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 31절 – 37절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두가지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바로 말씀사역과 능력사역입니다. 말씀사역은 하나님나라의 말씀의 사역입니다. 이 말씀사역을 하신 목적은 하나님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만담가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며 변화시키는 말씀이었고 하나님 크기의 역사를 이루시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받아드리는 자들은 하나님나라를 받아드리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또 하나의 사역은 능력사역 곧 성령의 사역입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아버지의 일에 참예하시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사역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령의 사역들을 하나님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안에서 아버지하나님께서 먼저 행하시고 보이시는 그 일에 헌신하시므로 그 일이 성취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는 말씀만으로 모든 일들을 이루실 수 있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아버지는 성자 예수님과 성령으로 일들을 이루시길 열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헌신을 기쁨으로 여기셨고 또한 양식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너무나 타락하여 헌신을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짐처럼 대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사역 중 하나가 바로 귀신을 쫓아 내시는 사역입니다. 귀신이 쫓겨나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 그 일이 이루어 집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주시는 것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귀신들릴 수 있는가로 논쟁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정답은 참된 그리스도인은 귀신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건의 모양은 가졌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도 순간 순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귀신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 음란한 생각이 떠 오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을 예수님의 강하심으로 덮습니다. 그리고 음란한 생각을 분별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음란한 생각을 받아 드리는 경우입니다. 그 경우가 깊어 갈수록 사단의 우리에 대한 영향력은 커져 가고 결국엔 음란의 포로가 되고 귀신에게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면 귀신에 포로된 자들을 자유케 하는 사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오늘날은 말씀, 말씀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권세를 사용할 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열려진 자세가 필요합니다. 전문사역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