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0일 목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자신을 죽여 사랑을 이룬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새롭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밀이 싹을 틔우지 않을 때는 썩지 않고 죽지 않았기에 새 생명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자살하려고 작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열매도 땅에 떨어져 죽으려고 하고 싹을 틔워서 번식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지 않아도 자연히 그렇게 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순신 장군이 장병들을 독려하면서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라고 하였습니다.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으려고 해야 하고, 죽으려면 반드시 살려고 한다.> 이 같은 말은 오자병법에서 오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열심히 싸우면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고대의 전쟁영화를 보면 전쟁에서 폭격이나 폭탄이 터지지 않고 일대일 싸움에서는 반드시 살려면 죽기로 싸워야 하고 살려고 적에게 등을 대고 도망치거나 버둥대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원리가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자기 목숨에서 죽기를 바라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목숨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존중하라고 가르치시며, 항상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오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의아스럽지만, 혼란을 일으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분의 깊은 뜻을 모르기 때문에 혼란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위대한 성인들의 삶은 모두 자기를 죽이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타주의적(利他主義的) 사랑이었는데 저의 삶은 정말 이기주의적(利己主義的)삶을 살아온 삶인 것만 같습니다. 내 편함과 안락함을 위해서 봉사와 희생은 뒷전에 두고 베풀 줄 모르는 생활 속에서 나태해지고 교만해진 삶이었습니다.
논어의 이인편(里仁編)에 보면 증자는 공자의 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부자지도충서이기의
(夫子之道忠恕而己矣)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로 돌아간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충(忠)과 서(恕)는 하느님에 의해 규정된 질서와 법칙에 대해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고 하느님을 섬기는 정신을 忠이라고 하고, 恕는 곧 하느님의 법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을 말한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자도 논어에서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고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도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忠)과 서(恕)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인(仁)이라고 하고 <자신의 몸을 죽여 사랑을 이룬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말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자신의 몸을 죽이고 사랑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섬김으로 완성됩니다. 자식이 부모를 아무리 잠 섬겨도 부모의 만분의 일도 섬기기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을 섬겨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의 천만 분의 일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매일 살아서 간직하고 있는 이 목숨도 결국은 주님의 것인데 우리는 주님과 이웃의 사랑에 너무 인색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9,6ㄴ-10
형제 여러분, 6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축일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Lawrence)
신분 : 부제, 순교자
활동 연도 :+258년
같은 이름 :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로마(Roma)의 일곱 부제(차부제 포함) 중 한 명인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에스파냐의 우에스카(Huesca) 출신으로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는 새로운 법을 공표하면서 시작된 박해로 인해 258년 순교했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2세(Sixtus II, 8월 7일)를 돕는 로마의 일곱 부제 중 수석으로, 주된 임무는 교회 재산 관리와 빈민 구호 및 일반적인 교회 관리였다. 교황 성 식스투스 2세가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걷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울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교황은 그를 위로하며 앞으로 더욱 힘든 투쟁이 남아 있으니 그 전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얻어야 한다며, 그 또한 나흘 뒤에 체포되어 자신을 뒤따를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었다. 그러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와 교회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로마의 집정관이 그의 이런 행위를 알고 교회의 모든 보물을 즉시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 말을 들은 성 라우렌티우스는 교회의 재산을 모두 모아 정리하려면 3일의 여유가 필요하다며 시간을 청한 후, 교회의 값비싼 그릇들과 돈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재산을 요구하는 집정관에게 병자와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나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분노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해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뜨거운 석쇠 위에 눕히고는 구워 죽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쇠 위에서 살이 익어가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라.”라고 말한 후 한참 뒤에 “이제 다 익었으니 뜯어먹어라.”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순교 때나 그 후에도 그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순교 이야기는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가 389년에 쓴 “성직자 직무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해 전해졌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는 강론에서 “그는 주님의 식탁에서 주님을 받았기에 그 보답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 드렸습니다.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라며 그의 순교에 대해 언급했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는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며 그를 칭송했다. 성 라우렌티우스의 축일은 4세기 초부터 교회 전례에 도입되었고,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의 무덤이 있던 카타콤바 위에 세운 성당은 로마의 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일곱 성당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공경은 빠르게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로마와 여러 도시의 수호성인이면서 가난한 사람과 요리사와 소방관의 수호성인이다. 교회 미술에서 그를 상징하는 문장은 순교 도구였던 석쇠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라우렌시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