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들 / 이원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 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 껑충 뛰어 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 <문학의문학> 2008년 여름호 /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문학과지성사, 2012)
* 이원 : 1968년 경기 화성 출생, 서울 성장.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문학과지성사, 1996)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문학과지성사, 2001)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문학과지성사, 2012) 『사랑은 탄생하라』(문학과지성사, 2017) 『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현대문학, 2018)과, 산문집 『산책 안에 담은 것들』 『최소의 발견』 『시를 위한 사전』이 있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에서 시창작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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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그림자들」(『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문학과지성사, 2012, 49면)에서는 우리가 눈으로 무용수의 움직임 그 자체만을 좇을 때는 결코 알 수 없을 장면을 짚어낸다.
시인이 그림자들의 통증과 근육, “심정”과 “생각”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을 때마다, 이 질문은 어쩐지 그림자 주인들에 대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자 주인들이 채 말하지 못한 무언가가 그림자의 움직임에 남겨졌을 가능성이 시인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무용수가 높이 뛰어오를수록 바닥에 남겨진 그림자의 농도 짙은 색감에는 허공에 던져진 무용수의 몸이 품고 있는 강도 높은 긴장이 반영되어 있다. ‘그림자 주인’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쯤에선 무엇이 무엇의 주인이라는 표현이 굳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그림자는 그림자 주인이 있는 풍경을 완성하는 주요한 매개로 있다.
물론 우리는 무용수가 어떤 심정으로 허공에 몸을 던지는지에 관해 백퍼센트 안다고 자부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상황이 개시하는 어떤 세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무용수의 움직임과 그것이 남기는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장면을 통해 비로소 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에겐 그림자의 움직임도 춤의 연장이다. 누군가의, 또는 무언가의 발끝에서 시작하는 그림자까지 포함해서 바라볼 때야 짐작할 수 있는 이 세계의 은폐된 비밀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감춰졌던 그 비밀을 막 인지하기 시작한 이의 격정 역시도 위의 시에는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누군가의 몸짓에만 고정하지 않고 그 몸짓이 관계하는 벽과 바닥에 비춰진 그림자를 향해 조금 더 연장하는 것만으로도 그 몸짓에 대한 다른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존재, 어떤 사물의 끝에서 시작하는 그림자의 형태를 우리가 감지할 수 있다면 혹은 어떤 존재, 어떤 사물의 끝과 끝이, 가장자리와 가장자리가 만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전엔 나누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사물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의 가장자리가 촉발한 풍경을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는 언제나 ‘도약’에 가까운 일들이 빚어진다. 홀로 고립되어 있는 줄로 알았던 것도 그림자에 묶여 있고 허공에 존재하는 무언가와 관계하고 있음을 상기하다보면, 이 세상에 ‘홀로’란 없다.
나는 무용수들이 허공을 고려해서 동선을 만드는 이유를 이와 같이 이해하고 있다. 그들의 발끝에 걸려 있는 그림자가 이미 춤인 이유에 대해서도. 그들은 사물의 끝에서 시작되는 움직임과 거기에 이르렀을 때야 들리기 시작하는 목소리가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체득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서야 개시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송재학 시인 / 영남일보 202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