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손 어디에 놓지?", 사라지는 기어봉
퇴화기관은 구조의 단순화 또는 소형화로 기능이 쇠퇴, 소실된 기관을 뜻한다.
오늘날 자동차의 대표적인 퇴화기관 중 하나가 시프트레버다.
굳이 조작이 필요 없어도 손을 올려놓고 마음에 안정을 찾았던 시프트레버가 사라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칼럼시프트
“널찍한 공간 확보에 효과적”
스티어링휠 칼럼에 붙은 시프트레버는 1939년 처음 등장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앞자리에 3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벤치시트가 유행하던 시절 칼럼 시프트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묘수였다.
스티어링휠 뒤에서 H 모양을 그려가며 3단 수동변속기를 조작했다.
시간이 흘러 안전상의 문제로 1열 벤치시트가 사라지고,
수동변속기 단수가 늘어나면서 시프트 레버는 다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내려왔다.
4단 이상 수동변속기가 스티어링휠 뒤에 있으면 조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칼럼 시프트는 자동변속기가 보편화되고 난 뒤 실내 공간 활용이 중요한 MPV 또는 트럭의 전유물로 남았다.
그런데 전자식 자동변속기가 등장하고 칼럼 시프트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화제를 모은 주인공은 2001년 등장한 BMW의 4세대 7시리즈(E65).
시프트레버와 변속기가 기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BMW는
시프트레버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여 스티어링휠 칼럼에 달았다.
센터콘솔에 확보한 넓은 공간에는 오늘날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i드라이브 다이얼을 선보였다.
과연 기술을 선도하는 BMW의 플래그십다운 면모였다.
현재 칼럼 시프트를 가장 애용하는 제조사는 메르세데스-벤츠다.
2005년 M-클래스와 S-클래스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막내인 A-클래스까지 칼럼 시프트를 이어받았다.
플로어체인지기어시프트
“기존 말뚝 모양 시프트레버를 작고 예쁘게”
기어를 바꾸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이다.
기존에는 센터콘솔에 자리한 커다란 막대를 앞뒤로 움직여 기어를 바꿨다.
지금은 다르다. 조작 방식은 물론 모양도 한결 세련됐다.
큼직한 말뚝 시프트레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작고 귀여운 모양으로 돌아왔다. 포르쉐 911이 대표적인 예다.
폭스바겐의 최신 골프도 911의 뒤를 쫓았고, BMW는 레버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걸리적거리는 요소 없이 깔끔한 센터콘솔 디자인을 완성했다.
조작 방식은 간단하고 직관적이다. 엄지로 밀어 올리면 후진, 검지로 당겨 내리면 전진 기어를 넣을 수 있다.
볼보는 아직 뭉툭한 모양 시프트레버를 사용한다.
대신 크리스털로 멋을 냈다. 생김새도, 부드러운 조작감도 만족스럽다.
로터리시프트다이얼
“틀을 깬 혁신적인 아이디어”
전자 신호로 변속기를 다스리는 ‘시프트 바이 와이어’는 프리미엄 브랜드 사이에서 최신 고급 기술로 발돋움했다.
곧이어 전통적인 조작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실내를 화려하게 물들이는 디자인 요소로도 주목받았다.
재규어는 200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S-타입의 뒤를 잇는 모델 XF를 선보이며 새로운 조작 방식,
빼어난 디자인 갖춘 시프트 레버 역사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름은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
시동 버튼을 누르면 센터콘솔에서 기어를 바꿀 수 있는 동그란 다이얼이 솟아오르는데,
옆에 탄 친구에게 자랑하기 딱 좋다(물론 오너들 사이에선 시동을 걸어도 올라오지 않아 체면을 구겼다는 이야기도 자주 오갔다).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는 생김새도 멋지지만 사용법 또한 획기적이었다.
기존에는 시프트레버를 앞뒤로 밀고 당기며 기어를 바꿨다.
이와 달리 재규어는 다이얼을 좌우로 돌리는 조작 방식을 새롭게 제안했다.
XF 등장 이후 여러 자동차 제조사가 로터리 시프트 다이얼을 벤치마킹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제네시스 GV60이 대표적이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동그란 크리스털 장식이 180도 회전하며 시프트 다이얼로 변신한다.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와 조작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제네시스는 P 버튼을 따로 마련해 운전자가 실수할 여지를 줄였다.
푸시버튼기어시프트
“모양은 가장 직관적인데, 막상 써보면 가장 불편해”
2010년대에 들어서며 대중차 제조사까지 시프트 바이 와이어 기술을 널리 쓰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버튼을 눌러 기어를 바꾸는 방식이 속속 등장했다.
국산차에 푸시 버튼 시프트가 등장한 때는 2016년.
현대차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이 방식을 처음 소개하고, 팰리세이드, 그랜저, 쏘나타, 투싼 등
내연기관 모델에 푸시 버튼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조작 편의성, 직관성이 떨어진다는 혹평이 이어졌다.
등장 초기에는 운전자의 미숙한 조작으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현대차는 요즘 푸시 버튼 기어 시프트를 포기한 듯 보인다.
사실 버튼을 이용해 기어를 바꾸는 아이디어는 1914년 처음 등장했다.
수동변속기를 버튼으로 조작했는데 완성도가 떨어져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이후 푸시 버튼 시프트는 1956년 미국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스티어링휠 중앙에 자리한 기계식 버튼을 누르면 신호를 받은 전기모터가 유압 밸브를 돌려 자동변속기의 기어를 바꿔 물었다.
크라이슬러는 ‘파워 스타일’, 닷지는 ‘매직 터치’라고 불렀다. 간편한 조작과 깔끔한 인테리어 구성 덕분에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주행 중 버튼을 잘못 누르는 경우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이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푸시 버튼 기어 시프트는 예나 지금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듯하다.
현대차‘종특’ 전자식변속칼럼
“스티어링휠 칼럼에 붙은 로터리 시프트?”
현대차는 푸시 버튼 기어 시프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개발했다.
이름은 전자식 변속 칼럼. 이름만 보면 칼럼 시프트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치만 스티어링휠 칼럼에 붙어있을 뿐 조작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로터리 시프트 다이얼처럼 레버를 돌려서 기어를 바꾼다.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전진, 반대로 하면 후진이다.
P는 막대 끝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된다.
적응하고 나면 괜찮지만 처음 조작할 땐 전진과 후진이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러면 올바른 방향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데, 변속기 조작부가 스티어링휠 뒤에 숨어 있어서 확인하기 쉽지 않다.
초보 운전자에겐 차라리 폭스바겐 ID.4(현대차의 전자식 변속 칼럼과 조작법이 같다)처럼
시프트레버가 운전자 눈높이에 있는 편이 나은 듯하다.
테슬라터치스크린시프터
“밀어서 잠금 해제? 아니 밀어서 기어 체인지!”
테슬라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칼럼 시프트를 빌려와 사용했다.
초기 모델 S는 조작 방식부터 부품까지 그대로 가져와 썼다.
하지만 모두 옛날얘기다.
이제 테슬라 실내에선 시프트레버를 찾아볼 수 없다.
센터 디스플레이 화면 터치를 통해 기어를 바꾸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니터가 일찌감치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니터 왼쪽 가장자리에 있는 자동차 모양 아이콘을 앞으로 밀면 전진, 뒤로 당기면 후진 기어를 잡아 문다.
버튼을 눌러 변속할 수도 있다.
스티어링휠에 있는 양쪽 스크롤 버튼을 동시에 짧게 눌러 활성화할 수 있다.
그러면 센터콘솔 하단에 자리한 P-R-N-D 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참고로 센터콘솔 시프트 버튼은 활성화한 뒤 10초 이내에 기어를 바꾸지 않으면 자동으로 비활성화된다.
글 이현성 사진 각 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