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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cFarlane Sports 원문보기 글쓴이: 텡위스-조한규
2006년 봄에 엠팍의 DaffO_DiL님이 본즈에 대해 쓴 글입니다.
본즈만큼 메이저리그에서 화제가 되고 호오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선수도 드물죠.
여하간 전설이 된 그의 선수생활과 커리어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퍼옵니다.
각종 기록들은 2006시즌 시작 전의 것입니다.
배리본즈 데뷔후 1999시즌까지 => 이미 HOF예약
20세기 메이저리그 드림팀이라는 주제로 각 포지션별로 한두 명씩 20세기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던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다.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린 현역 타자는 단 두 명. 켄 그리피 주니어(K Griffey Jr)와 배리 본즈(B Bonds)다. 이 둘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프랭크 토마스(F Thomas)와 함께 90년대 메이저리그를 이끌어 간 타자들이다. 약물의 힘을 빌려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가 홈런 경쟁을 펼치며 주목을 끌기 전 까지는. 메이저리그에서 90년대 초중반에 투수는 그렉 매덕스였고 타자는 단연 배리 본즈였다.
데뷔 때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최고의 선수들(아버지 바비 본즈와 대부인 윌리 메이스, 메이스와 함께 자이언츠의 간판타자로 군림했던 윌리 맥코비 등) 곁에서 야구를 보고 배우며 자라나 역시 학창 시절에도 야구를 포함한 농구와 풋볼에도 두각을 나타내며 대학시절 이미 최고의 선수가 된 배리 본즈. 그는 85년 피츠버그에 1라운드로 지명되어 마이너리그에서 불과 몇 게임 뛰지 않고 86년에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등장한다.
1. 메이저리그 데뷔(1986~1989)와 리드 오프(lead-off)로서의 배리 본즈
1986년 피츠버그는 짐 릴랜드(97년 플로리다 월드시리즈 우승 감독, 2006년 디트로이트 감독 취임)를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릴랜드 감독이 본즈를 아끼는 마음은 분명 있었지만 그를 너무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올리는 실수를 범한 것 같다. 또한 본즈의 타격 재능을 다 알아보지 못하고 빠른 발에만 주목한 나머지 본즈를 1~2번 혹은 5~6번에 기용했다. 데뷔 당시 본즈는 홈런왕이 아니라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최고의 호타준족이면서 수비가 좋은 대부 윌리 메이스(W Mays)의 스타일을 계승하였던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채 빅리그에 올라온 본즈는 데뷔 후 4년 동안 0.256의 타율에 그친다. 출루율은 0.345 정도. 본즈는 메이저리그 신인들이 그러하듯이 변화구 적응 능력이 떨어졌고 특히 좌투수에 약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충분히 겪어보고 대비하지 않은 탓이었다.
데뷔 3년 동안 본즈는 볼넷보다 삼진이 많았고 4년차(1989년)에 볼넷과 삼진이 93개로 같아졌으며 1990년 이후 지금까지는 16년간 홈런 타자이면서도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은 선수가 되었다. 본즈가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4년 동안의 저조한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 각종 비율 기록은 이후 역대 최고의 포스를 뽐낸 야구의 신(神)으로 군림했음에도 최고의 타자들인 루스와 게릭, 윌리엄스의 대기록에는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데뷔 후 4년간 그저 그런 타율이었지만 신인치고는 좋은 선구안으로 준수한 출루율을 올렸고 매년 30개 수준의 도루를 기록했다. 그 결과 1번 타자로서 3년간 +90 득점을 올렸다. 홈런은 25개가 최고였지만 1번 타자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였다.
2001년 메이저리그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거머쥔 이치로는 현재 통산 0.332의 고타율을 올리며 현역 2위(3000타석 이상)에 랭크되어 있지만 출루율은 타율에 비해 저조한 0.377(현역 23위)에 불과하다. 도루는 시즌 평균 40개 정도지만 그는 볼넷보다 삼진이 많다. 사실 이치로의 삼진 숫자는 많지 않다. 적극적인 타격을 하는 결과 볼넷이 훨씬 적은 것일 뿐이다.
본즈의 데뷔 후 4년은 분명 이치로에 미치지 못하지만 홈런 능력은 단연 이치로를 능가하며 출루율은 메이저리그 최고 1번 타자로 꼽히는 이치로에 비해 3푼 가량 모자랄 뿐이었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 당시 신인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일본에서도 리그에서 7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한 선수다. 이치로는 보다 정밀한 타격을 위해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아예 버리는 타격폼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본즈의 데뷔 4년은 부족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2. 최고의 호타준족(好打駿足) 배리 본즈(1990~1999)
1) 피츠버그의 전성기를 열다.
어느덧 메이저리그의 변화구가 눈에 익은 본즈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며 피츠버그의 전성시대를 연다. 1990년에 본즈는 본격적으로 클린업 트리오에 들어섰다. “+30홈런, +100타점, +3할 타율”이라는 강타자의 요건을 여유 있게 충족시키며 MVP와 피츠버그의 리그 우승도 함께 가져왔다. 2000년대에 휴스턴에 “크렉 비지오-랜스 버크먼-제프 배그웰”이라는 ‘킬러 B’ 타선이 있었다면 90년 초반에는 피츠버그에 “배리 본즈-바비 보니야-제이 벨”이라는 ‘원조 킬러 B' 타선이 있었다. 피츠버그는 원조 킬러B 타선과 함께 3년 연속(90~92)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본즈는 0.301 타율과 114타점 33홈런 그리고 93개의 볼넷이 동반된 0.406의 출루율을 올리며 생애 첫 MVP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놀라운 것은 그의 도루 숫자. 52개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30-30(홈런-도루)도 희소한 기록이지만 그를 뛰어넘는 단일시즌 “+30홈런과 +50도루”라는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2번째. 1987년 신시내티의 에릭 데이비스(E Davis)와 더불어 유일한 기록이었다.
1992~1993년에 본즈는 연속 MVP를 수상하고 역대 8번째로 MVP 3회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3번의 MVP를 수상한 것은 본즈가 처음이었다. 그나마도 1991년에 본즈는 테리 펜들레튼(T Pendleton)이라는 타자에 밀려 MVP 2위를 차지했다. 단 2명의 기자만 1위와 2위 표를 바꾸어 투표했다면 본즈는 최초의 4년 연속 MVP 수상자가 될 수도 있었다.
당시에 어메리칸 리그(AL)를 정복한 프랭크 토마스는 배리 본즈 만큼의 홈런포와 출루율을 기록했지만 본즈만큼의 도루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또한 토마스는 본즈가 통산 8차례나 가져온 골드 글러브급 수비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본즈는 홈런을 잘 치는 보기 드문 수준의 호타준족이었다. 본즈 자신도 이를 알고 있었고 그는 야구 실력으로 따지면 자신의 아버지(바비 본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본즈가 인정한 선수는 자신과 같은 수준의 홈런과 도루를 생산했고 공수주 3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윌리 메이스 뿐 이었다.
2) 샌프란시스코(SF) 이적 이후 ML 최고의 타자가 된 배리 본즈
1993년은 본즈가 아버지 본즈와 자신의 대부 윌리 메이스의 팀인 SF(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첫 해이자 자신의 커리어 사상 가장 완벽한 한 해였다. 물론 21세기 신(神)으로 군림하기 전까지. 샌프란시스코의 간판 타자가 되어 46홈런으로 +40홈런 시대를 열었고 0.336의 타율, 0.458의 출루율, 0.677의 장타율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최고의 해를 보낸다. 선구안은 나날이 좋아져서 볼넷이 삼진보다 47개나 많았으며 도루는 29개를 기록했다.
본즈는 홈런, 타점, 장타율, 출루율을 석권했고 득점은 2위, 타율은 4위를 기록했다. 안드레스 갈라라가의 0.370 타율은 1937년 이후 나오지 않았던 본즈의 NL 트리플 크라운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도루를 잘하는 홈런왕이라는 희대의 타자가 된 본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결국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기록했다. 그것은 아버지 본즈는 물론 윌리 메이스도 기록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셔널리그(NL)에서 출루율과 장타율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한 것은 1981년 마이크 슈미트 이래로 처음이었으며 본즈의 0.336의 타율은 1937년 이후 타점과 홈런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27명의 선수들 중 최고 타율이었다. 126개의 사사구중 고의 사구는 43개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2위를 기록했다. 물론 21세기 배리 본즈는 20세기 말의 인간적인 (비록 최고의 인간이지만) 기록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다만 내가 구구절절 이런 기록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약물의 힘을 빌리기 전에도 이미 본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열 손가락에 꼽힐 만큼 대단한 선수였다는 것과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 반열에 있는 선수였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1994년 파업 이전 지금과 같은 FA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의 제도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지만 당시 FA 보상과 관련한 선수 랭킹에서 배리 본즈는 100점 만점에 98.765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당시 2위는 최고의 사이영상 페이스를 이어가던 그렉 매덕스(97.679점)였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프랭크 토마스(96.667점)가 뒤를 이었다.
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간판 타자 배리 본즈
본즈는 1999년 부상과 부진으로 102경기 출장에 그치기 전까지 1994~1998 동안 변함없이 팀의 간판 타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MVP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평균 3할 타율, 4할 출루율, 6할 장타율 이상을 기록했고 평균 37홈런 이상을 쳤다. 도루도 여전히 평균 30개 이상이었고 급기야 1996년에 지금까지 역대 3차례 나왔던 단일시즌 “40홈런-40도루”를 달성했다. 당시엔 역대 2번째. 이는 본즈(1996년), 호세 칸세코(198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1998년)만이 달성한 매우 희소한 기록이다. 알폰소 소리아노와 블라디미르 게레로(사실 게레로는 심판 판정 미스로 40번째 홈런을 도둑맞았다. 그 안타까운 순간을 나는 직접 보았기에 덧붙인다.)가 아쉽게 실패한 적은 있다.
1998년 본즈는 역사상 가장 희소한 업적을 또 달성한다. 그 기록은 본즈 자신에 의해서만 갱신될 수 있는 기록이었다. 통산 “400홈런-400도루”가 그것이다. 역대로 “300홈런-300도루”를 달성한 선수는 세 명 뿐이다. 본즈의 아버지 바비 본즈(332홈런-461도루)와 본즈의 대부 윌리 메이스(660홈런-338도루) 그리고 안드레 도슨 뿐이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득점과 최다 도루를 갱신한 최고의 대도(大盜) 리키 핸더슨은 1406개의 도루와 297홈런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0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33명이다. 본즈는 506개로 공동 30위. +500도루를 기록한 선수 중에서 본즈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297개를 기록한 리키 핸더슨이며 그나마도 200홈런을 넘긴 선수는 3명(리키 핸더슨, 조 모건, 폴 몰리터) 뿐이다.
통산 “500홈런-500도루”를 넘어 전인미답의 700홈런-500도루를 기록한 본즈의 업적은 이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사실 98년 배리 본즈의 위대한 업적(400홈런-400도루)은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최고라고 자부하던 본즈는 베이브 루스와 로저 매리스만이 기록했던 단일시즌 60홈런을 훨씬 상회하는 기록을 남긴 이들에게 질투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메이저리그 최고 자존심은 급기야 이들이 복용한 스테로이드에 함께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약물 복용 이전에 본즈는 이미 최고였지만 복용자들 사이에서도 본즈는 최고가 되었다.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존심과 질투심이 그의 위대한 업적을 오히려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배리본즈 2000~2001 시즌 => 야구의신!
# 최고의 도미넌트 슬러거 배리 본즈(2000~2004)
도미넌트(Dominant)라는 표현을 나는 좋아한다. 압도적인 나아가 독보적인 기록을 보여주는 선수에 경탄하며 찬사를 그칠 수 없다. 99~2000시즌 130년 메이저리그 역사에 최고의 성적을 낸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2001년 이후 야구의 신(神)이 된 배리 본즈가 붙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좌우투수 가리지 않고 홈런을 때려내거나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본즈와 좌우타자 가리지 않고 삼진을 잡아내고 볼넷도 잘 안 내주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대결.
이하에서 최고의 슬러거로 군림한 본즈의 위대하고도 경이적인 4년 기록을 살펴하고 또 그 이유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아울러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약물 논란도 함께.
1. 약물 의혹에 대한 간단한 언급
98년 소사와 빅맥의 홈런 경쟁 이후, 99년에 본즈는 부상으로 102게임 출장에 그친다. 그럼에도 34개의 홈런을 쳐냈고 6할 이상의 장타율을 기록하였다. 이 시기에 본즈는 약물 제공 혐의를 받고 있는 트레이너와 함께 훈련을 시작한다. 얼마 전 기사화 된 적이 있듯이 본즈는 대략 이 시기부터 꾸준히 약물을 복용했던 것 같다. 물론 약물이 전부가 아니다. 꾸준한 트레이닝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앤디 페티트가 로저 클레멘스와 함께 훈련을 하다가 클레멘스의 훈련 양에 질려버려서 뛰쳐나왔다는 일화가 있지만, 셰필드가 본즈와 함께 훈련을 하다가 역시 뛰쳐나왔다는 일화도 있다. 본즈의 하드 웨어가 그렇듯이 클레멘스의 하드웨어도 커졌다. 그 둘은 40을 넘나드는 나이에도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두 명의 천재 스타들은 똑같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한 사람은 소위 ‘약물뺏이지만 다른 사람은 그와 무관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본즈의 약물 의혹만큼이나 클레멘스의 약물 의혹 -그것이 지금까지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 이 대등한 수준에 있다고 본다. 호세 칸세코의 직접 약물 투여 명단에 맥과이어와 지암비, I-Rod가 있지만 칸세코가 의혹을 가진 명단에 본즈와 클레멘스는 함께 올라있다. 본즈와 클레멘스가 다른 것은 피부색 뿐 이다. 그러나 그것은 약물 논란의 수준도 다르게 만들었다. 인종 문제 특히 백인 우월주의는 제법 극복되었지만 여전히 은연중 그것이 존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가령 ‘브라운 판결’로 흑백인 간의 분리 교육에 철퇴를 내린 것은 50년 전이지만 실제로 차별을 완전히 극복해낸 시간은 25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약물 논쟁을 하는 것도 좋고 약물 투여로 인한 기록을 비판하는 것도 좋으며 본즈의 명예의 전당 헌액을 반대하는 것까지도 좋다. 다만 그것은 백인들의 우상인 마크 맥과이어와 로저 클레멘스의 기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철저히 규명되고 철저히 심판받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2. 야구의 신(神)으로 군림한 배리 본즈(2001~2004)
1) 2000시즌 - 도루를 버리고 더 많은 홈런을 취하다.
본즈의 경이적인 시즌은 기록상으로 2001년부터 드러났지만 그가 약물과 더불어 체계적인 근육강화 훈련을 통해 하드웨어를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99년부터로 보이고 2000년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 같다. 소사와 맥과이어가 약물의 힘을 빌려 6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는 것을 그리하여 최고 스타의 자리를 굳혀가는 것을 본즈의 자존심이 허락할 리 만무하다. 99년~2000년부터 본즈는 도루를 현저히 줄이기 시작했다. 커진 체형은 도루 능력도 저하시켰겠지만 그것은 본즈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또한 점차 홈런을 의식한 스윙으로 2001년에는 93개의 삼진을 당하며 데뷔 년을 제외하고 최다 삼진을 당하기도 한다.
2000시즌 본즈는 49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새미 소사에 1개 차이로 2위에 그친다. 그런데 소사는 604번의 타석에서 때려냈고 본즈는 480번의 타석에서 때려낸 것이다. 볼넷 개수의 차이와 본즈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그 원인이었다. 시즌 전반기 본즈는 28개의 홈런을 때려내어 55개 상당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것은 본즈가 이전에 MVP를 수상한 완벽한 시즌이었던 93년 전반기 24개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또한 2000년 전반기에 7할대의 장타율을 꾸준히 유지하였다. 그러나 7월부터 잔 부상에 시달린 나머지 페이스가 줄었고 홈런은 49개, 장타율은 0.688에 그쳤다. 홈런과 장타율 모두 커리어 하이였지만 시즌 전반기 페이스나 다음 시즌부터 이룰 업적을 생각하면 본즈로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실패였을지 모른다.
2000시즌 49번째의 마지막 홈런은 개인 통산 494개째로서 루 게릭(493개)을 제치고 역대 단독 17위에 오르는 의미가 있었다. 자이언츠의 새로운 홈구장(팩 벨 파크)은 본즈를 위해 우측 펜스를 짧게 만들었고 보다 잘 맞으면 맥코비 만에 “풍덩” 빠질 수 있는 홈런(Splash Hit)을 팬들에게 선사하기 시작했다. 이는 좌타자인 루스와 게릭을 위해 양키즈가 우측 펜스를 짧게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인 셈. 2000년에 본즈는 5월 1일 최초의 스플래쉬 히트를 포함 자이언츠 선수 중 유일하게 6개의 스플래쉬 히트를 기록하였다. 그 외 애리조나의 루이스 곤잘레스와 다저스의 토드 헌들리만이 한 차례씩 기록했을 뿐이었다. 지금은 최희섭 선수도 한 차례 스플래쉬 히트를 때려낸 바 있다.
2000년에 통산 9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나 이 정도는 본즈의 이력에 중요한 사항도 아닌 것이 되었다. 4월 8일 461번째 도루를 성공시켜 아버지 본즈와 공동으로 도루 부문 역대 43위에 올랐다.
시즌 종료 후 메츠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29타수 6안타(0.207AVG), 3개의 2루타, 3루타 1개, 3타점에 그쳤지만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 올스타 시리즈에서는 28타수 9안타(0.321AVG), 2루타 2개, 4홈런, 9타점을 올려 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2) 2001시즌 - 단일시즌 역대 최다 홈런(73개)
2001년에 본즈는 전인미답의 MVP 4회 수상자가 되었고 98년 마크 맥과이어에게 빼앗긴 최고 슬러거가 가질 수 있는 최고 기록들을 모두 가져왔다. 더 무서운 것은 그가 남긴 경이적인 기록들을 해를 거듭하며 스스로 갱신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 최상급의 표현은 진부해질 때가 되었다. 본즈는 메이저리그가 고도화, 현대화되기 전에 천재적인 몇몇 선수들이 남겼던 전설적인 기록들을 하나 둘 일깨우며 잊혀졌던 옛날의 슬러거들을 불러냈다.
선수들 능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훈련 방식과 장비 등이 고도화된 오늘날에 독보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0년 페드로가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내긴 했지만 그것은 1~2년에 불과하며 본즈의 4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불가능한 업적은 본즈의 천재성과 노력 그리고 약물이 더해진 결과물이었다. 물론 본즈의 자존심에 불을 지핀 것은 본즈 이외의 다른 선수들이었다.
2001년에 본즈가 남긴 단일시즌 신기록 5가지.
① 73개 홈런 ② 177개 볼넷 ③ 0.863의 장타율
④ 100타석당 15.34개의 홈런(100타석당 홈런 비율)
⑤ 6.52타수당 1개의 홈런(홈런당 타수 비율)
알다시피 73홈런은 98년 맥과이어의 70개를 갱신하는 것이었다. 177개의 볼넷은 1923년 베이브 루스의 170개를 갱신하는 것이었으며 0.863의 장타율은 1920년 루스의 기록(0.847)을 81년 만에 깨는 것이었다. 15.34의 100타석당 홈런 비율은 맥과이어의 1998년 기록(13.75)을 깨뜨렸고 동시에 홈런당 타수 역시 같은 해 맥과이어의 기록(7.27타수)를 갈아 치우는 것이었다.
약물의 힘을 빌린 2000-2001년간 122개의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고 같은 기간 새미 소사가 114개로 2위였다. 다만 소사는 2년간 129개(98~99시즌)의 홈런을 친 바 있고 2년간 역대 최다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홈런을 치는 동안 소사는 342번의 삼진을 당했고 본즈는 170번의 삼진을 당했을 뿐이다. 소사와 맥과이어를 본즈와 비교해 보면 파워의 증가로 홈런이 늘면 볼넷이 늘기는 하지만 삼진을 잘 당하지 않게 하는 선구안이라는 것이 약물 복용과 무관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본즈가 남긴 2년간 122개의 홈런은 메이저리그 왼손 타자 신기록이다. 루스의 114개(1927~28)를 갱신한 것. 본즈의 73개 홈런 중 원정 경기 홈런은 36개로 역대 1위다. 베이브 루스(1927)와 마크 맥과이어(1998)의 32개를 갈아치웠다.
한편 0.515의 출루율은 2001년 당시 메이저리그 역대 8위였고 1900년대 이후 선수로는 역대 5위의 기록이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역대 1위(AL에서 뛴 루스와 윌리엄스만이 본즈의 2001년을 능가).
참고로 5할 이상의 단일시즌 출루율을 남긴 선수는 루스, 윌리엄스, 미키 맨틀, 본즈 뿐이다. 루스는 5회, 본즈는 2001~2004시즌 연속 4회, 윌리엄스는 3회, 맨틀은 1회. 그 밖에 현역 선수들의 최고 출루율은 프랭크 토마스 0.487(1994년), 제이슨 지암비 0.477(2001년), 카를로스 델가도 0.470(2000년)이다.
2001년 본즈는 156개의 안타를 때렸지만 그 중 장타는 107개에 달하여 파워 증가가 그의 타격에 한 몫 했음을 짐작케 한다. 장타 개수로는 역대 공동 3위. 1위는 루스의 119개(1921년)이며 2위는 게릭의 117개(1927년)다.
시즌 내내 본즈의 홈런이 화제를 몰고 다녔다. 98년 맥과이어가 신기록을 세울 당시보다는 언론이 덜 뜨겁다는 평가도 있기는 하다. 본즈의 성격과 피부색을 이유로 든다. 어쨌거나 본즈의 홈런 페이스는 경이적이었다.
전반기 39개 홈런으로 1998년 맥과이어와 1969년 레지 잭슨의 37개를 갱신하였다.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빠른 발과 정확한 컨택팅 능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이치로(AL)에 이어 올스타 최다 득표 2위를 기록했고 개인 통산 3번째로 내셔널리그(NL) 올스타 투표 1위에 올랐다.
4월 17일에 LA다저스의 테리 아담스를 상대로 스플래쉬 히트를 기록하며 500홈런 클럽에 가입하였다. 시즌 중 6게임 연속 홈런을 2차례 기록하였고 6게임 동안 9개의 홈런을 친 것은 NL 역대 1위다. 참고로 역대 최다 연속 게임 홈런은 8게임이다. 피츠버그 해적단의 '데일리 롱'(1956년), 양키즈의 돈 매팅리(1987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켄 그리피 주니어(1993년)가 기록한 바 있다.
5월 19일과 9월 9일에 한 경기 3홈런을 기록(개인 통산 3번)하였고 베이브 루스, 로저 매리스,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에 이어 역대 5번째 +60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아가 +50홈런을 넘긴 최고령자(37년 18일)가 되어 99년 맥과이어의 기록(35년 326일)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5월에는 이달의 선수(Player of Month)에 선정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958년 이달의 선수를 선정한 이래 NL 역대 최다(8번)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5월의 17개 홈런은 한 달간 최다 홈런 ML 타이기록이었다. 그것은 미키 맨틀과 마크 맥과이어의 15개를 능가하고 루스의 1927년 9월과 메이스의 1965년 8월과 타이를 이루는 것.
시즌 마지막 56게임에서 본즈는 173타수 68안타(0.393 AVG), 56득점, 31개 홈런, 59타점을 올렸고 시즌 153경기 중에서 61경기(대략 40%)에서 홈런을 때려냈다. 시즌 마지막 8번의 3연전(혹은 4연전) 시리즈에서 모두 홈런을 때려냈고 마지막 19번의 3연전 시리즈에서 18차례나 홈런을 때려냈다. 다시 말해 본즈는 2001년에 시도 때도 없이 홈런을 쳤다.
기록 갱신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기록한 볼넷이 말해주듯이 투수들은 그를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즈는 결코 서둘지 않았으며 타석에서 여전히 침착했다. 69개 홈런 이후 한 동안의 침묵을 깨고 10월 4일 휴스턴의 윌프레도 로드리게즈를 상대로 70번째 홈런을 뽑아냈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은연 중 혹은 노골적으로 본즈를 피해 다녔던 투수들이었지만 겁 없는 신인에게서 드디어 최고 기록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홈런을 기록했다.
다들 잘 알다시피 박찬호를 상대로 71, 72호를 뽑아냈다. 그것은 427피트, 407피트짜리 대형홈런이었다. 박찬호 선수에 대한 글(매니아분석 2006/1/20)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당시 박찬호는 전반기의 그가 아니었다. 허리 부상을 감춘 그는 팀의 포스트 시즌과 무관한 무리한 등판으로 4이닝 8실점하였고 3.29의 방어율이 3.50으로 치솟았으며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었다. 박찬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10월 7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본즈는 다저스의 데니스 스프링거를 상대로 73호를 쏘아 올렸다.
배리본즈 기록분석 및 2002~2003시즌
#배리 본즈의 커리어
2001시즌 73홈런, 137타점, 129득점, 177볼넷, 93삼진, 고의사구 35개
............. 0.328 타율, 0.515 출루율, 0.863 장타율, 1.379 OPS(장타율+출루율)
2002시즌 46홈런, 110타점, 117득점, 198볼넷, 47삼진, 고의사구 68개
............. 0.370 타율, 0.582 출루율, 0.799 장타율, 1.381 OPS
2003시즌 45홈런, 90타점, 111득점, 148볼넷, 58삼진, 고의사구 61개
............. 0.341 타율, 0.529 출루율, 0.749 장타율, 1.278 OPS
2004시즌 45홈런, 101타점, 129득점, 232볼넷, 41삼진, 고의사구 120개
............. 0.362 타율, 0.609 출루율, 0.812 장타율, 1.422 OPS
#새미 소사의 커리어
1998시즌 66홈런, 158타점, 134득점, 73볼넷, 171삼진, 고의사구 14개
............. 0.308 타율, 0.377 출루율, 0.647 장타율, 1.024 OPS
2001시즌 64홈런, 160타점, 146득점, 116볼넷, 153삼진, 고의사구 37개
............. 0.328 타율, 0.437 출루율, 0.737 장타율, 1.114 OPS
#마크 맥과이어의 커리어
1998시즌 70홈런, 147타점, 130득점, 162볼넷, 155삼진, 고의사구 28개
............. 0.299 타율, 0.470 출루율, 0.752 장타율, 1.222 OPS
▲배리 본즈의 경이적인 기록(2001~2004시즌)의 원인 분석
똑같이 약물을 복용한 것을 전제한 뒤 세 명의 슬러거들의 성적을 비교해보자. 주목할 부분은 본즈의 2001년과 빅맥 및 소사의 1998년이다. 소사, 빅맥, 본즈 셋은 이전까지 베이브 루스와 로저 매리스만이 기록했던 단일시즌 60~61홈런을 넘었다. 단일시즌 +60홈런은 여전히 이들 다섯 명만이 남긴 업적이다.
세 선수 모두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시즌이지만 본즈는 소사와 맥과이어에 비해 보다 많은 볼넷과 훨씬 적은 삼진을 기록함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소사와 맥과이어의 전성기적 기록도 2002년 이후의 본즈(esp. 볼넷/삼진)하고는 비교조차 안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나 급(級)이 다른 본즈. 결론은 그것이다.
1998년에 맥과이어가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했지만 MVP는 공정하게도 타점과 득점 및 타율에서 앞섰고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새미 소사에게 돌아갔다. 소사의 98년은 본즈의 2001년에 비해 많은 타점과 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타수는 본즈보다 167번이나 많았다. 2004년 본즈에 비교하면 21개의 홈런을 더 쳤지만 타수는 240번이나 더 많았다. 본즈가 일반적으로 한 시즌 15경기 가량 거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볼넷이다. 본즈는 기다릴 줄 아는 선수였고 소사는 달려드는 선수였다. 66개의 홈런을 치기 위해 171개의 삼진을 당한 새미 소사를 상대하는 투수라면 걸리면 죽음이지만 잘하면 삼진으로 요리할 수 있는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2001년 나아가 2002년 이후의 본즈를 보면 투수들은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04년에 본즈는 홈런을 친 만큼의 삼진만 당했다.
새미 소사의 2001년이 그의 1998년 보다 성숙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투수들의 견제로 인해 자신의 타격 성향에 관계없이 참을성이 더 요구됨을 소사는 알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볼넷과 출루율이 훨씬 늘었다. 여전히 삼진도 많기는 하지만.
본즈의 2002년 역시 2001년을 겪은 투수들을 대비해야 했다. 그러나 본즈는 자신에 대한 투수들의 두려움과 견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배트 스피드와 타격 능력 그리고 선구안 및 참을성은 남달랐다. 본즈가 신(神)모드로 변화하기 시작한 2001년은 소사의 정점인 2001년보다 이미 더 높은 출루율과 장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도루를 포기한 뒤 의식적인 홈런 스윙은 처음(2001년)에 삼진 숫자를 늘렸지만 약물과 함께 체계적으로 키운 파워를 스스로 체험하면서 타고난 선구안과 타격 재능이 더해져 2002년 이후에는 보다 압도적인 볼넷과 현저히 적은 삼진을 남기게 되었다. 소사처럼 더 많은 홈런이나 더 많은 타점, 즉 더 많은 타격 기회를 위해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것이 본즈의 위대한 기록을 낳은 것이다.
2001년에 “상향 한계가 높아지고 좌우 폭이 좁아진” 스트라이크 존(zone) 조정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매니아들 간에 오래된 논쟁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스트라이크 존의 조정이 본즈의 경이적인 기록 달성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것.
먼저 “스트라이크 존을 재설정한 것이 극히 미미한 영향을 미쳤을 뿐이라는 견해”는 존이 조정되기 전인 2000년에 이미 본즈가 크레이지 모드에 돌입하였음을 지적한다. 2001년에 비해 부족한 2000년의 성적은 '후반기 부상으로 인한 결장 및 페이스 저하'와 '파워 증가를 스스로 실감하기 전의 시행착오'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본즈의 2000년 성적은 분명 본즈가 의도한 대로 파워를 증가시키기 전인 1999년 이전 성적과는 현저히 다르며 오히려 2001년의 서막이었음을 강조한다. 2000년 이래 본즈의 도루가 현저히 줄고 2001년에 삼진이 비교적 크게 늘었듯이 본즈가 의식적으로 홈런에 집착하였음을 근거로 든다. 요컨대 존의 조정이라는 것도 심판의 주관의 실현인 만큼 매우 미미한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본즈의 2001년 이후의 괴물 같은 성적은 (약물에 의지한) 파워 증가 및 빠른 배트 스피드와 탁월한 선구안 등 본즈의 타고난 재능이 결합되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견해다.
다음 “비교적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견해”는 2000년의 좋은 페이스도 60개에 미치지 못하며(전반기 28개의 홈런) 2001년에 60개 수준도 아닌 73개라는 현저한 증가는 존의 조정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본즈는 슬러거답지 않게 비교적 짧고 가벼운 배트를 쓰며 그나마도 짧게 잡는 편이다. 배트 스피드에 충분한 자신감이 있기도 하지만 좌우 폭이 좁아진 스트라이크 존은 본즈에게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공에 이전보다 덜 신경 써도 될 만큼 여유를 주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현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본즈의 경이적인 홈런 기록 갱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지우 기자님(MLB Park)은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 손지우 기자는 스트라이크 존 조정이 영향을 미친 증거로 “2001년 이후 상향성을 보이는 포심과 반대의 하향성을 지니는 싱킹성 구질을 잘 갖춘 투수들이 급상승세를 보였다”고 하며 대표적인 예로 “커트 실링의 급격한 등장, 매트 모리스의 출현, 로저 클레멘스의 부활” 등을 지적한다. 이들은 포심과 스플리터(실링, 클레멘스), 커브(모리스)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좌우의 폭을 이용하는 탐 글래빈은 어설픈 높은 공 탓에 2001년 전반기에 부진을 보였음”도 지적하고 있다.
야구는 섬세한 운동이다. 존의 조정, 마운드의 높이, 공의 반발력 등의 미세한 차이나 조그만 실밥까지도 선수의 정신적인 면(mental)과 기록(stats)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데뷔 때부터 짧고 가벼운 배트를 사용했던 본즈가 이전과 달리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으로 걸치면서 배트에 닿지 않는 미묘한 부분이 사라졌음은 홈런 증가와 출루율 상승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어느 견해든 존의 조정이 본즈의 경이적인 기록 형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일 뿐. 손지우 기자님은 “짧고 가벼운 배트를 사용”은 보다 빠른 배트 스피드를 가질 수 있기에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으므로 본즈의 “선구안”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함을 지적한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또한 가벼운 배트는 보다 세밀한 “배트 컨트롤”을 가능하게 하며 그것은 슬러거로서 지극히 적은 본즈의 삼진 숫자가 증명한다. 손지우 기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강력한 손목 힘, 매끄러운 허리 움직임, 그리고 왼발의 움직임” 등 자연스럽고 정교한 본즈의 타격 기술을 논리적이고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는 손기자님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 분의 글은 약물 논쟁이 불거지기 전에 쓰여진 것이고 약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나의 결론인 즉 본즈의 경이적인 업적은 ①약물에 의지한 파워 상승과 ②본즈의 타고난 타격 재능이 더해진 결과라는 것. 다시 말해 손기자님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만으로도 부족하고, 또한 맥과이어와 소사, 지암비, 팔메이로, 짐 토미, 브렛 분, 아이 로드(I-Rod) 등 약물 의혹이 짙은 이들을 훨씬 능가하는 성적을 보인 본즈이기에 약물로 인한 파워 상승만으로도 설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 요컨대 나이에 걸맞지 않은 파워 상승(그리고 그를 위한 체계적인 훈련)과 본즈의 타고난 능력 두 가지를 결합시켜야 완벽한 해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본즈의 2002시즌 - 최고의 OPS & 첫 번째 월드시리즈 무대
본즈는 0.370의 타율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 앞서 언급했듯 2001년 엄청난 홈런에 놀란 투수들이 도망가는 피칭을 하였지만 결코 본즈는 달려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으면 버렸고 걸려들면 넘겨버렸다. 정말이지 무서운 인내심이었다. 90년대에 이미 그는 삼진보다 볼넷이 많은 선수였다. 윌리엄스에 관한 글에서 지적했듯이 현역 최고의 타자들 중에 그리피, 매니, 에이 로드, 이치로, 게레로는 삼진이 볼넷보다 많은 타자들이며 푸홀스, 헬튼, 셰필드, 등은 삼진보다 볼넷이 다소 많을 뿐이다. 본즈는 90년대에 이미 후자에 속했다.
프랭크 토마스의 타력과 선구안, 켄 그리피의 간결한 스윙과 수비 능력 그리고 케니 로프턴 급의 주력을 골고루 갖춘 선수가 본즈였다. 장타력도 이미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는 신(神)급의 장타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주력(走力)을 포기했지만 경험에 비례하는 선구안은 날로 예리해졌다. 장타력과 선구안은 본즈에게 경이적인 수준의 장타율과 출루율을 동시에 남겼고 급기야 OPS는 역대 최고를 기록한다.
본즈의 위력과 선구안은 198개의 볼넷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2001년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갱신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0.582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1941년 테드 윌리엄스의 기록(0.553)를 61년 만에 깨뜨렸다. 출루율과 장타율이 합해진 OPS는 1.381(13할 8푼 1리)로서 1920년 베이브 루스가 기록한 1.379(13할 7푼 9리)를 82년 만에 갱신하고야 말았다. 더욱 슬프도록 놀라운 것은 더 높은 곳이 없을 줄 알았던 이런 경이적인 기록(OPS)이 2004년에 곧바로 14할대로 갱신된다는 것이다. 본즈 자신에 의해서.
홈런은 46개에 그쳤지만 볼넷이 많아 타수가 줄어든 결과였고 타수당 홈런 비율은 여전히 양리그 전체 1위를 고수했다. 3.7 타수당 1타점 역시 리그 최고 기록이었고 그가 당한 삼진은 홈런보다 1개 많은 47개였다. 참고로 가장 가까운 시기에 삼진보다 많은 홈런(2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1980년의 죠지 브렛(24홈런, 22삼진)이었지만 40개 수준과는 차이가 크다. 본즈의 장타율도 0.799로 1위. 개인통산 4번째의 3홈런 게임도 기록했다.
68개의 고의사구는 윌리 메이스와 함께 자이언츠의 최고 타자로 남은 윌리 맥코비의 45개(1969년)를 경신하는 것이었다. 물론 2004년 본즈의 기록은 또 다시 자체 경신되었고 그에 비하면 이건 논란거리도 아니다. 이전 글에 언급했지만 93년에 본즈는 이미 맥코비에 이어 역대 2위의 고의사구(43개)를 기록한 바 있었다.
배리 본즈는 2002년 8월 9일에 역대 4명 뿐 인 600홈런 클럽에 가입하였다. 8월에 이달의 선수(Player of month)에 선정되어 누구도 7번 이상 경험하지 못한 영예를 10번이나 성취하였다.
2003년을 포함하여 7번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본즈였지만 2002년은 본즈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 무대였다. 피츠버그 시절(90~92)이나 2000년과 달리 2002년 포스트 시즌 본즈는 "경이적인 본즈" 그대로였다. 단 한 번의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그는 많은 기록을 세웠다.
2002년 포스트 시즌에서 배리 본즈는 45타수 16안타(0.356타율), 18득점, 2루타 2개, 3루타 1개, 8홈런, 16타점, 27볼넷, 0.978의 장타율, 0.581의 출루율 및 +15할 OPS를 기록한다.
포스트 시즌 8개 홈런은 역대 1위였다. 2004년에 카를로스 벨트란이 휴스턴의 포스트 시즌에서 본즈와 타이기록을 세우며 나이와 잠재력(potential)으로 포장한, 사기성 짙은 FA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2006시즌에 보여주는 모습은 사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하지만...첨가^^) 본즈는 포스트 시즌에서도 27개의 볼넷을 기록하여 97년 플로리다 말린즈의 우승 당시 개리 셰필드가 세웠던 20개의 볼넷을 갱신하였다.
본즈는 월드시리즈에서 4개의 홈런을 친 역대 9번째 선수가 되었고 월드시리즈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역대 26번째의 선수가 되었다. 그는 애너하임(LA) 엔젤스의 에이스 제라드 워시번을 상대로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것이다. 어메리칸 리그라는 ‘먼 나라’에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팀의 에이스를 맡고 있던 제라드 워시번은 ‘이웃 나라’ 내셔널리그의 배리 본즈에 대해 말만 들었을 뿐 직접 겪어 보지 못한 탓에 자존심을 건 승부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역시나.
나아가 본즈는 월드시리즈 첫 3게임 연속으로 홈런을 친 역대 2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리하여 어메리칸리그(AL) 최고 팀도 본즈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는지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본즈에게 13개의 볼넷이라는 월드시리즈 역대 최다의 기록을 헌납하며 천신만고 끝에 챔피언 반지를 가져왔다. 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적이 필요했다. 당시 언론은 애너하임의 대역전극을 ‘랠리 몽키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 본즈의 2003시즌 - “500홈런-500도루” 달성 & 아버지 본즈의 별세
2003년은 본즈의 경이적인 시즌 가운데에 가장 평범한(?) 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누구든 단 1년만이라도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면 그는 한 시즌에 많은 것들(MVP, 올스타, 실버슬러거상, 행크아론상, 연봉 상승 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5홈런, 90타점, 111득점에도 불구하고 43홈런, 124타점, 137득점을 올린 알버트 푸홀스를 제치고 전인미답의 6번째 MVP를 수상한 것은 역시 148개와 79개라는 볼넷 차이가 그렇듯 본즈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었다. 더욱이 본즈는 오랜 암 투병 끝에 사망한 아버지 본즈의 장례 문제 등으로 평소보다 10경기 이상 더 결장하였다. 아버지의 장례와 잠시 동안 방황을 하며 몇 차례 팀을 벗어났다가 돌아온 뒤 바로 등판한 게임에서 곧바로 연장 10회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기도 하고 랜디 존슨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어 2-1로 팀 승리를 견인하기도 하였다.
2003년 6월 24일 전대미문의 “500홈런-500도루”를 달성하였다. 홈런을 추가하여 달성한 400-400과 달리 이번에는 도루를 추가하여 500-500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성취하였다. 사이 영의 511승 만큼이나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 아닐까. 데드볼이라는 시대성과 소위 ‘고무팔’과 같은 타고난 하드웨어가 조합된 희대의 강견(强堅)이 아니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500승”이겠지만, 마찬가지로 최고의 슬러거인 동시에 최고의 준족이라는 희대의 타자가 아니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500홈런-500도루”가 아닐지. 게레로, A-Rod, 소리아노 등이 90년대 본즈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들은 이미 도루가 현저히 줄어들어 300 도루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300-300 달성이 가능한 선수조차 이들 이외에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월터 존슨과 같은 400승 투수는 있지만 400홈런-400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300승 투수는 22명이나 되지만 300홈런-300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본즈 이외에 셋(아버지 본즈, 본즈의 대부 윌리 메이스, 그리고 안드레 도슨) 뿐이다.
같은 해 9월 15일에 본즈는 베이브 루스의 통산 볼넷 기록(2062개)을 넘어섰다. 자이언츠에서 7시즌 +40홈런을 치며 6시즌을 기록한 윌리 메이스를 능가했다. 4년 연속 +100득점 시즌이자 11번째 +100득점 시즌이 되었고 64번의 멀티 홈런 게임을 기록하며 루스(72번)와 맥과이어(67번)에 이어 이 부문 역대 3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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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cFarlane Sports 원문보기 글쓴이: 텡위스-조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