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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駞坤)-24
풍진자의 얼굴 위로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신의 명예와 화산의 명예
를 다행히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 내가 너에게 알려 주려는 것은 뇌격일섬(雷擊一閃)이라고 하는 단 한 초식
의 무공이란다."
"그게 무언데요?"
여전히 꼬마는 퉁명스런 어조였다.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자고 싶은 마음만
있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배우려는 자세가 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 네가 구결을 다 외우면 보여주마---, 이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구결을 말
할 테니 잘 듣고 외우거라."
"됐어요! 다 외웠다구요!"
지겨운 소리를 또 반복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렇게 빽 소리를 친 소구의 입에
서는 무려 이천자에 달하는 뇌격일섬의 구결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풍진자로서는 눈앞의 꼬마가 한번만 듣고 이천자에 달하는 구결을 외울 수
있는 천재라고 생각도 할 수 없었기에 그의 눈에는 점점 놀라서 크게 뜨여졌
다.
처음 풍진자가 소구라는 이름의 꼬마를 보게 되었을 때의 그 느낌이란----.
좌우로 쭉 째진 가느다란 눈, 툭 하니 튀어나온 이마, 뾰족한 턱을 한 꼬마
의 얼굴은 한마디로 '인상 더럽다'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었다. 무척이나 신경
질적으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은 마른 편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 아래 달린 몸
뚱아리는 뚱뚱한 것이 욕심도 무척이나 많아 보이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것
이 이곳 금강동으로 떨어지기 전의 소구의 모습이었지만, 무공을 익히기에 최
상의 상태로 몸이 변해 있었다.
이 아이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에라도 바라는 벌모세수를 통해 환골탈태
한 것이다.
그러나 모습은 변했어도 사람은 변한 것이 아니고 소구라는 잠꾸러기 소년의
본질은 변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마른 얼굴을 한 사람은 신경이 날카로
워 보이고, 뚱뚱한 사람은 욕심이 많아 보이는 인상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느낌을 주는 이 아이가 하는 일을 지난 사흘동안
지켜보게 된 풍진자로서는, 이 아이에게서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지금은 한층 더 놀라게 되었다..
" 도사님, 다 외웠는데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풍진자였지만 들려오던 구결에 단 한 글자의 틀
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그렇구나--. 진작에 외웠으면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하지 않았겠냐?"
대답하는 풍진자의 깊고 맑은 눈에는 놀람의 빛이 어려 있었다. 전혀 볼품없
는 이 아이가 구결을 한자도 틀리지 않고 다 외울 수 있을 정도의 기억력을 가
지고 있는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지난 사흘동안 풍진자가 한 일은 반복
해서 아이에게 구결을 들려주는 일이었다. 보통 사람이 이천자에 달하는 구결
을 외우는 데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구결을 외우는 일에 적
어도 열흘을 예상하고 있던 풍진자로서는 시간이 단축된 셈이었다. 열흘 동안
은 구결을 외우는 일을 나머지 열흘 동안은 초식을 가르쳐 주려고 생각하고 있
던 탓이었다.
꼬마는 눈에 핏발이 선 채로 풍진자를 화난 듯이 쏘아보며 말했다.
"도사님, 이제 구결을 다 외웠으니 가 주세요. 저 잠 좀 자게요."
소구는 머리가 깨어지는 듯한 통증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쥐고 고통을 참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풍진자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니 구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줄려는 것은 무공이니라, 내
평생의 심득이 들어 있는---. 나에게 해야 할 일을 끝낼 수 있게 해 준 너에게
이것은 사소한 것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내 칠십 평생의 땀과 노력이 들어 있
는 것이란다."
소구에게는 열정에 차서 말하는 풍진자의 말은 잠을 방해하는 잔소리에 불과
했다.
" 자, 이제 뇌격일섬이 어떻게 세상에 구현되는 지 보거라. 기회는 한번뿐이
니 잘 보아두어야 할 것이다."
갑자기 허리에서 한 자루의 연검을 꺼내는 풍진자를 바라보며 소구는 놀란
눈으로 늙은 도사를 쳐다보았다.
흐느적거리던 하얀 색의 검은 갑자기 푸른빛을 내뿜으며 꼿꼿하게 천장을 향
해 세워졌다.
"뇌격일섬!"
도사의 입에서는 나직한 기합이 터지고 '우르릉'하는 뇌성벽력이 터지는 소
리가 금강동이라 불리는 동굴 안을 메아리쳤다.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있던 소구의 눈은 크게 뜨여졌다.
눈앞에서 갑자기 하얀 섬광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 펼쳐졌던
것이다. 벼락, 말 그대로 벼락이었다.
소구의 얼굴에는 호기심이라는 감정과 무언가 멋진 것을 보았다는 그런 표정
이 떠올랐다. 졸음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간 뒤였다.
"도사님! 다시 한번 보여줘요!"
소구는 신이 나서 소리쳤지만 풍진자는 은은히 밀려오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
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 기회는 한번뿐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너 말고도 이것을 보여줄 사람이 또
하나 있단다. 그리고 나에게 이것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한번만이 남았
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연검을 허리에 두른 풍진자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구라는 이름의 아이를 쳐다보았다. 졸음이 가신 아이의 눈
은 의외로 크고 맑은 눈이었고 총기까지 엿볼 수 있었다.
"과---과연---, 소림이로구나-----."
그렇게 탄식을 터트리며 나한동을 벗어나는 풍진자는 소림의 힘을 다시 절감
해야만 했다.
죽기 전에 화산파의 절기들을 제자들에게 알려줄 일에만 매달린 그에게는 아
이가 가진 잠재력과 근골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풍진자의 서신을 받고 소림사로 달려온 화산파의 제자들은 초조하게 나한동
의 입구에서 그들의 사숙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은 허탈한 미소를 흘리며 나한동에서 나오는 사숙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풍진자는 자신이 불러들인 화산파의 제자들을 하나하나 다시 한번 살펴보았
다.
다음 대의 화산을 이끌어갈 아이들이었기에 이들 역시 고르고 고른 기재들이
었으나, 방금 동굴 안에서 보았던 아이를 뛰어넘을 만한 재질을 가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 사숙님을 뵙습니다!"
일제히 절을 하며 인사를 하고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풍진자의 마음은 결
코 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 중에는 미래에 화산파를 이끌 악종진도 끼어 있었
다. 이미 자신을 찾아와 뇌격일섬의 구결을 얻은 아이였다. 그가 이제까지 보
아온 아이들 중 가장 뛰어난 근골과 머리를 가진 아이를 지금 보고 나왔기에,
비록 혈룡이라 불리며 후기지수 중에서 선두를 달리는 아이였지만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나이가 든다면 결코 그 아이를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허, 다음 대의 천하제일인은 소림에서 나오겠구나---."
화산파의 제자들을 한 명 한명 쳐다보다 하늘로 시선을 돌린 풍진자의 입에
서는 허탈한 한숨과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차원에서 그 아이를 대리고 온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의 근골을 지닌 아이라면 천하의 모든 문파에서 탐을 낼만한 아이였다. 어
릴 때 먹은 영약의 부작용으로 겉모습만이 무공을 수련하기에 결코 적합해 보
이지 않게 보이는 것뿐이었다. 풍진자가 사흘이 지나서야 발견한 것이지만 정
각은 그 사실을 보자마자 안 것이리라.
적어도 풍진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반 시중의 아이를 소림사의 가장 중요한 장소에 대려다놓은 사실만 봐도
소림에서 그 아이를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쉬
웠다. 그 정도의 재능을 가진 아이가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라 소림의 제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기에----.
"예를 거두고 모두들 나를 따라오너라."
"명을 받듭니다."
삼남이녀로 구성된 열 네 살에서 스물 살 사이의 화산파의 제자들은 자신들
을 이곳에 부른 풍진자 사숙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
다. 그래서 그들 모두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리고 천하제일검이라고 불리는 풍
진자 사숙의 절기를 배우게 되었다는 기대 또한 그들 모두의 얼굴에 어려 있었
다.
나한동의 입구에서 화산파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있을 때 나한동이 한눈
에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지붕 위에 엎드려 있는 한 사람은 풍진자의 칠척 장신
의 몸이 나한동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결심을 굳혔다. 들어갈 때는 비틀거
리며 걸음도 옮기기 힘들어하던 풍진자가 나올 때는 그가 보기에 행동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온 것이다.
'과--연, 그 아이가 인간 보약이라는 말이 헛소문이 아니었구나---!'
이제 확신을 가지게 된 그였다. 그는 누구도 눈치 챌 수 없게 다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 아이의 피와 살을 먹으면 수시로 찾아오는 이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계획은 만들어졌고, 그는 풍진자의 모습을 보면서 계획에 참여할 결심
을 굳혔다.
" 땡 땡!"
하는 범종 소리가 자시(子時)을 알리고 있는 시간에 검은 흑의를 걸치고 복
면을 한 무리들이 하나둘 나한동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림사에는 많은 건물이 있고 또 많은 뛰어난 무공을 지닌 승려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결코 함부로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기에 모여든 다섯의 복면인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모일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일을 계획한 것이다. 그들 다섯의 힘이라면 나한동의 나한과 기관을 뚫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검은 복면 사이로 비치는 다섯 사람의 눈은 비장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누구
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모인 다섯 사람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
덕인 다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한동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동굴 안으
로 몸을 날렸다.
이미 나한동의 관문에 대해 알게 된 그들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이 목인방
을 통과하고, 기관함정들이 중첩되어 있는 장소에서는 벽을 뜯어내고 기관을
파괴했다. 함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될 것이다.
소림사에 있어서 나한동이 어떤 장소인지 들었지만 복면을 한 다섯 사람은
자신들의 힘으로 충분히 통과할만한 장소라고 믿었다. 그들이 그런 믿음을 가
지게 된 것은 순전히 단 한사람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말만을 믿고 그들은 이
런 무리수를 감행한 것이다. 이미 막다른 벼랑에 몰린 그들이었기에 그 뒤의
일을 볼 여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딘가를 침투하려면 사전조사는 필수였다. 복면을 한 다섯 사람은 나름대로
나한동에 있다는 기관과 그 안에 머물고 있는 금강나한들의 실력에 대한 이야
기를 소림사의 누군가로부터 아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
나한동을 지키고 있는 나한들은 갑자기 동굴 안에 가득찬 연기에 모두가 골
아 떨어졌다. 수면향이 나한동을 퍼지면서 나한동을 지키던 무승들을 잠재운
것이다.
잠들어 있는 나한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 다섯의 복면인은 그 끝
에서 청동의 향로를 발견하는 순간 일제히 숨을 멈추었다. 향로에서 산공독이
퍼져 나온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된 그들은 숨을 멈추고 출구가 있는 옆에 뚫려
있는 작은 동굴을 쳐다보았다.
동굴 속의 동굴인 금강동안으로 들어서는 다섯의 복면인은 바짝 긴장했다.
이 안에 머물고 있다는 금강나한들은 수면향에 당할 정도로 녹녹한 무공을 가
지고 있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이었기에, 검은 복면 사이로 드
러난 두 눈은 모두가 비장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금강동에 머물면서 수련을 하고 있는 18명의 금빛 피부의 승려들은 복면을
한 무리들이 나한동을 통과해서 이곳까지 온 다섯의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나
한동을 지키고 있는 무승들의 실력이라면 저들은 이곳에 절대로 도착할 수 없
어야 했다.
열 여덟의 금불상들 한 가운데 서 있는 소구는 이곳에 들어 올 수 있는 단
하나의 입구 안으로 들어서는 다섯의 복면인들을 보고 잠시 동안 멍하니 그들
을 쳐다보았지만, 다시 시선을 돌려 문어대가리 머리를 하고 있는 스님이 피값
이라며 가져다 준 돈을 가지고 장난치기 시작했다.
소구는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고, 다리 사이에는 하나의 검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금전과 은전 전표 그리고 구리돈까지 가득 들어차 있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그들 18명의 승려들 중 단 하나의 힘도 감당 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통과시킨 것이다. 설사 소림사의 장문이라 할 지라
도 여기서 수행을 쌓고 있는 18명의 금강나한들의 허락 없이는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어쩌면 좋겠소?'
누군가의 말이되 말이 아닌 것이 동굴 안에 머물고 있는 열 여덟 명의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마음으로 말하는 기술, 무림에서는 이것을 혜광심어라고 부
르고 있었다.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소림사 안에서도 겨우 세 사람만이 시전 할 수 있다고 알려진 기술이었지만 여
기 모여 있는 18명은 모두가 할 수 있는 기초적인 것이었다.
'허락 받지 않고 들어 온 자들이니 밖으로 내보내야겠지요.'
누군가 다시 혜광심어로 그렇게 말하고 십팔명의 나한들은 그들의 한 가운데
에서 장난치고 있는 아이를 자애로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다섯의 복면인들이 일류고수의 수준을 뛰어넘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보호하고 있는 이상 아이에게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을 것이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잘 읽어네요..건강하세요...
즐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