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어려운 삶에 대한 연민의 정 ‘감동적’
따뜻한 인간미 넘쳤던 석학, 권근
고려말 혼돈의 정치판 속 변절의 상징 된 권근
명 태조도 감동시킨 빼어난 시인이자 문장가
이성계, 개국원종공신으로 ‘화산군’ 칭호 내려
기사사진과 설명

‘고간기’의 내용을 연상시키는
김홍도의 ‘산사귀승도’. 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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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태조가 권근에게 내려준
세편의 시가 실린 ‘응제시주’(보물 제1090호). 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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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도설’ 중
‘천인심성합일지도’. 필자 제공 |
‘산골짜기 물’ 예찬의 노래
1384년(고려 말) 겨울에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한 어느 스님이
32세의 권근(權近·1352~1409, 호: 양촌)을 찾아와서 ‘옛 산골짜기의 물’(古澗: 고간)이라는 제목의 현판에 써넣을 글을 부탁했다.
스님의 법명은 연사(호: ‘고간’)였고, 양촌은 그때 벌써 당대의 손꼽히는 문장가였다. 흔히 ‘고간기(古澗記)’라고 불리는 이 글의 일부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양촌집’ 제11권, ‘고간기’ 중에서)
사람의 본성이 착한 것은
물의 본성이 맑은 것과 마찬가지라네.
인간에게 악(惡)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욕심이라는 유혹 때문이며,
물이 흐리게 보이는 것은
오물이 더럽히기 때문이라오.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선함을
회복하고,
물은 오물을 없애면 맑음을 되찾는다네!
오물 없는 맑은 물은 오직 산골짜기 물뿐이네.
더러운 것이 모여들 수 없는 높은 곳에 있고,
물살이 빨라 머무를 수도 없기 때문이라오.
또한 변화무쌍해도 맑음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오랜 세월 밤낮없이 쉬지도 않는다네.
도를 닦는 선비란 산골짜기 물처럼
마음을 맑게 하고 본성을
회복하여
선(善)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않는 법이라네!
민초의 고된 삶을 보는 공직자의 바른 자세
절개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선 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권근은 명나라 태조를 감동시킬 만큼 빼어난 시인이자 문장가였으며, 국민을 생각하는
따뜻한 인간미의 소유자였다. 그의 많은 시(詩) 중에서 ‘발수주로상유감’(發隨州上有感: 수주라는 지역을 출발해 길에서 느낀 감회를
노래하다)이라는 시를 감상하기로 하자.
여름날 불볕더위 속에 수레를 바삐 몰아 산언덕 넘으며 먼 길을 달리고 또
달리니 말은 기진맥진하고 사람도 피곤하구나. 가고 또 가고 쉴 새 없이 재촉함은 나랏일 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오. 부는 바람은 풀과 나무를
흔들고, 피부와 살까지 서늘함을 느끼게 하누나. 저편을 바라보니 병약해 보이는 농부가 더위에 등 구부리고 밭 가느라 분주하네. 온갖 노력을 다해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서 세금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굶주림이겠지. 내 삶은 다행히 저런 어려움을 면했으니, 아무리 분주해도 어찌 괴롭다고
하겠는가?
여행길의 목적지가 분명치 않은 시이지만, ‘수주’(현재의 평북 정주)라는 지명과 ‘나랏일’이라는 용어로
미루어, 권근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중에 읊은 시일 것이다. 그는 1389년 6월 고려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간 적이 있으므로 그때의 것으로
보이며, 고려 말 민초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잘 드러난 겨레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권근은 조선의 개국
초기에도 명나라에 갔었다. 1395년 명나라는 조선 정부가 보내온 외교문서에 모욕적인 표현이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문서 작성자 중 특히
정도전을 지목해서 압송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그런데 1396년 정도전 대신 권근이 가서 해명했을 뿐만 아니라 명 태조가 내준
시제에 맞게 24수의 시를 지어 감탄케 했으며, 심지어 명 태조로부터 세 편의 시까지 받아 오는 놀라운 외교적 성과를 거양했다.
이에 탄복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권근이 귀국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포상하고 화산군(花山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또한,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집권에 성공한 태종도 권근을 길창군(吉昌君)으로 예우했으며, 셋째 딸 경안공주를 권근의 셋째
아들에게 시집보냈다. 부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조선 왕실의 권근에 대한 극진한 배려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삽화를 활용한 성리학 명저 ‘입학도설’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을 성리학(性理學)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는 안향(安珦: 1243~1306)으로 알려졌는데, 권근은 성리학의 맥을 잇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정몽주와 사제지간이며, 정도전과는 10살 차가 나지만 서로 존중하는 학우(學友)였다.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권근은 17세에 과거에 급제해 20대에 벌써 중요 관직을 역임했으나, 고려 말 혼돈의 정치판 속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야 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는 수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는데, 이때 학문적으로 매우 뜻있는 업적을 남겼다.
‘입학도설’(入學圖說: 학업에 입문하는 젊은이들이 우선 알아야 할 지식에 관한 개설서)의 집필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유학(儒學) 관련 서적엔 ‘도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권근의 ‘입학도설’은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후세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하다. 권근은 38세 때인 1390년 익산에서 귀양살이 중에 학문을 시작하는 소수의 청년에게 ‘대학’과 ‘중용’을 가르쳤는데,
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삽화와 함께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 ‘입학도설’이다.
‘입학도설’은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기본으로 하고, 주희의 ‘중용장구’라는 주석서를 참조했으며, 선현들의 격언과 학생들과의 질의응답까지 포함한 책이다. 삽화는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천인심성분석도·대학지장지도·중용수장분석도 등 총 26종인데, 이 중에서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천인심성합일지도’가 제일 중요하다.
‘천인심성합일지도’는 성리학의 중심 개념인 태극·천명·이기·음양·오행·사단·칠정 등의
핵심을 하나의 삽화로 요약하고, 이들의 상호 관계와 개개의 특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