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한국보다 시간이 한 시간 더 늦게 가는데 인천에서 출발한 시간이 한 시로 대만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나온 시간이 시간
으로 세 시가 좀 넘었다.
가이드를 만나서 간단한 인원체크를 하고 우리가 이용할 차로 데리고 가는데 커다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아홉 명이 투어를 하는데 대형버스를 배정받은 것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떠는데 어쨌든 새 차에다
대형이니 너무 좋다.
우리가 내린 공항이 타오위안(桃園)구에 있는 타오위안 공항으로 타이페이 시내로 들어가려면 40여분 정도 들어가야 한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대만 국립고궁박물관과 스린 야시장을 보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어서 국립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가
이드가 국립박물관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한다.
인천공항 탑승을 기다리며...집에서 공항버스 탈 때와 이 때가 제일 기분이 좋을 때다.
대만의 타오위안 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며
이렇게 넓는 차가 배정되어 기분이 좋은 일행들
고궁박물관 정면
입구에 있는 손문 상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취옥백채라는 옥으로 만든 배추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배추를 바이차이(白菜)로 읽는데 바이
차이(百財)와 음이 같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것이 중국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이기 때문에 가게마다 옥으로 만든 배추조각을
둔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본토에서 이 배추를 회수하려고 온갖 회유를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며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왔을 때 가격
에 대해서 물어보았다는데 그 때 관장의 말이 절대 팔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제주도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해서 도
대체가 그 조각에 대해서 궁금했었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있는 이 유물들은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의 전쟁인 국공내전(國共內戰) 당시에 국민당이 패
주하면서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 중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유물 29만 점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유물 60만 8천점
을 선발해서 가지고 온 것이다.
이 유물을 가지고 올 때 피난민을 이주시킨다고 미국으로부터 배를 빌리면서 피난민 대신 유물을 싣고 와서 미국의 분노를 샀
다고 하며 공산당에서 이 배를 침몰시킬려고 하다가 배를 침몰시키면 유물이 파괴되고 바다에 수장될 것을 염려하고 싣고 가
도록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본토 있었더라면 이 문화제들이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본토에서 1966년부터 76년까지 10년 동안
문화혁명이 일어나서 텔레반이나 IS가 그랬던 것처럼 각종문화제를 파괴했었기 때문이다.
유물이 너무 많아서 3개월마다 한 번씩 전시하는 유물이 다르다고 하며 다 전시하는데 40년이 걸린다고 하니 어차피 유물에
관심이 있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니라면 인기 있는 유물 몇 가지 밖에 볼 수가 없다.
시간도 없고 사실 일반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유명한 취옥백채라는 배추와 이름도 어려운 상아투화운
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 서태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할 때 사용하던 옥으로 만든 병풍, 방실이를 닮은 옥으로 만든
양귀비, 그리고 여러 옥 제품을 보는 것으로 고궁박물관 관람을 끝냈는데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사진을 찍게 한다.
취옥백채라는 배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중국 사람들이 이 배추를 값을 매길 수가 없는 보물로 보는 이유는 이 조각의 정교
함이나 유래보다는 결국 재물과 연관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으로 그들의 생각이 천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취옥백채...아무리 정교하고 아무리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주도만한 가치가 있는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하게 된 것은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기 때문이었다.
8자의 발음이 ‘돈을 벌다’는 발재(發財)의 발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8자를 좋아하여서 세계에서 온 선수나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례하게도 그 땡 여름에 올림픽을 개최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돈이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중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아주 싫어한다.
상아투화운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
대에 걸쳐 상아를 조각한 것으로 공 속의 공이 17개까지 있다고 하며 겉에서부터 파고들어가며 공 하나를 만들고 그 공을 또
깍아서 그안에 공을 또 만들고 이렇게 총 17개의 공을 조각한 기예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안에 있는 공들은 잘라 붙임이 없고 서로 붙어 있지 않아 자유롭게 회전이 가능하고, 원형구멍을 맞춰 일직선이 되게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원래 노리개 용도로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서태후가 후렴청정을 할 때 사용했던 옥 병풍 구멍이 뚫려 있다
방실이를 닮은 양귀비상....설마 이렇게 생겼을리야...아무리 현종이 눈이 삐었기로 소니
그런데 양귀비는 암내가 심하게 났다고...
고궁박물관의 보물 1호 모공정(毛公鼎)
모공정은 1843년 중국 산시성에서 출토된 2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서주(西周)의 청동 솥이라고 한다. 청동기 그릇들은 일
상에서 쓰기 위해서가 아닌 신성한 제사나 장례 의식에 사용하기 위한 제기(祭器)로 만들어졌으며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비석
이나 기물에 새겨진 글) 중에 걸작으로 꼽히는 모공정의 경우에는 32행에 497자의 아름다운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 보면 동파육을 닮은 육형석(肉形石)이나 올리브씨앗에 배를 새긴 조감람핵주(彫橄欖核舟)를 보라고 했는데 시간도 없
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해서 보지 못하고 말았다.
조감람핵주(인터넷에서)...손톱만한 올리브 씨았이라고하며
배 밑면에는 소동파의 적벽가 전문 357자까지 새겨져 있으며 문도 열리고 닫히고한다고 한다.
동파육을 닮을 육형석(인터넷에서)...마노라는 돌로 가공을 조금 하였다고 한다.
꽃보다 할배 때문에 가이드가 이곳을 백일섭 할아버지가 다리가 아파서 쉬던 곳이라는 둥 유물에 대한 설명보다 꽃보다 할배
이야기를 더 많이 해 주는데 유물에 흥미가 없고 다리가 아픈 노인들이라면 앉아서 쉬고 싶기도 하겠다는 생각이다.
내부에서 대충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다녀간 기념촬영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아침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서 대
만 맥주를 곁들여서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는데 마침 이날이 스린 야시장을 들르는 날이다.
열혈 가이드가 동북공정의 부당성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저녁을 먹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도심에 있는 놀이기구...이것만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아서
저녁 먹은 식당으로 이름이 거창하다....국가의 연회장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