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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0. 8. 29. 토요법회
설 법: 김제원 교무님
타이핑: 남궁부, 한지훈
반갑습니다
오늘 강연 잘 들으셨죠
아마 들으시면서 여러 생각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
비슷한 면이 있다. 또는 저 것을 나는 진작 극복했는데 저 친구는 아직 못 했구나, 나는 서원을 세우지 못했는데 저 친구는 서원을 세웠구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으셨으리라 싶네요.
사실은 여러분들의 강연이 제 설교보다도 더 재미있어야 해요. 지난주에도 배성해 교우의 강연 재밌었죠. 재밌었다는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분명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됐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시절을 겪은 지 이제 수십 년이 흘러서 공감이 덜되지만 여러분들은 공감이 많이 되시지 않을까싶습니다 법문을 들을 때 오롯하게 들어야하고 내 생활에 대조해서 들으라고 하셨거든요 대종사님은. 나는 원불교를 통해서 무엇이 변했는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내 아상을 무엇인가, 내가 욕심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자기 실생활과 대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그래서 석원 교우의 이야기와 저번 주의 배성해 교우의 이야기가 저보다 더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석원교우를 보면서 저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원불교를 빨리 알아보시고, 원불교에 금방 안착하시고, 신앙을 권장하시고, 책을 많이 읽으시고.. 그런 속에서 반항을 덜하고 어머니의 말을 듣는 효자적 내용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특별한 인연입니다. 원불교를 일찍 만난사람도 있고 늦게 만난 사람도 있고 만났다 떨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군대 가기 전에 이 법의 기본을 파악했다 하는 것은 진짜 복이에요. 내 생각에 원불교 법을 안 만나셨다면 군에 갔을 때 사고 칠 위험이 좀 있어요. 저도 군대에서 누구를 죽일 뻔 했어요. 군대라는 곳에서는 느닷없는 경계들이 나타납니다. 동료를 죽이기도 하고 폭력이 일어나기도 하고 탈영이 일어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죠. 마음을 보는 힘, 돌리는 힘, 또 사람을 이해하는 눈,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 이런 것들이 성숙되지 않고서는 사고 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매일 병무청에 빨간 줄이 생깁니다. 뉴스에 많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매일 죽습니다. 그 이야기는 뭐냐 하면 군대의 위험성도 있긴 하지만, 순간 참지 못해서 생기는 다양한 일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진정한 문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훌륭한 문학작품이 나옵니다. 옛날에 서편제 보셨어요? 명창이 되기 위해 눈을 멀게 하고 결혼을 안 하는 등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고생을 하지 않고서는 큰 성과가 나오기 힘듭니다. 젊을 때의 고난은 축복입니다.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이 고난을 오직 피해야할 대상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불쌍한 사람인거죠. 그 사람 일생에 무슨 큰일을 이루겠어요.
역사 이래로 고난 속에서 다 힘을 쌓고, 경계 속에서 오히려 더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고, 자기를 이기는 힘이 쌓이게 되고 그런 것이죠. 법회를 보는 것은 경계를 닿았을 때 그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감정의 경계, 탐욕의 경계, 고통의 경계 등등 수많은 경계들이 있죠.
참 인연이란 것이 묘하죠. 어머니가 교당에 다니시고, 석원교우를 교화하고 여러 다른 교우들의 도움에 의해 석원교우가 정착을 했죠. 제가 아무리 잘해도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으면 신입 교우가 정착하기 힘들죠.
석원교우가 왔을 때 제가 한자를 휘갈겨 썼다고 했죠. ㅎㅎ 미안해.
내가 휘갈겼을 때 두 가지 마음이 있어요. 하나는 너무 휘갈겨서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이정도 씀으로써 한자를 좀 공부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대만을 다녀왔어요. 좋은 점이 있더라고요. 말은 모르겠는데 간판을 보면 다 알겠어ㅎㅎ 어떤 절에서 가게에서 뭘 사는데 포장을 각각으로 하라는 것을 한자로 쓰니 소통이 잘되더라고요. 일본 가서도 제가 그 생각이 들었고, 이번에 대만에 가서도 들었어요, 제가 한문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그래요. 지자본위라고 하잖아요. 모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좋지 않을까.
우리 석원교우가 똘똘하죠? 원불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연이 깊든가, 똘똘하든가, 둘 중에 하나에요. 똘똘하지 않거나 인연이 약하거나 또는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은 원불교를 다니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변화된 것을 첫째 아상이라고 했습니다.
아상. 유아. 이욕. 집착.
아상이라는 것은 ‘나’라는 흔적이죠.
아상을 떼는 것은 어려워요. 보통 범부라는 것은 아상이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아상을 없애라는 것은 진짜 너로 살아라, 이 뜻이에요. 가짜 너로 살지 말고. 처음에 여러분이 교당에 오셨을 때 공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되게 부담스럽습니다. 아까 석원교우도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중고등 학교때 자기를 위해 사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요. 또는 취업경쟁에서 등등.. 그런데 공이라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초반에 저건 아니야, 하다가 중간에 절충하다가. 또는 처음에는 공을 위해 하다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중단하고. 여러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대종사님의 인과의 이치를 공부해보면 대종사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단지 틀리다고 보는 것은 단기간을 봤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확실하게 법의 표준이 딱 서서, 원력이 있어서, 진리의 잣대가 있어서 꿋꿋이 밀려나가다 보면 어느새 앞서나가던 사람들이 저 뒤에 있을 것입니다. 자기만 챙기는 사람은 점점 인정을 잃어가고 주위에 베푼 사람은 점차 앞서나갈 것입니다. 즉 주는 자가 받는 자입니다. 현실 속에선 말이 안돼요. 주는 것은 뺏긴 것이 되지 어찌 받는 것이 됩니까? 그러나 주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초한지에서 나오죠, 항우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사람이 키도 작았던 유방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직무를 이행하다가 잘 안되고 꼬였어요. 가면 자기가 혼날 것 같고 그런 상황이에요. 반면에 귀족출신이고 외모도 뛰어나고 학식도 있고 있던 항우가 있었어요.
못난이 같은 유방은 주변 사람에게 경청을 했어요. 하심을 하고. 하심을 해야 경청이 되죠. 상이 많으면 나를 따르라, 하고 경청을 하지 않죠. 결국엔 누가 이겼느냐. 하심을 했던 유방이 이겨서 한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아상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이죠. 나라는 것은 없으면서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있으면서 없는 것이에요. 일반 사회 사람들은 이 말을 하면 뭔놈의 소린지 모를 거예요.
진공, 묘유
= 무아
진공이라는 것은 참으로 비었다, 라는 것이죠. 나라는 것은 진공이면서 묘유라는것입니다. 없으면서 있다는 뜻이에요. 또 있으면서 없는 것이에요. 실체가 없고 작용은 있더라. 나라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작용은 있다.
나라는 것이 만약에 실존해 있다면 색깔이 있을 것이고 형상이 있을 것이에요. 그러나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 마음, 신령스럽게 아는 그 정신. 그것은 어디 있느냐, 언제부터 있었냐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원불교의 수행인 것이에요. 원불교의 수행은 이 진공묘유를 단련하는 것입니다. 경계 속에서 단련해서 속지 않는 것이에요. 그러면 무서운 힘이 나옵니다. 마치 무소의 뿔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까 공동체에 몸을 담아라, 전체주의, 파시스트 이야기를 했는데요. 욕심이 많으면 아까 말한 제 이야기가 귀에 안 들어옵니다.
나도 유행을 따르는 것은 저급하다는 석원교우의 말과 공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중은 원래 저급한 것이에요. 제가 천 명 교화하려다가 그냥 목표를 인재 교화로 바꾸었습니다. 한 생을 살면서 참 나를 알고 살아간다 하는 것은 헛다리를 짚지 않는 인생입니다. 거짓 나에 속고 산다 하는 것은 땅을 짚고 후회할 일입니다. 이 60억 세계 인구에서 참 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몇 프로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5퍼센트 안에 들 수 있어요.
또한 공부로 알아지는 것이 있고 몸으로 함으로써 알아지는 것이 있어요. 석원교우가 말을 잘했는데, 공연을 하면서 공연을 위해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신을 내 보이기 위해 하는 사람이 있어요. 공연을 할 때 무아가 되면 대중도 빠져듭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에요. 무아가 되면 우주와 하나가 됩니다. 즉 공연을 하면서도 무아가 되면 대중도 하나가 됩니다. 감동이 오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제가 전성욱 교무님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데, 전성욱 교무님은 여장을 하고 공연을 해도 무아로 하잖아요. 많은 교도분들이 다 좋아하시죠. 성욱 교무님이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공심으로 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피아노 전공 하는 애들한테 클래식 말고 뽕짝하라고 하면 안 하려고해요. 오늘 박순명 교우가 아이를 데려왔는데 저는 그 속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보았어요. 아이가 하는 노래가 어떤 것이든 다 그 수준에 맞춰서 따라 해주는 어머니의 모습. 마찬가지로 공연을 할 때도 어떤 역할이든 그것이 은혜가 된다면 그것이 무아다.
이것은 하나의 공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할때도 오롯하게 하면 정말 묘해요.
또한 반복을 통해서 형성이 되는데 욕심도 마찬가지에요. 욕심도 반복을 통해서 견고해져요. 그래서 욕심이 많은 사람은 놓는 연습을 더 해야 해요.
제가 원대 다닐 때 그런 연습을 많이 했어요. 내가 아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그런 연습을 했어요. 그럴 때 내게 느껴지는 뿌듯한 감정은 경험하지 못하면 몰라요.
초대법회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 상황에서 손님같이 하면 좋을까요?
사람이 행복할 때에는 그 속에서 주인이 되었을 때 즐겁고 행복해요. 편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에요.
아상이 완전히 녹아나고 서원으로 공심으로 전환이 되려면, 처음에는 마음을 챙겨야 하고 나중에는 오토가 되도록 해야 해요.
우리 교당에 간사가 있는데 가장 힘든 것이 무어냐, 일생동안 받는 입장이다가 이제 간사가 됨으로써 먼저 대타적으로 주는 역할을 해야 하므로 그것이 가장 힘든 것이에요. 불보살은 남에게 주는 사람이에요. 나를 위하듯이 다른 사람을 위해 보세요. 어딜 가서나 환영받습니다. 어딜 가서나 보호 받습니다. 오히려 손해 안봅니다.
나 혼자 출세해서 여유생기면 ars 눌러줘?
원불교인이 그렇게 살 겁니까? 그건 일반인도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원불교 교법이 아닙니다. 처음 교법을 공부할떄부터 나를 위하는 것과 세상을 위하는 것을 합쳐야 해요. 이게 원불교인의 국을 틔우는 공부예요. 청년시절에 이 국을 툭 터야 합니다. 그러면 눈빛과 얼굴이 달라져요. 그 속에서 지혜가 솟아 올라와요. 오므려 메고 자꾸 이기적으로 가면 막혀요. 국이 탁 터지면 안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생각나지 않을 것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나만 위하다보면 다른 사람 또한 그 사람을 도와주기 싫고 그렇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나로도 존재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나보다 큽니다. 그게 나야. 나를 벗어난 동지 공기 물 부모님 이 우주가 여러분입니다. 나는 나만의 나가 아니라 우주와 함께하는 것이 나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죠. 일원상의 자리라는 것은 둘이 아닌 하나의 자리에요. 그게 일원입니다. 텅 비어서 꽉 차고,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더라. 이것이 일원상의 진리다. 도서자료부 타이핑 하다보면, 이게 그냥 카페에다가 타이핑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실 나중에는 책자가 되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렇구나, 하는 것처럼 국이 틔어 지는 것이에요.
공부라는 것은 실천으로 나누어졌을 때 힘이 쌓입니다.
아까 공금 이야기를 하셨는데, 옳은 말입니다. 공중 화장실에서 화장지 쓰는 것, 물을 쓰는 것.. 보통 사람들은 그냥 막 쓰죠.
팔타원님이 흐르는 물이라서 괜찮다며 시냇물을 팍팍 쓰셨는데, 대종사님이 나무라셨죠. 나중에 물 없는 과보 받는다고. 물 없는 사막 같은 곳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여러분, 아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쓰는 어떤 것, 다 아껴야 합니다. 그냥 나오는 것들이 아닙니다. 다 천지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또 아끼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있어요. 불사할 때는 과감히 쓰고.
오늘 어떤 분이 전화가 왔어요. 전무출신 후원을 해주고 싶다는 분이었는데,
그분에게서 오늘 간사 두 분 출가식 할 때까지 후원할만한 돈을 얻었습니다.
즉 아낄 자리에선 아끼고 쓸 자리에선 써야 해요.
우리 교무님들, 특이한 경우가 있는데, 편지봉투를 받잖아요. 거꾸로 뜯어서 그걸 다시 재활용 하십니다.
대종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알고 보면 버릴 것 하나 없다’라고 하셨어요. 철저한 환경에 대한 천지자연에 대한 인과의 원리를 알면 함부로 쓰지 않아요. 여러분 학사 광고 나올 때 느끼는 것 없어요? 우리 교당 아닌 사람이 그렇게 하기 사실 쉽지 않은 것 이죠.
또 석원교우가 힘들 때 해방구가 독서라고 했죠.
유명한 심리학자들 중에 유년기에 정상적 가정이 아닌 사람이 많았어요. 특이한 경험을 통해서 그것의 필요성을 알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중에 사회에 공헌을 하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죠.
왕따였던 사람이 노래를 통해서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도 많거든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내가 어떻게 극복을 하느냐 인거죠. 만약 극복만 된다면 그러한 경험은 큰 자산이 된다. 제가 대만 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일본과 대만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대만이 청일전쟁에서 져서 일본의 50년 지배를 받았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했을 때는, 우리나라는 황제가 있어서 무신이 와서 지배를 했는데 대만에는 문신을 보냈더군요. 그러니깐 오히려 청나라 때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것이에요. 대만에서는 일본사람이 현재 많이 살고 일본제품도 많이 팔리고 그래요. 대만과 일본의 국민이 책을 엄청나게 본대요. 우리나라 국민보다 훨씬. 저는 대만이 잘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왜냐. 독서량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독서량이 부족해서 걱정입니다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생각이 깊지 않다, 지식이 얕다, 무식하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좀 많이 봤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두 권씩은 보세요. 수첩에 독서란을 만들어서 좀 보세요. 사실 독서를 제일 잘하는 것은 같은 책을 세 번 보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집에 있는 것을 보셔도 되고 교당에 있는 책을 보셔도 되고. 책 좀 보세요. 책 한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이 생생해져요. 자극을 받고요. 그 사람의 행복도의 측정기준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그 사람의 단어 어휘력이 어디 까지 인가, 예요. 어휘력이 많은 사람은 행복도가 큽니다. 안목이 훨씬 크기 때문에.
독일에 한병철 교수가 있는데 그 분이 쓰신 책 중에 사회가 자기를 피로하게하기도 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피로하게 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게 욕망과 집착이에요.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 마음대로 되나요? 그렇지 않죠 모든 것이.
제가 군대에서 남의 잠바를 훔쳐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거절했다가 엄청 맞았어요. 제가 그 사람을 제 마음처럼 할 수 있나요? 아니죠. 즉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에요. 내 한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내 한마음을 어떻게 깨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 문제, 이성문제, 학업 문제 등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만 있다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