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려 받은 영적 유산”
히12:1,2,딤후2:2,빌4:9
부족한 사람이 강변교회에서 은퇴 한 후 지난 3년 동안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주일마다 또는 주중에 전국에 있는 주로 작은 교회들을 찾아 다니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오늘은 아주 큰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고마운 마음도 들고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제가 명성교회를 아주 좋아하는 이유들 중에 두 가지는 명성교회가 새벽 기도를 강조하고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을 비롯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새벽 기도와 주일 성수를 강조했는데 명성교회가 지금도 세상 유행을 따르지 않고 새벽 기도와 주일 성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너무너무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저녁 “우리가 물려 받은 영적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선조들과 선배들로부터 물려 받은 가장 값진 유산은 은이나 금 같은 잠시 후에 없어질 물질적인 보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선조들과 선배들로부터 물려 받은 가장 값진 유산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소망과 같은 영적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값진 영적 유산은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로부터 물려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난 주 금요일 아침 방지일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건의 삶이란 내가 수양을 쌓는다거나 내 아이큐를 개발하거나 발휘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주시는 것을 받음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인 유산은 물려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것을 우리들에게 전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15:3).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기에게서 배우고 ‘받고’ 본 바를 행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4:9).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물려 받아야 하고 그리고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물려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려 받은 영적 유산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왔고 그 다음에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허다한 믿음의 선배들과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히브리 11장에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허다한 믿음의 선배들에 대한 사적을 기술한 다음 12장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은 도서관에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혼자 명상을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물려 받아야 생기고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물려 받아야 생기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기도의 유산은 어머니 한나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었고, 디모데의 믿음의 유산은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그리고 사도 바울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은 아버지 손종일 장로님과 어머니 김은수 집사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 평생 지니며 살게 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도 예수님으로부터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물려 받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은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일이 아니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을 물려 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물려 받은 영적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특히 제가 물려 받은 영적 유산에 대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저는 평양에서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으로부터 아무하고도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순교 신앙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목회하시는 동안 일본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다가 여러 번 붙잡혀 가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감옥을 찾아가서 감옥 안에 계시는 아버지가 들으시라고 담장 밖에서 “뜸북 뜸북 뜸북 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도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노래를 목청을 높여서 부르곤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후에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동안 공산당과 타협하지 않다가 붙잡혀 가서 사동 탄광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아무와도 타협하지 않으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순교 신앙이라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보고 느끼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일날에도 학교에 오라고 하는 학교와 타협하지 않고 주일을 끝까지 성수하다가 학교에서 벌을 받기도 했고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에게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 신앙의 뿌리를 내리도록 저를 가르쳐주신 분들은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선생님, 명선성 선생님, 최병목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여기서는 주일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바라보시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며 저 없이는 못 살겠다고 말씀하시던 저의 어머니도 우시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11살 난 맏아들을 한 평생 떠나 보내는 슬픔과 아픔을 감수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11살 때인 1948년 8월 38선을 넘어서 남쪽을 왔습니다. 함께 넘어오던 어른들은 모두 인민군인들에게 붙잡혔고 저만 혼자서 산과 들과 강을 뛰어넘어 남쪽으로 왔습니다. 남쪽으로 온 후 몇 년 동안은 저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지만 한편으로는 주일을 마음껏 지키며 신앙생활을 마음껏 하게 된 것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순교 신앙의 영적 유산과 희생적인 사랑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둘째로 저는 6.25 사변 때 대구에서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은혜 사모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제가 피난 시절 대구에서 3년 동안 중학교를 다닐 때 이성봉 목사님께서 몇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를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곤 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의 설교를 빨아 먹듯이 온 몸으로 받아드리곤 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와 감동을 받곤 했는지 모릅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하고, 새벽기도를 하라고 하면 새벽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하라고 하면 철야기도를 하고, 성경을 암송하라고 하면 성경을 암송하고,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하면 안수기도를 받고, 이성봉 목사님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금요일 철야기도를 마치고 토요일 새벽 안수기도를 받을 때는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저를 알아보시고는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 되는 거지. 고놈 기특하다” 라고 칭찬해 주시면서 기도해주시곤 했습니다. 특별히 회개의 메시지와 은혜 사모의 메시지는 저에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의 메시지는 저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고, 은혜 사모의 메시지는 저의 삶을 지탱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은혜 사모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셋째로 저는 서울로 올라와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은혜 사모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제가 서울로 올라와서 창동교회와 대창교회를 다니면서 창동교회와 대창교회를 담임하시던 김치선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한국의 예레미야이셨고 한국교회 기도운동과 부흥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은 물론 김치선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게 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셨고 그리고 2만 8천 여 동내에 우물을 파게 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에는 남산에 올라가서 30여분 동안 더 성경을 보며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와서는 아침 밥을 먹고 서울 고등학교를 30여분 동안 걸어서 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어디든지 따라다녔는데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연초 마다 3일씩 금식 기도를 하라고 하면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너무너무 잘 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갔습니다. 왕십리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며 아이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전도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천막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한양제일교회」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어른들 60여명이 모였습니다. 어떤 젊은 엄마 교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한양제일 교회가 제일 좋아요.” 제가 주일 오후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노방전도를 하는 것을 어떤 교인이 보고는 천사가 전도하는 것 같다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과 같은 눈물과 기도의 목사님을 저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은혜 사모와 전도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넷째로 저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에 있던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사 들고 남산에 올라가 숲 속에서 하루 종일 저녁이 될 때까지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나병 환자들을 그렇게도 극진하게 사랑한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 같은 공산당을 불쌍히 여기면서 그를 용서하고 사랑한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본 받고 싶은 신앙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의 유산을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새벽기도의 신앙과 주일 성수의 신앙과 십일조의 신앙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저는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새벽기도의 신앙과 주일 성수의 신앙과 십일조의 신앙을 물려 받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또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손양원 목사님이 지어서 부르시던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노래의 가사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깊은 감동을 받곤 합니다. 그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10월 21일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결국 손양원 목사님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가슴으로 안재선을 품으면서 그를 살렸습니다. 저는 참으로 극도로 이기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었지만 손양원 목사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부스러기를 체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저도 모든 사람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기를 소망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또한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천국과 종말신앙에 의해 지배된 소망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가슴과 의지와 시선은 세상이나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았고 오직 천국과 내세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평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옥중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는데 저는 그 노래의 가사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천국을 바라보며 사모하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순교 신앙을 지닌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생명을 다 바쳐 나환자들과 원수를 사랑한 사랑의 성자들이었으며, 천국을 바라보며 산 소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사람인데 손양원 목사님 내외분으로부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의 부스러기를 보물로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섯째로 저는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 눈물과 참회, 긍휼과 사랑 그리고 협력과 화평의 영성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제가 애기 때부터 한경직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한 평생 한경직 목사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 큰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온유와 겸손의 목사님이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온유와 겸손과 부드러움의 목사님이었습니다. 제가 무례한 부탁을 드린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부드럽게 들어주시곤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또한 맨날 우시면서 참회의 기도를 드린 눈물의 목사님이었습니다. 자기 죄와 민족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시면서 맨날 우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또한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를 받으시고 모두를 사랑하신 긍휼과 포용과 사랑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원수도 없었고 분노도 없었습니다. 독재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고 그리고 자기에게 해를 끼친 일본과 북한을 위해서도 마지막까지 눈물로 기도하시다가 가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또한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모두와 협력하시면서 모두와 화평을 추구하신 협력과 화평의 목사님이셨습니다. 끝으로 한경직 목사님은 물욕을 내어 던진 삶이 깨끗한 청빈의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우리들에게 물려주신 예수님 닮은 삶을 다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 탄신 100주년 기념학술대회 발제 강연에서 한경직 목사님의 삶과 사역을 일곱 가지로 기술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고난과 약함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참회와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기도와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넷째, 설교와 전도를 쉬지 않은 복음전파의 목회자였습니다. 다섯째, 돌봄을 쉬지 않은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였습니다. 여섯째, 화평을 추구한 협력의 목회자였습니다. 일곱째, 민족과 세계를 품은 역사의식의 목회자였습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곤 했습니다. 제가 남한산성으로 한 목사님을 찾아 뵐 때마다 한 목사님은 제 손을 붙잡고 “아버지, 아버지” 하시면서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를 부르시곤 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들으시고는 언제나 “좋아, 좋아” 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한 목사님을 돌아보시던 백운경 장로님은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한 목사님이 김 목사님 오면 제일 좋아하시지요.” 너무너무 황송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 눈물과 참회, 긍휼과 사랑 그리고 협력과 화평의 영성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할 것은 세상의 유행도 아니고 세상의 가치관도 아닙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 닮기를 소원하며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우리들에게 물려준 영적인 유산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고이 간직하고 나타내면서 예수님 닮은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의 유산을 고이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순교 신앙을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회개와 은혜 사모의 영적 유산을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영적 유산을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온유와 겸손, 눈물과 참회, 긍휼과 사랑, 협력과 화평의 영적 유산을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삶이 깨끗한 청빈의 영성까지 고이 간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