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산] 나는 복학생입니다.
지난 2015년 순천문인협회 문예 대학을 수료한 나는 당시 최영숙 시와 산문 회장님의 손에 이끌려 시와 산문에 입회했다. 오랜 목마름으로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디뎠지만 마치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올 때처럼 황량했던 나에게 시와 산문은 따뜻했다. 20여 명의 선배 문우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모임의 막내로서 시와 산문의 밀알이 되리라는 다짐도 했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어도 낯가림이 많던 나는 회원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했지만, 많은 관심과 격려 속에 차츰 익숙해지는 듯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이 시와 산문 29집에 인쇄되는 기쁨도 누렸다.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잇따라 닥치면서 글쓰기와 멀어졌고 그러다 보니 시와 산문에서도 점점 멀어져갔다. 많은 회원이 나의 부재에 대해 걱정과 관심을 주었지만, 거기에조차 호응을 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시와 산문을 그렇게 흐지부지 떠나게 되었다.
하릴없이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글 쓰기에 대한 미련은 함부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어서 좋은 시가 보이면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좋은 문구가 생각나면 휴대폰에 메모를 했다. 준회원으로 강등 되었지만 인터넷 시와 산문 카페에도 가끔 발 도장을 찍으며 회원들의 작품과 동정을 살피기도 했다.
어둡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내 속에서 꿈틀거리며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게 있었다.
‘글을 다시 본격적으로 써보자’
다시 시집을 꺼내 들었고 쉬는 날이면 헌책방에 가서 시집과 문학 서적을 한 아름씩 안고 왔다. 헌책방 서가 한구석에 꽂혀 있던 시와 산문 29집을 보면서 감회도 새로웠고 다시 문을 두드려 볼까 하는 망설임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혼자 글을 쓰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주변의 누구에게도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거니와 잘 썼다고 생각한 글이라도 나중에 보면 형편없기 짝이 없어서 누구한테 보여주기도 부끄러웠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돌파구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처음 시와 산문으로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던 최영숙 선생님이 먼저 다시 손을 내밀어 주었다. 차마 부끄러워 다시 손을 잡기가 망설여졌지만, 이것이 돌파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시와 산문의 복학생이 되었다.
복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시와 산문은 어느새 민둥산이 되어 등 굽은 소나무만이 지키고 있었다. 여러 회원이 여타의 사정으로 시간을 떠나거나 휴면기에 들어 있었고 남은 회원들은 각자 조용히 일상에 묻혀 지내면서 시와 산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래전 뵈었던 낯익은 분들이 처음 입회때처럼 반겨주었고 처음 뵙는 몇몇 분들도 오랜 회원처럼 대해주었다. 고향 집에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지난 해 시와 산문 시화전에 내가 회원들의 작품을 캘리그라피로 쓰기로 하면서 오랫동안 놓았던 붓도 다시 들어 정성껏 글씨를 썼다. 거기에 명화백인 안철수 선생님의 그림까지 곁들여 글씨를 살려주었으니 나는‘내 글을 내 글씨로 써서 액자에 걸자’라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시와 산문 복학 첫 해에 이루었다. 그것도 회원들의 작품을 포함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나는 시와 산문에 다시 들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의욕이 앞서면 화를 부를 수 있어서 조용히 시와 산문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선배 문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등 굽은 소나무가 되어 시와 산문을 이루는 산이 되어 갈 것이다.
첫댓글 진솔한 글이라
마주한 순간 뭉클합니다
등급은 소나무가 되어 준다니ᆢ
이옥재 선생님이 함께하시니
시산이 든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