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雨天으로 풀에 물이 맺혀서 신현리 둘레길로 변경하여 봉생정에 올라온 野草, 海山, 樂山의 모습...11:32:54
野草의 수고로 진남휴게소에 주차하고, 안개가 기득한 고모산성 방향으로 오른다....09:03:21
관리인이 낙엽을 쓸고 있어 인사를 건내고, 문경오미자테마터널 앞을 지나서 고분군으로 오른다...09:08:59
진남교반의 옛길인 토끼비리를 품고있는 병풍바위의 가을 풍경이 안개 속에 묻혀있다...09:17:02
문경 신현리 고분군의 윗쪽으로 올라서 처음 만나는 무덤이다. .....09:18:09
1차 발굴지역 1호분
형식 :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 시대 : 6세기 전반
무덤방규모 : 길이 932cm, 너비 967cm, 최대높이 73cm
시신을 눕히는 공간규모(주검대) : 길이 360cm, 너비 120cm, 최대높이 130cm
나온 유물 : 짧은 목 항아리, 반(盤), 그릇받침,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굽 접시 등 9점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구덩이를 파고, 강돌을 사용하여 벽을 만들었다. 이 무덤에서는 벽을 만드는 과정에서 강돌 28개를 일정 간격으로 들여쌓아 만든 선반형태의 구조가 특징인데, 이 공간은 위에서 볼 때 시신이 놓이는 바닥공간과 같은 규모로 만들어져 주검 공간 또는 무기를 놓는 공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신라 고분에서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는 특수한 구조에 해당된다.
문경 신현리 고분군의 윗쪽으로 올라서 두번째 만나는 무덤이다. .....09:18:26
1차 발굴지역 2호분
형식 : 횡구식 석실묘(앞트기식 돌방무덤) 시대 : 삼국시대 6세기 중엽
무덤방규모 : 길이 310cm, 너비 164cm, 최대높이 166cm
시신을 눕히는 공간규모(주검대) : 1차 길이 220cm, 너비 86cm, 높이 26cm
2차 길이 220cm, 너비 72cm, 최대높이 22cm
나온 유물 : 짧은 목 항아리, 굽다리 긴 목 항아리, 굽다리 접시, 손잡이 잔, 발가락바퀴, 금동제 귀걸이, 은으로 도금한 말 꾸미개 등 47점
2호분은 1차 발굴지역에서 가장 큰 고분으로 출입구가 북쪽에 만들어진 점이 특이하다. 하나의 봉토 안에 앞트기식 돌방무덤 1기, 구덩식 돌덧널 무덤 3기를 만든 무덤군으로, 이와 더불어 고려시대에 토기 가마 2기가 추가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봉토에 큰 무덤이 중앙에 만들어지고 가장자리에 여러 개의 작은 돌덧널무덤이 만들어지는 예는 신라 고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서 순장(殉葬) 또는 딸린무덤(陪家)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2호분에서 중앙에 만들어진 앞트기식 돌방무덤(2-1호)에서는 2명의 시신이 매장된 흔적이 있는데 2명의 시신을 눕히는 공간으로 확인되었으며, 금동제 귀걸이와 은으로 도금한 말 꾸미개 등이 출토되어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무덤으로 여겨진다.
신현리 고분군 가마터(1차 발굴지역 2호분 내).....09:19:55
형식 : 지하식 등요(登窯) 시대 : 고려시대(.AD 970년~1030년 사이) 나온 유물 : 토기편 목탄
고려시대 초기의 토기 가마로서 삼국시대 고분의 봉분을 파고 만든 지하식가마이다. 당시 발굴조사에서 가마와 함께 딸린 시설(부대시설)과 잘못 만들어진 토기를 버린 곳(폐기장)이 함께 조사 되었다. 문경지역에 남아 있는 도자기 가마는 대부분 17세기 이후의 것이어서 가마의 역사를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신현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가마로 인해 문경지역 도자기의 역사가 최소한 고려시재 초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석현성의 진남문(鎭南門 :深耕 황규욱 글씨) 앞에서 樂山, 海山, 野草의 모습....09:29:32
석현성 주막거리를 관리팀이 깨끗이 청소를 하고 있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09:32:05
고개 넘어 정돈된 석현마을에 주황색 감이 소복히 달려 있어 가을의 진풍경을 선물한다...09:35:11
조선시대 영남대로였던 옛길에 넉넉한 마음으로 가을 풍경을 즐기며 걷는다...09:36:17
감나무 가지가 휘어지게 주렁주렁 달린 가을 속으로 빠져본다...09:41:17
중부내륙고속국도가 굽이치며 내려오고 주지봉이 앞을 막아서는 옛길의 향수는 언제나 애틋하다...09:43:59
고속국도 아래를 지나며 긴 다릿발이 활처럼 휘어져서 예술적인 풍경을 선물한다...09:54:57
옛날 영남대로 였던 길가에 세월에 그을린 永世不忘碑 (2020.07.30),觀察使李相國景在永世不忘碑 丁未 三月 日 新院 釘峴 立(2021.03.31)이 묘역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고, 진성이씨 노목공파 가족묘원이 납골당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09:58:07
신현1리 마을로 들어 가는길(옛 영남대로)은 산추열매와 감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에 발을 멈추게한다 ...10:01:24
"백봉사"가 정돈된 모습으로 침묵 속에, 고속국도를 달리는 차량의 마찰음이 심하게 들린다...10:02:15
귀한 배추가 밭을 메우고 있어, 지난 추석 직후는 중간 정도의 2포기 묶어 28,000원까지 갔다....10:02:43
신현1리 마을 길은 차량이 일방통행 가능하고, 4년전에는 개가 짖었으나 지금은 조용하다....10:05:13
신현리 도로변에 2채의 원두막과 운동기구가 있어, 원두막에서 쉬는 野草, 海山, 樂山의 뒤 배경은 1956년도 마성지서의 옛터이고, 지서 옆으로 한참 뒤편에 면사무소가 있어서 마성면 소재지였으나, 지금은 모두 옮겨가고 조용한 마을로 남아있다. ...10:29:08
조령천의 방천을 따라 봉생정으로 가는 길에 뒤에 오던 여성 산객이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간다...10:38:51
오정산의 안개와 고속국도를 달리는 차량과 가을 걷이를 하고있는 황금 들판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10:39:08
봉득교(鳳得橋)를 건너서 봉생정으로 간다...10:45:53
총연장 96.24m 보폭 6.0m 설계하중 DB24-DL2 공사기간 2007.09.11.~ 2008.04.30. 시행청 문경시청
시공자 강동건설(주) 설계자 (주)석우 엔지니어링 감독자 김성준 준공검사관 토목담당 이욱진
우뚝 솟은 주지봉 아래 신현2리 마을이 보이고 조령천의 물길이 주변을 적시며 내려간다...10:46:33
조령천 건너서 우측으로 봉생마을(신현3리)이 보이고 정면에 안개가 오정산 위로 흩어진다...10:51:40
봉생정 아래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논을 가득 메운 황금색 나락의 모습이 눈을 즐겁게한다...11:02:55
봉생정에 올라서 바라본 영강의 물굽이가 어룡산을 돌아서 봉생마을 앞으로 흐른다...11:11:45
영강이 조령천과 합수되어 경북 제1경인 진남교반을 만들어 더욱 아름답운 풍경으로 바뀐다...11:11:58
봉생전 담 밖에 봉생정 연혁(오른쪽)을 읽어 본다.... 11:12:17
沿 革 (연혁: 변천하여 온 과정)
1583 癸未 宣廟 16 西厓先生 遺躅地로 起亭 1952 壬辰 宣廟 25 倭亂으로 燒失되다.
1804 甲子 純廟 04 復元을 爲해 修契하다 1836 丙申 憲廟 02 罷堂되다,
1844 甲辰 憲廟 10 六門中이 復元 旧趾하다 1990 郡守 黃仁星 郡費補助로 重修하다
1993 郡守 申庠撤 郡費補助로 重修하다 1999 市長 金學文 市費補助로 大補修하다
(뒷면)
鳳笙亭 重修推進委員會
顧問 李源榮 丁 湜 蔡瑃植 高台煥 張基煥 申錫厚 柳寧夏
委員長 申相憲 諮問役 李炳采 李在敎 申東澈 幹事 金啓漢
委員 姜鏞宇 申鉉和 金萬熙 鄕有司 申範湜 金志悅 門中有司
1999 辛己卯 2月 日
以上과 같이 委員會를 構成하고 都廳以下 任員 監理下에 全州 柳承逸이 施工하다
봉생전 담 밖에 봉생정의 안내판(왼쪽)을 읽어 본다 .....11:13:31
봉생정(鳳笙亭) 문경시 향토유적.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471-1
봉생정은 속리산과 대야산, 희양산 등지에서 발원한 가은천과 주흘산, 조령산, 대미산 등에서 발원한 조령천이 합수하는 용연(龍淵)에 위치한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야산의 정상부에 정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형적인 정자의 형태로 건립되었다. 주변에는 고모산성, 석현성, 토끼비리 등의 역사유적지가 산재하고, 건물은 사방의 낮은 담으로 둘러쳐 있으며 밖으로는 오죽과 소나무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봉생정은 선조 16년(1583)에 유성룡(柳成龍)선생께서 한양을 오갈 때 쉬어갔던 장리지소(杖履之所)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문인 우복 정경세와 향유들이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순조 4년(1804) 서애 선생의 8대손인 병조판서(兵曹判書) 류상조(柳相祚)와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각각 오십냥을, 25개 문중에서 각 두냥씩을 내어 중수하려다가 파당(罷堂)된 것을 헌종 10년(1844)에 여섯 문중에서 수계(修契)하여 옛 터에 복원하였다. 진성 이상행이 事跡記를 짓고 진사 이명호가 上樑文을 지었으며 봉생정 현판은 한말의 명필 해사 김성근의 글씨다. 최근에 2005년에 중수하여 일곱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2년에 한번 씩 취회(聚會)를 통해 봉생정 건립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한말 명필 해사 김성근의 아름답고 힘찬 글씨인 봉생정의 현판을 음미한다....11:15:16
봉생정 왼쪽 방에서 내다 본 전경이 진남의 제1경이다....11:17:00
봉생정 담 밖의 老松을 배경으로 늘푸른 소나무와 같이 함께하여 즐겁습니다...11:33:24
진남교반의 소나무 숲과 어룡산의 삼각봉우리가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11:38:06
봉생정 앞 절벽으로 데크 계단을 설치하여 내려오는 길이 매우 짧아져서 편리하다....11:38:38
봉생교 인도를 건너서 국도로 나간다.... 11:42:30
鳳笙橋
총연장 48m 교폭 9m 공사기간 2002년 7월24일~2004년 9월 20일
시공자 주식회사 일선종합건설 공사감독관 노병기 준공검사자 이천식
마성에서 진남으로 조령천의 물길 따라 교량 위로 쉼없이 차량이 다닌다...11:43:18
주차한 진남휴게소에 도착하여 귀가를 서두른다....11:53:11
* 중식은 옛고을 추어탕으로...
첫댓글 前日 내린 雨天으로 魚龍山을 갈 수 없어서 鎭南休憩所에 駐車하고 山城으로 進入하여 五味테마公園 後尾의 高句麗 古墳群을 踏査하였다.6世紀경으로 推定되는 古墳群은 20餘年前에 처음 發掘 했을땐 推定하기 어려운 三國時代 遺物이 부지기로 出土되어 世間의 耳目이 集中되었었는데 이젠 잊혀져간 痕迹들이다.石峴城內로 進入하니 八旬넘긴 老人들이 落葉 쓸기에 汨沒하고 있다.城隍堂 앞에는 티끌 하나없이 淸潔한건 이 어른들의 勞苦 德分이다.新峴里 첫 마을은 主屹山 全景을 眺望하는 要處인데 雲霧가 심하여 咫尺 分揀이 어렵다.嶺南大路를 따라 내려가는 길 섶에는 百穀이 영글어가고 사과,감이 익어가는 風景이 壯觀이다.高速道路 橋梁 下端部에 이르기까지 좋은 가을길을 觀照하면서 行步하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新峴里로 들어가니 白峰寺 偉容이 크게 다가온다.開山할땐 平凡한 瓦家에 불과했는데 財團法人 白峰寺로 寺勢가 擴張되곤 日就月將 하였다.마을 入口 園頭幕 두채는 나그네 쉼터로 遜色이 없다.터널을 通過하여 소야길로 들어서니 몇차례 往復한 길임에도 멋진 散策길로 다가온다.鳳笙들녁엔 秋收한 거루터기가 자라서 벼가 또 열린 奇異한 모습도 보고 鳳笙亭에 서니 感懷가 새롭고 沿革에 새로운 關心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