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간디라 불리는 인도의 아나 하자레는 2011년 당시 인도의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뿌리 깊었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시민운동을 이끌었던 사회운동가다. 대대적인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77세 나이에 단식투쟁을 하던 그가 시도했던 색다른 캠페인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하자레는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인도 국민에게 반부패 캠페인에 동참한다면 휴대폰에 문자메시지를 남겨주기를 요청했고, 국민 8만명이 문자를 보내왔다. 더 많은 동참자가 필요했던 그는 고민 끝에 방식을 바꿔 캠페인 동참의 의지가 있으면 부재 중 번호를 남겨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그 결과 그의 CSV(Comma-Separated Values) 파일에는 3500만명이 넘는 지지자의 휴대폰 번호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 당시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 공동행동 중 하나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정부로부터 반부정부패법을 제정하겠다는 '정치적 항복'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사례로 77세의 하자레를 최첨단 디지털 사회운동가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소용돌이치는 2017년에는 단순한 사례라고 볼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혁신의 핵심은 현존하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순하지만 극명한 사례라고 본다.
디지털 혁신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전유물은 아니며 전통 기업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은 스마트팩토리와 같이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영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현재 너무 큰 주제만 고민하고 있고, 단순한 아이디어와 작은 투자로 효과적일 수 있는 디지털 운영 혁신은 시도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TV나 신문에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세상의 모습에 온통 시끄럽지만, 기업 내부의 현실은 끝없이 증가하는 고객의 요구사항에 일일이 대응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여전히 제한된 데이터와 10년 된 시스템으로 공급망을 운영하고, 늘어만 가는 구매 자재와 복잡한 구매 과정을 관리하느라 허덕이는 중이다. 기존의 재고관리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글로벌 재고 비용에 머리가 아프고, 월말 재무·원가 마감 업무에 야근을 하며 글로벌 경영 가시성에 목마른 경영자는 늘 답답해한다.
쏟아지는 디지털 혁신 사례는 현실 업무에 밀려 남의 일이고 먼 미래의 일이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AI 등의 디지털 기술 요소가 다양한 형태로 '현실 업무'에서 획기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에도 익숙해진 업무를 불편하지만 참고 관행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최근 가전산업 행사인 CES에서 ICT 기업이 아닌 크루즈 여행사 카니발 코퍼레이션과 스포츠 의류업체 언더아머의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이는 기술 자체의 혁신도 중요하지만 현란한 기술을 잘 융합하고 활용해서 고객가치와 새로운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하는 등 다양한 활용이 더 파괴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파괴적 활용 아이디어와 의사결정, 그리고 실현의 주체는 곧 사람이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혁신의 핵심은 곧 사람이다. 기술을 활용해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기술을 개발한 소수의 천재나 특정 영역 기술의 전문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흔이 넘은 사회운동가도, 기업의 평범한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도, 스타트업을 꿈꾸는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도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카니발 코퍼레이션의 오션 메달리언은 크루즈 고객들이 보다 편리하고 다양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누군가가 고민한 결과이고, 시계와 목걸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창안해낸 것도 왓슨이나 알파고가 아닌 사람이다.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실현되도록 활용된 도구였을 뿐이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기술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활용된 아이디어와 아이디어를 실현한 사람에게 더 놀라고 있다. 그리고 당장 재무적 효과가 보이진 않지만, 아이디어의 가치를 이해하고 도입과 투자 의사결정을 한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 또한 디지털 혁신이다.
카니발 코퍼레이션이 알파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알파고가 "사장님, 앞으로 크루즈 비즈니스에서의 핵심은 선상에서의 고객 서비스이며 이를 위해서 오션 메달리언을 만드셔야 하고, 투자 승인은 제가 이미 했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디지털 혁신 속도가 늦은 이유는 아이디어 도출과 의사결정의 주체인 사람에게 있다. 제조기업 중 가장 혁신적인 디지털 기업이자 '124년 된 스타트업'이라 불리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CEO 제프리 이멀트는 혁신에 있어서 CEO 역할은 좋은 인재를 등용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고르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기업이 4차 산업혁명과 거창한 디지털 혁신을 얘기하고 있지만, 기업의 임원들이나 중간관리자들은 단기 투자대비수익(ROI)과 현실적인 연매출, 손익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에 갇혀 어떠한 디지털 혁신도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 한국 기업들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미래 기술 중심의 사업모델 변화도 고민해야 하지만, 현재 적용 가능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루빨리 기업 전반의 운영 모델에 대한 디지털화 전략(DSP·Digital Strategy Planing)을 수립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적용 가능한 영역부터 시도해야 한다.
또 디지털 혁신의 목적 측면에서도 매출, 수익, 비용절감 등의 단기 재무 성과에만 국한하지 말고 운영상의 가치 즉, 고객을 이롭게 하고, 직원을 이롭게 하고, 협력업체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비재무 가치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내부 혁신 아이디어들이 GE나 아마존처럼 새로운 제2의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의사결정과 창의적이고 과감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에, 디지털 혁신의 주체인 사람이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얼마 전 발생한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다시 발생했는데, 현존하는 IoT와 센싱 기술을 고려했을 때, 기술의 문제였을지, 활용의 문제였을지, 사람의 문제였을지, 우리 모두가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