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부터는 도예시간을 화 목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주간보호센터 평일프로그램 중 금요일은 야외활동이 대부분이라 금요일마다 시간맞춰 오라는 재촉에 마음이 바빠져서 안되겠습니다. 이번에는 영화를 보러가는 계획이라 11시까지 오라고 하는데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서 도예끝나고 그냥 놀기로 했습니다.
요즘 휴대폰에 많이 집착하더니 준이의 야외에서의 행동이 바로 퇴행합니다. 밖에 나가면 독립적으로 걷지 못하고 사람에 의존하는 행동이 크게 늘어납니다. 3D가 많이 약하니 직진 위주라서 길찾기에 불리하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니까 길찾기에 의존성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뿌리쳐야 할 정도로 밀착해서 붙으니 태균이 옷이 벗겨질 정도입니다. 다시 휴대폰을 제한해야 하나 또 고민...
태균이 도예실력이 나날이 나아진다고 선생님이 언급해줍니다. 완성된 작품이 하나라도 나오지 않으면 다소 짜증모드로 가는 태균이를 파악하고나니 선생님이 딱 1시간에 맞춰 무언가 완성품이 하나라도 나오도록 배려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간과 완성강박이 있는 태균이를 잘 배려해주니 그게 더 고맙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준이가 훨씬 낫다싶은 평가를 했던 선생님도 횟수가 거듭해가니 힘주기가 어렵고 자주 수동모드가 되어 자주 도와주어야 하는 점을 지적합니다. 선생님은 준이가 태균이 친동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준이가 스스로 접시를 척척 만들어 낼 때까지 몸에 배도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도예시작하자 바로 걸려온 전화. 예전 직장선배였던 그 분이 기다렸다는 듯 빨리 오라고 재촉 ㅎㅎ! 제주도에서 제대로 대화할 사람없이 살아가니 얼마나 수다가 그리웠을까. 제주도에서 표선이라는 변방에 있는 민속촌 먹거리타운에서 3개의 점을 운영하기까지 스토리를 들으니 최고의 신문사기자에다 계열사 사장 경력의 사나이가 떡볶이 요리사가 된 과정이 다 이해됩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늘 묘하고도 예측불허적 측면이 다분합니다. 저 역시 제주도의 선택부터 체류연장의 결심까지 과정을 보면 세월이 주는 묘하고도 예측불허적 측면의 연속입니다. 이런 측면들은 삶의 재미이기도, 역동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때로 불안과 공포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 선배나 저같은 스타일은 뭐든 받아들이고 적극적이라 완벽하게 새롭다는 것조차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자 봇물터지듯 쏟아지는 그의 수다를 한동안 경청해 주어야 하는 할 일이 하나더 추가되었습니다. 아이들 도예수업 동안 신나게 글쓰던 일은 당분간 휴업에 들어가고, 흥미진진한 과거 유신정권부터 최근의 역사현장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한 지식인의 밖으로 쏟아내고 싶은 스토리들을 새로 추가해야 합니다.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은데 밤에 태균아빠가 간만에 제주도에 오니 마음이 너무 바쁩니다. 늘 흘러가던 일상에 돌 하나가 던져지면 괜히 마음이 바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작은 돌이던 큰 돌이던 일상에 던져지는 돌의 파장은 스트레스가 맞습니다.
잔소리와 참견하고픈 성향이 강한지라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 빨래가 쌓이면 빨리 세탁기에 돌려라, 건조기에서 빨래꺼내다가 그냥 두면 빨리 정리해서 제자리에 두어라... 이런 잔소리(?)아닌 참견까지 수시로 해대는 태균이를 보면 아 이런 것도 다 유전인가 싶습니다.
늘 엄마랑 살아가는데도 일상적 정리에는 꽤 무심한 엄마를 닮지 않고, 아빠성향을 드러내는 태균이를 보면서 무서운 유전자의 힘을 봅니다. 샤워 후에 샴푸, 면도기 등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바로 지적하는 그 무서움 ㅎㅎ
연휴 전날밤이라 비행기가 연착되어 도착도 늦어지고 무려 공항에서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집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하는 준이를 놔두고 왔으니 저녁때문에 마음이 바쁘기도 합니다. 밤 9시가 넘어 겨우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고 준이몫까지 챙겨 집에 도착하니 밤 열시! 모두 기진맥진, 다 쓰러질 판인데 거실에 앉아있던 태균아빠가 주섬주섬 꺼내는 책 한권, '민사집행법'
퇴직이 가까와졌으니 법무사 자격증이라도 따겠다는데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공인중개사 따놓겠다고 2-3년 전에 밭갈면서 온라인강의 한 두달 듣더니 바로 합격! 물론 이건 써먹지도 않겠지만 왠지 법무사 자격증도 이렇게 바로 따올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천재는 천재입니다. 천재는 감각의 불균형이니 그에 따른 아스퍼거적 감정성향은 일상생활에서는 다소 힘든 점이 있기에 늘 거리유지 하기가 우리의 가족의 큰 비결입니다. 압축적인 며칠 간의 동행은 어떠할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늙어가면서도 아직 기가 꼿꼿한 태균이의 원조유전자이자 한때 존경했던 대학선배를 잘 보살펴 줄 일입니다.
낮시간동안 바다가 훤히 보이는 빈 카페에서 주어진 노래방타임을 태균이 어찌나 즐겁게 노는지, 노래방기계 조작은 완전 프로급입니다. 이런 유흥성향은 저의 유전자일까요? ㅎㅎ
첫댓글 아 노래방 타임을 자주 가져야겠습니다.
태균씨 넘 좋아하네요.
태균아빠님 대단하십니다.
공부가 즐거운 분이시네요.
존경하던 대학선배께 가졌던 첫마음이 화목한 가정으로 이끄네요.
준이같은 케이스엔 적절한 치료가 없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