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세실 함장이 돛을 펴고 출범하려 할 때, 마침 범 요한이 돌아와 당시 상해 근처에 체류하던 산동 지방의 강남 직할 서리구장이신 존경하올 베시 주교님께서 짐 보다리에 대해 조치하신 경위를 신부님께 보고하였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신부님은 더 안전한 편을 취하기로 하고, 저와 함께 황세흥 씨 집으로 갔습니다. 그때 브뤼니에르 신부님은 범 요한과 토마스를 데리고 그 근처에 정박하고 있던 영국 군함을 타고 변장한 뒤 베시 주교님께로 급히 갔습니다.
우리는 그 외교인 집에 5일 동안 묵은 다음에 같은 군함에 올라가서 숙박을 청하였더니, 그 군함은 우리를 매우 환대하였습니다. 하루를 지낸 후, 우리는 주교님께로 가서 환대를 받았고 주교님의 알선으로 어떤 신자의 배를 타고 약 15일 걸려 우리가 향해 가던 태장하에 입항했습니다. 이 항해 중에 역풍으로 두세 번이나 출범하였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 외에는 별로 역경은 없었습니다.
일을 주선하도록 범 요한을 교우촌에 심부름 보냈더니, 그는 거기에 머물고 두(杜) 요셉이라는 교우촌 회장을 우리한테 보내왔습니다. 신부님들은 밤에 군함에서 내려 상륙하기로 작정하였으나, 주위 환경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낮에 교우촌 회장을 따라 상륙하였고, 짐 보따리는 다른 배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떤 외교인들이 신부님을 보고 유럽 사람들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세관에 가까이 갔을 때, 안내자는 여러 가지 귀찮게 질문하고 싶지가 않아서 우리에게 강변에 내려서 검문 장소를 슬그머니 지나가도록 권고하였습니다. 그곳은 물이 빠진 지 얼마 안 되어 대단히 질퍽거렸는데, 세관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한편, 두 요셉은 토마스를 데리고 일을 처리하러 세관으로 곧장 갔습니다. 우리는 메스트르 신부님, 브뤼니에르 신부님, 두 명의 선원들과 저 이렇게 다섯 명이었습니다. 외교인들은 우리가 질퍽하고 길도 없는 강변에서 허둥거리는 것을 보고, 한편에서는 신부님들을 영국인들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장정 20명가량이 고함을 치며 우리한테로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손님 안내자들이었는데, 우리는 그들이 경찰관인 줄 알고 겁이 났습니다. 사실 그들 중에는 경찰관도 몇 명 있었습니다.
장소 관계로 조금 떨어져 있던 선원들에게 제가 귓속말로 신부님들 곁으로 가까이 가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무서워서 안색이 변했고 고개도 쳐들지 못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와서 우리를 붙잡으며 여러 가지 질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우리가 소매 속에 감추어 가지고 가던 책 때문에 무척 걱정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여전히 붙잡고 질문을 하였으므로 제가 화난 소리로 '당신들은 안녕질서를 위하여 정부에서 임명된 경찰관들이면서 무고한 인민을 모욕적으로 대한다'고 꾸짖었더니, 우리를 내버려 두고 떠나갔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 동안 두 요셉 회장과 토마스는, 우리가 체포되어 법정에 끌려가는 줄로 짐작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수레를 타고 요셉의 집에 다다랐으나, 두 씨 가족 외에 다른 신자들은 모두 신부님들을 맞이하기를 꺼렸습니다. 베롤 주교님이 그들 집에 유숙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만큼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브뤼니에르 신부님과 범 요한과 토마스는 개주 근처의 교우촌으로 갔고, 메스트르 신부님과 저는 어떤 과부의 작은 집을 세내어 머물면서, 조선으로 출발할 날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선에 대한 확실한 소식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베롤 주교님에 의해 변문으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연락원은 외교인 상인들한테서 들어서 안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연락원이 조선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고 합니다.
"두 명의 외국인이 3백 명의 조선인들과 함께 잡혀 다 같이 사형을 받았고, 왕의 통역관 유 아우구스티노는 이 불행한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참수된 후 그의 시체가 여섯 갈래로 찢겨 새들의 밥이 되었으며, 그의 온 가족이 멸족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째서 그 외국인들과 조선인들이 학살되었느냐고 연락원이 다시 물으니, 그 외국인들은 3개 국어 즉, 조선말, 중국말, 서양말과 글에 정통한 자들로서, 나쁜 종교로 조선 사람들을 부패시켰기 때문에 학살되었고, 조선인들은 사악한 종교를 받아들여 그 서양인들을 추종하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연락원이 세 번째로 질문하니까 그들은 대답하려 하지 않더랍니다. 그 밖에도 신부님들이 체포된 것은 거짓 신자가 밀고했기 때문이라고 연락원이 보고하였습니다. 그 거짓 신자는 신부님들의 얼굴을 익혀 두려고 천주교를 믿고 신부님한테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불확실한 가운데 메스트르 신부님과 저는 12월 20일을 기하여 조선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락원들과 다른 사람들은 이 계획이 무모하고 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단언하면서 조선과의 연락은, 하느님께서 큰 기적을 행하시지 아니하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우리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우리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을 계획하고 있느니만큼, 조선에 들어갈 가능성만 있다면 무슨 위험인들 마다하겠습니까? 더구나 메스트르 신부님의 출발은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닙니다. 신부님은 저에게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도록 저와 동행하는 것도 주저하고 계십니다.
스승님도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위험이 없지 않고, 또한 주위 상황과 저의 무능과 허약함이 이 위험을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은혜로 위험 중에 무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벌써 다 준비되었고, 옷과 신발은 가능한 한 같이 묶어 두었습니다. 조선에 들어갈 때는 더 쉽게 잠입하고 악마의 심부름꾼들 편에서 우리를 덜 주목하도록 거지로 위장할 작정입니다.
이곳은 모든 분이 다 안녕하시고 저도 허약하나마 그럭저럭 건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만 편지를 끝내면서 스승님께 의지하는 이 작은 아들을 하느님과 성모님 대전에 항상 기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조선에 들어간 후에 저에게 닥칠 모든 사항에 대하여 스승님께 편지를 올리겠습니다.
지극해 좋으시고 공경하올 스승님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
공경하올 스승님의 부당한 아들 조선인 김 안드레아가 인사합니다.
<추신>
이 편지를 개봉하고 새 소식을 추가합니다.
저는 매일 메스트르 신부님한테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으며, 토마스는 만주에서 페레올 주교님 곁에 있습니다.
저는 요즘 프랑스어 공부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습니다. 메스트르 신부님이 유럽에서 온 서한을 받으시고 저에게 프랑스어 공부를 포기하도록 엄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어 회화는 저에게 분명히 유익하지 않습니다만, 에리곤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기에 약간은 할 줄 압니다.
그러나 스승님도 아시는 바와 같이 프랑스어 독서는 저에게 무익하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애써서 배운 프랑스어 독서를 전저으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듯합니다. 만일 제가 불라사전(佛羅辭典)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쯤에는 프랑스어책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마카오에서 떠나올 떼 리브와 신부님이 저에게 프랑스어책들을 주셨는데, 그 가운데서 몇 권은 메스트르 신부님의 분부로 버렸습니다.
토마스는 프랑스어책들을 읽고 하락을 받았는데, 그 프랑스어책들은 그가 마카오에서 떠나올 때 리브와 대표 신부님이 유럽에서 온 서한을 받은 후 불라사진과 나불사전과 함께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