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향년 103세로 별세한 미국 배우 커크 더글러스는
70여년 동안 연기 생활을 하며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은 영화들에
출연한 명배우다.
총 90여편 영화에 출연했으며 이 중 30편은 제작에도 직접 참여했다.
직접 연출한 영화도 2편이다.
1916년 미국 뉴욕에서 러시아 출신 유대인 이민자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이수르 다니엘로비치 뎀스키였지만,
이후 해군에 입대하면서 커크 더글러스로 개명했다.
이후 '율리시스'(1954)와 '열정의 랩소디'(1956),
'OK 목장의 결투',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광의 길'(1957)과 '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통해
1950년대 미국 영화계 대표 스타가 됐다.
그는 1950년대 미국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불 때
공산주의와 연루된 의혹으로 할리우드에서
배척된 영화인들이 일터로 복귀하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자신이 1952년 설립한 영화 제작사를 통해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 돌턴 트럼보를 고용했는데,
이는 다른 영화인들도 업계에 복귀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비평가들이 나를 배우로 인정해 줄 필요는 없다"며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그 누구도 나의 상관(boss)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https://news.v.daum.net/v/2020020616044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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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부터는 영화사를 설립해 영화 제작에도 나서
당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스탠리 큐브릭에게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감독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배우나 제작자를 넘어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그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비정상적 공포가 휩쓸던 매카시 시절
그 광풍은 영화계를 빗겨가지 않았다.
미국 하원에서는 반미국적 행동을 하는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영화계의 인물들도 국회에서 증언하게 만들었다.
<로마의 휴일>과 같은 작품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돌턴 트럼보가 증언을 거부했고,
그 결과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저작 활동을 계속하려면 익명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던 시절에 커크 더글러스는
<스파르타쿠스>의 엔딩 크레디트에
돌턴 트럼보의 실명을 올렸다.
매카시즘이 약해진 시절이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과감한 행동이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영화계에서 블랙리스트가 사라졌다.
더글러스는 여러 비영리 단체에
꾸준히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도 명성이 높다.
출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기부한 것을 필두로 여러 의료 봉사 단체를 후원했다.
시설이 노후해진 캘리포니아 지역 많은 학교의 운동장 시설을 복구시켰으며,
노숙 여성의 재활을 돕는 단체도 만들었고,
치매 환자 재활 센터에도 거액을 기부했다.
작년 12월 99세의 생일을 기념하여 1500만달러를 기부한 것까지 포함하면
더글러스 부부가 기부한 액수는 8000만달러에 달한다.
https://news.v.daum.net/v/20200206160447076
https://entertain.v.daum.net/v/20200206172126413
첫댓글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로 알려진 분이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도 503의 블랙리스트였다는데....
좋은 일화와 영화를 많이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