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 독서는 남 유다 19대 임금인 여호야킨 시대 때에 바빌론에 의해 멸망되고 유배당하는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야킨에 대한 기본적인 평가는 그냥 한 줄로 요약됩니다. “여호야킨은 자기 아버지가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기준이 분명하지요? 주님의 눈... 우리는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습니다. 주님의 시선 의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여호야킨은 항복하고 모든 보물 털리고 빼앗깁니다. 심자어 예루살렘 주민들, 모든 대신들, 모든 용사들 등 포로 일만 명과 모든 장인들, 대장장이들까지 모조리 바빌론으로 끌고가버립니다. 그래서 나라에는 가난한 이들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됩니다.
왜 이렇게 정복국이 패전국 국민들 다수를 포로로 잡아갈까요? 크게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먼저 정치적인 목적으로 반란이나 저항 세력을 소탕하고 반항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군인들, 대신들, 장인들, 대장장이들 다 끌려가니 다시 재건할 희망조차 빼앗게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경제적인 목적으로 패전국의 유용한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와서 넓은 땅을 개척하고 경작하고 개발하게 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을 근동 지역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들은 땅만 넓고 인구는 적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꾼까지 흡수해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하느님 기준입니다. 하느님 있거나 없거나 하고 있고 안하무인으로 우상에 젖어 살다가 예언자들이 예언한 대로 나라를 잃게 됩니다. 폭삭 망하고 질질 끌려갑니다. 하느님 눈 밖에 났다기보다 하느님 무시하고 기만한 것입니다. 오죽하면 성전마저도 그렇게 짓밟히게 두셨을까... 하느님께서 버리신 것이 아니라 유다 백성들이 타락으로 버렸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유린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따라 살고 계명을 따라 산다고 하는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결정할 때면 그것이 크던 작던 간에 주님과 함께하질 못합니다. 눈치보지 않습니다. 그저 내 기준, 내 판단, 내 필요, 내 욕구에 의해서 결정합니다. 그 옛날에 남유다 사람들만 하느님 무시하고 기만했을까...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서도 무시당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옆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이제 우리 그만, 눈치 좀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남유다 사람들만 하느님 무시하고 기만했을까?... 아멘...
하느님.
하느님을 봐야.
모든 일에 앞서 하느님의식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