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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53선지식 천일화엄대법회』가 시작되다
2016년 11월 1일 범어사(주지 경선스님)는 경내 보제루에서 ‘53선지식 1000일 화엄대법회’ 3일 특별법회를 봉행했다.
첫날 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스님, 둘째날 전 조계종 교육원장 無比스님, 셋째날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스님의 3일 릴레이 특강은 화엄경의 개요와 경전에 담긴 대의를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음력 11월1일(양력29일)에 봉행될 천일화엄대법회 입재식에 앞서 화엄사상에 대한 불자들의 이해를 돕고자함이다.
본격적으로 천일 불사가 시작되는 음력 11월 초하루(29일)에는 無比스님이 다시 초청법사로 보제루 법좌에 올라 화엄경의 첫페이지를 연다.
화엄대법회가 봉행되는 1000일 동안 범어사 대웅전에서는 매일 화엄신중기도가 이어지고 음력 초하루마다 53선지식을 초청해 화엄대법회를 이어질 것이다.
3일 릴레이 특강중 두 번째 날 있었던 無比스님의 법문을 녹취하여 전문(全文)을 싣는다.
범어사 53선지식 천일 화엄대법회
無比스님 법문
-2016년11월2일-
화엄제일도량(華嚴第一道場) 범어사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화엄산림> 또는 <화엄경대법회> 라고 하는 화엄(華嚴)의 이름을 걸고 범어사에서 법회를 크게 하게 되었습니다. 오래고 오랜 세월만입니다. 범어사는 서기 678년, 의상스님께서 화엄경을 가르치고자 창건한 절입니다. 의상스님은 화엄경을 가르쳐서 모든 국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하려고 범어사를 창건하셨습니다. 범어사뿐만 아니라 당시 유수한 사찰 여러 곳에다가 제자를 보내고 혹은 당신이 직접 사찰을 건립하기도 하면서 전국에서 화엄경을 가르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화엄사도 있고, 해인사도 있고 많은 사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화엄경을 가르치면서 의상스님의 건립 뜻을 펼치는 절이 없었습니다.
우리 범어사는 이번에 주지스님이 오셔서 이렇게 천일간의 화엄법회를 시작합니다.
여러분들 혹시 <화엄종찰>이라고 이름을 붙인 범어사셔틀버스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화엄종찰 범어사>라는 말은 신라 때 쓰고 천 년이 넘은 지금에사 비로소 쓰는 말입니다. 비록 버스 측면에라도 <화엄종찰>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이것은 우리의 근본정신을 찾는 일입니다. 범어사를 창건한 근본 취지를 찾는 일입니다. 의상스님께서 꿈꾸었던 근본 뿌리를 되찾는 일입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미미하지만 이런 노력이 작은 불씨가 되어서 그야말로 온 천하를 화엄의 가르침으로 뒤덮을 날이 필히 있으리라고 봅니다. 작은 불씨지만 이 불씨를 당겨준 우리 주지스님께 큰 박수로 격려합시다.
이번 법회의 명칭이 <화엄대법회>입니다. 이것은 범어사가 다시 화엄제일도량(華嚴第一道場)이라고 하는 사실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일입니다. 보통 일이 아니죠.
내 마음 같아서는 이런 일에 하루종일 박수를 쳐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감사하고, 부처님 제자의 한사람으로서도, 의상스님이 창건한 이 범어사에서 수십 년 살아온 대중의 한사람으로서도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여러분, 범어사(梵魚寺)는 화엄제일도량(華嚴第一道場)입니다. 범어사가 무슨 도량이라고요? 화엄제일 도량입니다.
혹은 신라화엄종찰(新羅華嚴宗刹)입니다.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화엄종찰, 화엄의 근본도량입니다.
범어사는 신라 때부터 화엄의 정신이 면면이 이어오다가 중간에 이런 저런 역사를 거치면서 변화가 있었지만 이번 화엄법회로써 이제 다시 화엄제일도량으로의 위상을 선언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338년 전 의상스님이 꾸었던 꿈이 이렇게 다시 실현되는 의미 깊은 법회입니다.
여러분들 부디 이 천일법회를 그냥 쉽게 생각하시지 마시고 ‘절에서 으레 하는 법회려니’ 생각하지 마세요.
‘범어사는 비로소 다시 화엄제일도량으로 선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한 시간 정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것은 첫째 화엄성중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앞으로 화엄성중기도가 천일간 계속 될 것인데 그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다음에 화엄경 약찬게의 중요성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또 무엇보다도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의 법성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씀드릴 것입니다. 법성게는 짧은 문장으로써 화엄경 내용을 다 표현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화엄경은 뭐니 뭐니해도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다음 그 깨달음의 내용을 남김없이 펼쳐보이신 경전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 어떻더라’ ‘이 세상은 어떻고 사람 사람들은 어떻더라’ 하는 것을 이 화엄경 경전에 근거해서 잠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화엄성중기도
우리가 지금 ‘화엄성중기도’를 붙여서 천일간 하기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중단에 그려진 화엄성중들 또 경전상에 나오는 모든 화엄성중들에게 올리는 기도입니다.
화엄성중(華嚴聖衆)하면 화엄세계의 성스러운 대중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화엄성중이라는 명칭속에는 경전에 명문 된 이들 뿐만 아니라 산천초목 천지만물, 두두물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포함됩니다.
화엄세계, 화장장엄세계의 성스러운 대중들이 화엄성중입니다. 이 화엄성중에게 올리는 기도가 화엄신중기도이고 화엄성중기도라고 하는 사실을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 화엄성중 기도는 우리가 평소에 언제 하죠?
정초에 3일간 합니다. 전국 어느 절 할 것 없이 모든 사찰에서 다 합니다. 왜 정초에 할까요? 한 해가 시작되는 첫 3일간이 일년 중에 가장 중요한 3일간이기 때문입니다.
일년 중 중요한 3일간만이라도 화엄성중에게 기도를 잘함으로써 한 해 내내 무사태평하고, 하는 일이 모두 잘 풀리고, 가족들이 편안하게 지내라는 바램에서 화엄성중들에게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저 같이 화엄경 전공자가 볼 때는 그 기도가 부족하지요. ‘일년365일 가운데 왜 3일만 할까?’ 너무 안타까왔어요.
사실은 이 우주만물이 전부 화엄성중입니다. 우리가 지금 한순간 호흡하고 또 내뱉고 들이마시고 보고 듣는 이런 사실들이 다 화엄성중의 보살핌으로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우리 몸속에 있는 100조의 세포 그 많은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전부가 화엄성중입니다. 우리는 그런 화엄성중의 조화로써 오늘 이렇게 이 법석에 와서 법문을 듣습니다.
훌륭한 화엄성중에 대해서 인식을 제대로 한다면 어찌 일년 중에 3일간만 화엄성중 기도를 하고 그만 두겠습니까?
이번에 천일간 범어사에서 화엄성중 기도를 붙인 것은 정말 현명하게 잘하신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천일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모두가 화엄성중의 가호와, 화엄성중과의 조화 덕택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간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매순간 끊임없이 화엄성중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일년중에 3일간만 화엄성중기도를 하다가 드디어 이제 우리는 이번에 천일로 정해놓고 화엄성중 기도를 시작했으니 너무나도 다행한 일입니다.
범어사와 화엄경 인연
오늘 여러분이 모두 책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함께 이 구절을 읽자고 생각을 해서 제가 준비를 해왔는데 책을 다 못받으셨으니 저 혼자 읽겠습니다.
나중에라도 책을 받으시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져온 책의 제일 뒤에 보면 화엄성중의 실체는 범어사와 어떤 인연이 있는가를 밝혀놓은 대목이 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것은 <범어사 창건기> 창건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나라 사람들이 10만의 군사 배를 거느리고 신라를 침략하려고 하자 왕의 꿈속에 (이 때 왕은 문무왕입니다.) 왕의 꿈속에 신인이 나타나 태백산 산중에 있는 의상 스님을 만나 함께 금정산 아래로 가서 7일 밤낮을 화엄성중을 독송을 하면 왜병들이 물러갈 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꿈에서 말한 대로 하여 왜병을 물리치고 금정산 아래 큰 절을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범어사인 것이다.”
이렇게 범어사 창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역사 기록입니다.
일본 왜병들은 신라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도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침범했습니다. 영남지방은 신라국입니다. 바다하고 인접하고 일본하고 제일 가깝지요. 그래서 왜의 침범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여기 동래에서부터 울산으로 포항으로 올라가면서 계속 그랬습니다.
경주에 신라의 왕도가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왕이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여기 금정산 아래 그 때 조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었는데, ‘태백산에 계신 의상스님을 그 암자에 모시고 가서 7일 밤낮으로 화엄성중기도를 할 것 같으면 왜병들이 물러갈 것이다’ 왕이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현몽한 대로 의상스님을 모시고 와서 금정산 암자에 와서 화엄성중기도를 했더니 왜병들이 물러갔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화엄성중기도를 계속했더라면 임진왜란도 없었을텐데요. 그래요 그렇게 맞장구를 좀 쳐줘야 됩니다.
저는 부풀려서 이야기를 못합니다. 역사에 있는 것, 경전에 있는 것 밖에 이야기 할 줄 몰라요. 그래서 ‘이번에 신도님들에게 나눠주는 책에 이런 이야기를 실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이 한마디로써 천일간 화엄성중기도에 생명이 불어넣어지고 신심과 열정을 불어넣게 된다’고 저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만치 우리가 지금 시작하는 화엄성중기도는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이웃에 아직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모두 동참해서 ‘천일간 화엄성중기도를 한단다’ 그리고 ‘범어사는 화엄제일도량이다, 화엄제일도량에 가서 화엄성중기도를 해야 진짜 기도다’ 라고 선전을 하시고, 같이 동참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권선(勸善)입니다. 좋은 기도는 혼자 하는 게 아니예요. 여러 사람에게 권해서 좋은 일을 함께 누리도록 하는 것이지요. 옛날부터 우리가 권선 권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이니까 꼭 그렇게 이웃들에게 말씀드리기 바랍니다.
화엄경 약찬게
화엄법회가 본격적으로 제 궤도에 올라서면 화엄 약찬게를 끝없이 해야 되는데요. 화엄약찬게가 또 중요합니다.
옛날에 범어사에 우리 어릴 때에 보살계를 설하면 전국에서 도량석을 제일 잘하는 사람을 선출해서 초청을 합니다. 뽑힌 그 스님이 이 절에 와서 새벽마다 화엄경 약찬게로 써 도량석을 합니다.
그 때는 동산스님의 덕화로 전국에서 보살계 받는 사람들이 다 와서 절에서 숙식을 했거든요. 모두 일찍 일어나서 도량에 울리는 약찬게 소리를 들었습니다.
선교스님이라고 하는 분이 도량석을 잘한다고 뽑혀 오셨는데 그 스님의 음성이 좋고 염불을 기가 막히게 잘하셨어요. 몇 년간이나 뽑혀오셨습니다.
그 스님이 새벽 3시에 일어나 화엄경 약찬게로 도량석을 하면 대중이 전부 깨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그 소리를 듣습니다. 새벽 도량에 울리는 약찬게 소리에 감동을 받아서 누구도 왔다갔다 하지도 못해요.
그때 약찬게 소리는 그 스님의 염불소리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지금도 저는 생각합니다.
약찬게로 도량석을 하면 도량신장들이 나와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고 해요.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을 옛날 선지식들은 많이 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틀림없이 그 때 범어사에서 보살계를 설하면서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성스러운 도량에 전국에서 제일 염불 잘하는 스님을 모셔와서 약찬게로써 도량석을 하니까 화엄성중들이 전부 나와서 환희에 넘쳐 춤을 추었을 걸로 저는 지금도 믿습니다.
약찬게로 도량석을 하는 동안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도량석 소리 듣느라고 착 앉아서 도량석이 다 끝날 때까지 조용히 다 듣고난 후에야 비로소 움직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만치 약찬게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약찬게는 화엄경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화엄경 약찬게에 대해서도 우리 신도님들이 숙지해서 그런 내용이라는 것을 아시고, 우리 불자들은 다 약찬게를 외울줄 아니까 집에서도 수시로 약찬게를 외우시기 바랍니다. 약찬게 안에는 역시 화엄성중이 들어있습니다.
약찬게가 길어서 못외우시겠거든 그저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만 부르세요.
저는 화엄경을 접하면서부터 관세음보살이 어디 가버렸습니다. 그저 화엄성중을 부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화엄성중 안에 관세음보살이 들어 있고, 지장보살도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잘됐다’ 하고 늘 화엄성중만 부릅니다. 자나깨나 화엄성중만 해요.
원효스님과 의상스님
범어사는 의상스님, 원효스님과 너무나도 인연이 깊은 도량입니다. 저 위에 산에 올라가면 북문에서 가까운 곳에 원효봉이 있고 부산대학 쪽으로 가면 의상봉이 있습니다. 그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원효암이 있죠. 원효암에 가면 원효대가 있고 의상대가 있습니다. 원효스님 앉아서 정진하던 곳, 의상스님이 앉아서 정진하던 곳이예요. 그 때 새겨놓은 글씨도 아직 그대로 있어요. 선명하기가 엊그제 일과도 같습니다.
그 두 분이 팔만대장경을 다 공부하시고 그 중에서 ‘화엄경이 부처님의 진실한 뜻이고 최고의 가르침이다’ 라고 깨달으셨습니다.
그래서 원효스님은 내원사가 있는 천성산(千聖山)에 큰 벌판이 있는데 거기를 화엄벌이라고 합니다. 그 화엄벌에서 화엄경으로써 일천 명의 대중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천 명의 성인을 배출했다고 해서 그 산 이름도 일천 천(千)자 성인 성(聖)자 천성산입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이잖아요.
또 의상스님이 범어사를 지을 때 원효스님이 조금 나이가 많으니까 원효스님은 옆에서 거들기도 하고 주법사는 의상스님이셨습니다. 의상스님은 범어사를 위시해서 전국에 화엄경을 가르치는 절을 지었습니다.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그렇게 신라불교를 전부 화엄불교로 바꾼 것입니다.
신라 때는 화엄불교가 소의경전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의지해야할 소의경전(所依經典)이 금강경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은 선불교(禪佛敎)의 영향인데 너무 미약해요. 금강경은 법화경보다도 훨씬 미약해요.
본래 우리 한국불교는 화엄경이 소의경전이었어요.
최소한도 화엄경을 가지고 소의경전으로 삼아야 일거리도 되고 공부거리가 됩니다.
금강경같이 포켓속에 들어가는 조그마한 책 하나로 평생, 아니 세세생생 의지해야 하는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에 대해 저는 늘 불만이었어요. 그건 그 나름대로 인연이 있겠지요.
아무튼 의상스님이나 원효스님은 화엄경으로써 모든 국민들에게 불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을 제공하려고 하셨습니다.
의상스님 법성게
의상스님께서는 천하의 아름다운 시, 천하의 가장 심오한 화엄의 도리를 법성게에 담았습니다.
불교에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방대한 가르침이 있지만 그중에서 알맹이 중에 알맹이, 그 알맹이에서도 또 알맹이만 선택하라고 하면 법성게입니다.
당연히 법성게입니다.
왜 그러냐? 사실 저는 그런 줄 몰랐죠. 그런데 사람이 사는 일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죽고 사는 일입니다.
태어남보다 사실은 죽는 일이 더욱 큰일입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죽는 순간에 남아있는 사람이 돌아가신 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해요. 죽을 때 아무 것도 못 가져간다는 뜻이죠. 더구나 돌아가신 분은 곧 흙에 묻히거나 불 속에 들어가서 재로 변할 신세인데 무얼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되어서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저승에 가는 부모에게 선물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고 하는 명칭도, 수억이 들은 통장도, 온갖 패물도 돌아가신 분이 못가져 갑니다.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요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이라.
오만 것을 다 줘도 죽은 분들은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오직 그가 지은 업만 가져갑니다. 선업도 악업도 우리의 아뢰야식에 쌓여서 다음 생에 그것을 받는 것이지요.
여러분들 지금 왜 얼굴이 그렇게 타고난 줄 알아요?
전생에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타고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편안한 집에 그렇게 잘 사는 줄 아세요?
전생에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지은 업을 그대로 가지고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손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 좋은 업으로 저승에 가는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고 싶은데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어요.
성인들이 그런 상황을 다 알아서 가장 소중한 것, 돌아가신 이에게 최후의 선물을 생각하고 정해 놓으신 것이 바로 법성게입니다.
49재 스님 법문 다 끝나고 시식 다 끝나고 불공 다 끝나고 마지막에 소대 나가서 그 남은 것 유품까지도 다 태우고 옷도 다 태우고 하는 그런 순간에 모두 다 같이 나가면서 법성도를 돌면서 몇 번이고 법성게를 외웁니다.
할머니가 꼬깃꼬깃 모았던 용돈 안 쓰고 주머니에 놔뒀다가 손자가 가는 문밖에 따라 나가서 몰래 집어넣어 주듯이, 이생을 하직하고 마지막 저승을 가는 사람에게 남은 분들이 진정 마지막 선물로 드리는 것이 바로 법성게입니다.
여러분도 만약에 누군가가 돌아가셨는데 49재비가 없어서 절에 못오시거든 그저 법성게만 읽어드리세요. 법성게가 알맹이 중에 알맹이입니다. 모든 과거 훌륭한 스님들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49재 의식 마지막에 법성게를 몇 번이나 외워드리고 소대에 나가서, 형식적인 화장이죠, 입었던 옷을 다 태우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저승으로 보내드립니다.
보내는 자손들은 ‘아, 이 소중한 법성게를 이렇게 외워드렸으니까’ 하고 마음에 안도감을 갖고 마음을 놓습니다. 그런 것이 법성게예요.
법성게는 화엄경 81권의 알맹이입니다.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스님께서 화엄경 공부를 수십 년 하고 그런 사리를 하나 남긴 것입니다.
‘화엄경의 사리는 법성게다’ 여러분 오늘 처음 들었죠?
화엄경의 사리는 법성게이고 그보다 조금 부피가 많은 사리는 약찬게입니다. 그렇게 아셔야 돼요.
이런 사실을 화엄종찰에 와서 들어야지 어디 가서 듣겠습니까?
어떤 49재든지 마지막에는 법성게를 외워드립니다. 뜻을 알든 모르든 외워 드리잖아요. 영가가 되면 이 걸리적거리는 몸뚱이 벗어버렸기 때문에 7배나 더 총명해진대요. 그래서 어지간한 것은 한문으로 읽어도 다 알아듣는대요.
지금 머리보다 일곱 배 더 총명하다 하면 당연히 다 알아듣겠지요.
과거의 선지식들은 그냥 알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환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 온갖 정보를 많이 가지고 정신이 복잡한 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과 과거에 정말 깨끗하게 사셨던 조사스님들의 영혼은 그 영혼자체가 달라요.
저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영혼이 그 옛날 조사스님들의 영혼이라면 지금 우리는 텁텁한 서울 하늘 미세먼지 꽉 친 머리 같지요. 뭐가 보이겠어요? 안보이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조사스님, 과거스님들을 그렇게 의지하고 걸핏하면 부처님 부처님 하고 조사스님 조사스님하고 보살님 보살님 하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습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고 하였습니다.
화엄경의 근본 취지는 그렇습니다. 물론 차별이 없지요. 그런 가운데 천차만별의 차별이 있다고 하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제 화엄성중 기도의 중요성, 범어사가 화엄제일도량으로서 그런 유래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하는 사실, 또 약찬게의 중요성, 약찬게, 화엄성중들이 도량석을 할 때 착 나와서 춤을 너울너울 추는 그 모습이 눈에 그려지지요?
저의 욕심 같아서는 우리 노전스님이나 누가 하든지 도량석을 할 때는 다른 것은 다 집어치우고 약찬게 하고 법성게만 그저 계속 읽으면 그보다 더 좋은 도량석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불공을 하든 시식을 하든 천도재를 지내든 약찬게 법성게 보다 더 좋은 법문은 없다는 소신을 저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외우는 거니까 함께 외우기도 좋지요.
화엄경
화엄경 첫머리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들었습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 마갈제국 아란야법 보리도량에 계시사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비로소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더라. 내가 살고 있는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대지는 모두 다이아몬드로 되었더라.”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을 ‘이것이다’ 라고 꼭 집어서 설명한 경문은 화엄경 뿐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이 ‘연기법을 깨달았다’ 또 ‘마음을 깨달았다’ 등등 중구난방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이론들이 나름대로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중에 가장 뛰어난 화엄경에서 첫머리에 밝히기를 ‘내가 깨닫고 보니까 이 세상은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얼척없는 이야기죠.
부처님이 깨달으신 부다가야의 보리수가 있는 곳에 가 보면 아주 척박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이 산천도 참 아름답고 좋죠. 거기는 그저 자갈, 모래, 흙바람 뿐이예요.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자리에 앉으셔서 하는 소리가 ‘내가 깨닫고 보니 이 세상이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었더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입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예요.
부처님 마음은 그런 것이고 부처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궁극에 도착해야 할 자리는 바로 그 안목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 다이아몬드로 보인다는 것은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 모든 가족들, 모든 이웃들, 그 층간소음으로 늘 다투고 싸우는 그 이웃이 전부 부처님으로 보이는 그 안목 그 자리입니다. 그 곳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입니다.
이 땅을 전부 진짜 다이아몬드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바꿔봐야 쓸모도 없어요. 나무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땅이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다면 곡식이라도 심을 수 있나요? 땅은 흙으로 되거나 바위로 되거나 돌로 되어야 곡식도 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그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었더라.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지고 더 좋은 물건이 있다면 아마 그것으로 되었더라고 했을 거예요.
이 땅은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소중한 것, 가장 값진 것으로 되었더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기세간(器世間)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표현이죠.
이 그릇, 이 세상은 저 흘러가는 물, 공기, 지나가는 바람, 떨어지는 낙엽, 미세먼지 하나까지도 전부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정말 다 깨놓고 이야기 하자면 내 생명과 똑같습니다.
이 세상은 내 생명하고 똑같이 소중합니다.
우리가 부처님 부처님 하고 부처님 앞에, 집에 있는 부처님 하고는 실컷 싸우고 법당에 있는 불상 앞에 와가지고는 껌뻑 넘어가잖아요. 그 아끼는 돈도 막 사정없이 내놓죠, 하나도 안 아까와요. 그 덕에 그래도 이런 법문도 듣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르러야 할 그 경지는 바로 모든 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써 너무너무 소중하다는 깨달음입니다.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원효스님은 화엄경을 공부해서 한마디로 대중들에게 선언한 가르침이 있었는데 그건 화쟁(和爭)입니다.
화쟁(和爭)이란 다투는 것을 화합하는 일입니다.
절대 우리가 갈등하고 다투고 시시비비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는 전부 소중한 존재이고 전부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부처님하고 누가 다투겠어요?
법당에서 부처님하고 다툰다면 그건 정말 정상인이 아니죠. 그러니까 원효스님이 바라본 화엄경은 바로 ‘천지만물하고도 다투지 않는다’고 하는 화쟁사상입니다.
일본에서 제일 많이 읽힌 <생명의 실상>이라고 하는 책 첫머리에 ‘텐찌잇사이노모노또 와까이세요(天地一切のものと和解せよ) 천지 만물하고 전부 화해하세요’ 라고 나와 있어요. ‘천지만물하고 화해할 것 같으면 모든 병도 사라질 것이고 모든 문제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서두가 나가요. 30권이나 되는 책인데 제가 어릴 때 일본어 공부한다고 그 30권을 다 외우려고 작정을 했어요. 그래 아직도 첫머리만 조금만 외우고 있습니다.
그 첫머리 말이 너무 좋아요.
“천지 만물하고 화해하세요.”
천지만물하고 화해할 것 같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죠. 가족들하고 화해가 잘 됐다, 이웃하고 화해가 잘 됐다, 그러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남북하고 화해가 잘 됐다,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서로 가고 오고, 주고 받고 하면서 그저 같이 연구하고, 운동 경기도 같이 하고 그렇게 할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서로서로 갈등하고 그렇게 죽이고 죽는 관계도 서로가 정말 화해를 잘한다면 얼마나 좋은 삶이 되겠습니까?
화엄경은 그런 가르침입니다.
모두가 부처님으로 보이니 그저 서로 받들어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옆에 사람을 받들어 섬기려고 하면 그 사람은 또 나를 받들어 섬기려고 합니다.
서로 서로 받들어 섬기려고 하는 그런 세상이 화쟁하는 세상입니다. 원효스님은 참 대단한 분이죠.
그래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두 성인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분들은 다름아닌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입니다.
그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모두 이 범어사 강원출신입니다.
저는 강원에서 강사도 오래하고 강사 안할 때도 또 뒷방에 있는 교수사라 해서, 학인들이 졸업할 때 되면 꼭 격려사 한 마디를 하라고 합니다.
범어사 강사 시작한 지가 만 4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제가 한 번도 안 빠지고 하는 소리가 ‘원효스님 의상스님은 범어사 강원출신이다. 너희들이 그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라. 하버드나 옥스포드나 캠브리지에서 원효 의상 같은 성인이 배출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느냐? 범어사 이 승가대학에 일찍이 원효, 의상같은 위대한 성인이 배출된 배움의 터다. 어디를 나가든지 나는 그런 훌륭한 강원 출신이다 라는 자부심을 가져라’ 라고 합니다. 수십 년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불자님들, 우리 범어사 신도님들, 정말 오늘을 계기로 한층 더 범어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화엄제일도량 신도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아 나는 오늘부터 화엄행자야’‘화엄성중만 외울거야’ ‘나는 이제 자나깨나 화엄성중만 부르짖을 거야’ ‘펼쳤다 하면 화엄경이야’‘입만 벌렸다면 화엄경 이야기야’‘화엄성중 기도 이야기야’‘나는 그럴 거야’ 라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화엄경 첫머리에 ‘그 땅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더라’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실 때 앉았던 자리가 바위예요. 이 법상보다 훨씬 작은 바위, 기껏해야 이 법상하고 비슷할까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 바위 위에다가 아무 풀이나 뜯어서 깔아놓고 7일간 앉아서 정진하고 깨달으셨잖아요.
그런데 화엄경 첫머리에는 부처님이 앉으셨던 그 바위와 이미 말라서 비틀어져 버린 풀을 찬탄하기를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훌륭하게 합니다.
보리수라는 것이 인도 곳곳에 있는 평범한 나무인데도 그 나무의 장엄을 또 말할 수 없이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화엄경의 출발은 그렇게 우리의 안목이 달라져서 ‘우리가 부처로서의 눈을 뜨는 것’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제 화엄경 법문을 들을 때 가짜로라도 ‘깨달았다’라고 치고 들어야 해요. 그래야 화엄경이 이해됩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가짜로라도 깨달았다고 보자, 언젠가 진짜가 될거니까’ 라고 생각하고 화엄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사실은 진짜인데 그게 아직 확인이 안됐을 뿐이죠.
사실은 부처인데도 확인이 덜 되어서 아직 긴가민가 해요.
나는 환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도 늘 확인이 될 된 일일 뿐 그것은 진실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달라이라마 스님 잘 아시죠? 그 분은 열 네 번을 환생이 확인된 분입니다. 14대 달라이라마니까요.
여러분들도 전부 환생 했습니다. 전생에 여러분 집안의 아들 딸이었어요. 그런데 확인이 안 됐을 뿐입니다. 틀림없이 환생한 것은 맞아요. 그러나 달라이라마처럼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확인이 안됐을 뿐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이 땅은 그대로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습니다. 다이몬드처럼 소중합니다. 모든 사람은 부처님입니다. 틀림없어요.
그런데 아직도 그런 사실에 대해서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고 이해가 부족하고 깨달음의 눈이 좀 모자랄 뿐입니다. 그래서 확인이 덜 되었을 뿐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 궁극적인 목적이고 불교 공부의 궁극의 경지예요.
그렇게 되면 어떻겠습니까?
‘눈을 뜨고 보니 나도 부처! 너도 부처!’
화엄경에 그런 말이 있어요. 여래출현품에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보니 일체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건만은 다만 자신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는 것을 모를 뿐이다’
그렇습니다. 아직 모를 뿐입니다.
지금도 인도에 가면 불가촉천민이라는 사람들이 사는 꼴이 우습지도 않습니다. 사람인가 짐승인가 분별이 잘 안될 정도예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의 인도사회에서 그 천민들 모습이 오죽 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자출신으로서 6년 고행을 하고 깨달음을 성취했습니다. 버린 것과 투자한 것이 얼마입니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런데 깨닫고 보니까 그 무지렁이 같이 보이는 불가촉 천민 저게 짐승인가 사람인가 분간이 안될 정도의 그런 사람에게도 불성이 있어요. 당신하고 똑같은 거예요,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탄할 일이죠. 자기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버리고 노력했는데, 저 사람도 이 사람도 저쪽에 있는 사람, 요쪽에 있는 사람 모두가 당신이 쟁취한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니 억울한 일 아닙니까?
하나도 노력을 안하고 꿈지럭 꿈지럭 지금 밥 얻으러 가는가 어디로 어정어정 걸어가고 있는 저 인간에게도 당신과 똑같은 불성과 덕상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기재기재(奇哉奇哉)라. 참 신기하고 신기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자 출신으로 이 세상에 신기한 게 아무것도 없는 분이죠. 그런데 그 화엄경 안에서 그랬어요.
‘야 신기하고 신기하다. 인간의 본성이 어찌하여 저토록 고귀한가? 인간의 참모습이 저토록 고귀하고 아름답고 존귀한가?’ 이렇게 스스로 말씀하셨어요.
이런 말을 여러분들이 잘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근공덕
당장에는 가뭄에 물을 뿌리면 땅속에 싹 물이 스며들 듯이 그렇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귀로 스쳐지나가는 공덕을 이근공덕(耳根功德)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들의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어요. 어떤 수퍼컴퓨터 보다도 천만 배 더 거대한 메모리 용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의 아뢰야식입니다. 장식(藏識)이라고 하고 제8식이라고도 하지요. 제8식이라고 하는 이 메모리칩은 형체도 없어요. 이 세상에서 사용앟는 수억대, 수십억대 컴퓨터 보다도, 일기예보를 하려고 들여온 수십억대의 수퍼컴퓨터 보다도 몇 천 배 몇 만 배 더 많은 용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제8 아뢰야식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범어사가 무슨 절이라고 하더라?’ 당장 생각나지 않아도 오늘 우리가 들은 법문은 우리의 아뢰야식에 다 저장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그런 위대한 존재예요.
그걸 부처님은 아시는 거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믿든 말든 사실이 그렇습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깨달으신 분들이 천 번 만 번 증명해 보인 것이고 경전에 무수히 설법하셨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기억을 못해도 절대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아 내 메모리칩 속에, 내 제8 아뢰야식, 장식속에 내 본성속에 이미 다 저장되어 있다. 언젠가 인연을 만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맺게 할 것이다.’라고 믿으셔도 됩니다.
이것이 이근공덕입니다.
귀로 한 번 스치고 지나간 이근공덕만으로도 훌륭한 것입니다. 정말 훌륭한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다이아몬드를 삼키는 것과 같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소화가 안돼요. 똥통속에 들어가도 썩지를 않고 거름속에 들어가도 썩지를 않고 수천 수만년을 거름속에 있어도 썩지를 않아요. 누군가 그것을 발견해서 ‘다이아몬드가 왜 거름속에 있지?’ 하고 씻어서 전문가에게 가져가면 ‘이거 진짜 다이아몬드네’하고 값을 고대로 다 쳐줍니다. 거름 속에 있었다고 값이 떨어지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승법문, 최상승의 법문, 이 화엄도리를 이렇게 한 번 들은 이 공덕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꼭 믿고 알아야 됩니다.
화엄경을 아는 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이렇게 우리가 숨쉬고 이렇게 살아간다고 하는 이 사실 만으로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의미있고 참으로 예쁜 꽃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밉다 곱다 이것 따질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화엄의 세상에서는 지금은 우리가 꿈꿀 수도 없는 그런 내용들이 참으로 많이 펼쳐져 있습니다.
저 신라에 원효스님 의상스님께서 꿈꾸었던 화엄의 세계는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도, 어떤 물질도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엄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런 내용이 화엄경의 정신입니다.
자신의 삶에 존경을 표해야 해
자신의 생긴 모습에 정말 감사하고 자신의 향기를 사랑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아끼고 살아가십시오.
자기가 어떻다 어떻다 ‘아유 나는 뭐가 부족해, 얼굴이 어째, 머리가 둔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생긴 모습 그대로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세요.
자신의 향기가 어떻든 그것을 그대로 사랑하십시오.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이 다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경의를 표해야 해요.
자신의 삶에 존경을 표해야 해. 존경을 표해야 돼요.
아무렇게나 취급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화엄의 철학이고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많은 사람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철학입니다. 부자든 빈자든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갖춘 사람이든 좀 못갖춘 사람이든 서로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함께 살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하는 가르침이 화엄의 가르침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부디 앞에서 말씀드린 화엄성중 기도와 약찬게 또 법성게의 그 의미와 가치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화엄제일 도량은 어디다? 범어사다’ 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 주지스님이 <신라 화엄종찰 범어사>라고 하는 글을 버스에 딱 새겨서 운행했을 때 내가 그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비로소 근본을 찾는구나. 우리의 뿌리를 찾는구나. 본래 화엄경이 우리 불교의 소의경전이었는데 이것이 이제 조금씩 조금씩 세상에 피어나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 지가 몇 달이 되었는데 이렇게 화엄성중기도를 범어사에서 천일간 하면서 수시로 53선지식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천하의 명사들을 모셔서 여러분들에게 주옥같은 고귀한 화엄의 법문을 들려 드리고자 하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내용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소중하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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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이미 <법문녹취>란에 올려진 녹취이지만 염화실지에 실으려고 여래성님과 일주화님이 찍으신 사진을 곁들여서 다시 정리한 것을 여기 싣습니다. 오늘은 몇 달만에 아버지의 정기검진이 있었어요. 우리들 삶의 모토를 '받아들이겠다' 로 결심을 하며 살아가도 오늘 의사선생님으로 부터 '다좋다'라는 사인을 받으니 아버지도 언니들도 저도 좋습니다. 정말 몇 달만에 함께 만나 병원 식당에서지만 맛있는 아침도 외식하고 커피도 마시고 즐거운 데이트를 했습니다. 감사하면서 저도 다시 잘 살아가고 싶어졌어요. 저는 원고 보내려고 집에 일찍 왔고, 다시 합류해서 또 즐거운 시간 보낼겁니다.
동출 스님께서 암투병도 하시고 투석도 하시면서 천진하게 선물을 주시던 것 책을 만드는 희망을 가지시는 것 그런 이야기들을 했고, 또 지난 번에 큰스님께서 주신 우황청심환을 아버지가 소중하게 잘 드셨다는 이야기들도 나누면서 큰스님의 덕화가 늘 혼자 계시고 혼자 공부하시는 아버지에게도 밝은 빛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제가 정말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매일매일 열심히 약찬게 기도를 하셔서 이제 다 외우셨습니다. 저는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ㅎ
혜명화님! 아버님께서 모든곳이 좋아지셨다니 정말다행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늘 행복한 일상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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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화엄성중~화엄성중~화엄성중~_()()()_
고맙습니다. _()()()_
萬般將不去 唯有業隨身... 듣고 싶은 법회 법석, 항상이지만 오늘 유독 범어사가 그립습니다. 원효스님이 계시고 의상스님이 계시고 또, ...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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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_()()()_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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