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
토크의 제왕 김수로는 지금 바쁘다. 8일 오후 2시,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쳐진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집화에도 참석해서 명동성당까지 도보행진하며 시위를 하기도 했고,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선보인 그의 꼭지점 댄스에 윤도현 밴드의 [오 필승 코리아]를 접목시킨 꼭지점 댄스 열풍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많은 네티즌들은 김수로의 꼭지점 댄스를, 올 여름 독일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공식 응원 댄스로 사용하자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첫 단독 주연작이며 300만 돌파를 자신하고 있는 [흡혈형사 나도열]의 개봉 때문에 정신이 없다.
김수로는 아직까지 베일에 쌓인 배우다. 그가 지금까지 등장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투캅스](1993년)에서 경찰서 입구에서 경비를 서던 경찰관으로 등장한 이래 [리베라메][비천무][반칙왕][바람의 전설][S 다이어리][간 큰 가족][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24편의 영화에서 단역과 조연을 했다. 공식적으로는 1973년생, 그러나 실제로는 1970년생으로 알려진 그는 데뷔한지 13년이 지났지만 그 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아직까지 자신의 대표작을 갖고 있지 못했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철가방 역도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간 큰 가족]에서는 주연 급으로 비중이 격상되었지만 김수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김수로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기억할만한 영화 속의 명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TV의 토크쇼 때문이었다. 그가 출연하는 토크쇼 프로그램 시청률은 반드시 올라간다는 게 방송가의 정설이다.
지금 인터넷상에서는 김수로의 이른바 꼭지점 댄스를 독일 월드컵 공식 응원댄스로 하자는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얼마 전 KBS TV의 [상상플러스]에 출연했을 때 김수로가 보여준 춤이다. 대학시절 자신을 꼭지점에 두고 피라미드형으로 춤을 추기 시작해서 무려 100명 정도가 뒤에 늘어서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을, 김수로는 탁월한 입담으로 들려주었고 직접 일어서서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김수로 출연분 [상상플러스]는 자체 시청률 최고인 30%를 기록했다.
이렇게 좌중을 휘어잡는 탁월한 말솜씨를 보고 저런 재담이 연기에도 반영이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만약 당신이 갖고 있었다면 이제 [흡혈형사 나도열]을 보면 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첫 주연을 맡은 김수로는 자신의 개인기를 총 집결시켜 이 영화에 쏟아 붓고 있다.
[단독 주연이라 처음에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촬영 2회차 3회차 지나면서 촬영이 거듭될수록 자신감이 확실하게 붙기 시작했어요]
[흡혈형사 나도열]은 코믹 영화다. 영화 제목에 흡혈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고 해서 호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만들었던 이시명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계획되었다. 물론 영화가 흥행이 되어야만 속편이 만들어지지만 현재까지의 시사회 반응이나 예매율을 보면 시리즈 제작은 낙관적이다.
[첫 주연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웃기는 김수로가 아닌 재미있는 나도열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첫 기자시사회가 열린 후 개최된 간담회에서 김수로는 검정색 정장에, 흡혈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주빛 와이셔츠, 검정색 실크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김수로와 흡혈귀, 어울리지 않는가? 김수로의 다소 긴 얼굴은 오히려 흡혈귀 캐릭터에는 장점이 된다.
김수로가 맡고 있는 나도열 형사는 비리 형사다. 그러나 동료들은 아직 그의 비리를 모른다. 자신이 단속을 해야 할 암흑가의 인물인 스크린 경마업주 탁문수(손병호 분)에게 접대를 받으며 불법을 눈감아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도로 운전 중 국제우편물 배달 업체 직원들의 차량과 시비가 붙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말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 국제 우편물 속에 묻어 드라큐라의 고장인 루마니아에서 날아온 모기에게 목덜미를 물린다. 그리고 그때부터 흡혈귀로 변한다.
재미있는 것은, 흡혈귀로 변하면서 나도열 형사는 초인적인 힘을 갖는데, 꼭 성적 흥분을 해야만 그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흡혈형사 나도열]을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만드는 요인은 거의 대부분 이런 설정에서 발생한다. 명백하게 선정적 설정이다. 흡혈귀 영화가 갖고 있는 계급적 의미(즉,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의 피를 빠는 사람이라든가)와 성적 의미(흡혈귀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남성 성기의 또 다른 변용이다)는 거세되어 있다. 그것은 오직 엉뚱한 상황을 유발시켜 웃음을 주려는 의도로 차용되고 있다.
[히어로 무비에요. 비리 형사로 출발하지만 흡혈모기에 물린 뒤 히어로가 되어가는, 나도열 형사의 뱀파이어 되기입니다. 1년 반 정도 절권도를 배웠는데 이번 영화에 써먹고 싶었어요. 액션장면은 히어로 무비답게 화끈하면서도 조금 코믹한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찍었습니다.]
다른 스타들과 달리 김수로에게는 안티가 없다. 그의 웃음이 거부감 없이 만인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그의 장점은 송강호를 많이 닮았다. 연극무대에서 기초를 충실하게 닦은 후 스크린으로 진출한 송강호처럼,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온 김수로 역시 연극 연기로 기초를 다졌다. 웃음 뒤에 눈물이 있다는 것도 두 사람의 닮은꼴이다. 김수로의 재담을 한참 들으며 웃다가 웃다가 결국 눈물까지 흘리지만, 김수로의 웃음 속에는 오랜 무명시절을 통과하면서도 반짝 스타가 되려고 성급하게 덜 여문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김수로가 노력하며 오랫동안 준비한 연기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출연한 TV 프로그램만 모니터 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흡혈형사 나도열] 홍보 때문에 그는 [야심만만][상상플러스][[해피투게더] 등 많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각각 다른 버전의 웃음을 예비해서 펼쳐놓았다. 똑같은 개인기를 절대 선보이지 않는 그의 치밀한 준비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 연기자인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경기도 안성에서 400평이 넘는 양계장과 과수원과 목장까지 하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수로는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해서 배우의 꿈을 키웠지만, 묵묵히 준비하며 때를 기다렸다. 본명은 김상중. 금관가야국의 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에서 예명을 가져온 김수로는, 93학번이다. 대학에 입학한 것도 5수를 해서 겨우 가능했다. 185cm, 75kg의 큰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탕한 기운은 대중을 즐겁게 한다.
김수로는 순발력이 뛰어나고 상황 장악력이 탁월하다. 그의 순간적인 애드리브는 절묘하게 상황과 어울리면서 예기치 않은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그의 상황장악력은 최민수식 마초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같이 출연한 상대 배우들을 마음 속 깊이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훨씬 유효기간이 길고 뿌리가 깊다. 이제 문제는 그의 이런 장점이 어떻게 허구적 캐릭터와 잘 맞물리는가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 우리는 아직까지 배우 김수로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을 별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토크쇼에 출연해서 재미있게 좌중을 휘어잡는 그의 모습에 더 익숙하다.
하지만 [흡혈형사 나도열]은 김수로를 위한, 김수로에 의한, 김수로의 영화다. 영화의 모든 힘이 김수로에서 시작되고 김수로에서 끝난다. 지금까지의 김수로는 이 나도열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흡혈귀 김수로의 전설적 활약이 시작되려면, 그의 웃음이 포말적인 일회용 웃음이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부활의 메시지까지 함축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앞으로의 김수로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김수로의 차기작은 그 자신 유괴범이면서 유괴당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김태윤 감독의 [먼데이 드라이브]다. 그 외에도 박계옥 감독의 [오늘의 운세]에서는 신은경과 공연한다. 모두 주연이다. 코믹한 캐릭터가 아니라 정통 연기로 승부하는 작품이어서 배우 김수로의 롱런을 살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같은 작품이다. 2006년, 배우 김수로는 시험대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