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암 가는 길/靑石 전성훈
우이암에 오르는 길은 도봉산을 찾는 사람마다 거의 비슷할 것 같다. 북한산관리소나 무수골에서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오르거나, 방학능선을 거쳐 원통사를 지나 우이암으로 가는 게 보통이다. 평소에는 근심과 걱정이 없다는 뜻을 간직한 마을, 무수골에서 출발하여 능선을 올라가 우이암을 거쳐서 원통사로 내려온다. 이번에는 특별한 이유나 사연은 없지만, 그냥 반대 코스로 오른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방학동에서 내려 간송(澗松) 전형필선생 옛집으로 향한다. 미세 먼지가 낀 하늘은 뿌옇고 흐리다. 뿌연 하늘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기분이 나아진다. 간송선생 부부는 봄이 깊어가는 계절에 양지바른 언덕 위에 다정히 누워 계신다. 산소를 바라보면서 간송 선생님의 크나큰 업적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산소를 벗어나 사람이 없는 산길을 혼자서 걸으며 장수배드민턴장으로 올라가니, 아침부터 부지런히 텃밭에서 고랑을 일구고 모종을 심는 사람이 있다. 텃밭을 가꾸는 그분에게 충만한 결실이 맺히기를 기원한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산은 온통 연한 초록색 연둣빛이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욕심부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한다. 산길 이곳저곳에 드문드문 철쭉이 피었지만,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외롭게 홀로 꽃을 피운 탓에 보기에도 애처롭고 가여운 마음이 든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는 나를 제외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 없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는데 웬일인지 대부분 혼자이다. 어쩌다가 둘이서 내려오는 사람도 보이지만 시간이 이른 탓에 여럿이서 함께 걷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40여 분을 천천히 걸어 올라 우이동계곡과 방학능선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서 쉼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쉰다. 이제부터 원통사까지는 끝없는 계단을 오르고 오르는 유격훈련 코스이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계단이 없었던 오래전 그 시절에는 가파른 언덕을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쉬엄쉬엄 걸으며 원통사에 도착하니 여성 두 분이 돌계단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과일을 먹고 있다. 오후부터 내린다던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그냥 올라가기로 마음먹는다. 배낭에 비상용 삼단우산을 넣어 두었기에 빗방울이 굵어지면 꺼내어 쓰면 될 것 같다. 원통사를 지나 우이암으로 올라가는 깔딱고개 계단에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오른다. 계단을 다 올라가 커다란 바위 앞에서 방향을 바꾼다. 우이암으로 올라가는 뒤쪽 비탈길 대신에 비밀의 정원 방향으로 가는 비탈길을 오르기로 한다. 제법 빗줄기가 굵어진다.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어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산을 오르는데 생각만큼 걷기가 쉽지 않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핸드폰과 지갑이 젖지 않도록 배낭 깊숙이 넣고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걷는다. 도봉산에 오를 때마다 나 홀로 편하게 쉬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비밀의 정원’이다. 펑퍼짐한 널따란 바위에 앉아서 바람과 구름을 친구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발아래 저 멀리 온갖 욕망과 욕심이 불덩이처럼 꿈틀거리는 세상을 쳐다볼 수 있는 그야말로 명당자리다. 오늘은 비가 내리기에 물을 먹은 바위가 미끄럽고 위험하여 비밀의 정원에는 올라가지 않는다. 비가 많이 뿌리기 전에 하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쉬지 않고 곧바로 무수골 방향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10시 반이 넘어서자 제법 산을 찾는 사람이 많다. 혼자가 아니라 대부분 두세 사람 혹은 여러 명이 무리를 지어 올라온다. 우산을 쓰거나 우의를 입고 걷는 사람, 모자를 쓴 채 걷는 사람 등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힘든 표정이지만, 펄펄 끓어 오르는 정열에 어찌할 줄 모르는 젊은이는 들뜬 표정으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며 부지런히 산을 오른다. 북한산 둘레길 중 도봉옛길 구간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 잠시 앉는다. 물로 목을 축이고 초콜릿을 먹고, 손주들이 할아버지 잡수시라고 준 막대사탕을 입에 문다. 오늘은 산에 오를 때에도, 내려갈 때도 무릎에 전혀 통증을 느끼지 않아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몸의 상태가 좋은 편이다. 그 덕분에 주변의 불암산, 북한산, 도봉산을 오를 수 있었고, 이제 수락산을 찾아가면 올해 봄나들이 목표는 다 이루는 것이다. 몸 상태에 맞추어서 둘레길을 걷거나 산을 오르는 것이, 육신과 마음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자연이 베푸는 선물인 아름다운 계절의 모습을 마음껏 눈에 넣고, 가슴속 추억 창고에 하나 가득히 차곡차곡 새기고 싶다.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