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순간 / 김선경
유려한 선율이 흐른다. 프랑크 퍼셀의 'Merci Cherie'이다. 이 곡을 시그널 뮤직으로 쓰고 있는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70~1980년대의 젊은이라면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별과 밤의 조합이 이루어낸 감미로운 시간에 잔잔한 음악까지 곁들이면 방황하던 영혼은 평온을 되찾는다.
요즘 도시에서는 날이 맑아도 별 보기가 어렵다. 매연 등으로 가시거리가 짧아 먼 별들이 흐려지는 현상 때문이라 한다. 어쩌다 도심을 벗어나 별이 빼곡히 들어찬 밤하늘을 대하면, 큰곰자리, 오리온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 등 수많은 별자리를 헤아리던 때가 생각난다.
어릴 적 살던 집, 콘크리트로 된 2층 마당은 사방이 탁 트여 바람이 막힐 데가 없었다. 그런 연유로 여름에는 마당에서 잠자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쪽 귀퉁이에 마른 쑥 등으로 모깃불을 피워 놓고 멍석을 깔고 누우면, 반짝거리는 보석으로 촘촘히 수놓아진 밤하늘. 시커먼 윤곽을 그리는 뒷산 줄기의 아늑함으로 내 공상의 나래는 끝도 없이 하느작거렸다.
밤하늘이 연출하는 장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별들이 누워 있는 몸 위로 한꺼번에 화르르 쏟아져 내려 어지럼증을 느끼게도 하고, 별똥별 여러 개가 밤하늘을 쏜살같이 가로질러 화려한 불꽃놀이를 선보이기도 하고, 구름 띠 형상을 한 은하수는 심연 같은 미지의 세계를 어렴풋이 암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붙인 일명 똥바가지별인 북두칠성이 밤하늘의 등대 역할을 하며 온갖 망상 속으로 빠져든 나를 안전하게 꿈나라로 인도한 것이리라.
별이 뜬 밤은 화가나 음악가들에게 필생의 걸작을 만들 영감을 주기도 한다. 반 고흐는 ‘노란 집’에서 폴 고갱과 몇 주간 함께 작업을 했으나 예술관의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사이가 악화되어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고갱은 떠나버린다. 1889년, 고흐는 자발적으로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찾아가 1년간 머물면서 치료와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그때의 정신적 고통을 소용돌이로 묘사한 작품이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다.
훗날, 가수 돈 맥클린은 '빈센트-Starry, starry night'란 노래로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 "이제 알 것 같아요 / 당신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 그 영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 그것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 …." 가난한 고흐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돈이 아니라 영혼의 자유였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시절에도 별은 함께 했다. 당시 남포동에는 '별들의 고향'이라는 유명한 음악 주점이 있었다. 그곳은 그 시절 부산의 청년 문화를 견인하던 장소였다. 어느 날 부서의 젊은 직원들과 단체로 들르게 되었다. 내가 신청한 스모키의 'Living Next Door to Alice'는 집에서 LP판으로 즐겨 듣던 곡으로, 24년간 이웃으로 살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그녀는 떠나갔다는 내용이다. 그때 '별들'에서 디스크자키의 구수한 음성으로 곡 소개를 듣던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고 알콩달콩 잘들 살고 있는지….
별에 대한 추억거리에는 이런 사연도 있다. 회사에 다닐 때 나는 총각회 회장이었다. 그것은 나이가 제일 많아서 써야 했던 불명예스러운 감투였다. 재임(?) 중 크리스마스를 기해 직장 미혼 남녀들 숫자를 맞춰 객지 생활을 하는 총각 직원들의 하숙집에서 올나이트를 했다.
그날 미리 짜놓은 일정표에 따라 짝짓기 게임을 시작했다. 방바닥에 던져진 여러 개의 쪽지 중에서 먼저 '이수일'이 된 나는 '심순애'를 집어든 기관장실의 K양과 파트너가 되었다. 2시간 정도 주어진 자유 시간에 용두산공원으로 데이트를 나갔다. 불꽃축제가 예고되어 청춘 남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내성적이라 소심하게 쭈뼛거리던 순간, "와자자작" 하는 밤하늘의 까만 액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화려한 불꽃들이 머리 위로 팝콘처럼 터졌다. 크고 작은 원들이 반 고흐의 별처럼 소용돌이를 쳤다. 한껏 들뜬 우리는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잡았다. 만약 같이 간 직원들의 눈이 없었다면 새로운 역사가 써졌으리라.
이런 특별한 순간의 이야기는 신화에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카이로스Kairos는 기회의 신으로 불린다. 신은 앞머리는 길지만, 후두부는 벗겨져 있어 뒤로는 잡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 신이 찾아왔을 때 뒷머리를 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하고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정치권에서 널리 회자되는 말에 '별의 순간'이 있다. 독일어인 '슈테른슈툰데Sternstunde'에서 비롯된 용어로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을 뜻하는 은유로 쓰인다. 1927년에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인 슈테반 츠바이크가 발표한 베스트셀러 《인류의 별의 순간》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츠바이크는 서문에서 "운명적인 순간이 닥치면 하루, 한 시간, 심지어는 단 일 분 만에 훗날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별의 순간을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놓친 운명의 순간은 언제일까? 언뜻 한순간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삶도 주어진 조건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잡은 별의 순간일진대….
오늘은 나도 추억 속의 '별밤지기'가 되어 저 하늘 고운별이 된 빈센트의 'Starry, starry night'를 틀어놓고, 그의 영혼의 세계에 흠뻑 빠져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