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물감상자 / 가우식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 꽃빛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진달래 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 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 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나에게는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시인 강우식
1941·아버지(충청도 온양이 고향으로 전형적인 역마살이 낀 분으로 떠돌이 생활 일관) 姜泰甲과 嚴春任 사이에 출생. 주문진수산고교를 거쳐, 대학시절 <지하시 동인>. 1966·《4행시초》로 현대문학지 추천 완료(’63-’66). 미당 서정주 님이 가교. 1968·현암사 편집부 입사, 안정된 생활. 대학 졸업/대학원 입학/학비 부족으로 자원 입대, 제대(그 전에 어문각·홍익출판사·삼성출판사에서도 잠깐 근무). 《대세계사》《육당 최남선전집》《사서삼경》 등의 양서를 접함. 1974·제1시집 《四行詩抄》(현암사). 제20회 현대문학상 신인상. 1977·제2시집 연작 《高麗의 눈보라》(창작과비평사). 1978·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