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사설우체국
한승주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33|146×210×16 mm|272쪽
18,000원|ISBN 979-11-308-1901-3 03810 | 2022.3.25
■ 도서 소개
끝내는 외롭게 자기 자존을 껴안는 이야기들
한승주 작가의 소설집 『사설우체국』이 <푸른사상 소설선 33>으로 출간되었다. 다양한 사연을 품고 있는 인물들이 절실하게 무언가를 좇지만 끝내 외롭게 자기 자존을 껴안는 이야기를 담은 9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전개와 다채로운 상상력의 문체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친다.
■ 작가 소개
한승주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침의 동행」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평사리문학대상(시 부문)을 수상했고, 시집으로 『로댕의 의자』가 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 목차
작가의 말
아침의 동행
어떤 게임
나비
사설우체국
메리 크리스마스
사육사들
작약
간병사 S
존엄의 방식
작품 해설 : 자존을 위한 집요한 성실 _ 임영태
■ '작가의 말' 중에서
겨울이 문제였다.
증축한 이층 서재는 난방을 하지 않아 석유난로를 사용했다.
공기를 덥히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그동안 발이 시렸다.
이 소설들은 그런 과정에서 쓴 글들이다.
교정 원고를 읽는 내내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해설을 맡아주신 임영태 작가님과
편집하느라 애써주신 푸른사상사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 작품 세계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내가 만난 한승주는 어떤 사람인가. 한승주 작가와 약간의 개인적인 인연이 있기는 하나 나는 사람 한승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내가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척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 소설들을 통해서 본 한승주다.
한승주는 혹은 그의 인물들은 무뚝뚝한 편이면서 강인하고 집요하다. 다정하게 말할 때조차, 수굿하게 자기 허물을 인정할 때조차, 그 이면에는 고집 센 자존심이 혼자 무언가를 묵묵히 인내하고 있다. 끝내는 누구도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이해받는 것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는 듯한 도사린 자아. 이런 사내란 숙명적으로 외로움을 달고 사는 법.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둘러친 장막 안에서 기꺼이 자기 고독을 존중한다. 하기야 그런 인물이라 한들 왜 어린아이 같은 울먹임이 없을까만, 맺힌 상처가 없을까만. 아무려나 이것이 내가 이 소설들에서 만난 한승주다. 이런 빛깔의 한 사내가 소설이라는 픽션의 성채로 한 번 더 두텁게 자기를 무장시키고는, 비로소 가감 없이 자기 속내를 펼쳐 보이는 오래 묵은 욕망과 상처의 변주곡들, 그것이 이번 소설집이다. (중략)
「존엄의 방식」에서 최대식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내에게 자신의 병을 말하지 않는 건 “그것이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아침의 동행」에서는 아내의 생명선을 자르고 여기에서는 자기 생명선을 스스로 제거하는 이 사내들의 묵묵한 행위에서 나는 이 작가의 일관된 메시지를 본다. 인생의 존엄은 ‘말의 성찬’이 아니라 ‘행위’에 있다고 하는 것.
바로 여기에 한승주 소설의 고유한 향기가 있다. 자기 정신성의 가장 첨예한 영역을 끝내 이해받지 못하는 이의 고적하고 우직한 고투. 자기 삶의 의미를 결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카랑카랑한 자존. 그것이 내가 이 소설에서 만난 한승주다.
- 임영태(소설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사설우체국』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과 상처를 펼쳐 보이는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존엄한 삶과 죽음, 글쓰기 등 절실하게 무언가를 좇지만 끝내는 외롭게 자기 자존을 껴안는다. 그들은 고독한 속에서도 자기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결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서사의 전개와 다채로운 상상을 거침없는 문체로 써 내려간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아침의 동행」에는 매일 도축장에서 소를 도살하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소설은 도축장의 충격적인 살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아내의 안락사 문제를 함께 다루면서 인물이 처한 극한의 상황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표제작인 「사설우체국」은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원고를 우편으로 부치기 위해 사설우체국을 자주 드나드는, 문학의 꿈을 가진 한 남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애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무심한 채로 문학이라는 자기만의 추구에 매달리는 청년의 공허한 연대기를 보여준다.
자기 삶의 방식을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 맞이한 파멸을 다룬 「사육사들」을 비롯해, 남에게 연민 받거나 성가신 존재가 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한 사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난 후 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존엄의 방식」 등이 주목된다. 작품마다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한승주의 소설은 작가 특유의 우직하고도 집요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고투하는 한 사내의 담담한 독백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느샌가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 작품 속으로
나는 하루에 백여 번 총을 쏘았다. 계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가 도축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맞닥뜨리는 킬러, 말하자면 나는 저승사자였다. 어떤 소는 체념한 듯 철문을 통과하기 전부터 그렁그렁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소가 옴나위조차 불가능한 좁은 통로에 들어서면 그것은 막다른 길을 의미했다. 뒤로 물러서거나 도망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는 듯, 소는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킬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최대한 빨리, 긴 호스에 연결된 압축 공기총을 소의 이마에 발사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소들은 꾸역꾸역 도축장 안으로 밀려 들어와 얼굴을 내밀었고, 나는 표적지가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잘 훈련된 특수부대원처럼 총을 쏘았다. 벌써 십오 년이 흘렀다. (「아침의 동행」, 10쪽)
이곳으로 내려온 뒤 두 번 응모했던 소설은 두 번 다 떨어졌다. 사설우체국에는 네 번 들렀다. 두 번은 원고를 부치기 위해서, 나머지 두 번 중 한 번은 통장을 개설하려고. 또 세 번째는 집에서 부쳐준 생활비를 찾기 위해서였다. 시중은행은 연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까운 우체국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나는 외로움을 탔다. 한 번씩 수진이 보고 싶어 진저리를 쳤다. 선택한 길이라 해도 혼자 있는 사내의 외로움에 봄꽃들은 잔인했다. 밤마다 야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사설우체국」, 113쪽)
“오늘은 운이 좋구나! 목포수도 없이 멧돼지를 사냥할 수 있겠네!”
배철수가 사냥개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목포수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사냥감이 다가오면 총을 쏘는 사냥꾼을 말함이었다.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개들은 자신감이 충만해 더 맹렬히 짖고 멧돼지를 향해 더 거칠게 입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개 무리 속에 라산이 보였다. 라산은 목표물을 향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그 입질이 사냥을 처음 해보는 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용맹해 보였다. 배철수가 엽총에 탄환을 장전했다. 윤진수가 덤불을 피해 아래로 내려갔다. 계곡에 발을 디디자 3미터가량 떨어진 덤불 속에서 짙은 회색의 기다란 주둥이를 개들을 향해 들이민 괴물이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둥이 양옆으로 날카로운 어금니가 하얗게 튀어나와 있었다. (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