많이 내놓았다.
냉장고의 경우 냉동실을 확대하고 절전기능을 강화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도시에선 식품의 신선도 유지가 냉장고의 가장 큰 기능이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모름지기 냉동실이 커야 한다. 농민들은 채소, 과일, 달걀 등을 스스로 재배하기 때문에 냉장 수요가 적고, 돼지고기 양고기 등 생고기 식품의 냉동보관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압 불안정과 잦은 단전 등의 여건을 감안할 때 절전기능, 내구성과 간단한 구조를 갖춘 제품이 요청된다.
지역별 소비관념과 소비문화의 다양성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 구매 시 청뚜 사람들은 연비와 고장률, 차량 유지비용 등에 주목한다고 한다. 같은 스촨(四川) 지역이지만, 충칭 사람들은 차량의 외관과 운전 편의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고 한다. 좁고 비탈길이 많은 지형상 특징과 체면을 중시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성격이 반영된 듯하다. 한편 동부 연안의 개발지역일수록 합리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예컨대 광둥 사람들은 가격을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한다.
네티즌들을 상대로 차량 구매 시 고려 요인을 물은 다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이징 사람들은 교통혼잡 정도를 먼저 고려하며, 상하이 사람들은 자동차 보험료율, 소비부양책 같은 정책 요인들을 꼼꼼히 따져본다. 광저우 사람들은 보험료 인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청뚜 사람들은 정비, 애프터서비스 같은 부가비용 등에 주목한다고 한다.
자동차 구매 시 지역별 소비자 취향의 차이는 기후, 지형 등 자연지리 조건과 해당 지역 특유의 역사와 문화가 버무려져 나타난 결과라고 하겠다. 달리 말하면, 지역별로 특유한 소비관념과 소비문화가 존재하며, 그것이 특정 제품의 프리즘을 통해 소비패턴 차이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지역별 소비관념과 소비문화는 관찰자에 따라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얘기되고 있으나, 기본 맥락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표 1>은 그 중 한 예다.
예컨대, 자존심과 권위의식이 강한 베이징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브랜드와 애프터 서비스를 중시하며, 가격에 대한 고려도가 상하이나 광저우에 비하여 낮은 경향이 있다. 국제화 마인드를 갖춘 상하이 사람들은 국산품에 비해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며, 프리미엄과 세련된 미적 감각을 추구한다. 광저우 사람들은 가격 대비 성능을 꼼꼼하게 따지는 등 실용적인 소비 마인드가 강하며, 광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한편 청뚜 사람들은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라는 낙천적인 생활철학을 갖고 있으며, 소득 수준에 비해 지출이 과다한 편이다.
좀더 심층적인 가치관 차원에서 지역별 다양성을 추적한 연구 결과도 있다. 소비 동기로 ‘성취감’이 작용하는 강도는 내륙의 스촨, 충칭,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샨시(陝西), 간쑤(甘肅) 등에서 높으며, 서부의 시짱(西藏), 칭하이(靑海), 닝샤(寧夏), 네이멍구(內蒙古), 신쟝(新疆) 등에서 가장 낮다고 한다. ‘인정(人情)’은 허베이, 산시, 샨시, 간쑤 등지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으며, 둥베이와 광둥, 상하이, 베이징 등 대도시 지역에서 낮았다. ‘체면(面子)’ 동기는 둥베이 지역에서 가장 강했으며, 광둥 사람들에게서 가장 약하게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어느 지역을 타겟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광고나 프로모션의 키워드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를 귀띔해준다.
지역별 소득 및 씀씀이 격차
지역별 소비스타일을 단적인 수치로 나타내 주는 것이 소비성향인데, 이는 씀씀이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즉 소득에서 세금이나 각종 공제를 떼고 남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중에 몇 %를 소비에 지출하느냐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중국 31개 성의 평균 소비성향은 71.2이며, 표준편차는 4.2이다. 최고(광둥 78.7)와 최저(장쑤 64.1) 간의 차이는 14.6에 이른다. 한편 2000년 기준 한국의 16개 시도의 평균 소비성향은 2000년 현재 75.2이며, 표준편차는 3.3이다. 최고(제주도 82.1)와 최저(경상남도 70.2) 간의 차이는 11.9에 불과하다. 지역 기준과 비교 시기는 다르지만, 중국의 지역간 씀씀이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참고로 도시별로 나눠 보면 중국의 지역간 소비성향 격차는 더욱 크게 나타난다. 중국 109개 도시의 평균 소비성향은 2009년 12월 현재 70.2이며, 표준편차는 6.1이다. 최고(선양 88.6)과 최저(지닝 57.7) 간의 차이는 무려 30.9의 차이를 보인다.
소비의 원천이 되는 소득의 지역간 격차 역시 극심하다. 중국의 성별 일인당 지역내총생산(GRP)를 2005년 기준으로 비교분석해보면, 가장 높은 상하이(6,412달러)는 최저인 구이저우(624달러)의 10배 남짓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별 1인당 GRP를 보면, 가장 높은 울산(4만32달러)은 최저 대구(1만1692달러)의 3.4배에 그친다.
(2) 지역별 비용 및 물가 격차
고객마다 가격이 다르다
베이징 시내 한복판 장안지에(長安街)에 있는 LG트윈타워 뒤편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은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점심식사 값은 국수 5, 6위안, 볶음밥 7위안, 중국식 정식 10위안 정도. 수북이 담아주는데다 제법 맛도 있다. 단련 안 된 외국인은 배앓이를 각오해야 하지만……. LG트윈타워 내에도 식당이 열 서너곳 있다. 한식당에서 시켜먹는 국수나 된장찌개가 40위안 안팎이며, 중식당에서 딤섬으로 때우면 1인당 30원 안팎이 든다. 도보로 불과 1분 거리도 안 되는 거리에 점심 한 끼에 7, 8배 차이가 나는 식당이 나란히 놓여있다. 이처럼 동일 품목에 수많은 가격이 존재하는 곳이 중국이며, 그 가격의 다양성은 선택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극단의 소득 불균형 속에서도 중국이 원바오(溫飽)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자부하는 배경이 이런 건지도 모른다.
가격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곳은 아마 트윈타워 건너편의 유명한 짝퉁 상가인 시우쉐이제(秀水街)일 것이다. 여기선 흥정하기에 따라 주인이 100위안 짜리라고 주장하는 가죽가방을 50위안에 살 수도 있고, 10위안에 살 수도 있다. 고객마다 그만의 가격이 있다고 보면 된다. 가격의 최대 결정요인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눈치와 기세다.
이 같은 중국 가격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때때로 애꿎은 피해자가 된다. 일례로 한 한국 회사 주재원이 베이징 교외의 한 아파트 관리회사와 임대료 실랑이를 벌이다 벽에 부딛혔다. ‘월 1만5,000원에서 더는 깎아줄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받은 것. 2,000위안 깎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하면서 계약을 체결했다. 한 달 후 같은 아파트의 똑같은 평형에 중국에서 10년 살았다는 다른 한국인이 이사를 왔다. 이 주재원은 새로 이사온 그 이웃한테 임대료를 물어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웃은 중국인 친구를 앞세워 임대료 협상을 벌인 결과 월 1만위안에 낙찰을 본 것. 중국에서 가격은 지역에 따라, 고객의 성깔에 따라, 심지어 고객의 국적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
지역별 생활물가 및 임금 격차 극심
중국에서 택시비는 우리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계산된다. 일정 거리는 기본요금으로 가며, 그 이후부터 거리와 시간 병산제로 미터기가 올라간다. 각 지역 주요 도시들의 택시요금을 비교해보면 <표 2>와 같다. 기본요금은 우한이 3위안으로 가장 낮고, 상하이가 11위안으로 가장 높다. 낮 시간에 20㎞를 운행할 경우 허베이성의 타이위엔(太原)이 24위안으로 가장 싸고, 상하이가 그 2.6배인 62위안으로 가장 비싸다. 100리(40㎞)를 달릴 경우 역시 두 지역이 각각 가장 싸고 비싼 지역이 되는데, 그 차이는 3.3배에 달한다.
통신비나 교통비는 그나마 지역간 차이가 작은 항목이다. 주거비, 식비 등 지역별 차이가 큰 항목을 모두 포함한 생활비는 규모가 비슷비슷한 대도시 간에도 현격한 격차를 나타낸다.
물가 움직임에 있어서의 격차도 매우 크다. 중국의 36개 도시의 최근 3년간(2007년 6월~2010년 6월) 물가 상승률 격차를 조사해보면, 가장 낮은 샤먼(廈門) 6.8%과 시닝(西寧) 17.9% 간에는 약 3배 가량의 차이가 있다.
지역별 임금격차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상하이와 장시(江西)성 간의 임금격차는 1992년 2배 수준에서 2009년 2.5년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폭스콘 사태의 여파로 올 들어 전국 각 지방정부가 앞다퉈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그 와중에서도 지역별 최저임금 격차는 여전하다. 월간 최저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상하이의 최저임금 1200위안은 가장 임금이 낮은 닝샤(710위안)의 1.6배에 달한다.
입지전략을 다시 생각해본다
최근 중국에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생산비용 면에서 중국의 이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해외 생산기지로서 중국을 제치고 베트남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이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생산기지에 대한 국가주의 접근, 즉 ‘중국이냐 베트남이냐, 아니면 인도냐’ 하는 식의 접근은 그릇된 판단을 낳기 쉽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은 지역별로 임금격차가 상당하며, 토지 가격, 임대료 등 생산비용 항목에 들어가는 기타 제반 물가에도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전문직의 경우 지역간 임금격차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좁혀지고 있지만, 단순근로자의 경우 지역간 현격한 임금격차가 온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입지 선정을 둘러싼 고민은 ‘중국이냐 베트남이냐’는 문제틀 속에서는 결코 풀 수 없으며, 예를 들면, ‘난징이냐 하노이냐’ 또는 범위를 더욱 좁혀 ‘중관촌이냐 방갈로르냐’라는 차원에서 풀어가야 할 것이다. 즉 ‘중국이냐, 베트남이냐’라는 질문을 던져 먼저 중국으로 결론을 내리고 난 뒤, 다시 그렇다면 중국의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갖가지 정보를 토대로 ‘난징이냐 하노이냐’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지역 후보를 먼저 압축한 뒤 현지여건 정밀조사를 통해 확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정보 및 통계의 이용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국별 평균임금이나 중앙정부 정책 같은 국가 기본정보 및 통계는 현실의 입지 선정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대신 지역별 해당직종 임금, 지방정부의 조례나 판례 같은 것들이 실질적인 정보가 된다. 특히 중국처럼 경제활동, 특히 정부투자를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실행해 나가는 시스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중국에서 법령은 중앙정부가 제정하지만, 그것을 해석하여 실행하는 것은 지방정부이다. 이를테면, 중앙정부가 ‘다가구 보유자의 주택 추가구입을 억제한다’는 식으로 중앙정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어떤 지방정부는 2가구 이상 보유자의 추가 주택구매를 금지하고, 어떤 지방정부는 3가구 이상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또 어떤 지방정부는 아예 정책 집행을 차일피일 미루기도 한다. 법은 같지만 적용 여부와 방법이 제각각인 것이다.
(3) 지역별 비즈니스 스타일의 차이
중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외국 기업가들의 관철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비즈니스 협상 스타일 역시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북방인들의 경우 개념과 가치, 원칙을 중시한다. 먼저 협상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이런 점, 저런 점에서 협력하겠소. 우리는 여기에 협력하기 위해 왔고, 당신에게 어떤 손해를 끼치지 않을 거요. 앞으로 장기간 함께 일해보지 않겠소?’ 여기에 흔쾌하게 ‘YES’ 해야만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간다. 본론의 전개방식도 큼직큼직한 요점, 또는 공동의 목표들을 확인하며 짚어가는 방식이다. 몇 개 안 되는 이 요점들에 대해서 미친듯이 다투지만 세부사항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들에게 자세한 수치를 제시하거나, 가격 문제를 꼬치꼬치 따진다면 멍청이 취급을 당한다. 이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고 위엄을 세워주기를 바란다.
한편, 상하이와 화동지역 기업인들은 ‘거친 협상가들’로, 독할 정도로 세부사항에 집착한다. 협상은 매우 구체적이고 직설적이어야 한다.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지 못하면 그리 심각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협상은 대개 이전투구가 되고, 쾌속으로 진행되며, ‘공격이 최상의 방어’인 듯한 거친 상황의 연속이다. 만약 상대방 제안을 별 이의없이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속으로 바보라고 비웃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대체로 한 번 계약을 체결하면, 다른 지역과는 매우 다르게, 정말로 그 계약이 지켜진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남방 중국인들은 계약을 어기고 잘못된 정보를 주는 등 가장 일하기 어려운 상대로 여겨진다. 매우 수치 지향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장사꾼들처럼 군다고 한다.
한편 미개발된 내륙지역에서는 기대수준을 낮추어야 의미있는 사업협상을 할 수 있다. 이들은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작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국측이 정말로 계약의 조건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꼭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4) 세대별 마인드셋과 소비패턴 차이
10년 간격으로 나뉘는 중국의 세대구분
‘70後’는 회사에 목숨을 거는 일벌레, ‘80後’는 ‘야근 사절’, 그러면 ‘90後’는? ‘출근 사절’! ‘70後’는 예금계좌가 있고, ‘80後’는 빚이 있다, 그러면 ‘90後’는? ‘내겐 할아버지가 있다’!
중국 인터넷에 나오는 촌철살인의 우스개다. 불과 30년이라는 시간 안에 마인드셋과 행태가 서로 너무나 다른 세 개의 세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중국의 세대는 대체로 생년을 기준으로 10년 간격으로 구분된다. 70년대에 태어났으면 ‘70後’, 80년대에 태어났으면 ‘80後’, 이런 식이다. 10년 간격으로 구분되다 보니, 다른 나라들보다 세대가 훨씬 잘게 나눠진다(<그림 2> 참조). 중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 현대화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왔음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하다.
중국의 사회인들(20대~50대)은 마오시대의 공산주의 독재부터 현재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풍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청소년기를 돌아다 보면, 이들이 왜 각각 다른 세대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50後 세대는 끔찍한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잃어버린 세대’, ‘상처받은 영혼 세대’이다. 60後, 70後 세대는 문혁 이후의 혼란기 속에서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잃고, 점수경쟁과 취업난에 시달렸던 세대이다. 80후 세대는 개혁개방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는 행운을 타고난 세대이며, 90후 세대는 1자녀 정책의 산물로서, 선진국 수준의 풍요를 누리고 자라나는 세대이다.
세대별 직장생활과 소비패턴 차이
글로벌 기업 인사 담당자들에 따르면 60후 이전세대에선 회피와 책임감 부족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나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내 윗사람이 결정을 내릴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서슬퍼런 문화혁명기가 이 세대에 남긴 상흔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자질 있는 중간관리자층’ 부족 문제를 늘 호소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70후 세대는 대체로 안정적인 교육을 받고 시장경제에서 상당한 경험도 쌓았다. 따라서 잘만 육성하면 어느정도 제몫을 해낼 수 있다. 80후 세대는 개방성과 서구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좋아 동기부여가 잘 되면 열심히 일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고, 로열티가 낮은 경향이 있다.
세대차는 소비행태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70후와 80후의 가전소비 행태 차이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70후 세대는 호화로움, 품격 등을 추구하는 반면, 80후 세대는 나만의 개성, 유행 등을 추구한다. 가격에 대해서는 70후가 80후보다 훨씬 민감하다. 맘에 들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높을 경우 80후는 일단 구매하지만, 70후는 결국 사지 않는 쪽을 택한다. 70후는 제품 선택 시 다른 가족 구성원들, 특히 부모의 사용을 염두에 두지만 80후는 자신과 배우자만을 고려한다.
요즘 80후 세대와 90후 세대 중 독자(獨子)들을 일컫는 ‘독자세대’의 소비행태가 각별한 주목을 끌고 있다. 향후 소비시장의 주류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가정을 이루기 시작한 1세대 독자세대들은 양가 부모 4명의 경제적 원조를 받아 자신들의 수입능력을 뛰어넘는 소비를 하고 있다. 최근 2~3년간 부동산, 자동차시장이 활황세를 보인 것은 이들이 본격적인 소비시장 주류로 부상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작년에 상하이에서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20~35세 젊은층이 부모 자산으로 자동차를 구입한 비율이 전체의 45%가 되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1세대 독자세대들의 결합으로 등장하게 될 2세대 독자세대들은 부모와 친가 및 외가 조부모 등 6명의 지원을 받아 소비생활을 하게 되어 향후 중국 내수시장 급성장에 견인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소비패턴과 소비자 마인드셋 면에서 지역간 차이가 크며, 구매력 격차가 상당히 크다. 하이얼의 카사르테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어느 지역에서나 두루 환영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조사와 제품설계가 필요하다. 팔방미인형 제품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타깃 소비자를 정확히 겨냥한 전략적인 제품에 승부를 거는 것이 낫다.
세대간 마인드셋과 소비행태에서의 차이 역시 다른 어느 나라 시장에서보다 크다. 게다가 세대가 잘게 나뉘다 보니, 세대간 시장주도권 이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전(前) 세대에 비해 훨씬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는 90후 세대가 점차 시장 주도권을 넘겨받게 될 향후 10년간이 글로벌 기업의 시장대응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본문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계층별 소득격차도 극심한 상황이다. 문제는 계층별 소득격차의 전개 방향인데, 극단적인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중산층화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 양극화가 주도적인 흐름이라면 상류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마케팅 전략의 성공 가능성이 높고, 중산층화가 진행된다면 매스티지 전략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첫째, 유감스럽게도 중국의 계층구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믿을만한 공식 및 비공식 데이터가 없으며, 둘째, 소득 불평등 구조 변화의 방향이 어떠한지와 무관하게 전 계층의 구매력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뭐는 맞고 뭐는 틀리다고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구매력 있는 상류층 시장이든, 성장 속도가 빠른 중산서민층 시장이든 간에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여 1등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많고,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는 시장별로 다르다.
지역간 다양성에 주목할 때, 비즈니스나 시장 관점에서는 중국을 또 하나의 EU로 간주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 시장을 동질적인 시장이 여럿 모여있는 하나의 국가경제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구조적 특성과 발전경로를 갖고 있는 이질적인 시장들의 조합으로 보자는 것이다. 중국은 기후, 지형, 언어, 민족 등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 측면에서 EU에 버금가는 다양성과 차이를 갖고 있다. 소득 분포 면에서도 EU 만큼의 격차를 내부에 안고 있다. 나아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분담 측면에서도 공통의 정책 규약을 준수한다는 조건 하에서 회원국들이 재량적으로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EU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표 3> 참조).
‘쓸만한 돈이 있다’는 것이 ‘돈을 쓸 준비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양성과 차이, 격차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활용해야 중국인들의 호주머니를 열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1선도시의 포화된 시장에서 내내 머물러 있는 것도 문제지만, 2,3선 도시가 뜬다고 진입을 서두르는 것도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구매패턴과 소비자 취향이 같다면, 똑같은 마케팅 전략을 급부상하는 유망시장에 적용해 선점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하지만 중국 각 지역 시장은, 특히 내륙에 깊이 들어갈수록 소비자들의 구매력이나 구매패턴, 취향 등이 서로 다르다. 너무 성급히 낯선 시장에 진입했다가는 자칫 초기 유통망 구축과 브랜드 마케팅에 돈만 낭비하고 효과는 보지 못할 수가 있다. 간신히 돈의 힘으로 브랜드를 구축했다고 해도, 로컬 후발주자의 캐치업 속도와 중국 소비자들의 낮은 로열티를 감안할 때, 결코 안심할 수도 없다. 결국 승부는 실력과 장악력에서 난다. 자기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시장을 정확히 보는 눈을 바탕으로 제한된 마케팅 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무기를 얼마나 정확하게 겨누었느냐가 얼마나 총을 빨리 빼들었느냐보다 중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