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번째 편지 - 가족에 대한 <유관심 무관여 원칙>
긴 구정 연휴가 끝이 났습니다. 월요편지도 구정 연휴라 배달을 잠시 뒤로 미루었습니다. 구정 연휴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일요일 점심, 저희 가족은 미국으로 가는 아들 환송 식사를 우이동에 있는 파라스파라 호텔 뷔페에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음식보다도 도심형 콘도 파라스파라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장소를 그곳으로 정했습니다.
일요일 11시, 출발 시각입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제 맞은 부스터샷의 후유증으로 몸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빼고 세 가족이 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주인공인 아들이 빠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 가족은 환송 점심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파라스파라를 보여주려 한 것은 이 번까지 세 번째입니다. 예약까지 하였는데 그때마다 이런저런 가족들 사정으로 취소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차질 없이 실행되는 것을 바라는 제 기질에 반하는 일이 세 번이나 발생한 것입니다. 이번 사정은 머리로는 당연히 이해되었지만 불편한 가슴은 해결되지 않고 점점 심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은 너무 익숙한 장면입니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가족들은 마지못해 쫓아오다가 누군가의 사정 때문에 계획이 망가지고, 결국 제가 분을 못 참아 화를 내고, 마지막에는 가족에게 사과하는 장면입니다.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일들이지만 월요편지는 그날들의 제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몇 장면을 꺼내 읽어 봅니다.
저는 아이들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늘 평가자로 살면서 아이들에게 간섭하고 못마땅한 것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곤 하였지요.
"윤아, 정민아. 이제 아빠가 너희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려고 한다. 아니 세상을 보는 태도를 바꾸려고 한다. 한 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노력하련다. 상처를 주는 아빠는 그 상처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모르지만 상처를 입은 가족들은 그것으로 죽을 수도, 평생 불구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2011.2.28자 월요편지 '저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에게 띄우는 편지')
반성하고도 1년 후 아버지 노릇 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백을 다시 합니다. 그때 제 나이 53세, 아이들을 키운지 25년이었지만 여전히 서툴렀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독립심을 가지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속마음에는 여전히 그들이 어린아이로 저를 필요로 하였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첫 월급을 탔다며 제 내복을 사 왔습니다. 내복이 고맙지만 저는 여전히 딸아이에게 예쁜 옷을 사주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아직도 진정한 아버지가 무엇인지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2012.2.6자 월요편지 '아버지 노릇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식이 액세서리가 아니라는 월요편지를 2010년 5월에 쓰고도 3년 만에 다시 이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맙니다.
"자식이 부모의 액세서리이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자식을 액세서리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액세서리가 빛이 난 날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액세서리가 기분 좋은 선물의 역할을 하였지만 또 언젠가 그 액세서리 때문에 속상해하고 섭섭해할 날이 올 것입니다. 다만 그 기복이 너무 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3.6.3자 월요편지 '저에겐 여전히 액세서리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
그러나 3년 후 저는 먼저 손을 내밀지 말고 딸아이가 손을 잡아 달라고 할 때 손을 잡아야 한다는 '한 걸음 처진 자식 사랑'을 터득하게 됩니다.
"딸아이에게 제 손이 필요하고 가슴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아빠로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새우고 새벽에 지친 모습으로 들어오는 딸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힘들지. 어서 자라" 밖에 없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누워버리는 딸아이의 방문을 닫아 주며 딸아이가 더 이상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2016.12.12자 월요편지 '딸아이의 크리스마스 장식 사업')
그러나 서툴게 배운 자식 사랑법은 몇 개월 만에 다시 덧나고 맙니다.
"호텔 방에 먼저 들어와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들에게 '아빠 짐 하나씩 들어주면 좋겠네.' 이야기해도 충분한 일을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제 사과로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부모 자식 관계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다 큰 다음에 깨닫게 되니 저는 낙제점 아빠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2017.8.17자 월요편지 '부모 자식 간의 정서적 유대감이란?')
저는 몇 편의 월요편지를 읽고 이번에는 문제를 달리 해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점심은 무산되었지만 관계를 악화시키지는 말아야 합니다. 최근 몇 개월간 가족들과 관계가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세운 <유관심 무관여 원칙> 덕분입니다.
결혼 생활 내내 제가 겪은 문제는 아내와 아이들이 제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 데서 오는 불만이 갈등으로 비화한 것입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눈에 거슬리는 것도 많습니다.
가족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일이 제 의도와는 달리 전쟁으로 비화됩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선의의 독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은 선의라 하더라도 독재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가족들 삶에 <관심>은 갖되 <관여>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관여>를 원하면 언제든지 달려가 <관여>합니다. 환송 점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환송 점심을 제안하였지만 사정이 생기면 그 상황에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꾹 참고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30분쯤 흐르니 제 가슴도 편해지고 가족들과 웃는 낯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갈등을 피한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들 녀석이 오후 4시경 몸 상태가 좋아져 파라스파라 호텔 뷔페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여 주고 싶었던 파라스파라 콘도의 아름다운 광경도 모두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유관심 무관여 원칙>이 가족들에게 행복한 저녁을 선사한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2.3.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