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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자 파리 최고의 박물관
(루브르 , Louvre Museum , Musée du Louvre)
루브르가 최초로 박물관이 된 것은 1793년으로,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긴 뒤 초기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 전시하는 소극적 의미의 미술 전시관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수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 예술품을 매입, 선물, 약탈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모하였다. 루브르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크게 인류의 4대 문명의 시원을 나타내는 고고학 유물과 그리스도교 전례 이후의 서양 문명, 중세 예술, 르네상스 예술, 근대 미술 및 극동 지역 미술품으로 나누어진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원래는 바이킹의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요새였다. 이후 16세기 때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새롭게 개조되었고, 이어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등 많은 왕족들이 4세기에 걸쳐 루브르 궁전을 확장하고 개조했다. 하지만 루이 15세(Louis XV)가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기고 나서 루브르는 주인 없는 궁전으로 방치되다가 나폴레옹 1세가 다시 루브르 궁전에 관심을 갖고 미술관으로서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고, 나폴레옹 3세가 1852년에 북쪽 갤러리를 완성하면서 오늘날 루브르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 후 1981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계획으로 전시관이 확장되고 1989년 박물관 앞에 건축가 I.M. 페이(Ieoh Ming Pei)의 설계로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대변신을 하게 되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225개 전시실에는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유물, 왕실 보물, 조각, 회화 등 40만 점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2017.4.22)
개관 시간
(월, 목, 토, 일) 09:00~18:00 (수, 금) 09:00~22:00까지, (12월 24~31일) 09:00~17:00까지
화요일, 1월 1일, 5월 1일, 11월 11일, 12월 25일 휴관
가격
12유로 (들라크루아 미술관, 나폴레옹관은 입장 불가)
나폴레옹관 : 13유로
나폴레옹관 + 들라크루아 미술관 + 루브르 통합 티켓(Billet Jumelé) : (일반) 16유로
뮤지엄 패스 사용 가능
10월~3월 매월 첫째 주 일요일, 7월 14일 무료(나폴레옹관 제외)
가는법
Mètro : 1, 7호선 팔레 루아얄 뮈제 드 루브르(Palais Royal Musée du Louvre) 역에서 1분
1호선 튈르리(Tuileries) 역에서 도보 1~2분
1호선 루브르 리볼리(Louvre Rivoli) 역에서 도보 1~2분
7호선 퐁네프(Pont Neuf) 역에서 도보 2~3분
버스 : 21, 24, 27, 39, 48, 67, 68, 69, 72, 81, 95번
* 루브르 박물관 입장하기
루브르 박물관 마당 중앙의 유리 피라미드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가장 큰 출입구라서 항상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메트로를 이용해 루브르에 간다면, 1호선 7번 출구로 빠져나가면 바로 루브르 지하로 도착하니 입장이 훨씬 수월하다. 만약 다른 방법으로 도착했거나 출구를 잘못 나왔다면, 카루젤 개선문 양옆으로 내려가는 지하도를 따라 내려가면 곧바로 루브르 박술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 한글 오디오 가이드 사용하기
루브르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PDA로 되어 있는 루브르 오디오 가이드는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빌릴 때는 신분증을 주어야 하며 금액은 6유로이다. PDA 화면으로 음성과 작품 화면을 볼 수 있다. 1시간짜리 속성 코스를 비롯해 다양한 속성 코스로 오디오 가이드가 잘 설명해 준다.
반지층, 1층
프랑스의 5~18세기 조각들과 메소포타미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중세실, 르네상스실, 17세기실, 나폴레옹 3세실, 19세기실 등으로 나뉘어 장식 미술품을 전시한다. 특히 르네상스실과 나폴레옹 3세실은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루는 장식 미술의 세계를 보여 준다.
3층
회화관으로 플랑드르 화파와 네덜란드 화파, 독일 및 14~17세기의 프랑스 회화를 전시한다. 가장 유명한 곳은 18전시실 메디치 갤러리(Galerie de Médicis)이다. 플랑드르파의 대표적인 화가 루벤스가 마리 드 메디시스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마리 드 메디시스의 일대기를 표현한 24점의 대형 그림이 있다.
반지층
중세의 루브르 궁전의 모습을 복원한 성채.
1층
고대 이집트, 그리스, 지중해 및 페르시아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12전시실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가 가장 유명하다.
2층
그리스의 토기 작품과 테라코타, 이집트 유물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17~19세기까지의 오브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3층
회화 전시관으로 17~19세기까지의 프랑스 회화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반지층
11-15세기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조각 작품 및 로마 시대의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
고대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16~19세기의 이탈리아 조각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2층
입구에는 양 날개를 뒤로 젖힌 채 비상을 준비하는 듯한 머리 없는 여신인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니케상)이 있다. 이탈리아 회화 전시실 중 6전시실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 77전시실과 75전시실은 프랑스 대형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박물관 관람 순서는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할 때 작품을 시대별로 관람하거나, 각 관별로 관람한다면, 시간이 아주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동선을 줄이면서 최대한 많은 작품을 두루 둘러볼 수 있도록 박물관 관람 순서를 추천한다.
박물관 관람은 반지층의 쉴리관으로 입장해서 → 중세의 루브르를 둘러본 후 스핑크스를 보며 → 1층으로 올라가 → 고대 그리스 7전시실의 〈밀로의 비너스〉를 관람하며 → 드농관으로 넘어가 고대 에트루리아 및 로마의 유물들을 관람한 후 → 16~19세기의 이태리 조각들을 보고 → 다시 니케상 쪽으로 2층으로 올라간다. → 니케상을 본 후 13~15세기 이탈리아 회화와 16~17세기 이탈리아 회화까지 관람하며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한 작품들과, 라파엘로 등의 대작들을 보고
→ 프랑스 회화 대작이 있는 77, 75전시실을 관람한 후 → 다시 니케를 지나 아폴로 갤러리의 루이 15세 대관식 왕관의 다이아몬드를 관람한 후 → 쉴리관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간다. → 3층의 프랑스, 네덜란드, 플랑드르 회화를 둘러보고 → 2층으로 내려가 → 리슐리외 관의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를 둘러본 후 → 1층으로 내려와 → 함무라비 법전 등 메소포타미아의 유물들을 관람 후, → 1층과 반지층에 걸쳐 있는 프랑스 1~19세기 조각들을 관람하면 된다.
루브르가 궁전으로서 파리 시의 성채로 사용될 때의 흔적으로 벽면을 자세히 보면 ♡ 같은 표시를 볼 수 있는데, 벽돌을 쌓을 때 제대로 맞추기 위해서 방향을 표시한 것이다.
루브르의 이집트 문명 전시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높이 183m, 너비 480m의 대형 작품이다. 머리는 사람, 몸은 사자인 스핑크스의 얼굴은 왕의 모습을 나타냈다. 원래 스핑크스는 그리스어로 괴물이란 뜻이나, 이집트에서는 신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머리에는 메메스라고 부르는 풀을 먹인 두건을 쓰고 있는데, 사자는 힘을 나타내며 이집트인들에게는 태양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 위에는 역대 이집트 왕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0세기의 아메네마트 2세의 것이다.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조각상은 팔이 없다는 사실로 더 유명해졌는데 반쯤 입은 옷 때문에 비너스라고 여겨졌다. 약 2m 높이로 1820년에 밀로스 섬에서 출토되어 〈밀로의 비너스〉라고 불린다.
왼쪽 다리가 약간 더 긴 형태로 기원전 130~100년 때 유행하던 스타일이었고 가장 완벽한 인체 비율을 구현한 것으로 유명하며 두 팔도 없이 비스듬하게 몸을 비틀고 서서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 여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약간 남아 있는 오른팔에 비해서 왼팔은 상상이 어려운데, 팔을 들어 물건을 드는 모습일 수도 있고 팔을 그냥 기둥에 기대게 했거나, 신상이 여러 개 있어서 옆의 인물에 왼팔을 두르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고전 양식과 헬레니즘 양식이 적절히 조화된 이 조각은 정교한 세부 묘사와 부드러운 표정 묘사가 특징으로, 고대 그리스 조각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힌다.
벨베데르의 아폴론과 닮은 다이아나는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소장품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장식하는데 사용하려고 만들어져서 베르사유의 다이아나라고 불린다.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으로 태어난 양성구유는 잠이 들어 뒤척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불이 마치 몸을 구속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며 반대쪽을 보면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이탈리아 미술품 중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공격을 피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왼편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사람과 전투 중인데 아마도 말을 탄 적과 싸움 중일 듯하다. 모델은 검투사일 듯하지만 시대 상황으로 보아 검투사이기엔 어린 나이이고, 그리스는 검투사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의 영웅으로 추정한다.
미모가 뛰어나 미의 여신 비너스에게 미움을 산 프시케는 자신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떠나버린 큐피트와의 이별을 후회하며 비너스에게 찾아간다. 비너스는 프시케에게 갖가지 시련을 주는데, 어느 날 프시케는 절대로 열지 말라고 했던 병을 호기심에 열어보고 그만 죽음의 잠에 빠지게 된다. 안토니오 카노바의 이 작품은 치명적 죽음의 잠에 빠진 프시케를 큐피트가 사랑의 키스로 깨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이 노예상은 율리우스 2세의 묘비 아래에 설치하려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율리우스 2세의 거대한 영묘는 완성되지 못했으며, 모세상과 노예상만 남아 있다. 오른쪽 노예는 청년의 몸으로 졸리거나 잠이 든 모습이고 왼쪽의 노예는 반항하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만 모습이다. 역동적이며 속박에도 불구하고 천상을 바라보고 있다.
기원전 190년경에 제작된 이 여신상은 몸을 3/4 정도 각도를 튼 형태로 여신이 배에 내려 앉은 상태며 옷의 모양에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특히 배 부분에서 배꼽이 움푹 들어간 곳의 살집이 인상적이고 얇고 투명한 옷은 바람의 힘에 의해서만 몸에 지탱되고 있다.
머리 부분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배에 막 내려 앉아 날개를 접고 있는 이 여신상은 에게 해의 작은 섬 사모트라케에서 발굴되어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중에 손이 발견되어 승리의 여신의 바로 옆에 전시되어 있다.
지오토(Giotto)의 작품으로 성흔(그리스도의 상처)을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성인과 오른쪽 위로 그리스도와의 시선이 교환되고 있다. 아랫 부분에 그려진 세 개의 그림은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각각 교황 인노센트 3세의 모습과 그가 수도회의 규약을 승인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치마부에(Cimabue)의 초기 작품으로 예전에 성당을 장식했던 패널화인데 윗부분이 뾰족한 5각형으로 되어 있다. 액자는 그리스도, 천사들, 예언가들과 성인들을 나타내는 총 26개의 메달로 장식되어 있다. 13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황금색 바탕과 정형화된 인물의 표정에서는 비잔틴 성화의 특징이 보인다. 그러나 섬세한 옷의 주름과 입체감, 표정 등에는 비잔틴 회화가 주는 어두운 느낌보다는 르네상스의 밝은 모습이 시작되고 있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작품으로 프라 안젤리코는 최초로 회화에 건축학적 기법을 도입한 화가로서, 피렌체 르네상스의 선두에 섰던 화가다. 15세기 초 · 중반에 그려진 이 작품은 본격적인 르네상스가 시작하는 성당의 제단 패널이다. 하늘과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 성인들이 입은 푸른 옷 색깔은 화사하고 투명하며 원근법이 도입되어 그림의 앞쪽과 뒤쪽 사이의 공간이 명확히 구분된다.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작품으로 세바스티아누스 성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는 로마의 사수대장이었는데 자신의 부하에게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를 쏜 부하의 얼굴은 그림의 아래쪽에 묘사되어 있는데 좌측 인물은 이가 없고 우측 인물은 눈이 돌출되어 있다. 성인의 몸은 근육이 발달되어 있고 고통은 얼굴에서만 느껴진다. 특히 이 그림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으로 그 전에는 그림을 나무에 그렸기 때문에 굉장히 혁신적이었다고 한다. 왼쪽에 위치한 돌과 잎사귀 장식이 꽤 정확히 묘사되어 있고, 앞쪽 오른쪽에 사람들을 넣어서 원근법의 효과를 강조했다.
동굴 속에 성모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있고, 마리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어린 세례자 요한, 왼쪽에 천사와 아기 예수가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어린 세례 요한을 수호의 팔로 감싸고 있고 세례 요한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으며, 아기 예수는 이에 답하여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고 있다. 천사는 아기 예수를 보호하고 있으면서 세례 요한을 가리키고 있다. 이 작품은 흐리게 표현하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유명하다. 다빈치는 이 작품을 두 점을 그렸는데 두 번째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나무 판에 그려진 비교적 자그마한 그림인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부유한 상인의 딸 리자 게라르디니로 후에 지오콘도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가 본인의 모습을 그렸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뒤로 하고 발코니의 팔걸이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살짝 몸을 틀고 있는 모델은 임신 또는 결혼 등 기쁜 일이 있음을 암시하는 신비스럽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는데 아마도 다빈치와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작품 역시 스푸마토 기법으로 자연스러운 효과를 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에서 이 그림을 그렸지만, 훗날 프랑스의 왕 프랑스와 1세에게 팔기 전까지 언제나 가지고 다닐 만큼 애착을 보였던 작품이다.
베로네즈라고 불리는 파올로 칼리아리가 그린 작품으로 루브르에 전시된 작품 중에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폭이 거의 10m에 가까운 크기의 이 그림엔 130명이 등장하는데 베니스 회화의 거장들을 음악가로 등장시켰다. 이 그림의 주제는 가나의 결혼식인데, 배경은 마치 베니스의 한 연회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나의 결혼식은 아주 가난한 결혼식이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말을 하고 있는 인물은 한 명도 없지만 마치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측에 노란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항아리에 붓고 있는 물의 색이 붉은 것으로 보아 예수의 첫 번째 기적,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포도주는 미사 중에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곧 성찬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겹겹히 겹친 주름으로 육중한 목선과 부푼 발에서 볼 수 있듯 마치 물 속에서 익사한 시체처럼 묘사된 성모 마리아는 실제로 그림을 그릴 당시 강에서 발견된 창녀의 시체를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성당에 걸어 두기 위해서 의뢰된 작품인데,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성스러운 모습이 하나도 표현되지 않은 이 작품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성모의 죽음을 예수의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림에는 성부, 천사, 영적인 인물 등 성스러운 인물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의 시신 앞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우는 여인은 마리아 막달레나이며 주변에 둘러선 제자들도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흐느끼는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선으로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등장인물들에게 깊이를 더해 주는데 이러한 효과를 명암 대조법이라고 하며 카라바조가 그 창시자였다.
들라크루아 작품. 공화국을 세우려는 민중들이 일으킨 1830년 7월 혁명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인데, 여신의 뒤를 따라 죽은 동지들의 시체를 넘으면서 삼색기를 들고 진격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담았다. 삼각형의 구도로 그려진 그림으로 자유의 여신의 오른편에 총을 들고 있는 인물이 들라크루아 자신이다.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작품으로 삶, 죽음, 희망을 묘사했다. 배경은 실제 세네갈 해안에서 범선 메두사가 난파되어 150명이 하나의 뗏목을 타야 했고, 바다에서 12일간 버티다 15명만 구출되었던 사건을 묘사했다. 피라미드형 구도로 그려진 이 그림 속에는 영웅이 없고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인간의 비극을 그렸다. 이 그림으로 낭만주의가 탄생하였다.
앵그르의 작품으로 오달리스크라는 뜻은 터키 황제 술탄의 애첩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그림은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체류하는 동안 라파엘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커튼과 침대 보의 주름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며 유난히 긴 허리를 가진 이 여인의 척추를 실제로 측정해보면 정상적인 인간보다 뼈마디가 3개 정도가 많은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해부학적으로 잘못된 점 때문에 비난을 받았지만 작가는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해부학적인 상식을 깨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직접 선택한 궁정 화가인 루이 다비드(Louis David)는 왕족의 모습을 단순하게 초상화로만 그리기보다는 그 역사적 의의를 교묘하게 담은 대작을 주로 그린 화가이다. 이 작품은 9.8m×6.2m의 거대한 그림으로, 나폴레옹 황제의 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는 대신 교황을 파리로 초청하여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한 대관식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재현하는 대신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어주고 있는 모습을 선택했다. 이 그림은 3년 동안 그려졌으며 등장하는 200명의 인물 중 약 75명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이 그림에는 당시에 참석하지 않은 나폴레옹의 어머니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조세핀과의 결혼을 반대해서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생 드니 수도원 보물고의 보물 중 하나인 이 왕관은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프랑스 왕의 왕관으로 대관식이 끝난 후 원래의 보석들을 미리 본떠 수도원에 기증한 것이다. 왕관의 앞쪽에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왕관에 붙어 있던 실제 다이아몬드가 보관되어 있는데, 이 다이아몬드는 루이 16세, 샤를 10세 등 다른 대관식마다 계속 사용되었다고 한다.
앵그르가 82세 때 완성한 작품으로 처음에는 사각형으로 만들었던 작품이었는데 나폴레옹이 구입하고 난 후 다음해에 다시 찾아 원형으로 만들었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으로 어둠과 빛의 강렬한 대비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부자답게 옷을 입은 돈 많고 어리숙한 귀족집 아들이 노련한 사기 도박꾼들에게 농락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옆의 하인이 포도주를 따라 주면서 청년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고 그 사이 다른 여인은 뒤에 감추었던 카드를 꺼낸다.
앙리 4세의 애첩과 그 여동생을 그린 그림으로 오른쪽이 가브리엘 데스트레, 왼쪽은 여동생이다. 젖꼭지를 잡는 행위는 곧 그녀가 임신을 할 것임을 나타낸다고 전해지고 반지를 쥐고 있는 것은 정조의 증거이다.
캉탱 메치스의 작품으로 이 그림은 공정성, 정평성, 도덕적인 암시를 묘사한다. 영혼의 무게를 재는 듯한 여인은 성무일도를 읽으면서 남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좌측 하단의 물병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나타낸다.
루벤스가 그린 24점의 메디시스의 생애 그림은 앙리 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의 일대기 중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만을 골라 모두 24점의 거대한 회화로 남겼다. 1번부터 24번까지 일련 번호와 함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네덜란드의 램브란트(Rembrandt Harmenz van Rijin)의 그림으로 은유와 상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밧세바는 성서 속의 인물로, 남편을 잃고 나서 다비드 왕의 청혼을 받고 재혼한 후 그 후손을 낳은 여인이다. 그림 속의 밧세바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욕조에 걸터앉아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다비드 왕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밧세바가 손에 쥔 편지 한 장으로 가장 극적인 역할을 한다. 즉 목욕하는 밧세바의 모습을 보고 반한 다비드 왕이 그녀에게 청혼을 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은은한 빛은 여인의 누드를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하는데, 이는 베네치아 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베르메르의 걸작 중 하나로, 24X21cm의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레이스를 뜨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작은 화면에 빛과 색채가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다.
네덜란드의 풍경 화가인 자코브 반 루이스달(Jacob van Ruisdael)의 작품으로 전혀 사실 같지 않은 풍경을 묘사했는데 자연의 모습을 재 창조해 완벽한 순간을 묘사했다.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루이 비스콩티와 엑토르 르퓌엘 등이 만든 이 아파트는 천장, 상들리에, 태피스트리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특히 가장 큰 응접실과 식당 등이 볼 만하며 궁전으로 사용되기 위해 실제로 장식된 것이다. 가구도 원래의 가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높이 4m의 사람 머리에 날개를 가진 황소상은 코르사바드의 사르곤 2세 왕궁(Le Palais de Sargon II à Khorsabad)의 정문을 장식하던 것으로 기원전 8세기의 것이다. 사르곤 2세는 니느베 부근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거대한 성채를 지었는데 라마쑤로 불렸던 이 수호신들은 세상의 기초를 보호하는 정령들이었다. 다섯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정면에서 보면 서 있는 것 같지만 옆에서 보면 마치 걷는 것처럼 보인다.
기원전 19세기 초 바빌론에 설립되었던 함무라비 법전은 여러 비석에 새겨지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완본을 보유하고 있다. 이 법전은 높이 2.25m의 검정색 현무암으로 1901년에 자크 드 모르간에서 발굴되었다. 법전 맨 윗부분에 새겨진 부조는 왕과 신이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오른쪽이 신으로 소의 뿔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왕의 상징인 지팡이와 반지를 건네고 있다.
이 법전에는 300개의 판결문이 적혀 있는데 이는 함무라비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대강의 내용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자는 똑같이 눈을 멀게 하고, 자신의 다리를 부러뜨린 자 역시 다리를 부러뜨리라는 내용이다. 또한 아내가 순종적이지 않고 외도하면 물속에 던지라는 내용도 있다.
중세 조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브르고뉴에서 만들어졌다.
거의 실물 크기로 제작되었는데 검은 두건을 쓰고 옆구리에 방패를 단 채 고개를 푹 숙인, 수도자로 보이는 여덟 명의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상여를 메고 무덤가로 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시토 수도회 내의 성당에 있던 것을 미술관으로 옮겨왔는데, 인물의 표정을 표현함으로써 감정을 이입시켰던 고대 조각과는 달리 인물의 행동과 분위기로 감정을 전달한다. 여덟 명의 수도사는 망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옆에 찬 방패는 죽은 이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욤 쿠스투 1세가 만든 이 조각은 아프리카 혹은 아메리카산의 야생마를 붙잡으려는 마부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말 길들이기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높이 2.70m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이 조각상은 크로톤의 힘과 지혜의 영웅 밀론을 묘사한 것이다. 늙은 투사 경기자 밀론은 나무 기둥을 맨손으로 자르며 강한 힘을 증면해 보이고 있는데 벌어진 나무 사이에 손이 끼어 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사자가 뒤에서 공격해 오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