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가슴이 먹먹해서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아들 또래라 더 했겠지요. 당장은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비정규적 노조의 절규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죽은 사람이 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50대 정규직 남성이었어도 슬프기는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면, 사망 사고가 안 일어날까요? 죽음 앞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해야 하는 걸까요?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 놓은 게 자본의 ‘분할통치’라는 건 이제 상식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몫은 그대로 두면서도, 정규직의 몫은 늘리고 비정규직의 몫은 줄여 둘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거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기는 것도 자본의 '분할통치' 방식입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을 가장 심하게 차별하는 사람들이 정규직입니다. 권력은 서로 힘을 합쳐야 할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분할 지배’ 기법을 수천 년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또는 몰라서, 자기들끼리 갈라져서 싸우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도 보통사람들이 수천 년간 헤어나지 못하는 문화입니다.
지금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고, 위험 자체를 최소화하는 일입니다. 사람 목숨 값을 아주 비싸게 책정해야, 안전장치 갖추는 비용을 아끼려 위험요인을 방치하는 자본의 ‘반생명적’ 행태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 동력원을 가진 기계들이 속출하면서, 기계는 인간의 생명과 신체, 존엄성과 일자리를 위협하는 대표적 존재가 됐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산골에서 농사짓다 호랑이에게 물릴까 걱정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기계에게 물릴까 걱정합니다. 따지고 보면, 총이나 자동차도 기계입니다. 현대는, 기계가 인간을 죽이는 시대입니다. 기계의 살인 본능을 억압할 책임은, 기계를 소유한 자본이 져야 합니다.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컨베이어벨트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간을 ‘도구를 제작하는 동물’(a tool-making animal)로 정의했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은 인간 말고도 여럿 있지만, 도구를 제작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동력의 방향을 바꿔 작동시키는 도구를 따로 기계(machine)로 분류하는데, 본디 한자 기(機)는 베틀, 계(械)는 형틀이라는 뜻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간은 자신이나 가축의 힘으로 조작할 수 있는 크기 이상의 기계를 거의 만들지 않았다. 마력 단위를 넘는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물레방아나 풍차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옛날에도 축력을 이용해 기계를 조작하던 사람이 소뿔에 받히거나 말발굽에 채어 죽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 가능성은 벼락 맞는 것보다 조금 높은 정도였다.
증기기관이 발명된 뒤, 인간이나 동물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기계들이 속출했다. 개별 인간이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은, 이윽고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인간을 자기한테 종속시켰다.
1913년, 포드자동차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미국 미시간주에 설립한 공장에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했다. 이 컨베이어벨트 옆에 늘어선 노동자들이 각자 맡은 단순작업만 반복해서 수행하면, 그 끝에서 완성된 자동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컨베이어벨트의 이동 속도가 곧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였다. 속도를 강도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컨베이어벨트와 노동자들은 함께 거대한 기계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을 부품으로 삼는 포디즘(Fordism)이라는 기계.
1936년, 전설적인 배우 겸 감독 찰리 채플린은 인간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시대를 풍자한 영화 <모던타임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묘사한 현실은 그보다 조금 앞서 등장한 ‘인간을 부품으로 삼는 거대한 기계국가’, 즉 파시즘 국가의 현실보다 훨씬 덜 끔찍했다.
포디즘의 시대가 끝나고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떠돈 지 반세기가량 되었으나, 컨베이어벨트는 아직도 곳곳에서 인간을 조수로 삼아 작동하고 있다. 며칠 전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현대는 호환 마마보다 기계가 무서운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