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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6일(목) 예산수정교회 새벽설교 마태복음 16:1~12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새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이몽용목사
오늘은 마태복음 16:1~12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청하자,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니 그들은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걱정합니다. 예수님의 꾸중을 듣고서야 제자들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들을 주의하지 않으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자기소원의 표적을 주의해야 합니다(1~4절). 바리새인들은 스스로가 율법을 잘 지키며 스스로 거룩한 자라고 자부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만 사람들에게 지웠습니다. 또한 사독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기득권층을 형성하던 사두개인들 역시 높은 자리에서 대접받기만 원했습니다. 이 두 무리는 서로 원수지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마음이 되는 것이 하나가 있는 데, 그것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데는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필요에 따라 입장을 바꾸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구하는 표적, 즉 기적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활동과 베푸시는 기적들 자체가 바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입니다. 이를 믿지 않고 다른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곧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우리도 본문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만 구하기에 말씀을 통해 주시는 십자가의 복음을 못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둘째, 우리는 바리새인의 전통주의와 사두개인의 합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5~8절). 이것을 예수님은 6절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전통주의는 오늘날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맥을 같이합니다. 또한 사두개인들의 합리주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 사상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이 두 극단의 어리석음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성경 묵상을 통해 자기 개혁을 통해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권위 있는 누군가의 말이나 어떤 교리, 힘있게 전파된 말이 도리어 나의 누룩이 되어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고 있지 않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형식적 율법주의, 전통주의로서 율법과 형식을 지켜냄으로써 얻는 ‘의’가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의는 위선적이며 이율배반적인 것이어서 결국 ‘자기 의’가 충만하나 영적으로는 무지하고 속과 겉이 다름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모세5경의 권위만 인정하고 부활, 영생, 사후의 영원한 세계 및 사단의 실체를 거부하여 현세주의, 이성주의, 자유주의의 형태를 띠며, 이들 역시 실제 삶의 실천적인 면에서는 언행이 불일치하는 위선자의 삶을 살면서 교묘한 합리화로 미혹하였습니다. 이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앞에서 정작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떡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분별이 어려운 이유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떡의 문제에만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보고 영적인 교훈을 받아도 당장 눈 앞에서 사람에게 자존심을 긁히고, 무시당한 것이 분하고 세상에 두고 온 것만 생각하다보니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영적교훈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눈 앞에서 세상에 두고 온 것 때문에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로 육적인 필요에 집중하는 걱정을 주의해야 합니다(9~12절). 예수님의 꾸중을 듣고나서 제자들이 뒤늦게 깨닫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말씀을 깨닫는 것처럼 보여도 후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이런 제자들로 인해 예수님이 힘드셨던 것처럼, 성도들의 삶도 배신하는 사람들 때문에 외롭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살리는 기쁨으로 변화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의 제자들처럼 끊임없이 나의 육적인 필요를 걱정합니다. 오히려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걱정에 눌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내가 잊어버린 말씀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가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 뒤늦게 깨달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는 육적인 필요보다 영적인 필요를 더 예민하게 살피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의 표적’이라는 한 형제님의 큐티인 간증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장로와 권사이셨던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모교회의 각종 예배와 부흥회, 수련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을 보고 자라며 공동체에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서울로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주일예배만 드리는 선데이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없는 종교생활은 결혼한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교회에 헌금을 하려고 하면 ‘우리가 먹고 살 것도 없는데 교회에 줄 돈이 어디 있냐’며 핍박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식으로 망하는 사건 가운데 큐티하는 공동체로 이끄셔서 바리새인과 같은 저의 모습을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큰 빚을 지고, 매달 많은 금액의 현금서비스를 돌려 막아야 했던 저는 주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만 구하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다라고 떼쓰는 기도를 했습니다. 아내와 소그룹 지체들은 그런 저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보다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하는 요나의 표적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 성사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이라며 오히려 아내에게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던 제가 과거 아내 몰래 바람 피운 죄를 공동체에 고백하게 되었고, 회사를 스무번 넘게 이직한 것이 저의 교만 때문이었음을 깨달으며 회개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육적 가치관이 무너져야 영적 가치관이 세워질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 후 소그룹 리더로 세워졌습니다. 이제는 소그룹 리더로서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제 상황을 답습하는 지체들에게 제 경험과 깨달은 말씀을 전합니다. 바리새인 같은 신앙으로 잘못된 교훈을 전하는 사람이 될 뻔한 인생입니다. 이제부터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증인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적용하기) 회사에서 불안한 생각이 들 때마다 칠병이어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떠난 형의 구원을 위해 매달 전화로 안부를 묻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자기소원의 표적을 주의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의 전통주의와 사두개인의 합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육적인 필요에 집중하는 걱정을 주의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여전히 무시당하고 잃은 것이 많다는 생각에 말씀이 들리지 않아 분히 여기며 울부짖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를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게 하옵소서. 십자가 자신 예수님처럼, 말씀이 들리지 않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