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문학을 공부하는 방편으로 일본어를 선택했다가 번역을 시작하게 된 권남희 번역가. 무라카미 하루키, 기리노 나쓰오 등 일본 유명 작가의 작품이 그녀의 손을 거쳐 매력적인 한글판으로 재탄생했다.
럽젠Q : 번역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시절 대학에 가면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막상 문학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선뜻 문학을 선택하지 못했죠. 결국 외국어를 전공하면 밥벌이는 할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일본어를 공부했고, 졸업 후 아는 분으로부터 번역 일을 소개받으면서 번역 일을 시작했습니다.
럽젠Q : 번역가가 되려면 번역 회사에 꼭 들어가야 할까요?
보통 번역을 시작할 때 번역 회사를 통하는 경우가 많아요. 번역 일에 입문하는 한가지 경로가 될 수 있죠. 번역 회사는 출판사와 번역가를 이어주는 중개 역할을 하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번역회사 중 테스트란 명목으로 무보수 번역을 시키거나, 착취 수준의 번역료를 주면서 이마저 떼어먹는 등 악덕 운영 회사가 종종 있어요. 이 때문에 초보 번역가의 피해가 막심하죠. 따라서 번역 회사를 통해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회사가 어떤 곳인지 우선 꼼꼼하게 조사해 봐야 해요.
럽젠Q : 일본 문학 번역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일본 문학 번역은 다음과 같은 부분을 신경 쓰는 게 좋아요. 일본 문학이 특히 호흡이 긴 문장이 많거든요. 이를 가독성은 높이되 작가의 문체는 유지하면서 어떻게 토막 낼지를 고려해야 하는 게 첫 번째예요. 두 번째는 한국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매끄럽게 의역하면서도 작가의 전달 의도를 어떻게 훼손하지 않을지를 신경 써야 하죠. 마지막으로 정확히 해석한 뒤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을 바꾸는 문제가 있어요. 무조건적인 직역보다는 이런 포인트를 고려해야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있죠.
럽젠Q : 직역과 의역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번역인가요?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유명한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해서 그의 소설을 도맡아 번역한다고 해요. 하루키가 직역과 의역에 대해 한 말이 있어요. 그는 본인의 책을 영문으로 번역한 사람 중 두 명을 좋아하는데, 한 사람은 마음 내키는 대로 빼먹고 자기 식대로 번역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단어도 빼먹지 않고 진지하게 직역한 사람이라고 해요. 그러면서 본인은 구절 하나, 단어 하나까지 원문 그대로 직역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하죠. 이처럼 직역과 의역은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번역자의 취향인 것 같아요. 전 직역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늘 독자를 위해 매끄럽게 의역하느냐, 작가의 전달자로서 내 뜻을 관철해야 하느냐에 대한 심한 갈등을 겪곤 하죠.
럽젠Q : 베테랑 번역가도, 번역하다가 막막한 순간이 있나요?
그럼요! 어려운 책을 번역하게 될 때도 있으니까요. 우리말로 읽어도 어려운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과학 등은 번역하기 어렵죠. 이렇게 어려운 책을 받았을 땐 이해가 안 가는 문장과 모르는 단어 천지에요. 이럴 때 문제 해결법은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 주로 야후 재팬의 지식 주머니를 이용해서 일본인에게 직접 묻죠. 그래도 모르는 것이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 가 직접 질문해요. 예를 들면 경마 용어를 찾기 위해 경마 카페나 블로그의 주인에게 질문한 적도 있죠.
럽젠Q : 일본 문학가를 직접 만나 본 적도 있나요?
예전에 <밤의 피크닉>으로 유명한 온다 리쿠 작가를 만난 적이 있어요. <어제의 세계> 출간과 더불어 국제 도서관 행사를 치르려고 한국에 오셨는데, 역자였던 제가 초청된 거죠. 온다 리쿠 작가는 이웃집의 아는 언니처럼 편안한 사람이었어요. 그래도 역시 원작자와의 만남은, 저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었답니다.
럽젠Q : 번역가의 하루는 어떻죠?
제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밖에 안 나가잖아.“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전 대부분 집에서 일해요. 물론 모든 번역가가 다 이런 것은 아니에요.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도서관에 가거나 사무실을 얻어서 일하는 사람도 있죠. 전 집에서 올빼미 형 인간의 생활을 합니다. 동이 틀 때 잠자리에 들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잠시 인터넷 서핑을 했다가 일을 시작하죠. 일하다 지겨워지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하고, 또 지겨워지면 산책하러 좀 나갔다가 다시 일하고••• 이렇게 일하고 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새벽이에요. 그런데 저 같은 생활은 번역가의 ‘나쁜 예’입니다. 아침형 인간으로 사는 번역가도 꽤 있어요. 정해진 시간까지 일하고, 끝나면 운동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하더라고요. 깊은 밤 홀로 깨어 일하는 올빼미와는 삶의 질이 다르겠죠?
럽젠Q : 일본 문학 번역가의 수입은 어느 정도 되나요?
한달 1백 만원도 안되는 것부터 1천 만원이 넘는 것까지, 보수는 천차만별이에요. 경력에 따라 받는 번역료도 다르고, 일이 얼마나 꾸준히 들어오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솔직히 번역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없어요. 높은 보수를 기대하고 번역가가 되겠다는 학생에게는 번역 일을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럽젠Q : 일본 문학 번역가의 직업적 전망은 어떻죠?
아, 글쎄요. 일본 소설이 한창 붐이었던 시기는 지났지만, 붐이란 건 언젠가 또 오겠죠? 그러니 수요가 많다고 봐야 할 텐데, 그 못잖게 번역하겠다는 후배도 많이 등장하고 있어서요. 마냥 밝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직업에서든 전망이 밝지 않을까요?
럽젠Q : 번역가를 꿈꾸는 대학생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사실 수입이 정말 변변찮거든요.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말이죠. 자리를 잡고 난 후라도 여느 전문직처럼 그렇게 고소득을 바라기 힘들죠. 그런 경제적 고충을 각오하셨으면 좋겠어요. 경제적 고충이 있더라도 이 일에 정말 목을 매고 싶은가를 생각하고 선택하길 바라요