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일 카페 청어 과메기(꽁치) 맛있게 먹는법??
-포항 구룡포 904 과메기!
과메기란??
과메기 유래와 원조???
‘과메기’의 원래 명칭은 옛 문헌에 ‘관목(貫目)’으로
표기되어 있다.
즉 ‘관목’이 경상도 사투리로 불리면서
관목이→관매기→과메기로 변형되었다는 게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목(貫目)’은 한자 풀이로 ‘눈을 꿰다’란 뜻이다.
‘소천소지’라는 옛 문헌에 실린 일화를 보면 어떻게
‘관목’이란 이름이 생겨났는지 이해가 간다.
청어나 꽁치 말린것인데,
청어 과메기가 원조인데,
수요량이 부족하여 지금은 꽁치과메기가
많이 공급된다고 함.
재료 준비물
파(실파나 쪽파), 생마늘, 청량고추, 마른 김,
물미역, 쌈배추, 미나리, 야채, 무순, 초장 등
껍질까지 먹어면 조금 질기기 때문에,
식감이 떨어진다.
아가미쪽의 껍질을 잡으면,
쉽게 껍질이 일어난다.
과메기 유래와 원조???
원래 과메기 원조는 지금의 꽁치가 아니라 청어였다. ‘어링불’로 불리던 포항 앞바다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명한 청어 산지였다. 포항 사람들은 영일만 앞바다에서 잡은 청어를 대나무(또는 싸리나무)에 눈을 꿰어 시골 부엌 창살문이나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다. 창살(처마 밑)에 매달린 청어는 바깥의 찬 공기와 밥 지을 때 빠져 나가는 따뜻한 온기(또는 한낮의 따뜻한 기온) 때문에 자연스럽게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자연 건조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상들의 지혜로 냉훈 건조된 청어 과메기는 ‘신동국여지승람’ ‘도문대직’ ‘성호사설’ ‘명물기략’ 등 옛 문헌에도 임금에게 올리는 궁중 진상품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후 청어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청어 과메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꽁치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1970~1980년대 들면서 꽁치마저도 어획량이 급감, 지금의 과메기 재료는 모두 원양산(주로 북태평양산)이다. 연안산은 기름기가 적어 과메기 원료로는 적당치 않기 때문.
‘과메기’의 원래 명칭은 옛 문헌에 ‘관목(貫目)’으로 표기되어 있다. 즉 ‘관목’이 경상도 사투리로 불리면서 관목이→관매기→과메기로 변형되었다는 게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목(貫目)’은 한자 풀이로 ‘눈을 꿰다’란 뜻이다. ‘소천소지’라는 옛 문헌에 실린 일화를 보면 어떻게 ‘관목’이란 이름이 생겨났는지 이해가 간다.
동해안 지방에 사는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동해 바닷가를 걷던 중 배가 몹시 고팠다. 민가는 없고 때마침 바닷가 나뭇가지에 청어가 눈이 꿰인 채 널려 있는 것을 보고 그 고기를 먹으니 맛이 너무 좋았다. 과거를 보고 고향으로 내려 온 선비는 그 청어 맛을 잊지 못해 겨울철에 청어와 꽁치를 사다가 나뭇가지로 눈을 꿰어 처마에 걸어 놓고 얼리고 녹여 먹은 것이 과메기의 원조라는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덕장들이 과메기를 건조할 때 관목하는 것이 아니라 짚으로 엮거나 배를 갈라 내장을 뺀 후 나무나 쇠파이프 등에 걸쳐 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