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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역의 완성 (수 1:5-9)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시간에는 “구속사역의 완성”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가나안을 앞두고 여호와께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당부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과, 율법을 지켜 온전히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그만큼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대 전쟁을 앞두고 큰 부담과 신앙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귀한 정치철학이 나타납니다. 첫째 정치인은 항상 사람을 의식하기 쉬운데 아무도 따르지 않아 승산이 없을 것 같아도 옳은 길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둘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만 나가야지 사람의 방법을 따르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정치권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잠자코 있지만 옮음의 편에선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18:10에 바울에게도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습니다. 다수 국민은 타협하지않고 강하고 담대하며 옳음을 견지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빅딜(Big Deal) 크게 맞바꾸는 것 잘못하면 안 됩니다. 가령 원유를 수입하거나 돈을 빌리거나 수주를 받기 위해서 이방종교나 이방문화를 수입하는 등 하나님 기쁘시게 못하면 하나님께서 나라와 정권을 복주시지 않습니다. 신정과 인정의 충돌입니다. 보좌관들이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정치인들은 수 1장을 날마다 읽고 외워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장차 구속주로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구속사역을 성취하실 구속주의 완전성과 온전성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속사역의 성취를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1. 강하고 담대하셨습니다.
5-6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실 것이니 여호수아가 할 일은 강하고 담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도자가 가져야 할 아주 중요한 품성입니다. 국민들은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를 원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 가지고 재건에 생명 바쳐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얼마나 담대하셨습니까? 주님이 40일간 금식하신 후 사탄이 적당히 타협하려고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그 의도를 간파하시고 다 물리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셨기 때문에 방해도 핍박도 시험도 마귀도 죄도 고난도 육신도 환경도 권세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바람과 바다도 그리스도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아들로서 맞서는 모습을 봅니다.
막10:32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올라가면 잡히실 것을 알고도 앞장 서서 올라가셨습니다. 이런 담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담대한 믿음 없이는 그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이루신 복음과 말씀의 약속에 서서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맞서십시요. 그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2. 구속주로서 주님은 온전하셨습니다.
7-8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지도자는 좌우로 흔들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말을 들으면 십자가 고난 없이 최고의 인기와 영화를 누리며 사역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실패합니다. 구약에서는 흠 없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렸는데 이는 장차 오실 구속주가 흠이 없고 온전하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 나셔서 그 율법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다 지키심으로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시고 율법의 정죄를 받고 죽어가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갈4:4-5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온전했습니다. 마치 잠잠한 어린양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12:19) 했습니다. 그는 비천하고 상한 자들을 위로했고, 미워하는 자들을 축복했으며,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주님은 좌로나 우로나 조금도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의 온전함도 바로 이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우리를 온전케 해주신 것을 늘 감사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더욱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죄와 환경과 어떤 사탄 앞에서도 예수 안에서 승리자라는 확신에 서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내개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연약과 두려움과 무지함에서도 구원해 주셨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두려움도 예수님 안에서 이겼음을 찬양하세요. 이것이 공포를 이기는 믿음입니다. 히2:14-15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했습니다. 온전하신 예수 공로를 믿음으로 우리도 온전해집니다.
3. 구속사역을 주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11절에 "삼 일 안에" 란 말씀이 있습니다. 3일이란 성경에서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취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모리아 산에 갈 때 사흘 길이었습니다. 이삭은 죄인을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요나 역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과 사심을 요나의 표적이라 하셨듯이(마12:40) 요나의 사흘도 구원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막10:33-34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내 것 삼는 것입니다. 성전을 지을 때 밖에서 재료를 준비해서 가져다가 조립해서 지었듯이 우리를 완성시킬 모든 재료와 부속이 다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골3:1-4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했습니다.
그걸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굳건히 구원의 복음에 서고, 나는 구원 받았다는 그 믿음에서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더 온전히 더 깊이 믿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 53문에 “성령께서는 나로 하여금 참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의 모든 축복에 동참하게 하시며 나를 위로하시고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내게 임하신 것입니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0년 전에 우리에게 찾아오신 우리 주님은 온전하고 완전한 대속자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강하고 담대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진리를 믿고 또 믿음으로 그 은혜를 온전히 누리고 또 누리시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
1: 5-9
승리하는 삶의 원리 / 남서호 목사
모세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고 선지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죽었을 때, 온 이스라엘 민족은 모압 평지에서 30일을 애곡하며 그를 기억하며 슬퍼했습니다(신34:8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그리고 그의 후계자로 그를 따르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임명되었습니다(신34:9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이제 막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앞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막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땅이 어떤 땅입니까?
큰 성읍과 견고한 성들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아낙족속을 비롯하여 아말렉 족속, 헷 족속, 여부스와 아모리 족속, 가나안 사람들이 이미 점령하고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민13:28-29“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러한 족속들과 수많은 싸움을 싸워가며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에는 수많은 전투와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가나안입니다.
뒤에는 자신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곁에는 그동안 자신을 이끌어주고 지도해 주던 모세마저 없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지도자인 그에게는 엄청난 부담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여호수아1:2절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그 땅으로 가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막중한 책임감과 의무, 자신이 해야 할 일로 고민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단 한마디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엄청난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절대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승리를 위한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가운데에는 저와 여러분이 승리하는 삶을 통해 영광스런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약속의 땅은 결코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싸워 이겨야할 수많은 적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과 싸워 승리하지 않고서는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1.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해야 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승리의 삶을 사는 첫 번째 원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짝 붙어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을 버려야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약3: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야고보서 4: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성결케 하는 것이라고 야고보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성결이 무엇입니까? 퓨리파이(purify, KJV),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더럽고 불순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들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20-21절입니다.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신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요함이나 가난함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식과 능력, 학벌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깨끗하냐? 비워져 있느냐?’ 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결은 성도의 척도를 나타내는 수준이며 실력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의 것을 버리는 것은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해야만 가능합니다. 인정해야지만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려면 무엇을 버려야합니까? 두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품은 마음에서 또 하나 세상을 향하는 마음을 버려야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면서 세상의 기준과 가치로 바라보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정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약1: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을 확정하고 흔들림이 없는 사람입니다(시57:7”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원한다면 세상의 것을 버려야합니다.
이것이 우선되지 않으면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우선되는 조건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한 다음 조건이 로마서 12:2절로 설명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첫째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문화와 흐름을 쫓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시대가 그렇고, 사회가 그래서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 합니다. 사회의 풍조와 사상과 흐름에 자신을 내어맡깁니다. 일반적인 관행을 따라 생활합니다. 잘못되고 문제가 있을지라도 다수가 그렇게 행동하면 그것이 옳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시대와 사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말씀을 따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대를 바라보고 따르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회의 가치와 기준과 흐름에 자신을 적응시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분별한다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우리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디도서 3:5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무엇 때문에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에게 직접 이렇게 강조하며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말씀이 바로 여호수아가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키워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거운 책임과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을 걸머진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제일 먼저 약속의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수1: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할 것을 말씀하셨고 발로 밟는 모든 땅을 다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수1:3-6“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습니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습니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에게 7-8절의 말씀을 하시며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후에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단 하나의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라!
내가 너희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줄 것이다.
너희가 밟는 곳이 모두 너희의 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내 말(율법)을 지켜라 그것이 조건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승리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나안을 들어가서 정복하려면 엄청난 군대가 있어야하고 그들을 먹일 식량도 있어야 하고, 최신의 무기와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시기와 장소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8-9절을 보시겠습니다.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승리의 방법이며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준행하는 것,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말씀 그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승리의 핵심 원리입니다.
왜 이것이 승리의 핵심입니까?
하나님의 방법과 약속이 아니고는 이 세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강산이 바뀌어도, 세대가 변하고 문화와 가치관이 바뀌어도, 이 승리의 원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롬7: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자신의 모습 때문에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쳐서 복종(고전9: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되 행하지 않는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버려야합니다.(약1: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성도 여러분은 여호수아처럼 승리하는 삶을 통해 영광된 믿음의 자리에 올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지략을 능가하며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는 승리의 방법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 1:10-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칠 때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창22:2-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또 예수님께 부름을 받은 12제자가 그랬습니다(마9:9“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1:16-20”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호수아는 달려 나가 관리들을 불러 모아 명령합니다.
무엇을 명령합니까?
요단을 건널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요단은 곡식을 거두는 시기(수3:15“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라 물이 불어 강을 건너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흘 안에 요단을 건널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호수아는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100%믿고 그대로 행동에 옮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자기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만드시고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했던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말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상식과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수3:15-17“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가 그랬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수6:20-21“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가 그랬습니다.
여호수아의 믿음의 결과는 바로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을 때는 여지없이 패하였습니다(수7:4-6“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승리하는 삶의 세 번째 원리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방법과 생각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승리케 하여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망설이지 말아야합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풍요와 축복을 누리기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준비된 그곳에 저와 여러분이 들어가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큰 영광 돌리시는 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