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의술]
한국전쟁과 마취의 발달
 
숨 쉬는데 ‘스르르’…
표준 마취법,6·25전쟁 때 확립
 
1842년 미국의 롱, 첫 시도 성공
1846년 모턴,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전신 마취로 종양 제거
6·25전쟁 때부터 근육이완제 사용, 마취와 수술, 이동외과병원서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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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수술을 받기 위해 전신 마취를 경험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본인이 아닌 가족이 수술해도 수술 과정과 합병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마취 동의서에 서명한 기억을 간직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팔이나 다리에 수액 주사를 달고, 이송용 침대에 실려 수술실 입구에 다다르면 간호사가 환자의 이름, 수술 부위, 금식 여부 등을 확인하고 보호자는 밖으로 내보내고 환자만 혼자 남게 된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실로 옮겨 수술대에 누우면 다시 한 번 환자를 확인하고 가슴에 심전도 기계를 부착한다. 마취의가 마스크를 코와 입에 씌우고 “숨을 크게 쉬세요” 하는 순간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눈 떠보세요” 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수술이 끝난 상태다. 회복실로 옮겨진 후에 혈압과 맥박 등의 활력 징후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의식이 회복돼 안전한 상태가 되면 비로소 병실로 옮기게 된다.
전신 마취는 마취제를 투여해 중추신경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의식이나 전신적인 지각이 없어지도록 하는 마취 방법이다.
마취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842년 미국의 롱(Crawford Williamson Long, 1815~1878)이 처음으로 에테르를 이용해 환자를 마취한 상태에서 수술에 성공했지만,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다.

액체 클로로포름 흡입마취. |
1846년 모턴(William Morton, 1819~1868)이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신 마취로 종양 제거 수술을 성공시켜 명성을 얻고 3년 뒤인 1849년 자신의 마취 결과를 발표했다.
1844년에는 아산화질소를 마신 상태에서 자신의 이를 뽑은 치과의사 웰스(Horace Wells, 1815~1848)가 공개 시연에 실패했다. 코나 입을 통해 마취제를 흡입시켜 전신을 마취하는 흡입 마취제는 마취 유도와 회복이 빠르고, 약제 자체가 안정적이며, 여러 장기에 대한 독성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됐다.
그중에서도 6·25전쟁 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 마취법이 확립됐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즉, 흡입 마취를 시작하기 전에 소량의 진정제를 투여하는 방법을 쓰기 시작하고, 이전까지 사용되던 클로로포름과 에테르는 심장의 박출량을 감소시키므로 더이상 사용하지 않고 대신 아산화질소가 널리 쓰게 된 것이 6·25전쟁 때부터였다.
작용 시간이 짧은 수면제인 티오펜탈(Thiopental)을 마취를 시작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숨을 크게 쉬세요” 하면 스르르 잠이 들게 하는 약이다. 그러나 이 약은 호흡 억제 작용이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했다. 환자가 잠이 들면 기관 내 삽관(endotracheal intubation)을 실시해 흡입 마취제를 투여하는데, 삽관을 쉽게 하려고 튜보큐라린(tubocurarine) 혹은 석시닐콜린(succinylcholine) 등의 근육 이완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6·25전쟁 때부터다. 목의 근육이 이완돼야 후두경으로 들여다볼 때 기도가 잘 보여서 삽관이 쉽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기도를 유지하기 위해 급하게 기도 삽관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근육 이완제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러한 경우는 기도의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아 애를 먹게 된다. 그래서 이를 통상적인 기도 삽관을 말하는 ‘인튜베이션(intubation)’ 대신 ‘억지로’란 뜻의 접두사 ‘생-’을 붙여 비공식적으로 ‘생튜베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경우 환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6·25전쟁 때 마취와 수술은 대부분이 이동외과병원(MASH: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에서 시행됐다.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매시’에서 볼 수 있는 그곳에서 의술이 발달했다는 사실은 새삼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황건 인하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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