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를 받으러 가던 날이었다. 후드득 후드득 빗줄기가 떨어지면 후련하련만. 얄밉게도 때맞춰 입고 나온 검은 티셔츠에 햇살을 그대로 내리 꽂힌다. 이런, 녀석도, 네 다른 면은 이제 인도에서 나의 얼굴에 맞닿을 것이냐.
한남동은 나에게 오토바이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말끔하게 생긴 할리 데이비슨 대리점이 있기 때문이다. 부서진 친구의 그것을 수리하러 들르던 그 참담한 그 날에도 여전히 더웠던 기억이 나에게 있다. 그럼에도 반짝이던 오토바이는 여전히 나를 열광하게 만들었었지. 이제 주황색 간판 그 앞에서 종종 나는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비자...받았다. 까닥거리는 인도인, 이제 내가 맞닥뜨리게 될 인도의 한 단면이냐.
쑤알라쑤알라.
사진을 보더니 킥킥거리는 하얀머리의 까만얼굴 인도 아저씨. 나 역시 빙긋 웃는다. 그리고 한국말로 말해준다. "세상이 몰라주네?" 언뜻 나는 인도인의 표정에서 "이거 여자아냐...?"라는 마음을 읽은 듯 하다. 어쩌니, 악의 없는 그 표정에 대고.
(사실 이 추측은 인도 여행 내내-머리를 이발하고 갔음에 불구하고-따라다니는 고역 아닌 고역으로 보다 확실히 입증된다. 그러니까 머리 긴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다시 말해 여권을 내밀 때마다 그들은 이건 걸이라며 무례하게 키득거렸지. 무례함이 귀여워 보인다는 것은, 어쩐지 귀여워 보인다는 것은 여행에서 나온 파토스의 발악이었을까. 어쨌든 지금은 긴 머리가 아니니. 인도에서 온 순간부터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을까.)
-농구를 좋아한다.
abc대회는 나에게 그럼에 커다란 의미이리라.
2시40분. 집으로 버스를 타고 오면 경기가 끝날 것임을 안다.
단국대학교 후문으로 들어선다. 허름한 분식집. 어쩐지 분식보다 정수기의 물이 더 감미로울 듯한 그런 허름한 집이다. 오늘 경기가...어느 팀과였더라, 사실 중국 국대에 대한 생각만을 한-레바논의 어느 단신 슛터에서 나의 그 상상은 깨졌지만-나로서는 다른 팀이 한국을 이기는 상상을 하지 않으니, 당연 그 몰랐을 듯도 하다...인도! 내가 가는 나라와 내가 있는 나라가 경기를 하는 것이다. 절대 놓칠 수 없다.
맛없는 냉면을 시킨다. 아저씨는 국수 사리와 이미 몇 번, 그 얼굴을 상 위에 비추였던 밑반찬을 준비하며 뭐라고 웅얼거린다.
그러나...어느 아줌마가 녹화한-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mbc의 중매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오, 이런, 늦가을의 가난. perhaps love. 나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한다. 농구를 보게 해 달라고. 인도를 보게 해 달라고. 그러나 내키지 않으면 괜찮다고.
사실 이미 몇 군데의 은행을-한남 지점의 은행들은 tv를 켜 놓지 않는다-둘러본 뒤라 나의 요청은 어느 정도 간절했을 법도 하다.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는다. 아아, 그렇쉐이, 식사를 하고 나가신다. 이제 보니 나보다 그리 위로 보이진 않는다. 아줌마가, 이뻐서, 아가씨로 보일 정도로 기쁘다.
기쁘다...!
인도는 상상대로 강팀이 아니었다. 중국을 제외한 나라는 아시아에서 한국을 이길 수 없다는 나의 추측은 그 때만해도 맞아 떨어졌었나 보다. 그저 크기만 한 키에 마르기만 한 저 갈색 몸들은 튼튼한 서장훈의 몸에 여지없이 나가 떨어진다. 나도 동시에 몸을 떤다. 나는 상당히 센 원貨로 루피貨를 가진 인도인들을 저렇게 무참히 밀며 다니게 될 것을 상상한 것이다. 그보다, 그 감상보다 더 냉면은 충격적인 맛이었다. 음식이 아니다. 맛이 없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 이런, 험한 음식을 달게 비우던 너는 어디로 갔느냐. 알고 보니 주방장은 그의 부인, 아주머니였다. 오, 이런, 그렇다고 특별히 맛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지만. 하지만 아직은 젊은가 보다. 나는 그 맛이 없는 냉면을 먹는다. 냉면의 맛을 인도의 표정으로 잊으려 tv를 자꾸만 주시한다. 계속해서 들어가는 단무지, 행주맛이 난다.
-사실 그 때 나는 알았어야 했다. 지금 내가 갈 곳이 어느 정도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말이다. 험한 음식보다도 그' 맞지 않음' 이, 사람에게 있어 어떤 영향인지, 평생 중국을 사랑하던 한 한학 교수가 드디어 육십줄에 들어 중국을 갔을 때 양고기에 질려 자신의 인생 전체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알았어야 했다. 아니, 알고 있었던 것을 끌어낼 수 있었어야 했다.-
어쨌든 다시 농구를 본다.
스코어는 81대 61(이것은 기억의 윤색에 의한 가변적인 스코어이다. 아무튼 20여 점차로 김병철은 점수차를 벌리고 있었으니.)
마침내 신동파 해설 위원의 어떤 말이 내 귓등을 때린다. "제가 현역 시절에 인도와 경기를 하면 말입니다, 키들은 큰데 말이죠, 소고기를 안 먹거든요, 그래서 끈기가 없어요...(이하 후략)"
당신은 인도인 릭샤꾼이 팁을 요구하는 것은 본 적이 있는가? 그 끈질김을? 반문한다. 여행 다녀온 지금에야. 농구에 열의가 없을 뿐이야, 아저씨. 아니, 선배님. 시크 교도들은 농구를 안 한답니까?(主:시크 교도들은 육식을 하는 터번인들을 말하는 것, 우리 똑똑한 분들은 다 아실 게다.)
그렇다, 불쌍한 얼굴의 19살 인도인 207cm 센터는 마른 팔로 힘없이 자유투를 던진다. 까만 얼굴보다도 더 갈색인 농구공이 스핀 없이 날아 오른다. 나도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겠지. 고된 삶이 자유투를 들어가지 않게 만든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가운데 콧수염을 민 걸 보니 저는 부정한 돼지고기를 타파하는 모슬렘인데도. 동파는 정말로 착각을 하고 있다. 하긴, 나 역시 인도에 가서 많은 저와 같은 착각을 하겠지. 나 역시 인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전체속의 인도라는 말로 모호히 뭉뚱그리며 무언가 기대하는 것은 댓가를 치루지 않는 것이 아닐까...생각하며, 농구경기는 약 25점차로 끝난다. 잘 싸웠다. 인도. 잘 싸웠다.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