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주변 동네 사람들 얘기 한 번 써볼까 했는데 봄기운이 먼저 올렸네요. 답글 형식으로 올립니다.
집에서 학원까지는 5분 거리입니다. 그야말로 빤히 보이지요. 아파트에서 나서면 다음 블록에 학원 건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립니다. 그 길에는 아파트 상가 6개의 가게들이 죽이어 있습니다. 그 중 서너 군데는 내가 학원 원장인줄을 알지만 여성복을 파는 곳과 같은 서너 곳은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는 곳이라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학원원장이 사회적으로 되게 높은 줄을 압니다. 참고로 내가 있는 지산동 범물동은 입시학원만 60여개에 교습소가 200여개가 됩니다. 교습소도 학원으로 보면 됩니다. 두 개의 동에 같은 경쟁의 업종이 이렇게 많은 경우는 아마 대한민국 전체에서도 드물 겁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낮에 길을 가다가 원장님이라고 부르면 아마도 성인 남자 열 명중 칠팔 명은 뒤를 돌아볼 겁니다. 그래도 나는 너댓 개의 가게 사장님들로부터 원장님이라 칭해지면서 그들의 가게 앞을 지나는 그 5분 동안은 그 동네의 유지가 됩니다.
먼저 아파트 입구에 있는 떡볶이집 사장님 부부. 이미 예전에 이 가게에 대해서 오뎅(어묵이 영 어색하네요) 국물에 큰 게를 넣어 만드는 것을 보고, 감동받은 바를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과 공휴일은 꼭 쉽니다. 추측컨대 주 5일이 정착되는 내년 즈음은 확실히 주 5일 영업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름휴가도 7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 쉬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말없이 가게 앞을 몇 번씩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고는 떡볶이 사러간 우리 집사람 보고 하는 말이 “원장님은 저렇게 말이 없어 보이는 데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고?”하며 걱정의 말을 하더라는군요. 그걸로 볼 때 그 부부에게는 내가 크게 매력적이고 긍정적인 인물로 비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은 그 옆 가게 ‘대덕 철물점’입니다. 보통 가게의 절반 정도되는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그래도 전기재료 및 철물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서는 열쇠 복제를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데 사람이 참 착해 보입니다. 그리고 학원의 전기 일은 도맡아 해 줍니다. 그 비용도 크게 비싸지 않아 이 분은 내가 참 좋아하는 분입니다.
다음은 충무 깁밥집입니다. 한 번도 이용한 적은 없지만 불가사의한 것은 다른 식당가게는 주인이 늘상 바뀌는데 놀랍게도 이 집은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갑니다. 별다른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신통한 일입니다.
다음은 신한국 비디오 가게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딸이 있는 것으로 보아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키가 자그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억력이 비상하여 놀랄 때가 많습니다. 우리집 아이가 자주 이용하는데 척척 나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빠르게 변하여 비디오 테입뿐만 아니라 도서도 들여 놓고 그리고 DVD도 대여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비디오 가게는 그렇지 않지만 신한국 비디오가게는 기일이 지나면 반드시 연체료를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이 가게만큼은 기일이 지나면 연체료를 준비해서 갑니다. 이것을 보면 소비자도 교육을 시키면 되는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다음은 여성복 가게입니다. 동네의 조그만 여성복 가게가 역시 명맥을 꿋꿋이 이어가는 것을 보면 앞의 충무 김밥집과 더불어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앞으로 이 두 가게를 좀더 진지하게 관찰하려 합니다. 다음은 빈가게입니다. 그전에 만두집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호응이 좋았습니다. 주인은 대구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 같았습니다. 개업식 때 의사 친구들이 놀러 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은 그 사장이 만두를 찔 동안 영어 원서를 읽는 것도 보았답니다. 그래서 나도 호의를 가지고 몇 번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만두 피가 너무 두껍고 속내용물이 적어 밀가루 냄새가 강하게 나더군요. 그 때 속으로 짐작했습니다. 아! 오래가기 힘들겠구나. 그로부터 6개월 뒤 문을 닫더니 아직까지 점포가 비어있습니다.
다음은 대한민국(상호명)이발소입니다. 젊은 부부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모두 이발기술자입니다. 두 사람 다 머리를 내 마음에 들게 깎아줍니다. 이발비는 5000원입니다. 남자는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합니다. 그런데도 그 큰 손으로 섬세하게 잘 깎아주고 또 아주 친절합니다. 검은 가는 뿔테 안경을 쓴 여자도 많이 경력이 꽤 오래 된 듯합니다. 일요일 저녁이면 중고등학생들로 만원을 이룹니다. 열심히 깎은 만큼만 벌어가는 참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근데 막내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함께 다녀온 집사람 얘기에 의하면 두사람은 아직 식을 올리지 않았다는 군요. 남자가 성실히 하는 것 본 다음 마음에 들면 식을 올리겠다고 여자가 말하더라는 군요.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 사이가 참 좋아 보이고 남자가 성실하니 아마 곧 식을 올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음은 뚤레주르 빵집입니다. 사실 작년에 이 가게가 열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의 파리바겟트 빵집이 있었는데 빵 전부를 본점에서 받지를 않고 자체 빵을 몇 개씩 넣어 팔았습니다. 그래서 맛이 별로 였던 기억이 있는데 뚤레주르 빵집이 들어서면서부터 서비스부터 빵맛까지 확실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빵집이나 학원이나 이렇게 경쟁체제가 되어야 소비자에게 좋은가 봅니다. 나중에 보니 이 빵집과 앞의 여성복 가게는 같은 주인 것이라 하네요 남편은 빵집을 아내는 여성복 가게를 이렇게 가게를 두 개나 거느린 부자입니다. 물론 그들은 나를 모릅니다.
아! 끝집으로 대구 칼국수집이 있습니다. 가게 역시 크지 않은 보통 집이지만 이 집 손님 많은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 점심 시간때는 밖에서 오래지는 않지만 몇 분 기다려야 합니다. 대구에서 손님이 기다리는 집은 이 집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핏 들리는 말로 우리 학원 매츨보다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자존심 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집에 칼국수 먹으러 가며는, 학원원장 표시내지 않고 다소곳이 얌전하게 먹고 나옵니다. 칼국수 좋아하신다면 한 그릇 대접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상의 모두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입니다. 이런 이웃들이 출근길 5분동안나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해 주고 인정해주는 이웃들입니다.그래서 나는 이런 이웃이 참 좋습니다. 이상 끝.
첫댓글 경쟁이 없는 데가 없지요. 오밀조밀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향한 팔공산의 시선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이 동네는 학원과 그 비슷한 업종의 밀집도가 전국 최고라고 누가 그럽디다. 그런 동네에서 그래도 자기 간판을 걸고 있으니, 팔공산이나 저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수성 동백 뒤의 충무 김밥집은 나도 가끔 시켜 먹는 곳. 칼국수는 나도 아주 좋아하는 음식인데, 여름이 지나고 나서 한 번 가 봐야겠네그려.
이웃을 살펴보는 팔공산의 마음이 보기 좋습니다.
학원과 집, 5분 거리 안에 참 다양한 삶들이. 팔공산의 안경 너머 지긋한 시선이 이들의 삶을 열어가네.
대구에 시골 중학교 동기가 사는데, 아직 장가를 못갔지요. 그 친구 말인즉 살아보니 친척이고 동기고 뭐고 보다 매일 얼굴 대하는 [골목안 사람들]이 제일 좋더라..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기억되어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고 그러더군요.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요. /팔공산님의 이웃들..옹기종기 모여살다가
또 인연따라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인연이 되면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한 생을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팔공산님이 이 동네 유지가 맞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동네 사람들을 보는 눈이 따뜻하니...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떠오른다. 참, 거기는 키모 밥터 아닌가? 팔공산의 날카로움 속에 따뜻함이 물씬거리네요.
팔공산님 글은 날이 갈수록 그 맛을 더하네요. 이웃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이 환하게 빛을 발합니다. 그 마음결이 실상보다 더 좋은 이웃들로 승격시키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