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데기
옛적에 江湖들은 千古의 시름을 잊으려 죽장망혜에 산천경계를 찾았으나 나는 고단한 삶의 이력을 지우려 늦여름 시골길을 달렸다. 구름이 머무는 해발 1150m 강릉 왕산면 하늘아래 첫 동네 안반데기 마을이 종착지다. 가는 길 경기북부와 강원도 평창진부와 강릉 왕산면 대기리를 지날 적에는 들판에 벼 이삭이 패어있고 바람마저 온화하다. 들끓던 열기는 사라지고 늦여름 익어가는 과일이 초가을을 재촉한다. 열기담은 아스팔트를 달리는 자동차가 소나무 숲을 지날 때는 느려지고 언덕배기 오를 때는 힘겨워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차창 가에 스치면 에너지 보충 겸 에어컨을 끈다. 시원한 골바람이 에어콘보다 신선하기 때문이다. 일산에서 오전 11시 반에 출발하여 무료 길을 선택해서 해발1150m고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다.
이곳은 화전민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이 마을의 역사는 화전민 신분으로 돌아간다. 화전민의 신분은 역사 속에서 나라에 중죄를 짓고 도망치거나 사라진 자들의 고향이었다. 안반데기도 먼 역사 속에서 한때의 영화를 산꼭대기 머무는 구름에 간직하고 구름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갔을 게다. 그러나 역사는 바뀌고 시대는 변하여 운명은 새옹지마가 되었고 생활은 상전벽해가 되었다. 역적과 죄인의 명판은 아득히 잊혀지고 60만평 고랭지 밭고랑에 지금의 농수산장관이 오늘도 이곳을 찾았다. 생산자의 애로를 들으려는 나라님이 내방하셔서 이제는 화전민 신분은 사라졌지만 아무래도 인력난을 말하고 52시간을 화두에 둔 것 같다. 이곳도 밭일은 외국인이 대세란다.
고랭지 배추의 메카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는 마을지명부터가 낯설다. 충청도 언덕배기와 강원도 안반데기는 똑같이 경사 급한 지형을 말함인데 안반데기는 떡메의 떡판아래 까는 안반을 말한다고 한다. 평평하다는 뜻이렸다. 대기리 안반데기에는 평평한 곳은 한곳도 없다 그저 모두가 비탈이다. 이곳의 작황은 전국 고냉지 배추의 30~40%를 감당하고 그 넓이는 축구장 280개를 합친 것보다 크단다. 안반데기 오르는 길목마다 강릉시에서는 도로확장에 바쁘고 선선한 구름 속에 안겨보려는 탐방객은 마음이 바쁘다. 마침 정상에 구름이 몰려와 신선과 마주하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생각에 공명에 가득 찬 이들은 만날 필요 없다고 구름은 조용히 산허리를 휘둘러 하늘가로 떠난다. 목마름에 단 하나뿐인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고 감자떡을 시켰다. 750원짜리가 2000원인 얼음과자 아이스크림은 추워서 못 먹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뜻한 찐 옥수수가 불티난다.
서울은 32도 이곳은 20도 가끔 구름이 열기를 몰아가고 수 십 만포기 배추는 자연 냉장되는 이곳 산마루에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풍력발전기 기둥에 고압조심 229,000V라고 경고문을 붙여 놨다. 바람개비는 느리게 돌아가고 돌기 싫은 거 억지로 돌리느라고 바람개비는 애쓰는데 그게 고압이라니 아무래도 뻥튀기도 대단한 기분이다. 내친김에 멍에전망대와 저 멀리 산마루도로를 섭렵했다. 비탈진 거대한 배추밭에 농약뿌리는 일도 장관이다. 모든 산악도로는 1차선 남짓하다. 이곳을 배추트럭이 오가고 주민차량이 통행한다. 문제는 이 많은 고랭지 배추를 누가 심고 거두느냐다 이곳 너댓가구 주민은 아무래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내가 둘러본 바로는 엄청난 면적에 일손을 구하기란 녹녹치 않을 것 같다. 이곳 산세가 비탈지고 밤에는 별들이 쏟아지는 산악이고 여름에는 모기가 없고 기온이 20도내외의 지역이라면 여름 관광객이 입소문타고 구름같이 몰려들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은 풍력발전기 바람개비에서불고 초가을 서늘한 기운은 고랭지 배추 이파리에서 나온다. 이곳을 떠나려니 고온 다습한 산 밑에가 싫고 머물자니 구름 낀 하늘이 별빛을 가려 밤하늘도 삭막해질 것 같다. 세상 풍진에 늙어가는 몸이 기력 잃고 눈 어두면 초야에 묻혀 살은들 그 누가 강호라 하겠는가. 한 밤에 돌아오는 길 가만히 옛 고사를 생각하니 흥한 한나라도 망한 초나라도 지금은 흙속에 언덕배기고 고구려 백제 신라도 모두가 역사 속에 소문만 무성할 뿐 지난 흥망성쇠가 공허하게 된지 오래이니 어찌 일개의 인간이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이 머지않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무서워하랴. 하루를 이렇게 내 역사 속에 묻혀 오늘은 어제가 아니고 내일은 어찌될지 모르니 눈앞에 무상한 인생의 격정을 느끼게 하네. 아무쪼록 즐기는 인생이 될 것을 갈망하며 어둠속을 헤치고 일산에 도착한 시각은 어제 오후 10시였다. 하루를 이렇게 소일하는 것도 건강이 한다. 모든 분이 늦여름을 강건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2019년 8월 20일 오전 12시
율 천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율천님,
무더위 피해 좋은 곳
다녀오셨네요.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살고있는가장
높은 지대라고 하네요.
안반데기..
얼마나 시원한지
하룻밤 민박도 좋을까
싶습니다.
고냉지배추는 확실히
고소하고 길이도
짧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행복한 가을 맞이 하시길 바랍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전민하면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가난 속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주식으로 하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시대의변천에 따라 강원지방의 개발이
급속으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와 함께 동해바다와
겨울 스포츠등으로 스키장,
골프장의 조성이 이루어 졌지요.
많은 관광객 유치와
겨울스포츠의 메카이기도 하지요.
화전민이 일구던 자리에
고냉지 배추가 소득을 올리는가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