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 들어갈 담력
미국의 신학교 교수이자 목회자였던 차드 버드(Chad Bird)는 외도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사역의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뒤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자신의 추락과 회복의 이야기를 담아 『방탕한 사역자의 노트』(그리심)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설교단 위에 놓여 있던 내 손이 이제는 트레일러 운전대를 잡았다.
손은 기름과 윤활유로 얼룩졌고, 손가락에는 더 이상 결혼반지가 없었다.
성직자 예복 대신 육체노동자의 작업복을 입었고, 내 예복은 다시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머리에는 안전모를, 발에는 안전화를 신었다. …
나는 여전히 수치스럽고 패배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 ‘아니, 내가 하나님을 버렸구나’,
‘아니, 그냥 서로에게 질려버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내가 더 이상 하나님의 클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그 클럽의 경비 천사들이 나를 길가로 내던진 듯했다. …
나는 너무 많은 죄를 지었고, 전능자를 너무 오랫동안 화나게 했고, 너무 많은 사람을 상처입혔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너무 많이 해버렸다.
그래서 하늘은 나를 더 이상 개의치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삶의 모든 고통을 다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만큼은 너무 잘 안다.
그 맛이 어떤지, 냄새가 어떤지, 모습이 어떤지 안다.
수년 동안 내 마음은 그런 어둠 속에 살았다.”
차드 버드 목사의 고백은 많은 그리스도인의 현실을 그대로 비춥니다.
죄로 인해 무너질 때, 우리의 가장 큰 위기는 “이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라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 가야 하는데, 바로 그 하나님께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그것이 진짜 위기입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고 결국 자살했습니다.
그가 지옥으로 간 이유는 단지 예수님을 판 행위 때문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의 용서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가면 끝까지 품고 용서하실 그 사랑을 붙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큐티를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기 때문에, 가정에 충실했기 때문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한 가지 근거만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그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담력이고, 유일한 자격입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이 몰려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리 없다.
지금의 나를 받아주실 리 없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알기나 하실까?
차라리 모르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마음을 덮칠 때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피 흘리셨음을 정말 믿는가?”
이 사실을 붙드는 것이 곧 성소로 들어가는 담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오늘도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