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駞坤)-28
소림사(少林寺)가 한눈에 내려다보는 소실봉 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앉아 밑
을 내려다보는 염소 수염을 하고 있는 노인의 눈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
었다.
하얗게 센머리와 주름살로 가득한 얼굴과 소매 밖으로 튀어나온 손이 노인의
나이가 무척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잘 보아주어도 살아온 시간
보다는 살아갈 시간이 적게 남은 늙은 노인이었다.
그런 노인의 눈은 멍하니 높게만 느껴지는 가을 하늘의 푸르름을 향해 있었
다. 이런 노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절망감이었다.
" 혼천의 의미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남겨진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구나
------."
한소리 넋두리 같은 탄식이 노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 안가요! 절대로 못 가요!"
금강동이라 불리는 한 소림사 경내에 있는 동굴 안에서 심술끼가 다분히 보
이는 얼굴을 한 꼬마는 동굴 안에 있는 용 모양의 조각이 새겨진 기둥을 껴안
고 그렇게 소리쳤다.
여기서 밖으로 나가면 틀림없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무서운 사람들이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절대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소구였다.
금강동에서 소구라는 이름의 꼬마가 머문 지 꼭 두 달이 되는 날이었다.
"욘석아! 네 병은 다 나았으니 그만 집으로 가야지!"
양평의 마른 얼굴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 그래도 못 가요!"
소구라는 이름의 고집쟁이 꼬마는 지금은 절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
다.
기둥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꼬마의 허리를 부여잡고 씩씩거리고 있는
양평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배어 있었다. 벌써 한 시진이나 이 꼬마와 씨
름하는 중이었다.
" 꼬마 놈이 뭐 이리 힘이 세?!"
결국 양평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꼬마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손을 푸르고 주
저앉았다. 아무리 금강나한 사조님들이 벌모세수를 베풀고 몸속에 엄청난 내공
이 쌓여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평은 황당했다. 자신이 누군가? 무림인(武林人)들이 후기지수중 제일로 치
는 무림오룡 중 금룡의 자리를 차지한 존재인 것이다. 얼굴이 잘 생겨서도 아
니었고, 지략이 뛰어나서 준 명호도 아니었다. 순전히 무공실력 하나만을 놓고
얻은 금룡(金龍)이라는 명호였다. 일갑자 반에 달하는 내공을 가진 양평이 불
과 일곱 살 난 꼬마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절대
로 있어서도 안돼는 일이었다.
볼멘 얼굴이 된 양평은 사방에 둘러앉아 있는 석상인 채 하는 금강나한들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정말 이러실 겁니까?!"
양평의 생각으로는 기둥에 매달려 떨어질 줄 모르는 꼬마가 자신의 힘을 이
기고 계속 기둥에 매달려 있을 수 있는 것은 금강나한들이 힘을 사용했기 때문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순전히 아이의 힘으로 자신을 이길 수 있다고는 절대
로 생각할 수 없었다.
금강 나한들은 양평의 오해를 풀어줄지 말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어서 저
시끄러운 아이와 더 시끄러운 양평이 이곳을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언제
나 그랬던 것처럼 이곳이 고요와 정적 속에 머무르려면 저 아이들을 모두 밖으
로 내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양평아!'
양평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놀란 눈이 되어 주
위를 다시 살펴보았다. 누가 말을 거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무공이 절정
의 경지를 뛰어넘어야만 펼칠 수 있다는 혜광심어라는 상승공부를 경험하게 되
었으니 양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양평으로서는 아직도 까마득한 경지였다.
"이거 혜광심어죠?!"
'맞다. 마음으로 뜻을 전하는 공부인 혜광심어 맞다. 너 오해하고 있는데
---, 저 아이 우리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게 아니다. 저 아이 내공이 워낙 높아
서 힘이 센 거다.'
마치 아이 같은 말투의 이야기가 양평의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양평은 여기 모여 있는 18명의 금강나한들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순 웃음이 나올 뻔한 양평이었지만 다음 순간 늙으면 어려진다
는 말을 기억하고 간신히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어찌되었건 여기 계신 분들
이 사문의 존장들이니, 말투가 어리다고 웃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구의 내공은 지금 어림 잡아도 삼갑자에 가까운 공력을 지니고 있으니,
너의 힘으로 소구를 기둥에서 때어 놓기는 힘들 것이다.'
양평은 뇌리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기겁을 해야했다.
"정말입니까?!"
'이놈아! 네 사부라는 녀석이 소구에게 이것저것 실험한다면서 먹인 게 한
두 가지인 줄 알어?!'
"에---?"
'네 사부가 이 녀석한테 먹인 것 중에는 대환단도 들어 있어! 거기다 이놈은
우리한테서 벌모세수까지 경험하고!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피곤했는데---. 정
말 징그러운 놈이다!"
양평은 이 꼬마가 징그럽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부인 정각 대사가 징그럽다는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요? 대환단이 아깝다고 저한텐 소환단 밖에 안주신
사부님인데---, 게다가 벌모세수라니요?! 소림의 차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된 저
에게도 베풀어주시지 않은 벌모세수라니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열 받는 내용뿐이었기에 여기에 온 목적까지 까먹은
양평의 입에서는 괴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원망하려면 네 사부를 원망해라. 네 사부가 소구에게 먹인 약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거니까? 본래 이 아이가 가질 수 있는 내공은 일갑자 정도였지만
----,우리라고 하고 싶어서 한 줄 아냐? 우리가 수십년 쌓은 내공을 소실해가
며 벌모세수를 하고 나서야 이 꼬마가 죽다 살아났다. 그 뒤에 정각이 이 아이
의 피로 몇 사람인가 살린다고 이 녀석에게 몇 개 안 남은 대환단 중에 하나가
날아가고---. 이놈은 소림의 재산을 엄청 축낸 놈이다. 이 놈한테 투자한 게
엄청 많으니까 잘 감시하거라. 다른 놈들이 채 가지 않게.'
방소구라는 일곱 살 난 꼬마는 이해할 수 없는 괴성을 토해내며 자신을 무섭
게 쳐다보는 아저씨가 무서웠다.
기둥에 매달린 채 고개만 뒤로 돌리고 양평을 쳐다보던 꼬마는 볼 수 있었
다.
눈에 불이 붙었는지 갑자기 무서운 광채를 내뿜는 훨훨 불이 타오르는 것 같
은 양평의 눈을---.
너무 무서워서 다시 고개를 돌린 소구의 귀에 들려오는 또 하나의 소름끼치
는 소리.
"으드득."
양평은 이빨을 갈며 소매를 걷어 붙였다. 그리고 다시 소구의 허리를 두 손
으로 감싸 안았다. 일단은 이 꼬마를 기둥에서 때어 놓아야 이 곳에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소구는 왜 금강 스님들이 자신을 대리고 나가려는 이 무서운 아저씨는 놔두
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으아압!"
우렁찬 기합이 나한동을 메아리 치고 천장에서 돌먼지가 피어올랐다.
'멈춰! 기둥을 뽑을 생각이냐?!'
갑자기 요란한 말이 양평의 귀에 울려 퍼졌다.
'헥 헥'
거리며 다시 소구에서 떨어진 양평은 지붕에서 떨어져 내리는 돌먼지로 뿌옇
게 흐려진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 녀석을 어떻게 기둥에서 때어낸다-----?"
그렇게 혼잣말하고 있을 때 그의 뇌로 전달되는 말---.
'너 바보냐?'
양평은 어이없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은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아이를 대리고 나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응
원은 못 할 망정 바보라는 말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소림사의 전대의 고승이
라는 금강나한들이 그를 향해 바보라고 하는 것이다.
양평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저 바보 아니에요!"
'너 바보 맞어. 너 혈도에 대해서 배우기나 한 거냐?'
"네?"
도대체 누가 말을 해주는 것인지 몰라 양평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앉아 있는
18명의 금강나한들을 향해 이리저리 시선을 던지면서 물었다. 갑자기 뚱딴지
같이 혈도라니--, 당연히 금나수와 점혈법과 해혈법을 배우면서 달달 외우고
있는 자신을 혈도도 모르는 얼간이 취급을 당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한 양평이
었다. 상승의 무공을 배우려면 혈도 또한 배우지 않을 수 없는 과목인 것이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아는 놈이 억지로 힘을 써서 여길 먼지투성이로 만들
어?! 그냥 수혈 한번 짚어서 재워서 대리고 나가면 되잖아!'
금강나한 중의 누군가가 잔뜩 화가 나서 그렇게 소리쳤다.
양평의 얼굴은 시뻘개졌다. 쓸데없이 힘을 소모하고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한시진을 넘는 시간을------.
양평의 손은 허공을 격하고 '톡'하고 퉁겼다. 무형의 지풍이 날아가 소구의
몸에 부딪치고 다음 순간 소구는 갑자기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것을 깨달았다.
'자---잠들면 안 되는데-----.'
이번만큼은 꼬마의 의사와 상관없이 잠들어야했다.
'탄지신통이라--, 네 나이에 그 정도의 성취라니---, 이 꼬마를 충분히 지킬
수 있겠구나.'
'아니야, 지금 행동하는 거보니까 무공만 높으면 뭐해? 너무 멍청하지 않
아?'
'그래도 정각이 길러낸 제자인데--, 이 놈보다 나은 녀석이 소림에 있지 않
잖아? 쓸만한 녀석들은 다 무림맹에 가 있고---.'
'아아, 다들 그만 하라고. 양평아, 이 아이를 지키지 못하면 너 금강동에서
한 백년은 썩을 줄 알어.'
갑자기 머리 속에 울려 퍼지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양평은 고개를
흔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고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좋았다. 사부로
부터 단단히 주의를 들은 상태였다. 이 안에 있는 열여덟명이 나이가 너무 들
어서 약간의 치매 증상이 있다는 소리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겁해야 할말
이 이들이 하는 말속에 들어있었다.
백년이나 금강동에 가둬버리겠다는 금강나한의 말은 양평의 동작을 눈부시게
빠르게 했다.
기둥에 고개를 박은 채 쿨쿨 자고 있는 꼬마를 들춰 맨 양평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았던 것이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합니다.
즐겁게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