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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았던 섬, 차귀도
제주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작은 자구내포구. 이곳 앞바다에 제주에서 가장 큰 무인도인 차귀도가 있다.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인 곳이다. 그러나 차귀도는 처음부터 무인도가 아니었다. 여느 마을처럼 다가구가 살았고, 자체 풍속도 있었다. 인근 바다가 너무 거세 시체들이 밀려오는 게 예삿일이라 액을 막기 위해 탑을 쌓은 것이 그 예이다. 차귀도와 가까운 본섬의 용수리와 용당리에서 섬을 바라볼 때 상여 모양처럼 보인다고 해 그 지역 사람들은 차귀도 사람들과 혼인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던 차귀도는 1968년 김신조 간첩 사건 이후 무인도가 된다. 당시 사건이 벌어진 뒤 국가에선 외진 섬들은 안보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을 육지로 이주시킨다. 기록에 따르면 1973년에 3가구 12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해 이후 섬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고, 1980년대까지 농사와 어업을 위해 사람들이 드나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뒤로는 수많은 동식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차귀도에 남아 있는 거주 흔적
차귀도는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며 탐방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 배가 출항하는 횟수와 섬을 트레킹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미지의 섬 차귀도에 갈 수 있다는 자체로 두근거렸다.
차귀도 들어가기
제주도 서쪽을 도는 102번 타고 고산환승정류장에서(202번의 경우 고산 또는 고산우체국앞) 하차해 자구내포구까지 약 1.6km를 도보로 이동하면 된다. 인도가 없는 도로이지만 갓길에 자전거도로가 나 있어 걸어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네이버를 통해 차귀도 유람선 표를 구매하고 매표소에 전화하여 원하는 시간대로 최종 예약을 하면 된다. 배는 하루 두 편, 10시 30분과 14시 30분에 뜬다. 공식적으로는 비정기 운항이지만 날씨만 좋으면 매일 뜬다고 한다. 예약을 모두 하고 나서 최소 출항 20분 전까지 매표소에 도착해 승선신고서를 작성하고 표를 받으면 된다.
트레킹과 유람하며 즐기는 차귀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차귀도 여행의 핵심이다.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면 한 시간 정도 여행할 시간이 주어진다. 탐방로의 길이는 약 1.5km. 느긋하게 걷는 걸 선호하거나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기록을 남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부족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더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차귀도에서 중심이 되는 장소는 전망대와 등대이다. 선착장에서 계단을 따라 섬을 올라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빠지면 등대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돌면 전망대로 오르게 된다. 탐방을 함께 한 여행작가님과 나는 오른쪽의 전망대를 먼저 올랐다. 사람이 한 명 정도 지나다닐 수 있는 협소한 흙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니 섬의 한쪽 끝에 다다랐다. 수십 명은 거뜬히 오를 수 있을 만한 데크가 나왔다. 포구에서 불과 1~2km 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제주도 본섬의 풍경이 아주 가까이 펼쳐졌다. 왼쪽에는 거대한 탑처럼 솟은 풍력 발전기 수십 기가 돌아가는 신창풍차해안이 보인다. 정면에는 배를 타고 왔던 자구내포구와 당산봉을 볼 수 있다.
자구내포구. 가운데 서서히 솟은 봉우리가 당산봉이다.
신창풍차해안
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섬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된 무인도라는 게 물씬 느껴졌다. 날것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이 제주도에 딸린 섬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좁은 산책로를 제외한 섬의 모든 곳은 식물들로 가득했다. 곳곳에 핀 억새가 조화를 이뤄 가을 냄새를 한껏 풍겼다.
섬 반대편에 조그맣게 보인 등대는 가까이에서 봐도 아담했다. 이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직접 세운 무인 등대다. 1957년부터 불을 밝히고 있는 등대는 자동으로 어둠을 감지해 돌아간다고 한다. 차귀도엔 집터를 비롯해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데, 등대도 그 흔적 중 하나이자 소중한 유산이다. 등대는 경사가 있는 언덕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데, 이곳을 볼래기 동산이라고 한다. 당시 주민들이 직접 언덕을 오르내리며 자재를 나르면서 가쁜 숨을 내쉬었는데, 제주도 표현으로 ‘볼락볼락’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탐방객들은 이곳에서 인증샷을 찍었고, 단체로 온 사람들도 현수막을 펼치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차귀도의 핫 플레이스와도 같았다. 여러모로 차귀도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등대에서 바라본 풍경
차귀도 여행은 섬 트레킹이 다가 아니다. 돌아오는 배에선 섬의 주변을 돌며 유람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차귀도 여객선이 아니라 유람선인 이유이다. 선장님의 간단한 해설이 곁들여지는데, 차귀도를 이루는 섬 네 개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아마 많은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지실이섬일 것이다. 이름만 가지곤 그 형태와 특징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명칭을 들으면 대충 어떤 모양이겠거니 그릴 수 있다. 이 섬의 다른 이름은 독수리바위이다.
독수리바위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온다. 과거 송나라 사람 호종단은 제주도가 자신의 나라에 대적할 만한 인재가 태어나는 곳이라며 한라산의 지맥과 수맥을 끊으러 왔다. 하지만 이에 실패한 호종단은 귀중품을 약탈해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던 한라산 산신령은 독수리 한 마리를 보내 부리로 호종단을 쪼고 풍랑을 일으켜 응징했다. 여기서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고 하며 차귀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독수리바위는 화산이 폭발하며 켜켜이 쌓인 지층과 날아와서 박힌 검은 화산탄이 장관을 이룬다. 그것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게 낚시꾼들이다. 선장님의 말로는 벵에돔과 참돔이 잡히는 시기란다. 또 다른 낚시 포인트는 방어가 많이 잡히는 방어덕이 있다. 이곳에도 나란히 서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있었다. 승객들이 손을 흔들자 낚시꾼들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물고기를 많이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는 손 인사를 해보면 안다는데, 멀리서도 화색이 느껴지는 걸 보니 이날 수확이 꽤 괜찮았나 보다.
범바위 또는 병풍바위. 선착장에서 보면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형상이지만, 배 위에서 보면 병풍을 펼친 모습이다. 위치에 따라서 보이는 모습이 달라 두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와도. 임신한 여자가 손을 얹고 누워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군바위. 촛대처럼 서 있는 모습이다. 제주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여신 설문대할망의 오백 자식 중 막내라고 한다. 나머지 장군 499명은 한라산 영실 코스를 따라 오르면 볼 수 있다.
작은 선물, 돌고래와의 만남
이대로 끝난 줄 알았던 차귀도 유람에 돌고래가 선물처럼 다가왔다. 한 마리, 두 마리 물 밖으로 뛰어오를 때면 난간에 서서 보던 사람들 모두 탄성을 질렀다. 선착장으로 향하던 배는 잠시 멈춰 승객들이 편하게 돌고래를 볼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바다에서 돌고래의 움직임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부랴부랴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활용해 이 순간을 담으려 애썼다. 그러나 두더지 게임을 하듯 돌고래가 어디서 튀어나올 지 예측할 수 없고, 떼를 지어 나타난 게 아니라 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투어를 해야만 볼 줄 알았던 돌고래를 뜻하지 않게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보너스를 얻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차귀도 인근 바다도 돌고래가 종종 출몰하는 곳이라고 한다. 소소한 행운까지 누릴 수 있는 차귀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