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54]
나의 친한 친구 중에 N이라는 친구가 밀라노에서 일시 귀국했다. 그는 대우실업의 밀라노 지사장으로 있다가 본사 출장으로 잠시 서울을 방문한 것이다. 그와 나는 N2라는 친구와 어울려 1차 저녁을 먹은 후, 2차로 위스키 전문 바에서 스카치위스키를 거나하게 마셨다. 이어 3차로 리버사이드호텔 나이트클럽으로 갔다. N2는 피곤하다고 일찍 집에 가고 밀라노 N과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손님으로 온 여자 두 명과 함께 춤을 추었다. 우리는 여자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술을 먹다가 나이트클럽이 끝난 후 방배동 술집 골목에 있는 포장마차로 갔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 안주와 함께 소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여자들이 먼저 일어섰다. 그들은 마포 쪽에 산다고 하였다. 여자들은 먼저 택시를 잡았는데 내가 여의도에 산다는 것을 듣고 나에게 같이 타고 가자고 권유하였다. 나는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그들을 그냥 보내 버렸다.
그녀들이 가고 난 후에 N은 근처에 서 있는 행인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키가 조그마한 상대방이 N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시비를 거는 상대방을 꾸짖었는데. 그 순간 나의 어깨를 강한 힘으로 누가 뒤에서 잡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100Kg이 넘는) 마치 야차(夜叉)같은 남자가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떡 버티고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욕설을 퍼붓더니 나의 멱살을 잡았다. 나도 기가 꺾일세라 같이 멱살을 잡고 대항했으나 그자의 힘이 나를 앞섰다. 나는 N의 만류로 그와 떨어졌으나 그자가 다시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그자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공사판의 무거운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자에게 접근하면 돌을 던지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그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나를 향하여 접근했다. 나는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그에게 위협감을 느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돌을 그의 얼굴을 향하여 던지고 말았다. 나는 어린 한 때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골목에서 야구공을 던지고 받는 놀이를 좋아 하였다. 그 때문인지 군에서도 연대 대표로 나가 수류탄 원거리 투척과 정밀투척(精密投擲)을 성공하는 등 던지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러한 전력(前歷)이 있는 나였기에 상대방에게 돌을 던지자 정확하게 표적에 명중했다. “뻑” 소리가 주위에 크게 들릴 정도로 급소를 피해 눈 밑 광대뼈에 세차게 명중했다.
그러자 그의 기세가 많이 꺾였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많이 흘러 내렸다. 그러나 피가 흐르는 데도 그는 동료와 함께 N을 인질로 삼기 위해 택시를 불러 N을 태우려고 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노력은 가히 결사적이었다. 그들은 N만 데려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계속 그들을 몰아붙이며 그사이를 틈타 친구와 도망을 하였다면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그들 폭력배보다 양심이 고운 인간인지라 그러지를 못했다. 나는 N을 그들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해보았지만, 죽을힘을 다해서 덤비는 그들을 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결국 N을 택시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집에 와서 한두 시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파출소에서 온 전화였고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여의도 집에서 택시를 타고 방배동에 있는 파출소에 갔다. 그들은 그동안 N을 인질로 데리고 병원에 가서 찢어진 상처 부위를 응급수술로 꿰매고 나서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했다. 파출소에서는 그들의 선배라고 하는 자가 연락을 받고 지원 차 나와 있었다. 경찰에서는 쌍방의 합의를 유도하였다. 나는 상대방이 먼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왔던 점을 들어 합의금을 낮추려고 하였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는 월척이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과대한 금액을 요구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폭력전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술집 골목으로 유명한 방배동에서 취객을 상대로 시비를 건 다음 무력으로 금품을 뜯어내는 상습적인 전문 폭력 조직 같았다. 취객에게 먼저 시비를 거는 바람잡이 한 명, 폭력 해결사 한 명, 합의금 해결사 한 명인 3인조 취객 갈취 조직이었다. 어쨌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자 파출소에서는 관할 본서로 사건을 이송했다. 파출소와는 달리 만약 본서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어 폭력행위 처벌법으로 구속이 될 수 있어서 상황이 긴박해 졌다.
우리는 집으로 먼저 돌아간 N2에게 연락해 합의에 필요한 돈을 급히 가져오도록 했다. 그때는 1988년이었고 XXX만원으로 최종 합의를 보게 되었다. 합의를 보고 나서 그자는 담당 형사에게 무슨 약점을 잡혔는지 연신 비굴하게 굽실거렸다. 아마 본건은 상습취객 상대 갈취전과자가 일으킨 고의성이 있는 사건이라고 판단한 담당 형사가 합의금 중 일부를 상납하도록 그의 약점을 잡고 협박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사건은 합의되었지만, 벌금에 대한 경고와 함께 벌금의 무마 조로 XX만원을 요구하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사건 현장에서 닳고 닳은 전형적인 강력계 형사의 모습은 마치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았다.
하나의 형사사건은 당시 사건의 종류에 따라 형사의 수입금액이 대충 파악된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건이 해결된 후 담당 형사가 인사를 해야 하는 부류가 있다. 가령 사건 당사자들을 태어온 순찰차 운전기사, 사건을 본서로 넘긴 파출소 순경, 또한 상관인 형사반장 등에게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 당시 사건 현장의 구조적인 먹이사슬인 것 같았다. 따라서 형사는 최대한도로 돈을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메커니즘을 외면하고 담당 형사가 혼자 독식한다면, 그는 조직에서 금방 따돌리는 존재가 될 것이다. 또한, 조직 내에서 부정직한 것과 담을 쌓고 혼자 고고한 채 살아가는 것도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좋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하늘의 복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찰관이 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때로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 박봉을 털어서 봉사하는 훌륭한 경찰관의 미담도 있다. 또한, 그 때와 비교해서 요즈음은 경찰의 복무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경찰 후배에 의하면 요즈음은 많이 투명해져서 그런 일이 발생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사건이 끝난 후 경찰서에서의 겪은 느낌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때까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담당 형사는 “흉기를 사용한 폭력은 살인미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내가 돌을 던진 이 사건이 중대 범죄로 간주하여, 합의 없이 검찰로 송치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다면 아마 폭력 전과라는 상상할 수 없는 불명예 기록이 나의 신상정보에 첨부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담당 형사가 검찰에 기소하지 않고, 합의를 유도해 준 것이 나로서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사악한 적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방어하는 방법에 관하여 한번 생각해 보았다. 먼저 인체의 약한 부분인 적의 눈이나 귀를 가격하는 것도 싸움을 조기에 종결지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실수하면 상대방이 실명하거나 고막이 터져 청각장애인이 될 수도 있어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위험한 방법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급소 중 두 곳만 노리면 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쓰면 아무리 상대가 세계적인 장사라 하더라도 싸움은 간단하게 끝난다. 그것은 목 오른쪽의 경동맥과 남자의 고환을 공격하는 것이다. 특히 고환은 발로 차기도 수월하다. 그러나 이 급소는 가격하는 정도에 따라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기에 아주 위험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위험을 피하고자, 남자로 태어나 변변히 대항도 못 하고 상대방에게 두들겨 맞는 것도 남들 보기에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최고의 묘수가 있다. 그것은 고래로 내려오는 36가지 병법 중 마지막 수인 줄행랑인 것이다. 그 당시 상황에서도 삼십육계인 줄행랑을 쳤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어쨌든 이 같은 낭패를 초래한 것은 나의 자업자득이다.
첫댓글 ㅎㅎ 36계 줄행랑이 최고 상수로군요.
에구, 다저스님 필력이 좋으셔서 그날의 일을 긴박감 넘치게 써주시니 손에 땀을 쥐고 읽었습니다.
다저스님 상남자시네요. ^^
합의금 선에서 잘 해결되어 다행이네요.
항아리공주님
제가 상남자라면 달님은 상여자입니다
오늘도 첫번째 댓글 올려 주셔 저의 사기를
올려 주시네요
감사와 감사속에 맺어진 전우야~
갑자기 군가 ^진짜 사나이^가 나오네요~ㅋ
ㅎㅎ 내가 진짜 팝힐방에 와서 공주도 되고, 넘 재밌어요. ㅋㅋ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저도 군가 한 곡 부르고 갑니당ㅎㅎ
ㅎ ㅎ 군가도 많이 아시네요~~
애고..ㅠ
폭력배랑 싸움까지 경험하셨네요..
무서운 일,,, 겪어서는 안될 일까지 겪으시며 살아오신 다저스님께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는 꽃길만 걸으세요. .^^
이제는 저도 70이 넘은 나이라 모든 상황을 힘으로써가 아니라 지혜롭게 대처해야죠ㅡ88년도에 일어난 사건은 젊은 피가 끊는 나이였던 것 같아요
샤론님의 말씀대로 앞으로는 평온하게 살아갈려고 합니다ㅡ
글을 재미로 읽지만
그런 상황이면 당황스럽겠네요
어쨌든 합의금이 준비되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더욱 난감하셨겠네요
비 양심적인 공무원도 있었겠지만
88올림픽 해
그때 저는 착한 공무원이었습니다 ~~
바다님 그당시 공직자이셨네요. 바다님의 태도나 성격으로 볼 때 아주 훌륭하고 모범적인 공무원이셨던 것 같습니다ㅡ
시골바다님이 ㅊㅎ공무원이라는것에
관해서는 추호도 의심은 없습니다~
다만 10여년전 보다 남성적 매력과 노래실력이 훨 나아지신것이 제가 그당시에 못느낀것인지
아니면 그이후로 노래와 멋스러움을 갈고 닦으신 것인지의 (판단)을 혼자 하기가 어려운데 어느분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리버사이드 나이트,
방배동 골목,
참 추억 돋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꽤 낯 익고 정든 곳 중 하나죠,,
88년 때도 한국의 공직사회가 그랬군요~~
ㅎㅎ
에피소드 부자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