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기를 써야 해마도 살고 전두엽도 산다
고등학교 때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어지는 친구가 있었죠.
술자리에서는 분명 멀쩡하게 떠들고 걸어 다녔는데, 다음 날 물어보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제 네가 그랬잖아.”
“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본인은 억울했겠지만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죠.
필름이 끊긴 날에는 넘어져 다치거나 사고를 치는 경우도 많아서 당시에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과음을 하면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해마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술자리 중간부터 기억이 통째로 비는 블랙아웃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해마가 건강해야 뇌도 건강하다고 하죠.
해마는 우리가 겪은 일을 단순한 사진 한 장으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순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기억하는 기관입니다.
특히 장소와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요.
그렇다면 평생 전국의 산과 고개를 돌아다닌 산꾼들의 머릿속에는
해마가 좋아할 만한 자료가 창고 가득 쌓여 있는 셈입니다.
어느 역에서 내려 어느 골짜기로 들어갔는지, 어느 능선을 타고 어느 봉우리를 넘었는지,
해가 기울었는데도 산속을 헤매다가 깜깜해져서야 하산했는지 말이죠.
산행 코스의 흐름은 장소와 시간의 맥락이 완벽하게 결합된, 해마가 좋아하는 최고의 자극입니다.
다만 해마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잘 기억하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은 가끔 엉성하게 저장한다고 합니다.
“그때 넘은 고개가 무슨 고개였지?”
“그 봉우리에서 길을 잘못 들어 알바했잖아.”
“군부대 철책을 피해 가다가 군인들과 실랑이한 곳이 어디였더라?”
이렇게 세부적인 기억을 자꾸 끄집어내려고 애쓰는 과정 자체가
해마를 건강하게 자극하는 훈련이 된다는 거죠.
가을 설악산 단풍이 보석처럼 빛나던 날이었습니다. 10명이 잦은바위골로 들어갔는데,
앞서가던 유지니님의 발에 돌이 굴러 윤더덕님 가슴팍에 닿았어요.
다행히 머리가 아니라 가슴 쪽이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돌이 굴러간 장면만이 아닙니다.
하산하다 쉬는 시간에 히든피크님이 꺼낸 ‘꼴림지수’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떠오르거든요.
산 이름과 고도는 잊어도 그런 이야기는 좀처럼 잊히지 않습니다.
해마도 나름대로 중요도를 판단해 저장하는 모양인데,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해마에게 직접 물어봐야겠죠.
어린 시절 국민학교 운동회 날의 기억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예쁘게 치장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바빴는데,
우리 엄마 대신 쪽머리에 하얀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점심 다라이와 들통을 머리에 이고 운동장으로 찾아오셨죠.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창피했던지 저는 운동장 구석으로 도망갔습니다.
점심도 김밥, 유부초밥 같은 것이 아니라 닭백숙 비슷한 음식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볼까 봐 닭고기도 먹지 않겠다며 응석을 부렸던 기억이 납니다. ^^
지금 생각하면 먼 길을 무거운 음식까지 이고 손자를 찾아오신 할머니의 마음이 먼저 떠올라야 하는데,
당시에는 철없이 창피한 마음뿐이었죠.
쪽머리에 하얀 한복, 머리에 인 다라이와 들통, 운동장 구석으로 도망간 나까지 하나씩 떠오릅니다.
젓가락도 없어서 할머니가 버드나무였는지 무슨 나무였는지 가지 하나를 꺾어,
손톱으로 껍질을 벗기고 젓가락까지 만들어주셨죠.
그런데도 저는 닭고기를 먹지 않겠다며 떼를 썼습니다.
그때는 그 모습이 얼마나 쪽팔리던지요. ^^
이렇게 세부적인 장면을 하나씩 꺼내보는 과정이 좋은 기억 훈련입니다.
그저 “어릴 때 운동회에 할머니가 오셨다”로 끝내지 않고, 할머니가 무엇을 입었는지,
무엇을 이고 오셨는지, 나는 어디로 도망갔고 왜 닭고기를 먹지 않았는지까지 기억해보는 것이죠.
기억을 자세히 꺼낼수록 그때는 몰랐던 사람의 마음도 다시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해마만 열심히 일한다고 뇌가 모두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 나이 육땡에는 전두엽도 잘 붙잡고 살아야 하거든요. 전두엽은 산행으로 치면 대장이자 통제실입니다.
해마가 옛날 산행 장면을 창고에서 꺼내온다면 전두엽은 그 기억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판단합니다.
해마가 산행 장면을 촬영하고 보관하는 ‘촬영기사’라면,
전두엽은 어느 장면을 꺼낼지 결정하고 이야기를 순서대로 편집하는 ‘감독’인 셈이죠.
“그 고개를 먼저 넘었나, 계곡을 먼저 건넜나?”
“이 이야기는 해도 되나, 술자리에서만 해야 하나?”
“꼴림지수 이야기를 산행기에 꼭 써야 하나?”
마지막 질문에서는 사람마다 전두엽의 판단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습니다.
전두엽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충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입니다.
산에서 아무리 멋진 암릉이 보여도 시간이 늦었으면 돌아서게 하고,
술자리에서 한 잔 더 마시고 싶어도 그만 마시게 하며, 친구가 얄미운 말을 해도
곧바로 주먹부터 나가지 않게 붙잡아주는 곳이죠.
젊을 때는 전두엽이 알아서 브레이크를 잘 밟아줬지만,
나이가 들수록 운전자가 직접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모양입니다.
산행 중에도 그렇습니다.
“저 능선으로 가면 빠르겠는데?”
지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앞장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하죠.
“거기 아니야. 지난번에도 그리 갔다가 알바했잖아.”
이 말을 듣고 멈추면 전두엽이 아직 건강한 겁니다. 반대로 “내가 이 산을 몇 번 왔는데!” 하며
계속 내려가다가 절벽을 만나면 전두엽보다 고집이 이긴 것이겠죠.
산친구들과 지난 산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해마와 전두엽이 함께하는 합동훈련입니다.
해마는 장면을 꺼내오고, 전두엽은 그 장면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 말이 되도록 다듬어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래서 단순히 사진만 넘겨보는 것보다 산행기를 직접 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좋았다. 힘들었다.” 두 줄이나 산 사진 몇 장으로 끝내지 말고,
어디에서 길을 놓쳤는지, 누가 먼저 지쳤는지, 점심 반찬과 맛난 술은 무엇이었는지,
누구 때문에 웃었는지까지 적어보는 것이죠. 사진 속에 없는 이야기를 기억해내야 합니다.
현대인은 정보를 끊임없이 봅니다. 휴대전화로 뉴스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남이 쓴 산행기도 보죠.
하지만 본 것을 자기 말로 다시 꺼내는 일은 드뭅니다.
계속 입력만 하고 출력하지 않는 컴퓨터와 비슷합니다.
그러니 산을 다녀온 뒤에는 짧게라도 써야 합니다.
산친구를 만나면 지난 산행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하고요.
같은 이야기를 세 번 했다고 너무 타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봉우리 이름이 달랐고, 두 번째에는 동행한 사람이 바뀌었으며,
세 번째에는 없던 멧돼지까지 나타났다면 기억이 조금 숙성된 것이겠죠.
그때는 다른 친구가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면 됩니다.
“그 산에는 멧돼지 없었어.”
“있었어. 네가 먼저 도망가서 못 봤지.”
이렇게 서로 기억을 맞춰가는 과정도 훌륭한 뇌 운동입니다.
결국 산꾼에게 가장 좋은 뇌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산에 가서 길을 찾고, 풍경을 보고, 사람들과 웃고, 돌아와 그날의 일을 기억해 글로 쓰는 것이죠.
없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진을 고르고, 코스를 확인하고, 사람 이름과 지명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제법 품이 들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 과정이 해마를 자극하고 전두엽을 움직여 뇌를 지켜주는 훈련이라는 겁니다.
산에서는 다리를 움직이고, 집에서는 해마를 움직이며, 글을 다듬을 때는 전두엽을 움직입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꾸준히 산행기를 써온 광인님의 뇌는 무척 건강할 것 같아요. ^^
산행기는 어느 산을 올랐는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함께 걸었던 사람과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죠.
다리가 허락하는 동안은 산을 걷고,
기억이 허락하는 동안은 산 이야기를 쓰고,
전두엽이 말리는 동안에는 술도 적당히 마셔야겠습니다.
다만 전두엽의 브레이크가 술에 눌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추석 전날 과음한 뒤 기억이 끊긴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일이 있었거든요.
해마는 그 시간의 기억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고,
전두엽은 운전대를 잡지 말라는 브레이크를 제대로 걸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기억이 없다는 것이 책임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죠.
판단력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신 것도, 결국 운전대를 잡은 것도 제 잘못이었습니다.
전두엽의 브레이크는 산에서 알바하지 않게 막아주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인생이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마지막 제동장치이기도 한 것이죠.
나이가 드니 몸이 소화할 수 있는 술의 양도 확실히 줄어들더군요.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양인데도 이제는 다음 날 몸이 무겁고 기억도 흐릿해집니다.
요즘에는 적은 양의 술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판단해 아예 마시지 않는 젊은 친구들도 많다고 하죠.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자랑이던 시대에서, 술을 잘 거절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시대가 된 셈입니다.
해마는 조금 더 튼튼하게 만들고, 전두엽은 되도록 작게 줄어들지 않게 붙잡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산도 걷고, 사람도 만나고, 옛이야기도 나누고, 산행기도 꾸준히 써야겠죠.
산행기를 쓰는 일은 지나간 산길만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기억과 정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 덧붙이는 이야기
여자들이 만나 몇 시간씩 겉보기에는 영양가 없어 보이는 수다를 떠는 것을 보면,
무슨 할 말이 저렇게 많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뇌의 처지에서 보면 그 수다가 결코 영양가 없는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제 시장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십 년 전 모임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끄집어내고,
앞뒤를 맞춰 이야기하며 상대방의 표정을 살펴 말을 보태거나 줄이죠.
해마는 기억 창고를 뒤지고 전두엽은 이야기의 순서를 정리하니,
수다 한판이 해마와 전두엽의 합동훈련인 셈입니다.
물론 같은 이야기를 세 번째 듣는 친구의 전두엽에는 인내심 훈련까지 추가되겠죠. ^^
산꾼들이 술자리에서 지난 산행을 몇 번이고 우려먹는 것도
‘수다’라는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 같은 뇌 운동일 겁니다.
첫댓글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예전엔 전국 능선의 산 고개 이름이 묻기만 하면 줄줄 나오던 것이 이젠 잘 떠오르지 않아 애써 기억을 하려고 하지 않으면 저절로 생각 나더군
물론 예전에 관계가 있었던 사람의 이름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아직도 4살 때의 딱 하나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 것이,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다음 해 묘자리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이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지
그런데 작은 외삼촌이 지게에 나를 태우고 산에 올라서 할아버지 이장 하던 광경이 그대로 떠 오르는거야 ..... 해마가 좋은건가?
잦은바위골에서 가야동계곡으로 내려서던 2003년 산행 유지니가 수제비인지 칼국수인지 준비해왔던 기억
광인님도 네 살 무렵의 기억이 그렇게 또렷하게 남아 있네요.
작은외삼촌 지게에 타고 산에 올라가
외할아버지 이장하던 모습을 본 기억이라니,
어린 마음에도 아주 강하게 새겨진 장면이었나 봅니다.
오래전 산 고개 이름이나 사람 이름은 바로 떠오르지 않아도,
어린 시절의 특별한 장면이나 감정이 실린 기억은
오히려 선명하게 남아 있기도 하죠.
해마가 좋다기보다
그때의 놀라움과 분위기까지 함께 깊게 저장된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3년 잦은바위골에서 가야동계곡으로 내려서며
유지니님이 수제비인지 칼국수인지 준비해왔던 기억도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면,
산행과 사람과 음식이 한 묶음으로 저장됐나 봐요.
그런데 정작 유지니 당사자는 까먹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요즘 유지니는 아파트 사후관리 기술자로
일당 17만 원씩 받으며 떼돈 벌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