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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초막절이 임박한 때 일어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초막절은 현대 달력으로 9월 말에서 10월 중순 사이에 해당되는 절기이다. 7일간 진행된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의 모든 농사(올리브, 포도, 무화과 등)를 마치고 창고에 저장하는 가을 추수기였다.
그래서 '수장절(곡식을 저장하는 명절)'이라고도 불렸다.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기에, 유대의 3대 명절(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중 가장 화려하고 즐거운 축제였다.
초막절 기간 중 예루살렘에서는 큰 축제가 벌어진다.
광야 40년 중 반석을 깨뜨려 물을 얻은 장면을 재현하는 물의 축제와 불기둥을 상징하는 거대한 불꽃 축제가 열렸다.
여인의 뜰 중앙에 약 23미터 높이의 대형 황금 촛대 4개가 세워졌다.
제사장들이 입다 버린 낡은 옷을 짜서 심지를 만들고, 촛대마다 거대한 기름통을 달아 불을 밝혔다.
이 4개의 횃불이 어찌나 밝았던지, 당시 기록에 따르면 "초막절 밤에는 예루살렘 시내의 모든 마당이 성전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졌다"라고 보도한다.
그래서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절기였다.
예수님의 친동생들도 시골인 갈릴리를 떠나 큰 축제가 열리는 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이왕이면 갈릴리에서 사역하는 형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동행하고자,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요청을 했다,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서 당신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당당히 보여주라”고 요구했다(3-4)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큰 무대에 가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를 요청했던 것이다.
여기서 육신의 형제들이란? 예수님의 친동생들을 가리킨다.
성경에 소개된 예수님의 동생들은 이름이 소개된 4명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않은 여동생들 정도 된다(마태 13장 55절, 마가 6장 3절)
야고보? 예수님의 첫째 남동생, 나중에 예루살렘교회 기둥이 되는 인물이다.
요셉 (또는 요새), 시몬, 유다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서를 쓴 예수님의 동생 유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이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생들이 말하는 유대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가?
당시 이스라엘 땅은 크게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쪽 지방을 통상적으로 갈릴리라고 불렀다.
예수님이 주로 활동하시던 시골 동네이다.
어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예루살렘의 주류 세력들에게 무시당하던 소외된 지역이었다.
반면에 남쪽 지방을 유대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이다.
유대 지방의 핵심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성전이 있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등 권력자들이 모여 있는 '중앙 무대'였다.
그러니깐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지방에서 더 이상 활동하지 말고 수도권으로 가서 사역을 이어가길 바랐던 것이다.
동생들이 초막절을 앞두고 이렇게 요구했던 이유?
초막절은 유대의 3대 명절 중 하나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수십만 명씩 모여드는 시기였다.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물의 축제 빛의 축제가 7일간 이어졌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대거 모이는 절기였다.
동생들이 보기에 초막절은 예수님이 다시 한 번더 대중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적절한 때처럼 보였던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 직후, 수만 명의 대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열광했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먹으라"며 영적인 설교를 선포하시자, 육신적인 떡을 원했던 대중들은 크게 실망하여 예수를 떠나갔다고 말씀드렸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지지율과 인기가 급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형의 사역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봐 조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형님, 여기서 인기가 떨어졌으니 빨리 예루살렘으로 가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합니다!"라며 마케팅적 기획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이 제안을 거절했다(6-9) "내 때"(6,8)
'아직 나의 때는 오직 안 왔다'(공동번역)
이 때의 '때'란?
헬) '카이로스'?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결정적인 타이밍'을 뜻하는 단어이다.
하나님 기준의 시간을 말한다.
즉 예수님은 세상의 트렌드나 인간이 요구하는 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정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시겠다고 일종의 선언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직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들임에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동생들이 착용하고 있던 시계와 예수님이 착용하고 있었던 시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세상의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고,
반면에 예수님은 하늘의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한국시계를 착용하고 뉴욕으로 여행을 갔다고 하자.
뉴욕은 대낮인데 자신의 시계는 새벽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계는 고장이 난 것인가? 아니다.
기준이 되는 시간이 다르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시계는 대한민국 기준의 태양 위치에 맞춰져 있고, 뉴욕은 지구 반대편에서 미국기준의 태양 위치에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시차가 발생한다.
이렇게 기준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시차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다.
예수님과 동생들 모두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각자가 착용했던 시계는 기준이 되는 시간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이 기준이 되는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고, 동생들은 세상의 시간이 기준이 되는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때'를 달리 해석한 것이다.
동생들 시계의 기준점은? 세상의 성공, 사람들의 인정, 눈앞의 이익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시계였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스스로를 나타내라"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시계의 기준점은?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며 움직이지 않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우리 생활 속에 적용해 보자.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늘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간다.
유치원부터 대학 입시까지,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 가도'의 속도에 맞춰 자녀를 학원 뺑뺑이로 내모는 부모의 모습.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며 남들이 가는 맛집, 좋은 차, 화려한 여행의 속도를 나도 따라잡아야만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삶.
세상이 규정하는 '몇 살 때는 이 정도 집에는 살아야지'라는 사회적 속도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삶.
이렇게 우리 모두는 남보다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도 조급함 때문에 가끔 자신의 시계를 기준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있다.
'내 시계'를 들이밀며 "하나님, 이때입니다! 지금 응답하셔야 합니다!"라고 강요한다.
'이번에 진급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교회가 부흥해야 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불신앙으로 해석하신다(5)
왜? 그 기저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 즉 하나님의 시간을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형제들의 재촉에 흔들리지 않고 거절하신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예수님의 시계는 세상의 유행이나 사람들의 환호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의 시간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는 '진짜 때'는 단순히 명절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때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때는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만 하는 '대속의 때'를 가리킨다.
항상 언제나 예수님의 시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상의 시계는 자신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때를 가리키지만, 예수님의 시계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죽음의 타이밍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형제들이 다 올라간 후, 나중에 예수님은 올라가셨다.
그리고'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올라가신다(10).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시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의 시계를 풀어놓고, 하늘의 시계를 착용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손목에 찬 조급한 '세상의 시계'를 풀어놓아야 한다.
내 계획, 내 타이밍, 내 성공의 스케줄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했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행복한 시간이고 설레는 시간이다.
예수님도 그랬을 것이다.
비록 갈릴리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던 그 시간은 바로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가장 거룩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시계를 착용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시계를 착용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해외에 나가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현지 기지국의 신호를 받아 그 나라 시간으로 자동 설정(Sync)이 된다. 이것을 '동기화'라고 부른다.
성도란? 육의 나라를 출발하여 영의 나라 공항에 도착한 순례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시계는 하나님의 주파수에 동기화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이라는 기지국으로부터 하나님의 주파수를 받아 우리 인생의 전 영역이 동기화되어야 한다.
육의 주파수에 맞추어 있었던 시계를 풀어버리고 영의 주파수에 맞추어진 시계를 착용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은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삶이 조급하고 날카롭고 불안한가요?
여유가 없고 늘 바쁜가요?
세상의 기지국으로부터 주파수를 받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은 요한복음 7장에서 세상의 시계를 차고 '지금 당장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라고 다그치는 동생들의 소리를 과감히 끊어내셨다.
그리고 오직 하늘 아버님의 손끝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가셨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제부터 주변 사람들의 속도에 눈을 떼셔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시계를 풀어놓아라.
대신에 하나님의 시계를 바라보아라.
우리 인생의 완벽한 지휘자이신 하나님의 손끝을 바라보십시오.
남들보다 조금 늦어 보여도, 지금 멈춰 선 것 같아도, 우리 인생의 마스터 클락이신 하나님의 타이밍에 나를 맞출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명연주로 완성해 주실 것이다.
에수님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 위해 서두르지 않으셨다.
우리도 주변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박수받으려고 세상의 시간에 맞추어 살려하지 마라.
인생의 속도를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속도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의 실패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시계를 하나님의 주파수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 시계를 세상이라는 기준에 맞추지 마시고 우리 시계를 하늘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