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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상식 더하기] (4) 가톨릭교회에서 받은 세례만 세례다?
타 교파 적법한 세례 유효하지만 성체 모실 순 없어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는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 등 다른 그리스도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비신자가 많이 방문하는 성당이나 큰 행사 등에서는 미사 중 성체 분배에 앞서 해설자가 이렇게 안내하는 것을 들어보신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천주교(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들만 성체를 모실 수 있습니다”라고요. 세례를 받지 않은 비신자는 물론이고 가톨릭이 아닌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가톨릭교회에서 성체를 모실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성사를 교류할 수 없는 이유는 교리·신앙이나 성사, 제도 등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다른 그리스도교들은 온전한 친교를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받은 세례는 유효한 세례가 아니라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그리스도교에서 세례를 받든지 적법한 방식으로 이뤄진 세례라면 가톨릭교회에서도 유효합니다.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가톨릭교회로 입교하는 분이 계시다면 먼저 물로 씻는 예절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세례를 받는 본인과 세례를 준 집전자의 의향이 적합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켜진다면 꼭 가톨릭교회에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례는 유효합니다.(「교회법」 제869조 2항 참조)
이 기준에 따라 한국 가톨릭교회는 성공회와 정교회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그리스도교의 경우는 별도로 물로 씻는 예절과 천주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형식을 확인할 수 있으면 인정합니다.
만약 적법한 세례를 받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면 조건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만일 세례가 불확실하거나 유효하지 못하다면”이라는 조건을 두고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비가톨릭 그리스도교파의 세례 유효성 관련 사목 지침」 참조)
이처럼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받은 세례는 유효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가톨릭교회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과 직제에 있어 온전한 일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세례를 받은 분이 가톨릭교회에 입교할 때는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등을 포함한 교리교육을 받은 후에 ‘일치 예식’을 하게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올바로 세례를 받은 이들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톨릭교회와 친교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제2차 바티칸공의회 「일치교령」 3항 참조)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일치 주간으로 지냅니다. 이 시기에는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여러 그리스도교가 교회의 일치를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언젠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길 희망하며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정교회(正敎會, ecclesia orthodoxa)
전 세계 그리스도교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청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교 일치로 함께 나아가야 할 ‘갈라진 교회’인 정교회에 대해 알아봅니다.
과거 로마 제국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과 그리스 · 소아시아 ·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동방’으로 나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래한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 전파되어 그리스도교 중심지가 형성되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가 대표적입니다. 오랜 그리스도교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동방의 비잔티움 곧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는데, 자연스레 그곳 주교의 위상도 올라갔습니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로마 · 콘스탄티노폴리스 · 알렉산드리아 · 안티오키아 ·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좌를 공인하였습니다. 이들 교회는 주변 교회들을 관할하며 교구별로 고유한 전례와 관습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앙 교리의 완전한 일치로 하나의 그리스도교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5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가 에페소 공의회(431년)에 단죄되고 단성설(單性說)을 주장하던 에우티케스도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단죄되면서 여러 분파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또한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는 각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였고, 관습과 제도의 많은 차이에다 정치적 이유까지 겹쳐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1054년에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케룰라리우스가 라틴 전례 교회와 수도원들을 폐쇄하고, 신경에 필리오퀘(filioque) 문구를 삽입한 점과 성찬례 때 누룩 넣지 않은 빵을 사용한 점 등을 비판하자, 교황 레오 9세(1049~1054년 재위)는 1054년 훔베르트 추기경을 대표로 한 교황 사절단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파견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극한 갈등이 발생하고 마침내 훔베르트 추기경은 1054년 7월 16일, 소피아 대성당의 중앙 제단 위에 파문 문서를 놓고 떠나게 됩니다. 총대주교도 교황 사절단을 파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회와의 일치로 돌아온 동방교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동방 가톨릭교회라고 부릅니다. 1551년에 다수의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1553년에 칼데아 교회가, 1724년에 안티오키아 멜키트 (가톨릭) 교회가, 1742년에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가, 1783년에 시리아 안티오키아 (가톨릭) 교회가, 1824년에는 콥트 (가톨릭) 교회가 서방 교회와 일치했습니다. 또한 위치는 동방에 속하지만, 처음부터 로마와 결별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마로니타 교회도 동방 가톨릭교회에 속합니다. 이들은 고유의 전통과 전례를 인정받고 보존하면서 교황의 수위권을 받아들이는 교회입니다.
20세기 들어 가톨릭교회는 정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1963~1978년 재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동방 교회 교령」 (1964년 11월 21일)과 「일치 교령」 (1964년 11월 21일)을 통해 동방교회 전통의 보존과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본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1965년 12월 7일, 아테나고라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함께 1054년에 있었던 상호 파문을 철회하고 화해하였습니다. 이로써 900년 넘게 이어지던 반목의 벽을 넘어설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일치 주간을 맞이하여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43) 부제들, 고유하고 영구적인 품계, 「교회헌장」 제29항
「교회헌장」 제29항은 부제직에 관한 언급입니다. 공의회는 먼저 부제들을 주교들과 신부들보다 낮은 단계의 위계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공의회는 부제직을 교계의 고유하고 항구한 단계로서 가톨릭교회 안에 다시 복원시킵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부제들은 주교들의 협력자로서 초세기에 교회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사제 지원자가 늘어남에 따라 부제들의 위상은 처음의 역할을 점차로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중세에 교회의 직무가 사제직에 집중되면서, 부제들은 성찬례의 보조자로 여겨지고 하느님 백성에 대한 본연의 기능은 일시적이고 종속적인 차원으로 절하되었습니다.
부제직에 대한 이러한 이해로 공의회 제2회기에 제출된 의안에서는 “위계적 봉사 직무 안의 낮은 단계에서 부제들은 주교들과 신부들을 돕는다. 그들은 거룩한 희생 제사의 거행에 봉사하며 성대한 세례와 거룩한 영성체의 비정규적인 봉사자이다.”라고 언급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는 최종 본문에서 “부제들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하여 안수를 받는다.”라고 명시합니다. 부제들은 사제직에 오르기 위한 예비 단계의 보조자들이 아니며, 부제들의 봉사 직무는 성품 성사의 고유한 단계입니다.
예로부터 부제들은 주교의 봉사 직무에 긴밀히 협력하기 위해 서품되었고, 신부들은 주교와 함께 하나의 사제단을 구성했습니다. 따라서 부제들의 봉사 직무와 신부들의 봉사 직무는 구별됩니다. 이런 차이점으로 공의회는 부제들이 주교와 친교를 이루고 그의 사제단과 친교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부제들은 성사의 은총으로 하느님 백성을 섬기기 위해서 전례와 말씀과 사랑의 봉사 직무를 수행합니다.
이어서 공의회는 부제들의 소임을 상세히 소개합니다. 관할권자가 그들에게 맡긴 것은, 성대하게 세례를 집전하는 일, 성체를 보존하고 분배하는 일, 교회의 이름으로 혼인을 주례하고 축복하는 일, 죽음에 임박한 이들에게 노자 성체를 영하게 하는 일, 신자들에게 성경을 봉독하는 일, 백성을 가르치고 권고하는 일, 신자들의 전례와 기도를 지도하는 일, 준성사를 집전하는 일, 장례 예식을 주재하는 일 등입니다. 공의회는 이러한 자선과 관리의 직무를 받은 부제들에게 “자비롭고 부지런하여야 하며, 모든 사람의 봉사자가 되신 주님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라고 권고합니다.
끝으로, 공의회는 부제직을 임명하고자 하는 지역 주교회의의 결정이 로마 교황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과, 나이 많은 기혼자들이나 독신의 젊은이들에게 부제직을 수여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교회의 언어] Agnus Dei(아뉴스 데이) : 하느님의 어린양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Ecce agnus Dei, ecce qui tollit peccatum mundi(에체, 아뉴스 데이, 에체 퀴 톨리트 페카툼 문디) ‘아뉴스’는 ‘어린양’을 뜻하고, ‘데이’는 Deus(데우스, 하느님)의 소유격으로 ‘하느님의’라고 번역합니다.
우리는 영성체 직전에 요한의 이 외침을 네 번 반복합니다. 신자들이 세 번 환호하고 사제가 한 번 더 외웁니다. 성체를 모시기 전에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저녁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자 살아남습니다.(탈출 12장 참조) 어린양이 대신 죽고 이스라엘은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 최후의 만찬 때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십니다.(마태 26,27-28) 십자가에서 대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파스카의 어린양이시며, 성체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희생이 현재화된 표징입니다. 이 믿음을 고백하면서 성체를 영합시다. “하느님의 어린양”
[교회상식 더하기] (3) 반려동물도 세례받을 수 있을까?
성사는 ‘믿는 사람’을 위한 것··· 동물에게는 축복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0가구 중 3가구(약 28.6%)는 집에서 동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동물보호법」은 이렇게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가까이에서 교감하며 생활하는 동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가까이 지내다 보니 우리 집 강아지나 고양이도 세례받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다 보니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일 것 같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처럼 좋은 것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동물에게는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아니한 모든 ‘사람만’이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교회법 864조 참조)
기본적으로 세례성사를 비롯해 교회의 모든 성사와 전례는 ‘믿는 사람’을 위해 거행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세례성사에 관해 말씀하시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한 3,5-15 참조) 그래서 우리는 세례성사 때 “여러분은 무엇을 청합니까?”라는 주례자의 질문에 “신앙을 청합니다”라고 답하고, 이어 “신앙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라는 물음에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동물은 사람도 아니고, ‘믿음이 있다’고도 보기 어렵지요.
그렇다고 동물이 구원과 관련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홍수 때 동물들도 방주에 태워 구해주시고, 홍수가 끝난 뒤 인간뿐 아니라 방주에 탄 모든 동물도 계약에 참여시켜 주십니다.(창세 9,9-10 참조) 이 홍수는 세례성사의 예표기도 하지요. 교회는 “짐승들도 인간의 속죄 의식에 참여해 다른 모든 피조물과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한다”고 말합니다.(「축복 예식」 728항 참조)
또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영혼을 식물의 생장혼, 동물의 감각혼, 인간의 이성혼으로 구분했는데요. 동물의 감각혼은 인간과 달리 자유의지와 이성을 지니지 않습니다. 죄는 “이성과 진리와 올바른 양심을 거스르는 잘못”(「가톨릭 교회 교리서」 1849항)입니다. 그러니 동물들이 ‘죄를 짓는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통해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라고 고백합니다. 죄를 짓지 않은 동물에게 세례는 필요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마 많은 분이 신앙 안에서 동물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싶을 겁니다. 그렇다면 ‘동물 축복 예식’이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동물 축복 예식은 이탈리아에서는 동물들의 수호성인인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1월 14일)에, 세계적으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10월 4일)에 하는 등 성인의 축일에 열리곤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교회에도 ‘동물 축복 예식’을 하는 본당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님 세례 축일 특집] 주님 세례 축일에 관한 궁금증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213항은 세례성사를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물로써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세례성사가 신앙의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2000년 전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지만, 당시 어떤 모습으로 받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마태 3,16)고 기록돼 있다. 예수님은 오늘날 행해지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물에 들어가 세례를 받으셨다.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필리포스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시면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두 사람이 물로 내려가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성경 기록(사도 8,36-38 참조)을 통해서도 초대 교회에서는 보편적으로 흐르는 물에 들어가 세례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세기 이전까지 세례 방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헌인 「디다케」에도 살아 있는 물, 곧 흐르는 물로 세례를 준다고 규정돼 있다.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는 침수 세례가 서방 교회에서 사라진 것은 14~15세기에 이르러서다.
현행 「어른 입교 예식」 220~221항에는 온몸이나 머리를 물에 담그는 침수 예식으로 세례를 줄 수 있고, 오랜 관습에 따라 물을 이마에 붓는 방식으로도 세례를 줄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침수 세례와 주수(注水) 세례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 세례 방식을 규정한 「한국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63조 제4항에는 “세례는 원칙적으로 이마에 물을 붓는 형식으로 집전한다”고 돼 있어 한국교회에서는 침수 세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주수 세례가 행해지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세례받기 위해 강물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 주신 데서 알 수 있듯, 장소나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씻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세례의 본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가 오실 것과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했고, 회개한 이들에게 세례를 준 인물이다. 자신의 권위에 근거해 죄의 용서를 위한 한 번뿐인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세례자(baptist)’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예수님이 세례받은 요르단강도 여러 상징성을 지니는데 구원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구약성경 여호수아기에서 여호수아가 요르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2열왕 2,1-18; 5,1-15 참조) 또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은 장소다.(창세 13,10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