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 21~42장 ◉
1. 욥은 친구들이 일반적인 진리로 욥을 정죄하자 또한 일반적인 진리로 반박합니다. 욥의 반박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욥기 21:7
- 욥기 21:34
✿ 욥의 친구들이 인생의 고난과 고통은 바로 죄 때문이라고 욥을 정죄하자, 인생 중에 자타가 공인하는 악인이 오히려 장수하고, 강한 세력을 떨치며, 잘 살고 있는 현상을 이야기 하며, 일반적인 진리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고 반박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해왔던 친구들의 말대로 라면, 세상의 모든 악인이 심판을 받아 마땅히 환란을 당하고, 고통과 고난 가운데 빠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악인이 강성하여 세력을 얻고, 잘 살고 있는 것을 설명하여 보라고 하면서, 너희의 모든 말은 다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혹시 우리가 어떤 고난당하는 사람을 볼 때 욥의 친구들처럼 정죄하고, 조롱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2. 욥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하나님을 향해 하는 말들을 보며 욥의 마음이 무엇인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욥기 30:11
- 욥기 30:19
✿ 우리가 이 세상에 여러 악을 볼 때, 그것을 사람에게 뒤집어 씌워도 실수가 되고, 하나님께 뒤집어 씌워도 실수가 됩니다.
모든 악은 악에서 나온 것입니다.
악은 악한 자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이나,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 베드로 사도나 가룟 유다도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앎으로서 덜 속는 것이지 안 속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악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서 온 것도 아니고, 마귀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욥기의 비밀입니다.
그러나 욥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악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확실하게 알면, 우리가 수많은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악은 하나님에게도 오지 않고, 사람에게도 오지 않습니다.
늘 악은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욥기가 그 점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3. 욥의 마지막 변증을 보면서 욥의 의로움에 대해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욥기 31장
✿ 욥은 절대로 처녀에게 주목하지 않기로 자신의 눈과 언약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마음과 눈과 걸음은 정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고아를 아비처럼 돌보았고, 과부의 눈에 실망을 주지 않았으며,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며, 재물을 기뻐하거나 의지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때, 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시 우리가 욥의 말을 듣고, 그 중에 우리가 배울 것은 잘 배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엘리후의 말은 어떠한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욥기 34:10~12
✿ 엘리후도 결론을 가지고 원인을 유추하고 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이라는 결론을 볼 때, 거기에 상응할 수 있는 죄악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현재를 보고 과거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모두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로 보면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큰 죄를 범한 사람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가지고 과거를 해석하는 방법은 진화론적인 방법이고, 인과응보라는 경직된 틀 안에서만 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도가 처형당했는데 그들이 죄로 인해 순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뿌리가 죄라는 생각은 모두에게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엘리후의 이야기는 옳지 않습니다.
5.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욥의 잘못들은 무엇인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욥기 38:2
- 욥기 40:8
✿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이론이나 철학이라는 것은 거의 다 무지한 말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하나님의 책망의 내용은 욥이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아는 척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수는 누구나 범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르치는 자들이 많이 범할 수 있는 실수입니다.
우리의 지식은 매우 미미한 것입니다.
지식은 방대한데 인생은 너무 짧고, 읽어도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교만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욥이 스스로 의롭다 한 것을 지적합니다.
의롭든지 의롭지 않든지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시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지만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그래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은 내게 지극히 작은 일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온전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한 말은 기분 나쁘지만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할 때 우쭐해서 실수하지 말고 조심해야 합니다.
6. 욥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첫째 엘리바스 말대로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 사람에게 징계로서 고난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범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하시려고 주시는 일련의 고난들이 있습니다.
그 고난이 질병일 수도 있고 물질적, 정신적 손실이나 명예에 대한 어떤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죄 때문에 그런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나가다가 이 사람을 보고 질문을 합니다.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이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
그런 질문은 유대인들 가슴속에 오래 내려온 질문인데 아무도 대답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본인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 죄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시며 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특별 소명을 받은 일꾼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당하는 고난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가 내 육체에 채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주를 위해서 받은 고난이 혹은 내가 권리를 다 주장하지 않는 이것이 혹 내게 상이 될지 모르겠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겪은 고난은 자기 죄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고, 그 고난 받은 만큼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영광스러운 고난이었습니다.
네 번째, 성도의 연단을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시련이라고 합니다.
목적은 강하게 하고 순수하게 하는 겁니다.
쇠를 단련하는 단조공장에 가면 쇠를 벌겋게 달구면 거기에 부스러기가 나옵니다.
평소에 나오지 않던 것들이 열을 받으면 나오고, 두들겨 패면 나옵니다.
그러면서 순수해지고 단단해집니다.
다시 차가운데 집어넣으면서 열처리해서 강하게, 더욱 강하게 연단합니다.
이처럼 순수하고 강하게 하시기 위해 시련을 주십니다.
다섯 번째, 검증으로서의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이 욥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복된 삶이나, 풍요로운 삶이나, 이런 것에 조건부에 걸려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 다 빼앗고 날아가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받은 계시와 지식이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사단의 사자를 자기 몸에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일곱 번째 사탄이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고난을 받게 합니다.
사탄이 세상 어떤 권력이나 명예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서 박해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죄와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의로울수록 세상에서 고난 받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10대 박해 시대에 받은 고난들과 종교 재판 때에 받은 고난들은 악한 세상이 성도를 괴롭히기 위해 주는 고난입니다.
여덟 번째,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천재지변으로 다가왔을 때 신불신간에 함께 당하는 기근과 질병과 전쟁과 별이 떨어지는 경우와 염병이 임하는 경우와 같은 고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홉 번째, 우리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고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런 것을 다 여러 가지 8가지 척도를 댄다 할지라도 끝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타인의 고난에 대해서 엘리바스처럼 경솔한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합니다.
열 번째, 환경적인 요인으로 말미암는 고난과 환란이 있습니다.
원인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있는 것인데, 예를 들면 환경 때문에 유전자의 변형이 일어나서 후손이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 죄도 아니고, 꼭 자기 아버지 혼자의 죄도 아닙니다.
이 세상이 복잡해지게 되면 우리 지혜로 다 헤아리지 못할 그런 고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시기도 합니다.
내가 당해보지 않은 고난은 절대로 남을 위로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인이 어려움과 고난을 당했을 때, 혹은 타인이 어려움을 당할 때, 엘리바스나 빌닷이나 소발처럼 정죄하려는 마음으로 보지 말고, 믿음이 자라고 인생이 조금 성장하고 성숙해가면서 고난을 보는 안목이 조금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나누기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기를 위해, 또 나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사 이기기를 위해, 또 한주간의 승리를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