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7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하나님의 뜻
슥 8:14~17
<뜻 이야기>
오늘은 ‘뜻’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14절 15절에 보면, ‘뜻’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14~15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뜻하셨다”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
☞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 나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하루를 삽니다!
☞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삽시다!”
우리가 성도라 하면서 하나님을 뜻을 날마다 헤아리고 그 뜻대로 사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하루가 저물고 있습니다.
당장 오늘 하루 “나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살았는지” 묵상합니다.
우리가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하루를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내 뜻”이 아닐까요?
동의가 되세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뜻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뜻을 가지고 있다>
복음성가 중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3)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 3) 뒤돌아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 3)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살려면, 뒤돌아 서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노래는 특히 침례교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침 오늘 본문 스가랴서 8장 14절로 17절까지의 주제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예배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로 성숙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뜻”이 무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모든 피조물을 “저마다 뜻을 가진 존재”로 지었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뜻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만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갑자기 더워졌습니다. 여름이 훅 다가왔습니다. 어제 전주는 32도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러한 ‘날씨’ / ‘날씨’에도 뜻이 있을까요?
날씨에도 뜻이 있습니다. 사계절에 따라 춥고, 선선하고, 따뜻하고, 덮고…
날씨의 뜻입니다.
‘바람’에도 뜻이 있습니다.
바람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바람은 제멋대로 부는 것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바람은 바람 나름으로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로 불러가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인간이 잘 모를 뿐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뜻이 있습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아가 곳곳으로 흩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고, 꽃을 피웁니다.
우리가 보기에 저절로 되는 것 같지만, 민들레 홀씨도 나름대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씨, 기후, 바람에도 뜻이 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뜻이 있습니다. 스스로 가진 뜻입니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길 바닥에 앉아서 유심히 바라보면 개미가 기어갑니다.
개미도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어디론가 부지런히 기어갑니다. 개미의 뜻입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반려 동물을 키웁니다.
개,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데, 개나 고양이도 자기 나름대로 하고 싶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모든 피조물이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뜻이 하나님께 반하지 않습니다.
☞ 모든 피조물이 뜻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유독 사람만이 하나님께 반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독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모든 피조물에게는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뜻을 심어두셨습니다.
단, 사람만은 예외로 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 뜻’도 허락하셨습니다. ‘자유 의지’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을까요?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유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제가 쓴 「붕어빵」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랑하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미워할 수도 있지만,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의지, 그 의지가 있어야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습니다.
미워할 수도 있으나,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사랑하겠다는 뜻을 품는 것”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고 다짐하는 것, 바로 이 뜻입니다.
<사람이 자기 뜻을 드러내는 시기>
☞ 사람이 뜻을 가지는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사람이 자유 의지를 갖고 태어나지만, 태어난 직후부터 인간이 뜻을 품지는 않습니다.
안으로 뜻은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어느 정도 자란 이후입니다.
요즘 여섯 살 바울이를 보면서 ‘사람의 자기 뜻’을 많이 묵상합니다.
아이가 태어나 기저귀를 차고 누워서 젖을 먹을 때는 ‘자기 뜻’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서 자기 뜻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엊그제 바울이가 미장원 다녀오면서 머리가 자기 맘에 안들었나봅니다.
골목길을 걸어오면서 엄청나게 큰 소리로 “나 이 머리 맘에 안 들어요!”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울이가 벌써 자기 뜻을 표현하고 있구나!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는구나~
엊그제 목욕시키려고 옷을 벗겨 주겠다고 하니까, 두 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면서 말합니다.
“제가 알아서 벗을 거예요!” 참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 대견했습니다.
사과를 깎아서 입에 넣어주면 따복따복 잘 받아 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제가 알아서 먹을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거부합니다.
이것을 자유의지라 합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자기 뜻”입니다.
☞ 설교 모두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내 뜻’이라고 했습니다.
☞ 성도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내 뜻’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첫째, 뜻이 무슨 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뜻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자면 모든 피조물은 각자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씨, 기후, 바람 그리고 길 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사람이 가진 뜻을 ‘자유의지’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도 물론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만이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자유의지라 한다 말씀드렸습니다.
셋째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첫째, 모든 피조물은 뜻을 가진다.
둘째, 사람이 가진 뜻은 ‘자유의지’ 이다.
셋째,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 셋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4절에는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15절에는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하나님이 유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심으로써 유다가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심으로써 유다가 나라를 회복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유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신 이유는 유다가 ‘자기 뜻’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기 뜻’ ‘내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포로로 끌려가서야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우리 뜻, 내 뜻대로 살았구나!”
유다가 회개하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킵니다.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 우리가 은혜를 받는 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실 때”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실 때는 우리가 “내 뜻”을 버릴 때입니다.
☞ 내가 내 뜻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을 정하십니다!
<하나님 뜻에 내 뜻을 맞추면서 살아야>
예수 믿는 성도 중 많은 이들이 자기 뜻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것을 하려는데, 도와주옵소서!”
“내가 사업을 하려는데, 대박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일을 하려는 데 주님이 도와주세요!”
이러한 기도는 “내 뜻”대로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내가 뜻을 세우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어떤 일 하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께 뜻을 여쭈어서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바라시는 바,
그것이 곧 하나님이 나를 향한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원하시는 뜻을 기도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도 응답으로 받았다면, 나는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16~17절)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①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②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③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④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가 이렇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로 가야할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