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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시 16:1-1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매서운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매서운 한파처럼 아주 춥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만은 따뜻했으면 합니다. 따뜻하고 밝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과연 어디입니까? 꿈에 그리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면, 과연 어디일까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에덴동산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에덴 동산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별히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그 두 나무의 열매 가운데,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먼저 따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하여,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지도상에서 그 위치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을까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때부터 지금까지,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에덴동산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에덴동산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그 에덴동산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요? 그 에덴동산에 갈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곧, 에덴동산에 갈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길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에덴동산에 갈 수 있고, 그 중앙 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요한일서에서도,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갈 수 있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방법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영생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려고 할 것입니다.
진시황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하여, “불로초를 구하라”라고, 많은 사람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누구나 관심이 많습니다. 죽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 내려오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영원히 지키고자 하는 것, 반대로, 그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것,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정말 길이 없는 것일까요? 갈 수 없는 것일까요? 누릴 수 없는 것일까요?
11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그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아무도 그 길을 찾지 못하도록, 꽁꽁 감추어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도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그 길을 막아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주셨고, 보여 주셨고, 직접 그 길을 앞서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듯이, 아주 쉬운 길이 있습니다.
길이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미 가르쳐주신 그 쉬운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4세기의 어거스틴은 어릴 적부터 영적인 뭔가를 찾고자,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고, 마니교의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교리에 매력을 느껴, 10여년 동안, 마니교에 빠져 있기도 했지만, 마니교 지도자들의 지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음을 알고, 회의를 느껴, 신플라톤주의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심한 내적 갈등을 겪은 후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교도인 아버지와 기독교인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난 어거스틴은 영적 방황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집어들고 읽으라”라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책상 위에 있던 성경을 폈는데, 로마서 13:13-14절 말씀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자신의 삶을 그대로 지적하고 있는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어거스틴은 생명의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그 생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상당히 많은 세월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게 되는 역사도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다른 길로 빠져서는 안됩니다. 중단해서도 안되지만, 다른 길로 빠져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셨고, 누구나 그 길을 갈 수 있지만, 끝까지 그 길을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요, 고난의 길이요, 유혹과 시험이 많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만을 똑바로 듣고, 그 음성만을 따라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양이 가고 있는 길에는 양을 가로채 가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양들을 시험하고, 유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고, 목자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생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험과 유혹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끝까지 이 생명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그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길을 다 달려간 후에, 믿음을 지켰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지금 그 생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여기서 “나를 지켜 주소서”라는 말은 “나를 보호하소서”라는 말입니다.
위험하고 불안할 때, 행복할까요? 아니면, 안전하고 평안할 때, 행복할까요? 위험하고불안할 때보다는 안전하고 평안할 때,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안전하게 피할 곳이 있다고 한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 배운 것이 있다면, 환경의 좋고 나쁨이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피할 곳이 있다. 누군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 때, 지금은 힘들고, 위험하고 불안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억울하게,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을 때, 두렵고 불안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평안했기 때문입니다.
사자굴에서 다니엘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사자의 발톱에서 하나님이 다니엘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타는 불 가운데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람 군대가 포위하고 있는 도단성에서 엘리사가 흔들리지 않고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군대가 불말과 불병거로 도단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던 것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6편을 기록한 다윗은 위험에 처했을 때, 남들에게 쫓길 때, 어디에도 몸을 숨길 곳이 없을 그때에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받아줄 이 없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다윗의 보호자가 되어주셨고, 위험을 피할 안식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비슷한 상황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면서,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그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음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죽을 지경에 달해도,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심을 알 때, 우리는 평안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요, 피난처가 되어 주심을 믿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하나님은 행복의 근원이시고,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이 없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생명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라는 말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저절로 좋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좋아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기도하였을 뿐인데, 좋아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세상의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세상 그 어느 누구,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께 피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달려가 기도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면, 그 누구도 우리의 생명,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주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5-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우리는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육체도 건강하고 안전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양식도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합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육체의 필요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을 우리와 똑같이 사셨기 때문에, 육체의 필요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배고프고 목마른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육체의 배고픔과 갈증을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고달픈 광야 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길이 좁고 협착하지만, 그 길 끝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생명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시는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1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 말은 “주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께서 내 곁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그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끝마치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새기면서, 많은 말들을 남겼는데, 그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신 33:29)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행복합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간절하게 행복을 바라지만, 실제의 삶을 보면,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행복은 먼 미래에 어쩌면 있을 수도 있는 바램에 그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주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보여 주신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그 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받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날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하여 주시는 주님,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도와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주님을 모시고 살아감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오니 책임져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