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4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의의 사람
요 16:8~11
<들어가기>
요즘 핫한 연속극이 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입니다.
자폐 증상이 있는 우영우 변호사, 요즘 폭염보다 더 뜨거운 것 같습니다.
극중에 강기영이 연기하는 ‘정명석 변호사’가 나옵니다.
아주 명석하고 리더 쉽을 갖추고 있습니다. 법무법인에서 한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연애를 하고,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도 똑똑하다 보니, 신혼여행지까지 전화가 걸려옵니다.
첫날밤에도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은 새신랑이 새벽 네 시까지 통화를 합니다.
☞ 이것이 옳은 것인가요? 아니면 잘못인가요?
⛹ 의, 정의란 참 묘한 가치입니다.
정명석 변호사가 대형 로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잘나가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직후부터, 정명석 변호사의 이러한 자세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정 변호사의 이러한 태도에 견디지 못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합니다.
결국 이혼합니다. 정 변호사의 태도는 분명히 결혼 전에는 커다란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이후 그 태도는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 “정의란 무엇인가?” 하면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센델’이 쓴 “저스티스 JUSTICE” 우리 말로 “정의란 무엇인가?”
저도 궁금해서 이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도 “이것이 정의다”라면서 제시하는 알맹이 즉, 컨텐츠가 없습니다.
실망하면서 책을 덮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두루 읽히는 밀리언 셀러입니다.
왜요? “정말, 의가 무엇인지 알고싶다!” 사람들은 의가 무엇인지 알고싶어합니다.
☞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참 궁금합니다.
오늘 본문이 여기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의>
(9~10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9절에서 “예수 믿는 것이 의다! 예수 안 믿는 것이 죄다!”
“예수 믿으면 의, 안 믿으면 죄”라고 선포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이렇게 말하면 “에~이, 말도 안 돼!”하면서 손사래를 칠 겁니다.
그들에게, “그럼 네가 한번 말해 봐,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죄인지!”
이 질문에 대답하는 책으로 나온 것이 마이클 센델의 「저스티스 JUSTICE」입니다.
끝까지 읽어봐도 두리뭉실합니다.
정말, 인류로서는 “이것이 의이고, 저것은 죄입니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파고들어 가 봤자, 결코 찾아내지 못합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으면 의, 나를 안 믿으면 죄!” 대단히 명쾌합니다. 분명합니다. 알맹이가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째서 예수 믿으면 의, 안 믿으면 죄인지 알고 가야합니다.
<의의 사람>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갓난아기에게도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린 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갓난아이에게는 어떤 것이 의이고, 어떤 것이 죄입니까?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의’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죄’입니다.
아기가 밥상에 있는 맵고 뜨거운 국그릇을 잡아채는 것은 ‘죄’입니다.
아이가 물불을 못 가리면 그것이 죄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죄와 의는 이렇게 드러납니다.
“아빠엄마에게 순종하면 의, 엄마아빠 말 안들으면 죄입니다.”
“부모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부모로 말미암지 않고는 자라날 수 없느니라”
아이에게 부모는 ‘의의 사람’입니다.
☰ “의의 사람” 개념이 있습니다.
‘의’라는 것은 어떤 고매한 가치가 아닙니다. “사람이 의입니다.”
태어나는 모든 아기에게는 절대적으로 ‘부모’가 의입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의의 사람’입니다.
① 사람이 태어나 첫 번째 만나는 ‘의의 사람’은 ‘부모’입니다.
☞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냈습니다.
어린이집 장난감 하나를 두 아이가 동시에 붙잡고 서로 “내 꺼야!”
두 녀석 사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장난감, 도대체 누구 거지요?
두 아이 중에서 누구 거라고 말해 줘야 의가 됩니까?
“이놈들아, 이건 네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니고, 우리 어린이집 거야!”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정의가 됩니까? ~ 이때 정의는 무엇입니까?
둘이서 싸우고 있을 때, “얘들아 놀이터 갈 시간이다. 모여라!” 하면 뚝 그칩니다.
장난감 팽개치고 놀이터 갈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무엇이 의입니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에게 ‘의의 사람’입니다”
“선생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나니, 선생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② 사람이 태어나 두 번째 만나는 ‘의의 사람’은 ‘스승’입니다.
위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한 변호사가 이혼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이혼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결혼하면 배우자가 ‘의의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결혼하기 전 직장에 충실했는데, 결혼하고 의의 사람인 ‘아내’에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③ 사람이 태어나 세 번째 만나는 ‘의의 사람’은 배우자입니다.
이외에도 ‘의의 사람’ 여럿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 직장 상사, 선배, 고참 등등이 잠시 잠깐씩 ‘의의 사람’으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대표적으로 부모, 스승, 배우자를 ‘의의 사람’으로 꼽았습니다.
☞ 의는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나를 이끄는 “의의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의입니다.
부모를 따르고, 스승을 따르고, 배우자를 따르는 것이 의입니다.
☞ 우리가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의는 어떤 체계가 아니라 사람 자체입니다!” “사람이 의입니다!”
☞ 동양사상에 3종지도가 있습니다.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순종, 결혼하면 남편에게 순종, 늙어서는 자식에게 순종”
어려서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의다!
결혼하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의다!
늙어서는 자식에게 순종하는 것이 의다!
가부장적 시대 여성을 억압한다고 해서 요즘은 환영받지 못하지만 성경과 일맥상통합니다.
여기서 성경적으로 해석하자면, 오늘 본문 말씀이 됩니다.
(9~10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사람은 태어나서는 부모에게 순종, 공부할 때는 스승에게 순종, 결혼하면 배우자에게 순종!
이것이 의입니다. 부모님, 스승, 배우자가 ‘의’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 말씀은 곧, 나를 믿으면 ‘의’ 안 믿으면 ‘죄’ 바로 이 뜻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
☞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하나님이 전적으로 설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고, 역사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세상의 이치는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의’란 어떤 사상, 학문, 철학,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사람’입니다.
☞ 사람이 사람에게 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세상의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의’를 사람 뒤에 배치하셨습니다.
부모님 뒤에 ‘의’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의가 실현됩니다.
스승님 뒤에 ‘의’가 있습니다. 스스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의가 실현됩니다.
배우자 뒤에 ‘의’가 있습니다. 배우자를 존중하는 가운데 의가 실현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와 경륜을 무시하고, 세상에서 의를 찾으니 나올 리 없습니다.
하버드대학교 교수 마이클 센델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의는 ‘의의 사람’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의의 사람의 한계와 예수 그리스도>
오늘 설교 제목이 ‘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의의 사람을 통해서 의를 실현합니다.
그런데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의 사람’의 한계”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의의 사람이 각각 있습니다.
의의 사람이 내가 죽을 때까지 의의 사람이 되어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춘기를 거치면서 부모님은 의의 사람으로서의 역할이 퇴색됩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스승님의 의의 사람으로서의 역할도 마무리 납니다.
결혼해서 배우자가 ‘의의 사람’이 되었는데요,
아내는 자녀를 출산하면서 의의 사람을 남편에서 자녀로 교체하는 경향이 큽니다.
남편은 사업과 직장에서 의의 사람을 세우고 거기에 충성합니다.
‘의의 사람’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 우와좌왕하게 됩니다.
혼란스럽습니다. 무엇이 의인지 죄인지 헷갈립니다. 방황합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진짜 ‘의의 사람’이 있어야겠다. 그래서 보낸 분이 바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자께서 성육신하시어 불쌍한 ‘중생’에게 ‘진정한 의의 사람’이 되어주셔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본문 10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 의다!
우리 인생 전반에서 진정한 ‘의의 사람’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 뿐 아니라, 죽음 너머에까지 영원한 ‘의의 사람’입니다.
<맺음 ~ 심판에 대하여>
9절 10절에서 예수님이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영원한 ‘의의 사람’이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예수님이 선포하셨습니다.
죄와 의에는 반드시 심판의 문제가 뒤 따릅니다
심판없는 의, 심판없는 죄 ;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11절 말씀이 그래서 따라옵니다.
(11절)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예수 안 믿는 세상의 임금 즉, 세상의 권력입니다.
예수님을 ‘의의 사람’으로 영접하지 않는 세상과 세상 권세!
예수님을 통하여 의가 실현되도록 이 세상을 설계하신 하나님을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에게 유익이 되면 의, 손해가 되면 죄라고 단정합니다.
자기가 속한 조직에 유익이 되면 의, 불리하면 죄라고 단정합니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면 의, 불리하면 죄라고 단정합니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한국의 물가가 치솟았습니다.
역사 이래 지구상에서 전쟁이 멈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의’라고 주장합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자기네가 의라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러시아에 10만 대군을 파병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로 자기가 ‘의’라고 주장합니다. 세상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돌아갑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의의 사람”으로 영접하지 아니하면, “내가 의의 사람”이 됩니다.
자기중심, 이기주의에 빠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의 사람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하여 바라보고 살 때, 그때 의가 나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